퀵바

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조회수 :
334,048
추천수 :
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1.30 21:20
조회
1,254
추천
29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83화

DUMMY

강철수의 말과 함께 일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 목소리에는 사람들의 주위를 모두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듣고 나서는 모른 척할 수 없는 강렬함 역시 존재했다.


‘말도, 말도 안 된다.’


강인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동생과 함께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환상이라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장면이었다. 강철수는 경찰들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남조선의 경찰들이 이렇게까지 야만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조선의 치들이 논하는 자유가 권력을 휘둘러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역시 말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강철수와 사진을 번갈아 확인한 경찰들이 소리치며 일제히 강철수에게 총을 겨눴다.


“김의준! 김의준이다!”

“포위해!”


척, 척, 척!


수많은 총구가 강철수를 눈처럼 노려보았다. 강철수는 순순히 양손을 들었다. 경찰 하나가 소리쳤다.


“김의준! 이 부산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냐!”


강철수가 변화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방황하다 보니 부산이었을 뿐입니다.”

”김인국? 김인국이 죽었다고?”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당황하는 경찰들에게 강철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피난민촌에 은신하던 중에 이곳에 오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자들이니, 무고한 자들을 괴롭히는 짓은 그만두십시오.”


그때 상황을 지켜보며 한발 물러서 있던 경찰이 앞으로 나왔다. 최민영을 윽박지르던 경찰이었다. 그가 흥미로운 듯 턱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김인국이 죽었다는 말을 어떻게 믿지? 너 같은 빨갱이의 말을 어떻게 믿느냔 말이다!”


강철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죽음이든 죽음을 증명할 방법은 시신뿐인데, 아버지의 시신을 이끌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남조선에서도 불효 아닙니까?”

“그렇다면 김인국의 시신은 어디 있나!”

“돌아가신 곳에 묻어 드렸으나,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애석하게도 이 땅은 나의 나라가 아니라서.”


강철수의 여유로운 모습은 경찰들로 하여금 부아가 차오르게 했다. 제일 앞에 서 있던 경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앞에서는 사실만을 말하게 될 거다. 나는 너 같은 빨갱이들을 잘 안다. 다들 철수하고 연행해! 자세한 조사는 서에 가서 ‘내가 직접’ 한다.”


강철수는 순순히 경찰들의 손에 이끌렸다. 강인수는 잡혀가는 강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철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눈에 형을 알아보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강인수는 강철수의 후련한 듯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


자신이 직접 조사하겠다던 경찰의 말대로 강철수는 잡힌 이후부터 그와 독대하고 있었다. 경찰이 피 묻은 손을 흰 수건에 꼼꼼하게 닦았다.

강철수는 경찰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강박적으로 닦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강철수는 피투성이였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꺾이지 않고 분명했다.


슥, 슥.


경찰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뻣뻣하게 구는 게 후회될 텐데 말이야, 김의준.”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죽일 거면 당장 죽여라.”


죽이라는 강철수의 이야기는 진심이었다. 형을 모른 척함으로써 형을 지켜 냈으니 후회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강철수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 뜻도 너와 다르지 않은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다. 위에서 네 목숨만은 붙여 두라는 명령이 떨어졌거든.”


진정으로 아쉬워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경찰의 말은 강철수에게 뜻밖의 확신을 주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북측의 인사들을 잡아 포로 교환 때 써먹을 작정인가 보군. 그렇다는 건···. 아직 당이 나를 변절자로 낙인을 찍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째서? 안석호의 죽음은 벌써 알려지고도 남았을 텐데.’


경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피투성이인 강철수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 탓이었다.


“내 이름은 노덕철이다. 분명 들어 본 적이 있을 텐데.”


노덕철이 자신만만해하며 눈썹을 들썩였다. 노덕철의 이름을 들은 강철수의 눈빛이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였다.


“이 개자식.”


노덕철이 자신하는 것만큼 강철수도 들어 본 이름이었다. 노덕철은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파 중 알아주는 친일파였다. 노덕철이 고문해서 죽인 독립투사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강철수는 노덕철이 그 누구보다 독립군들을 때려잡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덕철은 해방 후 독립투사들이 친일파 척결 1호에 꼽았을 정도로 악질인 고문 경찰이었다.

노덕철이 역사 앞에 무릎 꿇고 단죄를 받는 것이 민심의 요구였지만 해방 직후 좌우의 대립이 격해지면서 미군정은 치안 유지라는 명목 아래에 일제 당시 관료들의 재취업을 추진한 바 있었다. 그것이 강철수를 비롯한 여러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등진 이유였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네 아비는 꼭 내 손으로 다시 잡고 싶었는데, 벌써 죽어 버렸다니. 내 손을 빠져나가고 살아남은 공산주의자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아나? 그건 거의 영광에 가까웠단 말이다. 나 노덕철에게 고문을 받고도 살아남았다는 것 말이다.”

“그 입 닥쳐라.”

“내가 죽인 공산주의자들의 수는 전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놓친 자들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지. 네 아비도 그중 하나였다.”

“강점기 때에는 악질 친일 경찰의 상징으로 살더니, 이제는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다시 사람들을 핍박하며 개처럼 사는구나.”


강철수가 이를 악물었다. 김인국이 강점기 때 당한 고문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김인국의 측근들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독립군들을 고문해 죽이던 친일파인 스스로가 자랑스럽나? 부끄럽지도 않나? 너 같은 놈들이 이 땅을 좀먹는 것이다. 너 같은 놈들이 이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툭.


노덕철이 강철수의 피로 물든 붉은 수건을 강철수의 발치에 던졌다.


“더 좀먹을 것도 없는 나라다. 그 틈에서 살아 보겠다고 하는 게 죄라면 이 땅에서 목숨 부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 태반이 죄인이겠구나.”

“나라를 팔아먹고도 떳떳한 것은 너희가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일 뿐이다.”


강철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하여 노덕철은 체포된 바 있었다. 노덕철이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반민특위 간부들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틀 뒤 이승만의 비호를 받아 그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승만은 노덕철의 석방을 요구했다.


‘노덕철은 반공투사니 그를 풀어주어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증거가 분명합니다.’


반민특위는 석방을 거절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작된 국회프락치 사건, ‘6.6 반민특위 습격 사건’ 등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어 노덕철 역시 풀려났다.


“내 죄는 이미 나라에서 사했다.”

“말을 똑바로 해라. 나라가 아니라 대통령이겠지.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바랐을 뿐이다.”


강철수가 바라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시작한 선택이었다. 강철수의 말에 노덕철이 비웃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비열한 얼굴이 한껏 더 일그러졌다.


“하, 평등? 평등한 세상? 너희들은 하나같이 그 웃긴 말을 잘도 지껄이더군.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 땅에는 없다. 지금도 봐라.”


강철수는 허리를 숙여 눈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노덕철을 노려보았다.


“네 말마따나 내 뒤에는 대통령이 있지. 네 뒤에는 무엇이 있나? 죽은 아비? 죽은 병사들?”

“퉤.”


강철수가 노덕철의 얼굴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이 벌레만도 못한 자식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당장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통스럽게 해 주지.”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개에 이어서, 그냥 개가 된 인간에게는 그 무엇도 동냥하지 않을 테니까.”


다시 모진 고문이 이어졌지만, 강철수는 의식을 잃을지언정 목숨을 구걸하지도, 죽음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고문은 멈추지 않았다. 강철수는 포로수용소로 이송되고 나서야 노덕철의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1951년 11월 북한은 소련과 중국과의 상의는 전혀 없이 유엔의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휴전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휴전선을 긋는 문제가 해결되자 또다시 포로 교환 문제가 대두된 것이었다. 그렇게 협상은 18개월이나 늦춰졌다.

1953년 5월, 북한 측은 북한의 포로들 중 북한으로 가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살겠다는 반공포로들을 데려가겠다고 주장했다. 유엔군은 이를 검토하며 인도주의를 내세워 포로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처리하자 했으나, 중국과 북한 측은 제네바협정에 따라 자동 송환을 주장하며 맞섰다.


“우리 미군은 포로들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봅니다.”

“제네바협정에 따라 자동 송환 되는 것이 마땅하오.”


그러나 문제는 반공포로 중 3만 5천 명은 북한이 남침하여 강제로 인민군에 징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원래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었소!”

“그거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이 포로들은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의사에 따라 우리 북한군에 재입대한 것이므로 송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소.”


북한 측은 포로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북한군에 재입대한 것이므로 송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들의 말대로 많은 포로가 북한군으로 복무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타결된 포로송환협정안에 따르면 포로들은 북으로 돌아갈지 남에 남을지 혹은 제3국으로 가게 될지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고민하던 반공포로들의 강제송환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안전장치일 뿐입니다.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미흡한 대처로 휴전할 수는 없습니다. 휴전을 반대해야 합니다.”


정부는 강력하게 협정안을 반발했다. 그에 맞춰 휴전반대시위 역시 이어졌다. 휴전과 관련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상 타결에만 급급하여 국군포로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게 제일 문제입니다.”


유엔군사령부가 추산하던 국군 실종자 88,000여 명 중에서 귀환이 확정된 포로는 겨우 8,343명에 불과했다. 다른 국회의원이 화를 내며 책상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이 상태에서 15만 명 가까이 되는 공산군 포로의 송환을 자유의사에 따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약 10만 명 이상이 북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합니다. 이건 우리가 완전히 밑지는 거래 아닙니까?”


결론이 보이지 않는 회의에서 내내 침묵하던 이승만이 입을 열었다.


“다음 주인 6월 18일, 모든 반공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격동의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3 격동의 시대 시즌1 - 102화 +1 22.02.10 1,155 28 11쪽
102 격동의 시대 시즌1 - 101화 +3 22.02.09 1,151 29 11쪽
101 격동의 시대 시즌1 - 100화 +3 22.02.09 1,082 28 11쪽
100 격동의 시대 시즌1 - 99화 +2 22.02.09 1,142 30 11쪽
99 격동의 시대 시즌1 - 98화 +1 22.02.08 1,110 32 11쪽
98 격동의 시대 시즌1 - 97화 22.02.08 1,113 26 11쪽
97 격동의 시대 시즌1 - 96화 22.02.07 1,122 30 11쪽
96 격동의 시대 시즌1 - 95화 +3 22.02.07 1,164 30 11쪽
95 격동의 시대 시즌1 - 94화 +4 22.02.06 1,145 29 11쪽
94 격동의 시대 시즌1 - 93화 22.02.06 1,177 29 11쪽
93 격동의 시대 시즌1 - 92화 22.02.05 1,159 30 11쪽
92 격동의 시대 시즌1 - 91화 +1 22.02.05 1,211 28 11쪽
91 격동의 시대 시즌1 - 90화 +2 22.02.04 1,171 32 11쪽
90 격동의 시대 시즌1 - 89화 +1 22.02.04 1,204 26 11쪽
89 격동의 시대 시즌1 - 88화 +1 22.02.03 1,190 28 11쪽
88 격동의 시대 시즌1 - 87화 +1 22.02.03 1,237 25 11쪽
87 격동의 시대 시즌1 - 86화 +1 22.02.03 1,134 22 11쪽
86 격동의 시대 시즌1 - 85화 +1 22.01.31 1,326 32 11쪽
85 격동의 시대 시즌1 - 84화 22.01.31 1,293 29 11쪽
» 격동의 시대 시즌1 - 83화 +1 22.01.30 1,255 29 11쪽
83 격동의 시대 시즌1 - 82화 +2 22.01.30 1,284 27 12쪽
82 격동의 시대 시즌1 - 81화 +1 22.01.29 1,265 33 11쪽
81 격동의 시대 시즌1 - 80화 +6 22.01.29 1,344 27 11쪽
80 격동의 시대 시즌1 - 79화 +1 22.01.28 1,293 29 11쪽
79 격동의 시대 시즌1 - 78화 +2 22.01.28 1,299 30 12쪽
78 격동의 시대 시즌1 - 77화 +1 22.01.27 1,326 25 11쪽
77 격동의 시대 시즌1 - 76화 22.01.27 1,251 21 11쪽
76 격동의 시대 시즌1 - 75화 +1 22.01.25 1,471 33 11쪽
75 격동의 시대 시즌1 - 74화 +2 22.01.25 1,453 29 12쪽
74 격동의 시대 시즌1 - 73화 +6 22.01.24 1,464 3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