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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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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29
추천수 :
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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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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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6화

DUMMY

1954년, 강태수가 강인수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헌법은 개정되었다. 85조에 따라 주요지하자원이나 수자원도 민간에게 넘길 수 있게 되었으며, 87조에 의해 국제무역에 있어서 국가의 통제도 제한되게 되었고, 88조에 의해 국방산업을 제외하고는 사기업을 국영기업으로 바꿀 수 없도록 바뀌었다.

국가가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기업이 한국의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렇게 사기업들이 생겨 났다.

눈 붙이는 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이 비슷할 정도로 강인수는 정신 없이 바빴다.


“강 사장님, 대금을 오늘까지 처리해 달라고 합니다.”

“준비해 둔 대로 진행하세요.”

“강 사장님!”


이곳저곳에서 강인수를 불렀다. 소식 몇 가지는 계획의 불발이었으나 대부분 호재였다. 강인수는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었다.


“여보, 오늘은 이거 입어요. 옷도 새로 다 챙겼어요.”

“벌써 계절이 이렇게 됐단 말이에요?”


강인수는 최민영이 내미는 자켓과 짐을 받아들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에 잡히는 무게가 얼마 전과는 달랐다. 꽤 오랜만에 집에 들른 탓이었다.


“이제 곧 봄이잖아요. 이때 감기 조심하셔야 해요.”

“그렇게 할게요. 연우는 아직 자고 있어요? 학교에 가야 하지 않나?”

“아직 자고 있어요.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최민영이 웃으며 건네는 대답에 강인수가 멋쩍게 웃었다.


“이거 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사는군.”

“바쁘니까요. 별수 있나요. 그리고 내가 매일 말해 주면 되는걸요. 집에만 무사히 돌아와요.”


강인수는 최민영을 끌어안았다. 최민영이 손을 들어 강인수의 등을 토닥였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포옹이었지만, 감정만은 느껴졌다. 강인수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어.”

“무슨 그런 가정을 하고 그래요. 얼른 다녀와요. 늦겠어요.”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를 않는군. 다녀올게요.”


강인수가 걸음을 보챘다. 최민영이 웃으며 강인수를 배웅했다. 강인수는 두어 번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부릉.


최민영은 강인수의 자동차가 출발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잘돼야 할 텐데···.”


최민영의 중얼거림과 함께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강인수는 그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고 있었다.


*


“강 사장님, 편지가 왔습니더. 동생 분께서 보내신 것 같지예.”

“그래요? 고맙습니다. 내 책상에 올려 놔 주세요.”


강인수는 유학을 떠난 두 동생에게서 간간이 편지를 전해 받았다. 강인수에게는 모진 일정을 이겨내고 도착하는 두 동생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 되지 않는 소소한 기쁨 중 하나였다.


“예, 식사는 하셨습니꺼?”

“하하, 시간이 안 나네요.”

“아이고, 그러다 사장님이 쓰러지시면 큰일 납니더. 건강은 꼭 챙기셔야 합니더.”


직원들의 걱정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강인수는 전후 복구 사업에 목숨을 걸고 매달렸다. 부산에서 미군들의 숙소를 짓는 일을 도맡은 것에 더불어, 벤자민이 강인수와 강인수의 ‘형제건설’을 강력히 추천한 덕분에 언제나 일이 넘쳐났다.

그중 강인수가 제일 목숨을 걸었던 것은 고령교 복구 사업이었다.


“전례 없던 최대 규모의 공사인 만큼 어떤 것도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 완벽만이 우리 ‘형제건설’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어야 합니다.”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는 숨어 있는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명복으로 정부가 복구를 서두르는 공사였다. 그만큼 다리를 복구해야 하는 기한은 짧았으나 전쟁으로 인해 교각은 기초만 남아 있었다.

다리의 상판은 무너진 채 그대로 강둑에 박혀 있었으며, 빠른 물살 탓에 애써 박은 교각도 급류에 휘말려 사라졌다. 그 때문에 일 년이 지났음에도 교각 하나 제대로 박아 넣지도 못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콰앙!

풍덩!


“왜! 왜!”


강인수가 강 앞에 서서 답답한 마음을 담아 크게 소리 질렀다. 급류에 휘말린 교각은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연속되는 실패에 급류의 속도만큼 강인수의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톤짜리 크레인 하나가 전부라는 사실 역시도 문제였다. 강인수는 그 빈 격차를 인력으로 어떻게든 메워 보려고 했다.


“하아, 하아.”


겨우 진정한 강인수는 강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해 봅시다.”


그런 강인수에게 인부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


“무슨 수로 다시 한단 말이요? 사장님도 눈이 있으면 좀 보시오.”

“김 씨 말이 맞소.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모한 일이요!”

“될 때까지 다시 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우리들은 더 못 하겠으니 사장님 혼자 하쇼. 돈도 제대로 못 주면서 뭘 다시 해?”

“이봐요! 이봐요!”


인부들이 자리를 떠났다. 강인수는 그들을 쫓아갔지만 인부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야 할 텐데.”


현장을 보고 돌아온 강인수에게 간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강인수도 간부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다시 질문했다. 아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100환이 1환이 되고, 700환이던 기름이 2300환이 됐습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미군들에게서 번 돈으로 인부들에게 돈을 주고 있었는데, 이제 이마저도 바닥이 났습니다. 줄 돈이 없는데, 사람을 어떻게 부린단 말입니까. 파업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도 해결해 보려고 하는 참입,”


그때 멀리서 소란이 들렸다.


“사장! 사장이 저기 있다!”

“어디! 어디야!”


파업한 인부들과 빚쟁이들이 강인수를 찾는 것이었다. 강인수는 한숨을 쉬었지만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이봐! 우리 돈은 어떻게 갚을 셈이야!”

“다리를 짓기는 하는 거야?”

“이번 달에는 돈을 돌려준다고 했잖아!”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아?”


빚쟁이들이 저마다 소리치며 강인수의 멱살을 잡았다. 강인수의 옆에 서 있던 간부가 말려 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이건 좀 놓고 이야기합시다!”

“아저씨가 이 돈 전부 갚을 것 아니면 꺼져!”


툭, 툭.


숨을 못 쉬어 얼굴이 빨개진 강인수가 자신의 멱살을 쥔 남자의 팔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으니 놔주시오.”

“놓으면 도망갈 것 아니야? 내가 너 같은 놈들을 한두 번 본 줄 알아?”

“도망가려면, 진작, 갔겠지.”


빚쟁이들이 찾아온 일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멱살이 붙들린 와중에도 강인수는 침착했다. 강인수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빚쟁이들이 강인수의 멱살을 풀어 주었다.


“쿨럭. 돈은 금방 마련해 오겠소.”


강인수는 이미 재산의 상당 부분을 이 고령교에 쏟아부은 상황이었다. 모직공장에서 버는 돈도 전부 ‘형제건설’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했고, 남은 재산은 이제 집뿐이었다.


“며칠의 시간을 좀 주시오. 어떻게든 마련해 올 테니.”


집만은 팔고 싶지 않았지만, 더는 방법이 없었다. 강인수는 그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최민영은 갑작스럽게 집에 온 남편을 웃으며 반겼다.


“여보!”

“아버지!”


강인수는 자신을 보며 웃는 최민영에게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인수는 있는 힘껏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강연우를 안아들었다.


“우리 아들, 그새 컸구나.”

“밥도 잘 먹고, 어머니 말씀도 잘 들었어요.”

“기특하구나.”


최민영은 강연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강인수의 얼굴에서 시름을 찾았다. 하지만 ㅡ녀 역시 금세 웃어 보였다.


“고단하겠어요. 일단 식사부터 들어요.”

“그럴까? 힘들 때마다 당신 요리가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어.”


가족은 오랜만에 다 함께 모여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 강연우가 잠들고 난 뒤, 강인수는 최민영과 함께 마당을 걸었다.


“여보.”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강인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었다. 미군에게 인정을 받아 꽤 많은 수주를 받았고, 상당 부분을 이루었으나 고령교는 강인수의 뜻처럼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울은 복구 공사였으나 실상은 신축 공사와 다름없었다. 건설 현장은 한없이 열악했으며, 제대로 된 장비 또한 없었다. 목이 메었지만 울 수 없었다.

강인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보, 내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음에 새긴 말이 있습니다.”


강인수는 너른 마당을 한 번 둘러보았다. 최민영은 강인수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신용이라고 말입니다.”


바람이 둘 사이를 스치고 나무에 걸렸다. 강인수는 바스락소리를 내는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 소리에 강인수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대금의 날짜가 밀리지 않는 것, 인부들의 월급날이 밀리지 않는 것···. 이것들이 제일 기본적인 것들일 텐데. 내가 지금 이걸 지키지를 못하고 있어요.”


강인수는 나무들을 보며 아들과 동생들을 생각했다. 강인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창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도, 우리 연우에게도, 나의 동생들에게도.”

“···.”

“그래서 더 창피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자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최민영 역시 알고 있었다.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일이었다. ‘형제모직공장’에서 나는 수입이 전부 건설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민영은 부러 밝게 웃으며 강인수의 품에 안겼다.


“지금보다 훨씬 좁은 집이면 어때요. 당신과 우리 연우, 나. 이렇게 셋이 더 꼭 붙어 살면 되지. 안 그래요?”


결국 웃음을 지은 강인수가 최민영을 끌어안았다.


“연우가 더 크기 전에 이 집을 되찾을 겁니다.”

“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이 집은 강인수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태수가 정성껏 가꾼 나무들과, 오랜만에 만난 강철수와의 추억까지 묻어 있는 집이었다.

최민영이 위로하듯 강인수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고아원은 걱정하지 말아요. 후원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일에만 집중해요.”


강인수는 대답하는 대신에 최민영을 세게 끌어안았다.

강인수는 사 두었던 땅과 집들까지 모조리 팔아 자금을 충당했다. 1955년, 고령교는 그렇게 완공되었다.


“드디어, 드디어! 으아아!”


완성된 고령교를 바라보며 강인수가 눈물과 함께 포효했다. 여러 의미가 담긴 눈물이었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고개 저었으나 강인수는 당당히 해냈다.


“내가 죽고 나서도 이건 내 이름으로 남아 있겠지. 나와 ‘형제’의 이름으로.”


6500만 환이라는 어마어마한 적자 앞에서도 그 생각은 강인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적자를 메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마치 강인수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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