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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조회수 :
334,283
추천수 :
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6 09:20
조회
1,178
추천
29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3화

DUMMY

짙은 파란색으로 칠한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끼이익.


강태수는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서울에 들렀다. 그동안 전화로만 몇 번씩 안부를 전하고, 형을 만나러 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강인수는 그런 강태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강태수가 정성껏 가꿔 두었던 마당에 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하.”

“연우야, 이거는 이렇게···.”


집 안에서 여러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강태수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소리였다. 강태수는 잠깐 동안 서서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창 너머로 강태수를 발견한 강연우가 창밖을 가리켰다.


슥.


"응? 왜 그래, 연우야?"


강연우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린 부부가 환히 웃었다. 강태수의 얼굴도 똑같이 웃음이 만개했다. 강인수가 서둘러 강태수를 맞이했다.


"그동안 잘 지냈지? 별일 없었고?"

"예, 별일 없었습니다. 부대를 수습하고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강태수는 최선을 다해 6사단을 관리했다. 설령 적이 다시 쳐들어온다고 해도 전보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준비하라 지시했으며, 자신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

강인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몇 달 만에 본 동생의 얼굴은 피로해 보였으나 눈빛만큼은 생기가 돌았다.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니고?"

"괜찮습니다. 6사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요. 우리 청성부대는 한국전쟁 동안 단일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의의가 무너져서는 안 되지 않나 싶어서, 자꾸만 대비하다 보니 시간이 훅 가더군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강태수의 눈에서는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 고생이 많구나.”


강인수가 강태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쟁반을 들고 두 남자에게 다가가던 최민영이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머, 놀래라. 연우야. 왜 그래? 삼촌이시잖아.”


어느새 네 살이 된 강연우가 최민영의 다리를 붙들고 뒤에 숨은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강태수가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웃었다.


"몰라보게 많이 컸구나, 연우야. 시간이 정말 빨라. 몇 개월 보지 못했다고 이렇게 내외를 하는 거냐? 이런, 삼촌 정말 속상한걸.”


강태수는 가슴을 짚으며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강연우가 여전히 최민영의 다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빼꼼 내밀어 강태수를 흘깃거렸다. 강태수는 그 모습을 보며 짐 제일 위에 올려 두었던 빨간 상자를 꺼내 흔들었다.


”삼촌이 선물을 가져왔는데, 갖고 싶지 않아?"


강태수의 말에 강연우가 우물쭈물하며 최민영을 올려다봤다. 최민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주시는 거 얼른 받아야지."


최민영의 말에 강연우가 슬금슬금 강태수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강태수가 다정하게 강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연우는 작은 손으로 상자를 쥐고 초록색 리본을 잡아당겼다. 어른들 모두 그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자 속에서 자동차 모형 장난감을 발견한 강연우가 웃으며 방방 뛰어다녔다.


“연우야, 안 돼. 그러다 넘어져!”

“어머니, 어머니! 자동차예요! 자동차!”

“하하, 녀석. 신났구나. 고맙다, 태수야.”

“저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저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는데.”

“좋아해 주니 다행이군요.”

“어머. 여보, 도련님. 눈이 다시 오네요. 밤에 오고 그친 줄 알았는데.”


마침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손에 자동차를 꾹 쥔 강연우가 창문에 달라붙어 밖을 바라보았다. 최민영이 그 옆에서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강인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강태수 역시 그 웃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강연우가 교회에서 배운 크리스마스 캐럴을 서툴게 불렀다. 최민영이 그에 맞춰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강태수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가족의 평화로운 풍경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


최민영이 강연우를 재우다 함께 잠들고 나서, 강태수와 강인수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래, 기분이 어떠냐? 곧 이 땅을 떠나는 기분 말이다.”


강인수의 질문에 강태수는 입안에 머금었던 술을 삼켰다. 목을 긁고 내려가는 뜨거운 느낌이 선명했다.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삼 개월이면 적지 않은 시간인데도 말입니다.”


강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먼 타국에서 보내게 될 텐데, 이 형은 벌써부터 걱정이구나.”


강태수는 손목을 돌려 술잔의 술을 찰랑거렸다. 술은 넘칠 듯 넘치지 않고 잔 안에서만 찰랑였다. 강인수는 그런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강태수는 고민하고 있었다. 강인수는 다시 한 모금 술을 삼켰다.


“태수야.”


강태수는 가만히 강인수를 바라보았다. 형제의 얼굴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으나 표정만은 비슷하지 않았다. 강인수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우리 가족을 지켜 주었듯이 이제는 형이 너를 지켜 주마.”


그 말은 강태수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강태수는 그제야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강태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이 메어 갈리진 목소리가 입 밖으로 서서히 흘러나왔다.


“···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둑이 무너진 댐처럼 터져 나왔다.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강태수는 장신영 사단장의 부름에 따라 사단장실에 와 있었다. 장신영 사단장은 강태수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강태수 대위, 자네는 대한민국의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강태수가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강태수는 초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제 피를 잊겠습니까.”


잠시 동안 강태수를 탐색하듯 바라본 장신영 사단장이 시선을 서류로 내리고 턱짓했다.


“가 봐.”

“다녀오겠습니다, 사단장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강태수와 백도후를 배웅하기 위해 여러 군인들이 나와 있었다. 김웅배 대대장도 직접 나와 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툭, 툭.


“결과적으로 우리 6사단에서는 강태수 대위와 백도후 상사만 가게 되었군. 전국에서 뽑힌 수가 열도 되지 않는다는데, 우리 6사단에서 둘이나 배출해 내다니. 이거 자랑스럽군.”


김웅배 연대장은 자랑스러운 자식을 바라보듯 강태수와 백도후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나라에서 자네들에게 거는 기대가 커.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 줄 거라고 기대하지.”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태수는 마지막으로 육탄돌격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중대장님! 무사히 다녀오셔야 합니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중대장님.”

“그래, 다들 고맙다. 다들 몸조심 하고.”


백도후도 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백 상사님.”

“다들 무탈하십시오.”


강태수는 6사단의 많은 배웅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턱.


강태수는 트럭에 올라 이제 어느 정도 수습된 6사단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출발하지.”

“예, 대위님.”


강태수와 백도후를 태운 트럭이 부대를 빠른 속도로 벗어났다. 강태수는 부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돌렸다.


“이제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야 해.”

“예, 중대장님.”

“그전에 잠시 들르지.”


강태수는 품 안에 넣어 두었던 편지를 부쳤다. 강인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두 남자는 이어서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있군요.”

“그러게 말이야.”


폐허가 되었던 일본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재기하고 있었다. 강태수는 그 모습을 분노에 찬 눈으로 훑어보다가 배 위에 올랐다.


“가지, 백 상사.”


부우우.


강태수는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순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떠나 왔다.’


커다랗고 새카만 바다가 끊임없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까지도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울렁거리는 파도를 보며 백도후가 입을 열었다. 강태수는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응시했다. 배 위에서 며칠이 흘렀다.


“며칠 동안 바다 위였는데, 여전히 바다 위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강태수는 백도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난간을 붙잡았다.


턱.


매서운 바닷바람이 뺨을 할퀴었다. 장진호에서 겪어 보았던 바람 이후에 제일 지독한 바람이었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강태수는 있는 힘껏 앞을 바라보았다.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위님?”

“백 상사, 수송기를 타고, 배를 타서도 이렇게 며칠 동안을 움직여야 할 정도로 세상이 넓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축복인지 알 수가 없군.”


강태수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나는 하나라는 사실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어. 그렇지 않은가, 백 상사?”


백도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두 남자는 며칠 동안이나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 도착했다. 새해와 함께 온 새로운 시작이었다.


*


“여보, 태수 도련님께 편지가 왔어요. 출발을 잘 하셨다는 내용이에요.”

“그게 정말이에요?”


최민영은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편지를 들고 ‘형제건설’에 들렀다. 벤자민이 약속한 대로 ‘형제건설’은 벤자민이 떠나기 전에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웬만한 복구 사업이 ‘형제건설’에 할당된 덕이었다.

강인수는 날로 커져가는 회사를 손수 경영하고 있었다. 강인수가 부산에서부터 데려온 기술자들과 서울에서 구한 기술자들은 서로 견제하는 중이었으나 아직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강인수는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강인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를 받아들었다. 강인수는 편지를 다 읽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쯤이면 미국에 도착하셨을까요?”

“아마도 그럴 것 같소.”


부부는 함께 웃었다.


“무사히 다녀오셨으면 좋겠네요. 얼른 알려 주고 싶어서 편지를 받자마자 왔어요.”

“이 추운 날에, 고생했습니다. 얼른 몸 좀 녹여요.”


강인수가 최민영에게 담요를 건네주었다.


“나온 김에 고아원에도 들러 봐야겠어요. 아직 부산에서는 별 연락이 없죠?”


강인수가 자재 수량이 적혀 있는 서류를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연락을 받았는데, 모직공장은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 몇 명을 서울로 보내고 싶다는 말도 함께였고. 아이들이 공부하기에는 아무래도 서울이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도범이가 온다고 하던가요?”


최민영이 반색하며 질문한 참이었다.


벌컥!


“저, 사장님!”


문이 확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확인한 순간, 강인수의 얼굴이 굳고 말았다. 강인수는 강태수가 다녀간 그날 밤 이후로 강철수를 찾고 있었다.


‘형님, 철수가 서울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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