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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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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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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1.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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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77화

DUMMY

강철수는 달렸다. 넘어지면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고, 수풀과 나뭇가지에 발이 걸리면 밟고 일어섰다. 이 순간만큼은 강철수라는 이름도, 김의준이라는 이름도 아무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강철수를 지탱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탕!


또다시 찰나였다. 강철수는 김인국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


강철수가 절규했다. 처음으로 입에 담는 말이었다. 늘 목구멍에 걸려 올릴 수 없던 말이었다. 피가 섞인 가족을 등진 자신이 새로운 가족을 얻을 자격은 없었다.

강철수가 바닥을 기다시피 해 바닥에 쓰러진 김인국에게 다가갔다.


“쫓아라!”


그사이 최정혁과 일행들이 재빨리 안석호의 뒤를 쫓았다.


“아버, 선, 선생님.”


피와 흙이 엉겨붙은 손바닥을 넘어 김인국의 뜨거운 피가 손가락 사이를 메웠다. 상처는 지혈하는 의미도 없이 계속해서 피를 쏟아냈다. 김인국이 총에 맞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강철수의 직감은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오늘도 아니고, 지금이 마지막이다.

무너지는 강철수와는 달리 김인국은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이구나. 네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어서 병원, 병원에 가야 합니다.”


턱.


김인국이 힘겨이 손을 들어 강철수의 손을 붙잡았다. 남은 힘을 전부 쏟아 아들의 손을 붙잡은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의준아, 잘 듣, 거라. 명심해야, 해.”


김인국의 눈빛은 강철수가 김인국을 알아온 시간 중에서 제일 선명했고, 강렬했다. 그 시선에서 눈을 뗄 수 없었으나 강철수의 시야는 점차 뿌옇게 변했다.


“그들을, 저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모두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병원에 가야 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다정하게 강철수의 손등을 두드리던 김인국의 입에서도 피가 터져 나왔다.


“쿨럭.”

“아버지!”


강철수의 눈동자에 한참 고여 있던 눈물이 결국 볼을 타고 떨어졌다. 김인국이 겨우 손을 들어 강철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눈물이 닦인 자리에 대신 핏자국이 남았다.

김인국은 떨리는 손을 강철수의 볼에 남은 핏자국을 지워 보려 했지만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강철수가 그 손을 붙들자 김인국이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의준아, 복수,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돼. 그러려거든, 쿨럭, 차라리···. 차라리, 네, 형에게, 돌아가거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오래전 돌아선 형제들이었다. 더군다나 김인국의 입에서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단어였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말을 잇는 김인국의 얼굴은 역설적으로 홀가분해 보였다. 강철수는 김인국의 눈빛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을 목도했다.


“쿨럭, 언제부터인지··· 의준이 네가 웃지를, 않았어. 그러니 살육도, 전쟁··· 도, 복수도, 잊고··· 모든 걸 잊고, 그렇게, 살아라. 이것이 김인국이 아니라, 아비로서 네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구나.”

“아버지,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버지···.”


더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맞잡은 손가락에서 힘이 사라졌다. 서로의 손을 붙들고 있는 것은 이제 강철수 하나뿐이었다.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강철수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여 힘겹게 허리를 숙였다. 그대로 김인국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따스한 체온은 여전했으나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박동이 빈 자리를 강철수의 울음이 막힘없이 채웠다.

눈물이 피에 섞였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희석이었다.

강철수는 이를 악문 채 생각했다.

이 이념과 혁명이 지게 된다면, 그것은 이념과 혁명이 옳지 않아서, 틀려서가 아니다.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자꾸만 스러뜨리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


강철수가 김인국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목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안석호 동지가 아까 물을 길러 오겠다고 한 후에 보이지 않는데, 혹시 이쪽으로 지나가지 않았소?’


강철수가 김인국을 반듯이 눕혔을 때, 최정혁은 일행들과 함께 안석호를 포박해 왔다. 안석호의 저항이 심했는지 모두들 상태가 성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돌아오지 못한 자가 없는 것이었다. 강철수가 동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째서입니까?”


그렇게 묻는 강철수의 눈빛에는 그 무엇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강철수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유였다.

눈가와 입가를 비롯해 얼굴에 한 군데도 성한 곳 없이 터진 안석호가 강철수를 노려보았다.


“무엇이 김의준 동지를 그렇게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거요? 몇 개월 동안 차일피일 미루며 박헌영 부수장 동지의 뜻을 행하지 않은 것은 김의준 동지 당신이요.”


강철수가 느릿하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안석호 동지의 뜻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어서 강철수는 등 뒤에서 내내 그 자신을 찔러 온 칼을 꺼내들었다. 안석호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변절자 새끼! 내 그럴 줄 알았지!”

“아, 그래서였습니까. 내 이름을 듣고 그렇게 놀란 게, 그 이유였군요.”


강철수는 차갑게 조소했다.


“그래! 네놈과 김인국이 변절해서 남조선에 남았다는 소문이 몇 개월 동안 지천에 가득했다! 이 어리석은 놈! 감히 당을 배신해! 동지들을 치료해 주었기에 김인국만 제거하고 네놈은 살려 준 것이었다!”


강철수는 무릎을 꿇은 채 씩씩거리며 소리치는 안석호를 내려다보았다. 강철수는 대꾸하지 않음으로써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과,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강철수는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살려 주었다니요. 그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안석호 동지. 나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죽음을 청한 적 없고, 나는 당신에게 목숨을 구걸한 적 없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러한데, 당신이 나를 어찌 살립니까.”

“···.”

“나는 그저 살아 있는 것입니다.”

“혁, 혁명에 목숨 바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어!”


강철수의 무릎 하나가 바닥에 닿았다. 강철수와 안석호의 눈높이가 같아졌다. 강철수와 눈이 마주치자 안석호의 등에서 등골이 오싹하도록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다. 강철수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혁명. 예, 그러했죠.”

“···.”

“내가 앞으로 벌일 이 일은 혁명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도 하나 묻고 싶어졌습니다. 혁명이 살인에 당위성을 가져다 줍니까?”

“··· 지금 당의 결정을 의, 의심,”


강철수는 안석호의 말을 가로채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안석호 동지 당신이 받은 지령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아버지를 죽이라는 것이었습니까?”


강철수가 내뿜는 살기가 주변을 숨이 막히도록 옥죄었다. 안석호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미, 미제 스파이 김인국을 처살하고, 그의 아들 김의준 역시 스파이로 확인된다면 함께 제거하라는 지령이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강철수는 실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미제 스파이···.”


강철수가 조소하며 중얼거렸다. 김인국은 복수하지 말라 말했으나, 애석하게도 강철수는 그 바람을 들어줄 수 없었다.


슥.


최정혁이 말없이 안석호에게서 빼앗은 총을 내밀었다. 강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칼을 쥔 손에 힘을 쥐자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살인귀로 만드는 건 총도, 탱크도 아닌 칼인 걸 잊지 마라.’


오래도록 미룬 결정이었다. 강철수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인 김인국의 얼굴은 평온했다. 결정은 미루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장교가 되었을 때, 인민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배웠다. 이념이 다른 자는 없애야 하는 적일 뿐, 가족이 아니라 하여 문득 떠오르는 형제도 애써 지웠다. 강철수가 아니라 김의준으로 살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친 혁명은 순결해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강철수는 이제 그것이 전부 미련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것은 안석호 동지에게 아버지를 잃은 나 김의준 개인의 복수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지 않습니까.”

“네가 나를 죽이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김의준.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박헌영 동지가 너를, 커헉.”

“상관없습니다, 이제는.”


안석호의 거구가 뒤로 넘어갔다. 강철수는 안석호의 가슴에 박은 칼을 뽑지 않았다. 새로운 피가 손에 튀었다. 여전히 뜨거운 온도였다.


*


일행들은 말없이 맨손과 무기들로 흙을 팠다. 김인국을 묻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이렇게 모시면 선생님을 뵈러 올 수도 없을 텐데, 정말 괜찮겠냐?”


시큰한 눈시울로 제일 분주하게 땅을 파던 최정혁이 입을 열었다. 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야 있으니, 차라리 화장이 낫지 않겠어? 통일이 되면 그때 몽양 선생님과 함께 장례도 치러 드리고 말이다.”

“독립운동가셨던 아버지를 어떻게 화장할 수 있겠습니까.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가 우리에게 민족 정신을 말살시키겠다며 화장을 강제한 것을 제일 싫어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 이놈아.’


최정혁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처음 보는 강철수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시 묵묵히 땅을 팠다. 안석호 말고 다른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절을 마치고, 강철수는 김인국을 묻은 나무 밑에 크게 칼집을 내었다.


“그래, 그 정도면 언제 와도 알아볼 수 있겠다. 상황만 나아지면 그때 바로 다시 선생님을 모시러 오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움직여야 했다. 모두 강철수를 바라보며 강철수의 선택을 기다렸다. 여러 시선에는 여러 의미가 존재했다.

강철수는 김인국의 죽음도 모자라서 안석호가 몇 번이고 언급한 ‘박헌영’이라는 이름에 학생연맹이었던 네 명의 안색이 더욱 좋지 못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박헌영은 일찍이 학생연명을 수족으로 부리다가 한 순간에 팽했다.

덕분에 그들은 좌우 어디든 이곳저곳에서 고초를 겪어야 했고, 그러한 학생연맹을 강철수가 찾아가 김인국과 몽양의 편으로 설득해 지금까지 함께하는 중이었다.


“괜찮습니다. 안석호가 이야기한 지령은 상관하지 마십시오.”


괜찮지 않았으나, 괜찮은 일이었다. 이들은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똑같은 이유로, 비슷하게 버려졌을 뿐이었다.


“동굴에 있던 그들을 찾으러 가지 않을 겁니다. 더불어 저는 다른 동지들도 찾지 않을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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