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조회수 :
334,054
추천수 :
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6 21:20
조회
1,145
추천
29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4화

DUMMY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최민영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강인수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일전에 이미 이야기한 대로 진행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강인수가 차분히 사람을 물렸다.


끼익, 탁.


“여보?”


당황을 담은 눈으로 묻는 최민영을 보며 강인수는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철수, 철수가 살아 있단 말이야?’


강태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침묵은 생각보다도 숨이 막혔다. 강인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냐?’


강태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정도라면 기정사실이었겠으나 강인수는 믿을 수 없었다. 동생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하물며 자신과 같이 서울에 있다는 이야기도 전부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강태수의 대답은 강인수가 우려하던 내용과 일치했다.


‘예, 형님. 요즘 공산주의자들을 신고하면 포상금이 적지 않게 나오는 걸 아시지요.’


강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에서 김의준을 봤다는 신고가 잊을 만하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확인해 본 결과 그중 대부분은 거짓이었지만, 서울에서 들어온 신고 몇 건은 신빙성이 꽤 있습니다. 옷차림 등 신고 내용도 일관된 편이고요.’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에 아주 강력한 반공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대힌민국의 국민들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죽음과 비극을 겪었다.

무너진 건물을 다시 짓고, 뼈대도 남지 않은 집을 다시 짓는다고 해도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커다란 상갓집이었다.

자연스럽게 국민들은 북한 정권과 공산주의에 대해 분노했다. 전쟁 중에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공산당의 살벌한 통치를 경험했던 국민들은 더욱 강한 반공 태도를 보였다.

사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공산군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국민들도 전쟁 후 반공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전에는 우익(右翼)진영 정치인들이나 청년단체 단원들과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반공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용어도 ‘반공(反共)’이 아닌 ‘방공(防共)’이었으니까요.‘


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공 의식이 대중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처럼 퍼져나갔다. 전쟁을 거치면서 방공에서 멸공(滅共)으로 강화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반공으로 정착되었다.


’철수에게 붙은 포상금이 상당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먼저 철수를 신고하거나, 다른 군인이나 경찰들이 먼저 철수를 찾으면 그때 철수는 정말 죽게 될 겁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동생이 죽어 장례를 치러야만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강인수가 고개를 저었다.

강인수는 막내 희수의 장례도 직접 치르지 못했다. 그 사실은 언제나 강인수의 마음에 돌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한참의 침묵 후에 강인수는 입을 열었었다.


’태수야, 나는 철수가 부산에 왔을 때 생각했다.‘


강태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모든 게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망설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때와 같아.‘

’형님.‘

’나는 연우에게 창피한 아버지고 싶지 않다. 비정한 아버지고 싶지도, 비정한 형이고 싶지도 않아. 철수도 결국 내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형님,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형님을 탓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강태수는 음울한 눈빛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만약에 강철수가 죽더라도 강인수의 탓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강인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이만하면 됐다. 혹시 모르니 태수 너는 모르는 척하도록 해. 내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마.‘


그렇게 강인수는 최민영도 몰래 사람들을 샀다. 일꾼들을 비롯해 워낙 사람이 많이 오가는 탓에 의심을 사는 일은 적었다. 여기저기서 강철수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폐가에서 머무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어디 공장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닥치는 대로 노가다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면 강철수와 닮았거나, 이름만 같은 전부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강인수의 희망은 하나하나 꺾여 갔다.


’철수가 철수라는 이름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 게 어쩌면 잘못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직감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아니야. 분명 철수는 더는 김의준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철수로 살아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강인수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강인수를 형제로 둔 강철수가 아니냐는 질문에 도망하는 자라면 분명히 내가 찾는 자이니, 놓쳐서는 안 됩니다.‘


강인수는 최민영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최민영은 강인수의 말이 끝난 후에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 너무 위험한 일이지 않을까요?”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어요. 이제야 서울에서도 잘 풀리려고 하는데, 그러려는 중인데···.”


최민영의 말은 전부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강인수의 ’형제건설‘은 관공서 복구 사업을 맡아서 착실히 진행하는 중이었다.


“지금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잖아요. 잘못했다가는 그때처럼 잡혀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강인수는 벌벌 떨리는 최민영의 손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강인수 역시 생각한 바였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터였다.


“여보, 나는 연우에게 부끄러운 아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이득을 얻고자 형제를 버린 아비의 등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소.”


똑똑!


“사장님, 죄송합니다만 급한 일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박자와 뒤에서 느껴지는 목소리 전부 다급했다. 강인수는 느낄 수 있었다.


’찾았구나.‘


*


강철수는 걷고 또 걸었다. 가끔은 트럭을 얻어 탔고, 외양간이나 마구간에서 의탁하기도 했다. 쉽게 죽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한 기만이었으니까.

강철수가 서울까지 오게 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철수는 다시 서울에 있었고, 사람들은 빈민 같아 보이는 그에게 시선 한 번도 주지 않았다.

다리는 절뚝이고, 자란 머리를 아무렇게 잘라 엉망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이었다. 역설적으로 강철수는 그 속에 숨을 수 있었다.


“아······.”


강철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겨울 하늘은 잔인하리만치 높고 푸르렀다. 그리고 그만큼 시렸다. 거적을 걸친 몸은 나날이 추위에 익숙해졌다. 그것은 어쩌면 감각의 상실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강철수를 노가다에 써 주는 이는 없었다. 강철수는 잡일을 도와주고 근근이 끼니를 얻어먹고는 했다.

강인수의 심부름꾼이 강철수를 발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장에 들른 심부름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품 안에서 사진을 꺼냈다.


“음, 닮은 건가?”


심부름꾼은 실눈을 뜨고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있는 강철수와 비교해 보았다.


’눈빛이 익숙한데. 한번 확인이라도 해 봐야겠어.‘


“혹시, 강인수 씨의 동생인 강철수 씨 되십니까?”

“!”


강철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부산에서 노덕출에게 연행되었던 그날 이후로 들을 일이 없을 것 같던 형의 이름이었다. 강철수는 나무 대접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텅!


하지만 불편한 다리로는 멀리 달릴 수 없었다. 더불어 강철수의 뒤를 쫓는 사람들은 강철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듯, 일부러 거리를 두고 그를 쫓고 있었다. 심부름꾼이 크게 외쳤다.


“강철수 씨! 강철수 씨!”

“허억, 허억. 나는 강철수가 아닙니다!”

“강인수 사장님이 강철수 씨를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강철수는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리 탓에 희미했으나 강철수는 심부름꾼의 손에 들린 사진을 알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태수를 비롯해 삼 형제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형님이? 형님이 정말 날 찾으신단 말이야?‘


일말의 희망이 다시 틈을 비집었다. 남자들은 강철수의 주변을 에워쌀 뿐, 강철수를 억지로 붙잡거나 멈추게 하지 않았다. 강철수가 서서히 걸음을 늦췄다.


“허억, 허억.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달리기가 꽤 빠르시군요. 저보다도 빠르십니다.”


심부름꾼이 넉살맞게 웃으며 강철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나는 형님을 못 보고 산 지 오래되었소.”

“예, 압니다. 전란에 헤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강철수는 웃으며 땀을 훔치는 심부름꾼을 바라보았다.


’전란?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


강철수는 습관처럼 기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강철수를 둘러싼 사람들 중 어디에서도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쁜 호흡 소리만이 주변에 가득했다.

강철수가 아닌 김의준을 찾아온 사람들은 몇 번 있었다. 그들은 그때마다 예전의 김의준과 강철수를 동일시하지 못했다.


“사장님께서 강철수 씨를 얼마나 찾으셨나 모릅니다.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는 일이야, 뭐. 자주 있는 일입니다만. 이렇게 큰 금액은 정말이지 처음입니다.”


강철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심부름꾼의 말은 이어졌다.


“후우, 저와 함께 가시죠.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차피 더한 것은 죽음뿐이었다. 강철수가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 형님이 서울에 계시다는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강철수 씨를 먼저 찾아주는 사람에게 한 달은 놀고먹을 수 있는 포상금을 거셨습니다.“


*


오랜만에 만난 동생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구석이 없었다. 강인수는 저절로 뜨거워지는 눈을 꾹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두 형제는 아무 대화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강철수는 후회했다.


’내가 어쩌자고. 내가 미쳐서.‘


강인수의 사무실은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질적인 것은 강철수 자신밖에 없었다. 지속되는 침묵에 강철수가 소파를 짚고 일어나려던 그 순간, 강인수가 손을 뻗었다.


”철수야.“

”···.“

”철수야···.“


형이 울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강철수는 강인수에게 팔을 붙잡힌 그대로 굳고 말았다.


”내가 너를,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저를 왜···. 찾으셨습니까? 저를 왜.“


강인수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강철수의 팔을 짚어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철수를 보았을 때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강인수가 기억하던 강철수의 모습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산에서 마주쳤을 때의 모습과도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눈을 마주친 순간 알 수 있었다. 강철수의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강인수가 강철수의 어깨를 손으로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동생이니까. 내가 네 형이니까.“


형제의 뜨거운 울음이 문틈으로 흘러나가 벽에 기대 있던 최민영에게까지 닿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격동의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3 격동의 시대 시즌1 - 102화 +1 22.02.10 1,155 28 11쪽
102 격동의 시대 시즌1 - 101화 +3 22.02.09 1,151 29 11쪽
101 격동의 시대 시즌1 - 100화 +3 22.02.09 1,082 28 11쪽
100 격동의 시대 시즌1 - 99화 +2 22.02.09 1,142 30 11쪽
99 격동의 시대 시즌1 - 98화 +1 22.02.08 1,110 32 11쪽
98 격동의 시대 시즌1 - 97화 22.02.08 1,114 26 11쪽
97 격동의 시대 시즌1 - 96화 22.02.07 1,122 30 11쪽
96 격동의 시대 시즌1 - 95화 +3 22.02.07 1,164 30 11쪽
» 격동의 시대 시즌1 - 94화 +4 22.02.06 1,146 29 11쪽
94 격동의 시대 시즌1 - 93화 22.02.06 1,177 29 11쪽
93 격동의 시대 시즌1 - 92화 22.02.05 1,160 30 11쪽
92 격동의 시대 시즌1 - 91화 +1 22.02.05 1,211 28 11쪽
91 격동의 시대 시즌1 - 90화 +2 22.02.04 1,172 32 11쪽
90 격동의 시대 시즌1 - 89화 +1 22.02.04 1,204 26 11쪽
89 격동의 시대 시즌1 - 88화 +1 22.02.03 1,191 28 11쪽
88 격동의 시대 시즌1 - 87화 +1 22.02.03 1,237 25 11쪽
87 격동의 시대 시즌1 - 86화 +1 22.02.03 1,134 22 11쪽
86 격동의 시대 시즌1 - 85화 +1 22.01.31 1,326 32 11쪽
85 격동의 시대 시즌1 - 84화 22.01.31 1,293 29 11쪽
84 격동의 시대 시즌1 - 83화 +1 22.01.30 1,255 29 11쪽
83 격동의 시대 시즌1 - 82화 +2 22.01.30 1,284 27 12쪽
82 격동의 시대 시즌1 - 81화 +1 22.01.29 1,266 33 11쪽
81 격동의 시대 시즌1 - 80화 +6 22.01.29 1,344 27 11쪽
80 격동의 시대 시즌1 - 79화 +1 22.01.28 1,293 29 11쪽
79 격동의 시대 시즌1 - 78화 +2 22.01.28 1,299 30 12쪽
78 격동의 시대 시즌1 - 77화 +1 22.01.27 1,326 25 11쪽
77 격동의 시대 시즌1 - 76화 22.01.27 1,251 21 11쪽
76 격동의 시대 시즌1 - 75화 +1 22.01.25 1,471 33 11쪽
75 격동의 시대 시즌1 - 74화 +2 22.01.25 1,453 29 12쪽
74 격동의 시대 시즌1 - 73화 +6 22.01.24 1,464 3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