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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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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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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2.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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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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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86화

DUMMY

강태수는 평소와 달리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벤자민을 바라보았다. 벤자민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태수. 한두 번 들어 본 말도 아니잖아.”


벤자민의 말처럼 강태수는 수없이 같은 제안을 받았다. 그럼에도 강태수가 대한민국에 남아 있던 이유는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였다.

대한민국은 삼 년 동안 꾸준히 전쟁 중이었고, 강태수는 늘 최전선에 있었다. 물러설 곳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러서는 것은 패배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이 끝났다. 정확히는 멈춘 것이지만.’


벤자민은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강태수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기도 했다. 그 점이 강태수를 더욱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질문을 한 벤자민도, 고민하고 있는 강태수도 사실은 모르지 않았다.

강태수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강태수가 내심 바라던 제안이었는지도 몰랐다. 잠시 강태수의 대답을 기다리던 벤자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를 미군으로 재입대 하게 하라는 제안이 수도 없이 갔다는 걸 태수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태수가 그동안 그 제안을 거절한 건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동안의 제안을 수락했다가는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밖에 없던 시기였잖아.”


강태수가 벤자민과 벤자민의 짐을 응시했다.


“하지만 태수, 지금은 아니야. 전쟁은 끝났어.”


벤자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강태수는 벤자민의 눈을 응시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강태수는 처음으로 벤자민을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모습이 없는 친구였다. 더 나은 모습이 됐다는 것 말고는.

벤자민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멈춘 것뿐이라고 논할지라도, 피해를 입은 건 태수의 나라뿐만이 아니야. 노스 코리아의 피해도 말할 것 없이 심각해. 그들은 적어도 수십 년 동안은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상태야. 내가 무엇까지 보고 받는 줄 알잖아.”


벤자민은 정보 군인이었다. 벤자민 스스로가 원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상황을 하루 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힘 또한 있었다. 강태수의 망설임이 한 단계 더 깊어졌다.


탁.


벤자민이 마지막으로 서류를 챙겨 넣은 가방을 닫으며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이 기회라는 거야.”

“벤자민. 나는 미국의 국민도, 시민도 될 수 없어.”


강태수의 말에 벤자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수, 나는 태수에게 미국인이 되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 미국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태수 같은 군인을 만나기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미국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고?”


강태수는 벤자민의 말이 의문스러웠다. 강태수에게 미국행을 권하는 자들은 대부분 강태수가 미국인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스미스 사단장에 더불어, 한국을 떠나던 리지웨이 사령관 역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강 대위에게 딱 하나가 아쉬웠어. 바로 자네의 국적. 강 대위 자네가 미국인이었다면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군.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미국으로 오게, 강 대위.’


리지웨이 사령관은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휴전 협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전투들이 있었다. 강태수는 연합군들과 함께 전투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국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강태수는 대한민국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고, 살아는 사람을 보았고, 살아 있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당장 그의 형인 강인수만 보더라도 그랬다.

강태수가 부산에 들를 때마다 강인수는 더 발전해 있었다. 한발 물러서게 되면 세 발 앞으로 나아갔다. 강태수는 언제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형에게 더 나은 일들을 해 줄 수 있을지에 제일 많은 신경을 쏟았다.

벤자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자민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강태수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꺼냈다.


“태수, 태수도 알다시피 피는 바꿀 수 없는 거야. 바꿔지지도 않는 거고.”


강태수는 벤자민의 등 뒤에 걸린 미국 국기와 함께 벤자민을 응시했다. 벤자민은 국기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극복해야 하는 시기야. 하지만 독자적으로 할 수는 없어. 태수도 알고 있잖아. 우리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원조를 약속했어.”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이 휴전 협상으로 대한민국에 원조를 약속한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였다.

미국의 쌀 원조 사업을 맡았던 강태수는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은 전쟁 기간 중에 한국에 약 5억2000만 달러의 원조를 쏟아 부었다. 대한민국은 그 덕분에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자립이었다. 이것은 개인과 국가를 막론하고 상통하는 문제였다. 남의 도움으로 연명할 수는 있겠으나 남의 도움만으로 생존할 수는 없었다.

당장 서울의 모습만 해도 그러했다. 강태수는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원조에 기댈 수 없는 일이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태수. 한국이 발전하는 건 미국에게도 중요한 문제야. 아무리 우리 미국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원조해 줄 수는 없어. 우리도 이 전쟁이 꽤 부담이었거든. 그러니까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자. 그래서 우리 미국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이끌 기술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야.”

“기술?”

“응, 기술. 군사기술을 비롯한 것들 말이야.”


이번에는 아무리 강태수라고 하더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북한이 쳐들어왔을 때 남한에는 제대로 된 탱크 한 대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군의 병력은 비약적으로 증강되었다. 전쟁 개시 시점의 국군 병력은 9만 8000명이었으며, 병기는 턱없이 빈약하고 노후했다. 미국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휴전 때까지 연 병력 572만 명을 한국에 투입했다.

전쟁 발발 후에는 미국의 지원 아래서 병력과 장비의 증강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병력은 1952년에 25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무기도 급속히 증강했다.

국군은 전쟁을 통해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도약하여 한국사회에서 가장 근대화된 집단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강태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아직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불안은 여전히 이 나라를 좀먹고 있었다. 강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휴전이 된 지금도 한국은 독자적 역량만으로는 적의 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야만 했다. 모든 도움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의 간섭이 필수불가결적인 일이었다.

그때 벤자민이 준비해 둔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태수, 함께 서울로 가고 난 후에 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물을 줄게. 태수가 가장 바라던 것 말이야.”

“내가 가장 바라던 것?”

“인수 형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 줄게.”


강태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벤자민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그것도 삼 개월 안에.”


아직 전쟁 중이고 부산이 임시수도였을 때, 강태수는 강인수가 부산에서 서울로 오게 되었을 날을 대비하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애썼다. 서울에서 기술자들을 찾으려 애썼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삼 개월은 벤자민이 한국을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내 후임을 누가 맡게 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내가 떠난 후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러니 삼 개월 동안 천천히 생각해 봐, 태수. 아직 시간은 있어.”


강태수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서울로 출발하기 전날, 강태수는 강인수의 집에 머물렀다. 강인수 역시 서울로 옮겨 갈 준비를 하나둘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인수의 표정은 착잡했다.


“태수야, 나는 이게 아직도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야 부산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서울로 향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알 수가 없다.”


강태수는 이어지는 강인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 사람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


재봉사의 말대로 강인수가 공장을 세운 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강인수는 상이군인들뿐만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고용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강인수가 부산을 떠난다는 소식에 그들은 매일 눈물로 호소했다.


‘사장님이 떠나신다면 저희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사장님, 안 가시면 안 됩니꺼? 아니, 아닙니더. 조금이라도 늦게 가시면 안 됩니꺼?’


강인수가 착잡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수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고. 분명 서울은 부산과 다르겠지. 부산이 전쟁 동안 적들의 침입을 막아냈다는 이유로 한동안은 괜찮겠지. 폐허가 된 서울과는 다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역전될 겁니다.”


강태수의 말에 강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구나. 들어 보니 북한은 정말 초토화되었다고 하던데.”


재산상 피해는 남북 모두 심각했는데, 특히 북한 전역은 모두 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폐허가 되었다. 미군은 전쟁 기간 내내 북한 전역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했다. 평양에만 43만 발의 폭탄이 투하됐고, 북한 전역에 1평방킬로미터당 평균 18개의 폭탄이 투하되었기 때문이었다.


“벤자민의 말로는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군이 사용한 폭탄의 양을 상회한다고 하더군요.”


1953년 4월까지 미군은 26만 발의 중대형 폭탄, 2억 발의 탄환, 약 40만 발의 로켓탄, 약 150만 발의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다. 이것은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군이 사용한 총 폭탄량을 상회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북한은 거의 원시상태로 돌아갔다.

서울은 곳곳이 폐허였고, 전쟁고아들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쟁이 남긴 것은 대부분 비슷했다. 분명한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강태수는 충분히 고민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부산에도, 서울에도 함께 사업을 진행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두 곳 다 말이냐?”

“예,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해 공장을 맡기는 것입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요. 서울은 당장 집을 지을 사람과 기술자들이 필요하고, 그건 저희가 꾸준히 준비해 온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산에는 모직 공장을 두고, 서울에는 건설 회사를 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인수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 네 말도 맞다. 문제는 누구에게 맡기냐는 것인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두 남자는 같은 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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