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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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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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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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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8,619

작성
22.01.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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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74화

DUMMY

강철수는 태연한 낯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군인이 되면서 표정을 꾸미는 것쯤이야 익숙해진 바 있었다. 품 안에 숨긴 칼에 하루에 수십 번도 찔리는 듯했으나, 견딜 만한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고립된 상황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이대로 당과 다시 연락이 닿지 않고, 휴전이 되어 버린다면. 어쩌면, 어쩌면 이대로 이 땅에서 선생님과 숨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부자처럼, 그렇게. 이념도 무엇도 상관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한 번 싹을 틔우기 시작한 불온한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부질없으나 그만큼 달콤하고, 유혹적인 생각이었다. 강철수가 어떻게든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던 상상이기도 했다.


“의준아!”


김인국이 다시 그를 부르기 전까지, 상상은 점점 더 살을 더 해 구체적으로 변해 갔다. 그 부름에 눈앞에 불꽃이 터진 것 같았다. 옆에서 김인국이 다급하게 강철수를 다시 한 번 불렀다.


휘이이.


“얼른 다시 돌아가자. 휘파람 소리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예, 선생님.”


김인국의 말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람소리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얇은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고립된 그들의 소통 방식이었다. 두 남자는 서둘러 다리를 움직였다.


휘이이.


걸음을 옮겨 휘파람과 가까워질 때마다 죄책감은 그의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부피를 키웠다.


“선생님! 의준!”

“정혁아, 무슨 일이 있었느냐?”


최정혁의 얼굴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동지들이 머무는 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김인국의 얼굴에도 최정혁을 따라 동요가 퍼져나갔다.


“혹시 싶어 욱성과 함께 다시 정탐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다가 수풀에 가려져 있는 동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지난번에 몇 번 발견한 것처럼 떠난 지 며칠이 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방금까지 머물렀던 흔적을 발견했지 뭡니까!”

“그게 정말이라면, 동지들일 수도 있겠구나.”

“예, 선생님. 우리처럼 정탐을 나간 게 아니라면 사냥을 다녀온 것일 겁니다. 혹시 싶어 동지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겨 두고 왔습니다.”

“잘했다, 정혁아. 욱성이 너도. 동지들이라면 이제 한 시름 놓을 수 있겠어.”


김인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자 강철수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저렇게 동지들에게 진심인 분을···.’


턱!


최정혁이 강철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의준! 너는 왜 한마디도 없냐! 이 형님들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고 왔는데!”


목이 멘 탓에 강철수는 몇 번에 헛기침 끝에 입을 열 수 있었다.


“아직 확신하기는 이릅니다. 동지들이 아니라 적군의 탈영병들일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충분한 가능성입니다.”

“아이, 이 자식! 산통 깨는 데에는 뭐 있다니까. 그것도 재주다, 재주.”


최정혁이 과장된 몸짓으로 툴툴거렸다. 김인국이 최정혁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강철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준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정혁아, 어떤 암호를 남기고 왔는지 동지들에도 일러 주어라.”

“예, 선생님. 동굴 앞에 수풀을 이용해 낫과 망치를 따로따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소련 국기의 상징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근방을 지나치더라도 바로 알아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굴 입구에서 보았을 때만 알아챌 수 있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최정혁은 소련 국기에서 농민을 상징하는 낫과 노동자를 상징하는 망치 모양을 만들어 두었다.

이 표식은 헤어진 동지들이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인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빠른 걸음으로는 이십 분, 느린 걸음으로는 삼십 분보다 조금 더 걸립니다.”

“그렇게 가까운 위치는 아니구나.”

“예, 선생님. 가까운 편도 아니고, 지대도 훨씬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마주친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동굴 입구가 토끼 굴처럼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습니다. 덕분에 근처를 몇 번 오갔으면서도 쉽게 눈치 챌 수 없었습니다.”


김인국과 최정혁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철수가 입을 열었다.


“계곡과 가까운 쪽입니까?”

“어, 그래. 어떻게 알았어? 계곡의 위쪽이다. 한눈에 계곡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어. 산속도 누가 오가는지 어느 정도 보이고 말이야.”


강철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 최정혁의 뒤에 서 있던 배성훈이 무거운 입술을 움직여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쪽은 우리를 이미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성훈 형?”

“그게···.”


최정혁의 물음에 배성훈이 대답하려 하자 강철수가 이를 가로챘다.


“며칠 전 성훈 형님이 휘와 함께 계곡으로 물을 뜨러 갔을 때, 계곡 위에서 기척을 느꼈지만 동시에 짐승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확인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어서 떠날 채비를 해야 합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강철수는 순식간에 냉정한 장교의 얼굴을 했다. 남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불을 끄고, 풀잎과 나뭇가지로 만든 천막을 흩트려 주변과 어우러지도록 해체했다. 간소한 짐을 챙긴 이들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계곡과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최정혁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의준! 만약 저들이 동지들이고, 우리를 발견했지만 먼저 우리를 알아볼 수 없어 접촉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저도 그 편을 바랍니다만,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편이 아니라면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선생님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 편이 맞습니다.”


강철수를 비롯한 남자들은 김인국을 엄호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 길은 경사가 위로, 왼쪽 길은 경사가 아래로 향한 갈림길이었다.


척.


강철수가 멈춰 서자 일행 전부가 함께 멈춰 섰다. 강철수가 시선을 돌려 갈림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들었다.


“하지만 확인 역시 필요하지요. 이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다시 계곡이 나옵니다. 저는 그 동굴을 확인한 후에 다시 합류하겠습니다. 이곳에서 흩어집시다.”

“잠깐만, 의준.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야.”


최정혁은 동의를 구하는 뜻으로 김인국을 바라보았다. 김인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혁의 말이 맞다, 의준아. 정혁과 함께 다녀오도록 해. 만약 동지들이 아니라면 그저 길을 잃은 피난민 행세를 해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충돌해서는 안 돼.”

“예, 선생님. 그리 하겠습니다.”

“처음에 머물렀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조심하는 것 잊지 말고.”

“예,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의준이 이 녀석은 꼭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강철수와 최정혁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미미하게 남아 있는 골짜기에 가까웠다.

두 남자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길을 올랐다. 계곡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야, 의준아.”

“왜 그러십니까?”

“내가 다녀올 테니 너는 여기 있어라.”


최정혁이 강철수의 한쪽 어깨를 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강철수를 붙들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안 돼요. 위험합니다.”

“그러니 내가 다녀온다는 이야기야. 이 동굴을 찾은 것도 나고, 표식을 남긴 것도 나다. 만약 네 말대로 적들의 탈영병이라면 골치 아파진다. 우리는 지금 총도 없는데, 저들이 총을 가지고 있어도 곤란하고.”

“··· 그럼 제가 거리를 두고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의준이 너는 ‘걸음아, 날 살려라!’ 외치며 도망가도록 해라.”


최정혁은 웃는 얼굴로 만세까지 해 보이며 이야기했다. 강철수는 어쩔 수 없이 실소했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농이 나오십니까?”

“이런 상황이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둘 중 하나라도 목숨은 보전해야 하지 않겠냐.”


어깨를 으쓱인 최정혁이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조금씩 나아갔다. 강철수는 그런 최정혁의 뒤를 쫓으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다.


저벅.

저벅.


슥!


최정혁이 등 뒤로 손을 뻗어 주먹을 쥐었다. 멈추라는 뜻이었다. 강철수가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이어서 최정혁이 새끼손가락을 펼쳤다. 강철수도 이미 느낀 바였다.


‘누군가 있어. 수풀이 치워져 있다. 지나치게 조용해.’


최정혁이 뒤를 돌아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대고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신중하고 느린 걸음이었다.


스윽.

저벅, 저벅.

파삭!


‘!’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큰 소리를 냈다. 그 순간이었다.


척!


동굴 근처의 수풀 사이에서 순식간에 장정들이 나타나 최정혁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었다.


“누구냐!”


나뭇가지에 돌을 묶어 만든 도끼부터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칼과, 마찬가지로 칼을 묶어 만든 창을 들 남자들이 외쳤다. 그 기세에 솜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총은 없군.’


최정혁이 손을 들어 보이는 것까지 확인한 강철수가 낮은 포복으로 서서히 전진했다.


“산이 워낙 험해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전쟁을 피해 숨어들었을 뿐입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제일 앞에서 최정혁에게 창을 겨눈 덩치 큰 남자가 물었다. 최정혁은 손을 든 채 억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장작과 물을 구하기 위해 이 근처에 왔다가, 제가 낫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제가 지닌 전부라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장정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의 행색 역시 최정혁과 마찬가지로 옷이 군데군데 찢겨 있었으나 눈빛만은 분명했다.


슥.


최정혁에게 말을 건 남자가 턱짓하자 장정들이 동시에 최정혁을 향해 겨누었던 무기들을 거두었다.


척.


최정혁 역시 손을 내렸다.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낫은, 어디서 잃어버린 것 같소?”

“저기, 저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강철수는 대화가 전부 들릴 만큼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강철수는 나무 뒤에서 몸을 숨기고 기민하게 주변의 기척을 확인했다.

최정혁이 저쯤이라며 턱짓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은 그가 몇 시간 전 수풀로 낫과 망치를 만들어 둔 곳이었다. 남자는 최정혁에게 큰 보폭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줄 수 있을 것도 같소. 나는 안석호라고 하오.”


최정혁이 그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최정혁입니다. 실례지만 일행이 하나 있는데,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이 녀석 다리에 쥐가 났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 그러시오.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보탠다면 우리로서야 잃어버린 것을 찾는 데에 더 수월하지 않겠소?”


안석호가 당황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이봐, 의준. 너도 이제 나와.”


최정혁이 정확히 강철수가 숨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철수는 나무 뒤에서 나와 최정혁의 옆에 섰다.


“김의준이라고 합니다.”


김의준. 이 동굴 속에서 며칠이고 숨죽이고 숨어 있던 남자들에게는 익숙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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