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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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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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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1.29 21:20
조회
1,265
추천
33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81화

DUMMY

강철수는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제일 처음 강철수에게 다가왔던 아이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망설이던 아이가 손을 들더니 그대로 천천히 흔들었다. 강철수는 고개를 작게 두어 번 끄덕였다.


스윽.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강철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피난민들은 나무판자와 미군들이 못 쓰게 되어 버린 군용 텐트를 주워 와 대충 얼기설기 엮어 지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철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저벅, 탁.

저벅, 탁.


‘소리가 조금 이상한데.’


소리가 들리는 곳을 확인하자 대충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걸어오는 남자 둘이 보였다.


"행님은 오늘도 거기 다녀온 깁니꺼? 그 요즘 우리 같은 상이군인한테 일거리 준다는 거기."

"어, 무신 사람이 그래 많은지 모르겄다. 윽수로 미어터지든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겠더만."


저벅, 탁.


"빙시에 가까운 몸인데 일만 쪼매 하면 밥도 주고, 삯도 주고. 안 갈 이유가 없기는 하지예."

"이러다 우리 중에 그 강 사장한테 밥 안 읃어 먹어 본 사람이 없겠다. 부여에서 왔다는 인간이 아주 부산 바닥 다 멕이 살릴 기세다 안 하나."


강철수의 귀를 잡아끈 것은 강 사장과 부여라는 단어였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남자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뭐,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예. 지뢰 밟고 요 다리 잘렸을 때 기냥 콱 디져뿌고 싶었는데, 덕분에 요즘은 사람 구실하고 있다 아입니까."

"글치, 덕분에 입에 풀칠도 하고. 거 얼마 전에는 서울서 동생도 왔다 갔다 카던데, 그 유명한 군인 아 있다 아이가. 대위에, 맥아더한테 직접 훈장도 받았다고 강 사장이 그라든데."


‘!’


강철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탱크를 타고 남하했던 강철수는 서울에 있던 짧은 시간 동안 부하들을 시켜 [형제상회]가 있던 곳을 정탐하게 했다.


‘예상대로 비어 있었지.’


쉴 틈 없이 사람들이 오갔던 것은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형제상회]는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삐뚜름하게 놓여 있던 간판만이 강철수의 기억을 증명했다. 부역자들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들른 야마다의 집도, 배경석의 집도 전부 비어 있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겁니까?’

‘예, 이 집은 버려진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버려진 지 오래입니까?’

‘샅샅이 찾아라! 예, 소좌님. 집주인이 생사 불명이 되어 꽤 오래 비어 있었습니다.’


빨간 완장을 찬 당원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다. 오래도록 종로에서 산 당원이었다.


타다닥!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을 수색하던 인원들이 돌아왔다.


‘그래, 별다른 점도 없나?’

‘예! 사람이 드나든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안채의 지하실을 확인해 보았느냐고 언급할 수도 있었지만 강철수는 일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강철수는 다시 배경석의 집을 찾았다. 전과는 달리 안채 한가운데에 있던 계단은 없었다.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그 자리에는 새로 벽이 들어서 있었다.


쿵, 쿵!


손으로 두드리고, 발로 차 보아도 꽉 막힌 소리가 났다. 그 후에 강철수는 서울에 강태수가 있으리라는 미련을 버렸다. 그가 서울에 머물 수 있던 시간은 아주 잠시였다. 강철수는 다음 작전을 위해 바로 충청도로 향해야 했다.

강철수가 강태수의 소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서울이 두 번째로 수복되며 후퇴하던 때였다.


[남한서 적들을 몰아내고 서울을 재탈환再奪還하는 데 성공한 용맹勇猛한 국군들! - 51年 3月 18日]

[대한민국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다시 서울을 재탈환했다. 이번 서울 재탈환 작전을 지휘한 미국 8군의 리지웨이 장군이 크게 치하한 6사단의 강태수 대위는 맥 원수에게 훈장을 받은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강태수 대위는 육군사관학교 8기를 차석 졸업했으며 춘천에서 적들을···.]


사진 속의 남자는 분명 강철수 자신의 형이었다. 신문을 버리며 강철수는 형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마주쳐서는 안 됐다. 언제나 강철수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상념에 잠기려는 강철수를 끌어낸 것은 남자들의 대화였다.


“전에 들어 보니까 강 사장이랑 친한 박씨 말로는 부산으로 올 적에 고문을 당했다카대요. 목숨 걸고 인민군이 둘러싼 곳을 탈출했는데, 산 넘어와가 빨갱이라 하믄서 잡히갔다고.”

“아이고, 그게 참말이가?”

“예. 박씨가 비밀이라 캤는데, 강 사장이 술 먹고 그래 말했다 안 합니꺼.”

“윽수로 고생했겠네. 그래서 우리한테 잘해 주는 건갑다. 그 심정을 아니깐은.”

“이게 다 빨갱이들 탓이지예.”


저벅, 탁.

저벅, 탁.


남자들은 대화를 나누며 멀어졌다. 강철수는 금방이라도 그들을 붙잡아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인수 형님이 부산에, 부산에 계셨다니. 고문은 또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때다. 내가 형님을 보내 드렸던 그때, 형님을 보내 드리며 우리가 확실히 이겼을 때 형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생각하던 그때가 아닌가.’


강철수는 있는 힘껏 손에 힘을 쥐었다. 힘을 너무 쥔 탓에 손이 떨렸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만든 통증에 조금씩 이성이 돌아왔다. 천천히 손가락을 펴자 손바닥에 피가 맺혀 있었다.

남자들의 대화로 강 사장이 강인수라는 것을 추측했던 그 순간에는 방만하게도 형을 찾아가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들의 말에 녹아 있는 사실은 강철수의 방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하, 하하.”


실성한 듯한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강철수는 웃으면서 울었다. 어디서부터 오류였는지를 되묻기에 모든 것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강철수가 고개를 저었다.


‘형님이 아닐 수도 있다. 형님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강철수는 어느새 점이 되어 멀어진 남자들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강철수는 남자들과는 반대로,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듯 걷는 강철수의 뒷모습은 무언가에 쫓기듯 급박했다. 강철수가 살아온 강철수의 삶이 그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


누군가에게 길을 묻지 않았지만 강철수는 알 수 있었다.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쫓다 보니 그는 저절로 옳은 길로 걷고 있었다. 줄은 한참 이어졌다. 강철수가 줄을 서자마자 강철수의 등 뒤로 다시 몇 명의 사람들이 따라 섰다.


“아유, 오늘도 사람이 많네. 어이, 총각. 총각은 사지도 멀쩡해 뵈는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감?”


강철수의 바로 뒤에 선 남자가 강철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와 함께 시선이 쏠렸다. 강철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강철수를 맞이한 것은 형 강인수가 아닌 한 여인이었다.


“일자리를 찾으러 오셨나요?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죄송하지만 저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드리고 있어서요.”

“··· 사장님은 안 계십니까?”

“사장님이요? 오늘은 나오지 않으셨어요. 사장님을 만나러 오신 거라면 제게 용건을 전해 주시면 된답니다.”


용건이라 포장할 수 있는 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강철수는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 직접 뵙고, 드려야 하는 말씀입니다.”

“음, 사정이 급하신가 보군요. 그럼 이름과 연락을 받으실 수 있는 곳을 남겨 주시겠어요? 순서가 돌아오면 안내해 드릴게요.”


슥.


여인은 강철수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름.’


강철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강철수라는 이름을 남긴다면 형이 알아볼 터였고, 김의준이라는 이름을 남긴다면 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는 터였다.


‘형님께 또 누가 된다면···.’


강철수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자 뒤에서 채근하는 목소리가 하나둘 늘었다.


“뭣하는 거여. 얼렁 쓰슈. 사람들 기다리고 있는 것 안 보여유?”

“얼릉 적으라니께.”

“어디 불편하신가요?”


여인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글자를 쓸 줄 모르시는 거라면 제가 대신 써 드릴게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종이를 든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이 익숙했다. 그 순간 강철수는 기억해 냈다.


‘인수 형님과 풀숲 속에 함께 있던!’


타다닥.


강철수는 그대로 내달렸다. 인파 속으로 도망쳤다.


”저기요! 잠깐만요! 잠시만요!”


최민영이 서둘러 강철수를 쫓았지만 강철수는 금세 사라지고 난 뒤였다.

강철수에게 얼른 이름을 적으라고 재촉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봐도 얼굴이 익숙한디. 그럴 리가 없는디.”


*


최민영은 한참 동안 사람들을 상대하다 저녁을 넘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강연우의 보모를 돌려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인수가 돌아왔다.


“다행히 오늘은 얼굴을 보고 잠들 수 있겠소.”

“다녀왔어요? 별일은 없었어요?”

“평소와 비슷했소. 조금 더 바빴던 것도 같고.”


강인수가 웃으며 강연우를 안고 있는 최민영을 끌어안았다.


“빠.”

“그래, 연우야. 아빠가 왔다. 잘 있었느냐?”


강인수가 강연우를 안고 인사를 나누는 동안 최민영은 강인수가 짐 속에 숨겨 두었던 사진을 꺼내 왔다. 이미 한 차례 확인하고 고민했으나, 혼자 고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보,”


강인수는 최민영에 손에 들린 액자를 보자마자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부여를 떠날 때 옷 속에 숨겨 겨우 챙겼던 사진이었다. 이미 최민영에게 털어놓아 그의 아내 역시 강철수를 알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움은 감출 수가 없었다.


“여보, 갑자기 그 사진은 왜.”

“그게, 여보··· 제가 오늘 이 사진 속의 도련님과 닮은 분을 본 것 같아요. 태수 도련님 말구요.”

“그, 그게 사실이요?”


강연우를 안은 강인수의 팔이 떨렸다. 강인수는 강연우를 눕히고 사진을 받아들었다.


“빠!”

“붙잡아 보려 했는데 금방 놓쳤어요. 일하는 동안에는 누군지 쉽게 기억해 낼 수가 없었어요. 요즘 만난 사람들이 많잖아요. 태수 도련님과 꽤 닮았다는 게 신기했거든요. 그러다가··· 당신이 전에 이 사진을 보여 주면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동생이 하나 더 있다고 했던 그 이야기요.”


아주 가벼운 사진 한 장이었을 뿐인데 강인수의 팔은 똑같이 떨렸다.


“혹시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사진부터 찾아봤어요. 그런데···. 맞는 것 같아요. 철수 도련님이요.”


최민영이 두 손으로 강인수의 손등을 감쌌다. 그제야 떨림이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강인수의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그 애가 무슨, 무슨 말을 했소?”

“··· 사장님이 있는지 물었어요.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알려 주지 않고 가 버렸어요. 그게 더 기억에 남아서···.”

“아, 아.”


툭.


삼 형제의 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7 g9******..
    작성일
    22.01.29 21:36
    No. 1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사람들 레닌,마오쩌둥,김일성,차베스 보면은 권력이 좋긴한가봅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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