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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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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2.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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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88화

DUMMY

강인수는 벤자민과 함께 미국에 가겠다는 강태수의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강인수가 당황해 강태수의 팔을 붙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태수야. 이제야 함께 지낼 수 있는 줄로만 기대했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냐. 미국에 가다니.”


강태수가 웃으며 자신의 팔을 붙든 형의 손을 토닥였다.


“형님,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잠시 다녀오는 유학과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너무 멀다. 이 한국 안에서도 네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그 먼 곳까지 간다면 내 마음이 어떨 것 같으냐.”


강인수는 강태수의 마음을 돌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강인수가 아는 동생 강태수는 모든 일을 깊게 고민하고 실행하기 전에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갔을 때만 해도 그러했다.

강인수가 몇 년 전, 군인이 되겠다고 말하던 강태수의 얼굴을 지금의 강태수와 겹쳐 보았다. 그때의 강태수의 표정과 지금의 강태수의 표정은 똑같았다. 강인수가 그 사실을 깨닫는 사이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선진 기술들을 배우고 난 후에 돌아오고자 합니다.”


강태수는 벤자민에게 함께 미국에 가자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줄곧 고민했다. 대한민국의 문제라면 대한민국에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답을 물을 때, 결국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또다시 격동에 휘말렸습니다. 강점 이후 앞으로 나아가나 했는데, 전쟁으로 인해 다 수포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점차 나아지는 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대통령 또한 그렇게 방송하지 않았어.”


강태수는 강인수의 말에서 처음 전쟁이 시작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국군이 이기고 있으니 일상을 그저 지키면 된다는 방송이 전국에 퍼졌다. 국민들은 그 말을 믿었고, 국민들이 믿었던 그 사람은 새벽에 제일 먼저 도주했다.

강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미국의 원조로 우리나라가 상당수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겠지만, 그것은 완전한 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한 해결책?”


강인수의 질문에 강태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대한민국 스스로, 혼자서 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 부축해 주어야만 걸을 수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그만큼 의지하게 될 것이고, 그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강태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강인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밖의 파도를 응시했다. 강인수 역시 강태수의 시선을 따라 창밖으로 고개를 틀었다. 바다는 항상 항상 그랬던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강태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강인수가 마주한 모습 중 제일 담담해 보였다.


“물론 당장은 괜찮을 겁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이가 있고, 지켜 주겠다는 이가 있고···. 그 상황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강태수 역시 문득문득 이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한 번 잡으면 놓칠 수 없는 생각인 터라 억지로 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서울로 돌아가지 말고 부산에 머무르라는 형의 말에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었다.

하물며 지금은 강태수가 군대에 입대했던 이유인 전쟁이 멈춘 상황이었다.


‘내 생각도 벤자민의 생각과 같다. 적어도 한동안 북한은 다시 대한민국을 쳐들어올 수 없어.’


국제사회가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정말 세계3차대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아주 컸기 때문이었다.


“태수야.”


갑자기 동생이 멀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강인수는 자신도 모르게 동생을 불렀다. 강태수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쓰게 웃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모두가 편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

“그 현실이 사실은 저 몰래 나아가고 있었다면, 그렇게 몰래 나아가며 저를 두고 떠난다면···.”


강태수가 고개를 들었다. 강인수는 그 표정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는 그게 겁이 납니다.”


강태수는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울어 본 적 없는 이의 얼굴은 일그러질 뿐이었다. 강인수는 주먹을 꾹 쥐었다. 강철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나라를 원망했습니다. 일제가 짓밟혔고, 친일이 짓밟았고, 이제는 저들이 짓밟으려 했지요. 하지만 형님, 제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였어도 아쉬워하지는 않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춘천에 있을 때 제가, 그리고 우리 6사단이 삼 일 동안이나 적들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우리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강태수는 삼 년 전의 춘천을 떠올렸다.

함께 포탄을 나르던 시민들, 학생들과 주먹밥을 만들어 주던 제사공장의 여자 직원들 하나하나가 전부 생생히 기억났다. 그들은 피난을 가는 대신 적들에게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6사단과 함께했다.


“그들의 생사는 지금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애석한 상황에서, 만약에라도 살아 있는 그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들이 또다시 생길까 두렵습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눈을 깊게 감았다 뜬 강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태수의 표정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울음을 참아 일그러진 얼굴이 아닌, 결단한 사람의 단단한 얼굴이었다.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나라를 지킬 만한 기술들이 필요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게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이 지금의 강태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그럼 다음에 봬요, 아저씨.”

“연락하겠습니다, 길 사장님. 그동안 몸조심 하십시오.”


길원상은 돌아가는 형제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형제는 뒷모습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도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길원상은 언젠가 벤자민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태수는 자기 형을 아주 끔찍이 생각하죠. 그런 형제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보통의 형제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해야겠죠.’

‘중령님의 말씀이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그렇더군요.’


길원상 역시 처음에는 강태수와 강인수가 그저 다른 형제들과 별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본 바로는 달랐다. 형제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길원상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유대하게 만드는지 짐작할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그 이유 때문이겠지.’


길원상이 강태수를 처음 만났던 것은 강태수가 사업을 하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벤자민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때였기에 길원상은 항상 벤자민과 동행했다.

강태수는 유난히 길원상이 내려주는 차를 좋아했다.


‘길 선생님께서 내려주는 차를 마신 날에는 잠도 잘 옵니다.’

‘그게 정말이야, 태수? 불면증이 심하잖아.’

‘정말이야, 벤자민. 이상할 만큼 잠이 잘 와.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길원상은 직접 강태수에게 차 내리는 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우리게 되면 오히려 쓴 맛이 납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그동안 실수를 하고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길 선생님.’

‘하하, 아닙니다. 편하게 아저씨라 부르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 후로 한참 동안은 강태수를 볼 수 없었다. 이념 갈등이 극화되면서 벤자민 역시 덩달아 바빠졌기에 길원상도 정신이 없었다.

강태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강태수의 부탁 때문이었다. 강태수는 한 건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곳은 강철수가 아이들을 돌보던 고아원이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아저씨밖에 없었습니다.’


강태수가 길원상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길원상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항상 아이들을 안타까워했다.


‘저 아이들을 좀 돌보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강태수가 내민 가방에는 상당한 돈과 묵직한 패물이 들어 있었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이 돈이면 몇 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그 돈은 강태수가 강철수를 월북시키고 남은 모든 재산이었다. 강태수의 말대로 몇 년 동안 고아원을 운영하기에 부족함 없을 정도였다. 강태수는 모자를 더욱 눌러 쓰며 창가에 달라붙어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나는 저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의무 말입니까?’

‘꼭 지켜야 할 약속을 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강태수에게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었다. 그때 별채의 문이 열렸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이도범이었다. 이도범은 이제 청년에 가까워져 있었다. 길원상이 손짓하자 이도범이 다가왔다. 길원상은 이도범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들은 다정한 부자처럼 보였다.


“점심은 먹었어? 아이들은 뭘 하고 있고?”

“점심은 먹었고, 애들은 공부하는 중이에요.”

“공부는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니? 요즘 들르지를 못했구나.”

“네, 승희가 특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또래들은 그 모습에 많이 자극을 받나 봐요.”

“그렇구나.”


길원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마저 강태수의 뜻이었다.


‘아이들을 공부시켜 주십시오. 외국어를 비롯해서 여러 분야로요.’


길원상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도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이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선택하는 데에 도움을 줄 테니까요.’


*


강인수와 강태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 해가 밝으면 강태수는 서울로 향해야 했다.


“지금 당장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벤자민이 삼 개월 후인 12월에 떠난다고 하니, 아직 시간이 좀 있습니다.”


강태수의 말에도 강인수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벤자민이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자기가 떠나기 전에 형님께서 서울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서울에서 그걸 도울 생각입니다.”

“삼 개월 만에 말이냐? 태수 너,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동안 제게 미국행을 고민해 보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걱정하시니, 그럼 저도 그 삼 개월 동안 다시 충분히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인수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항상 사지에 있던 동생이었다. 강태수가 훌륭한 군인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피곤할 텐데 이만 자고.”

“형님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다음 날 아침, 강태수가 떠나기 직전 길원상이 다급히 달려왔다.


“아저씨?”

”하아, 하아.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서울에 함께 가고 싶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땀을 닦으며 이야기하는 길원상의 뒤를 확인한 강태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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