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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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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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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9 21:2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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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01화

DUMMY

강인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건가?’


농사를 할 때는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들이 좋았다. 강인수 그 자신이 땀 흘린 대가가 눈앞에 보이는 일이 좋았다. 그게 강인수가 평생 동안 땅을 일구고 싶었던 이유였다. 때로는 자연에 의해 흉작이 들긴 하여도, 강인수는 후회하지 않았다.

강인수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이미 해 봤기 때문이었다. 자연에는 대적할 수 없었다. 자연은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인수는 언젠가 그 이치에 맞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작을 할 때도, 강태수가 선물해 준 땅에 농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어쩌면 그 생각이 줄곧 강인수를 농사짓도록 움직인 것인지도 몰랐다.

강인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를 움직인 것은 전부 불가능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고문에서 풀려난 것도, 전쟁 중에 사업을 시작한 것도, 전쟁 후 나라를 복구하는 공사에 매달린 것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일도, 가족을 지키는 일도.

남은 가족이라고는 동생들이 전부였는데, 그 동생들은 서로의 대척점에 섰다.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둘째 동생을 찾았다. 그리고 그 동생을 설득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 하나 목숨을 걸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강인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을 사서 소문을 모았다. 오늘은 강인수가 보낸 사람들이 각자 모은 소문들을 가지고 오는 날이었다.


“이 대한민국 땅에 남은 공산주의자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혀요. 그, 나라에서도 조금만 의심이 된다 그러면은 음청나게 잡아들 가고 있구유.”

“예, 사장님. 서울 바닥에서는 아주 씨가 말랐습니다.”

“그런디 사징님은 왜 이런 거를··· 아이쿠, 죄송합니다.”


강인수는 질문하다 곧 다시 눈치를 보고 고개 숙이는 심부름꾼을 향해 웃었다.


“그야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큰 화를 입을까 봐 말입니다. 제 동생은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고, 그런 동생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물론 이런 정보에는 동생이 더 귀가 밝겠지만 말입니다.”


실상은 김의준이라는 이름이 떠도는지에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명분은 그럴 듯했다.


“아아, 들었습니다. 강 사장님의 동생 분께서 전쟁 때에 맥아더 장군에게까지 훈장을 받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두 형제 분 모두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민망하군요. 다들 새해 무탈히 잘 보내십시오.”

“아이구. 감사혀요, 강 사장님!”

“감사합니다. 또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돌거든 바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인수는 웃으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강인수 또한 강태수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강인수는 강태수의 걱정이 과장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은 반공 사상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무모한 일이었다. 북한군의 장교였던 동생을 품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일과도 같았다.


‘하지만 내 가족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강인수의 책임감은 원래도 남들보다 강한 편이었다. 그는 강철수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부산의 ‘형제모직공장’도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능한 일이라면 해내야 한다. 그걸 지나치는 순간,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지나치는 거야.’


강인수는 빚 때문에 해고했던 기술자들도 수소문해 다시 고용했다. 그만큼 ‘형제건설’은 안정화되고 있었다. 더불어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1959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강태수가 소령으로 진급한 것이었다.


“정말 축하한다. 태수 네가 소령이라니. 이제는 얼굴 보기가 더 힘들겠구나.”

“하하, 시간이 될 때마다 형님을 뵈러 오겠습니다.”


강태수까지 모인 가족들은 단란하게 축하를 나누었다. 최민영이 어느새 부쩍 큰 강연우를 옆에 앉히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드려요, 도련님.”

“감사합니다, 형수님.”

“연우도 얼른 축하드린다고 해야지.”

“축하드려요, 삼촌.”


강태수는 강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고맙구나. 연우 네가 벌써 내년이면 국민학교에 들어간다고?”

“네! 이제 일곱 살이에요.”


강연우가 웃으며 오른손 두 손가락과 왼손 손바닥을 전부 펼쳐 보였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접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 그런데 소령이 뭐예요?”


강연우를 뺀 어른들이 전부 웃음을 터뜨렸다. 최민영이 밝게 웃으며 강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연우의 삼촌이 더 멋있는 사람이 됐다는 뜻이야.”


세상의 모든 게 신기할 무렵인 아이의 눈빛이 한층 더 밝게 빛났다. 강연우에게 있어서 강태수는 조금 낯설지만 언제나 선망하게 되는 인물이었다.

만날 때마다 선물을 주고,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군복을 입은 삼촌이었으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진 최민영의 말은 강연우가 한 번 더 강태수를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짝짝짝!


강연우가 작은 손을 움직여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 모습에 어른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 녀석.”


식사가 끝나고, 강인수와 강태수는 평소처럼 마당을 거닐었다.


저벅, 저벅.


두 형제는 비슷한 보폭과 닮은 걸음걸이로 한참 동안 마당을 걸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태수였다.


“이 집을···. 잃으셨었다고 들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였다. 집에 오기 전, 강태수는 시장에 들러 예전처럼 묘목을 샀다. 강태수가 그 가게에 들른 것은 몇 년 만이었지만 가게 주인은 강태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강태수가 찾는 것들이 일반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 예전에 그!’

‘예, 안녕하십니까.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알아보시네요.’

‘그럼요. 손님이 찾던 건 내가 그 후로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하하, 그러셨군요. 오늘은 평범한 것만 찾을 예정입니다.’

‘아이고, 그러면 나야 고맙지. 그런데 너무 오랜만인데,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유학이라는 단어를 꺼냈다가는 번거로워질 듯해 보여 강태수는 대충 얼버무렸다. 이목을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저기 위에 초록 대문 집에서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지방에 있었습니다.’

‘어? 이상하네. 그 집은 얼마 전에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얼마 전에 이사를 도와줬어요. 그 집 잔디들도 내가 새로 알아봐 줬고.’

‘그게 언제쯤입니까?’

‘몇 달 안 됐지, 아마?’


강태수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강인수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왜 제게 이야기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 순간, 강인수는 한때 강태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느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강인수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걱정시키기 싫었다.”

“형님.”

“가뜩이나 타국에서 바빴을 텐데, 네가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


형제는 그 말을 지겹게도 이해했다. 둘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래서 강태수는 말을 잡고 늘어지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 말만은 진심이었다. 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지. 어떤 일이 전부 순탄하기만 하겠어. 그렇게 고꾸라져 봐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다. 두 번 다시 이 집을 잃는 일은 없을 거야.”

“예, 형님. 정말 그렇게 되실 겁니다.”


강인수는 순간 강태수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강인수가 참지 못하고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태수야?”


밤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강태수의 눈빛은 잘 벼른 칼 같았다. 하지만 강인수는 그 눈빛이 무섭지 않았다. 그 칼이 강인수에게 휘둘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겁니다.”


오 년 동안 다짐한 것은 강인수뿐만이 아니었다. 강태수는 매일매일 가슴 속에 품은 칼을 갈았다.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날카롭게, 누구든 한 번에 베어 버릴 수 있게 갈고 또 갈았다.

강태수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나날이 강해졌다.


‘이제는 벤자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벤자민은 고국인 미국에 남았다. 벤자민이 한국에 오는 날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 강태수는 더욱 강해져야 했다.


“제가 유학을 다녀오겠다고 말씀 드렸던 이유 중에서 그게 제일 컸으니 말입니다.”

“···.”


강인수는 물끄러미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강태수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강인수는 그 순간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더 높은 곳 말이냐?”

“예, 형님.”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강태수의 얼굴은 누가 봐도 멋들어졌다. 강인수는 그 미소에 마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인수 자신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때, 그때도 강태수가 보였던 미소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이 기업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지.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고 싶다, 태수야.’


마주 웃는 두 남자의 웃음은 누가 보아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 안에 담긴 확신 또한 결이 같았다.

강태수의 확언에는 이유가 있었다. 매사 의심하는 강태수는 쉽게 확신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천성이 환경을 만나며 더욱 짙어진 탓이었다.


“그래, 어디로 말이냐.”


강인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강태수가 손을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을 가리켰다. 그 후에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 툭.


느렸으나 그만큼 정확한 손짓이었다.


“저 별들을, 이 어깨에 앉혀 볼 심산입니다.”


강태수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9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육군은 육군본부 직제를 바꾸었다. 참모부장 제도로 바꾸어 참모업무를 사업별로 통합 지휘할 수 있게 변화를 준 것이었다.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밑에 관리, 일사, 정보, 작전, 군수의 5개 일반 참모부장제를 채택하고 특과감실은 소관별로 일반참모부장의 조정통제를 받게 하는 편제로 개편되었다.

개편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강태수는 미국에서 돌아오며 치열하게 고민했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이 강태수의 생각을 이루는 가장 큰 골자였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 더, 더 높은 곳으로. 아무도 나와 내 가족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그렇게 강태수는 6사단으로 돌아가는 대신,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찮게 옛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어! 태수!”

“아니, 자네.”


바로 박정필이었다.


작가의말

100화기념 연참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홍위병
    작성일
    22.02.10 00:43
    No. 1

    전쟁중에 진급 못했다는게 제일 큰 미스테리네요.
    일반 장교들도 전쟁기간에 살아 있었다면 대위에서 중령은 됐을건데. 전쟁때 그만큼 큰 전공을 세웠는데.. 이해불가. 여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9 또끼슈끼럽
    작성일
    22.02.10 10:53
    No. 2

    ^^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파란3000
    작성일
    22.03.15 08:00
    No. 3

    9년 만에 소령이라?? 전쟁 을 거치고 훈장 받고 영웅 칭호 받은거 치곤 엄청 진급이 느리네요 .
    저시대 저정도 경력이면 최소 중령에서 대령 까지 진급 해야 정상인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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