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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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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2,510

작성
23.11.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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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1) 도움이 된다면 작은 것이라도

DUMMY

공무원들은 아주 신속했다.

내가 공무원들의 고충 처리를 위해 진상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구청장실에 보고까지 된 모양이었다.

지금 대통령이 구청에 왔다고.


“아이고 준비된 게 별로 없습니다 대통령님.”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요.”


구청장은 안절부절 못한 채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과태료를 못 내고 왔는데 구청장님께 직접 드리면 될까요? 아니면 이따가 나가면서 낼까요? 갑자기 달려오셔서 미처 처리를 못하고 왔습니다만.”

“아이고,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무슨 벌금 딱지를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대통령이라고 예외를 두시겠다는 건가요?”


내가 짐짓 정색하는 투로 말을 하자 다시 청장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그게 아니라...”


목이 날아갈까 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본론을 꺼낼 때다.


“청와대 콜센터 생긴 거 아시죠?”

“네, 알다 마다요. 업무 협조 요청 내려주신 것도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 들어온 민원에 월급 올려달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네? 아니, 저희 직원이요? 누굽니까? 대체 어떤...”

“누군지 알면 불러다가 문책을 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아 아닙니다.”


실언을 했다는 걸 깨닫고 바로 꼬리 내리는 구청장.

뭐 저럴 수도 있다.

어쨌든 내 용건은 저건 아니고.


“어제는 주차 민원 쪽 동료 하나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 좀 찾아달라고 연락이 안 된다구요.”

“네??”


화들짝 놀란다.


“구청장이 모든 관할 공무원을 일일이 챙기는 건 불가능하죠.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아...”

“정확하게는 시정을 요구하는 겁니다.”

“아... 그...”


내말을 오해한 듯 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옷 벗겠습니다.”


오해를 한 게 맞네.

그게 최선은 아니잖아 구청장님아.


“구청장님 한 분 옷 벗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네? 그러면 뭘 어떻...”


곤란하고 억울하다는 표정.

이해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난 공을 던졌다.

그래도 나보다는 일선이니 해결책을 내놓아보라는 표정으로.

하지만 무려 대통령 앞이다 보니 극도로 조심을 하는지 구청장의 입은 선뜻 열리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어렵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도 백퍼센트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

“난 잘만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요즘에 그런 거 없습니다. 구청장님 자식이 그렇게 힘들어도 나 몰라라 하실 건 아니잖아요.”

“... 그렇습니다.”

“스트레스 케어반을 만들던 힘든 부서는 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건 혼자가 힘들면 두 명을 배치하고 그래도 과중하면 세 명이건 네 명이건 배치해서 부담을 나누면 됩니다.”

“그거야 그런데... 아시다시피 인원이라는 게...”

“공무원 신규채용 늘리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아, 네...”


그래봐야 얼마나 늘리겠냐는 표정.


“수시로 채용을 할 겁니다. 여기 광동구 예산 걱정은 구청장님이 하시듯 나라 살림걱정은 제가 할 테니 걱정마시고요. 아, 대신에.”

“...?”

“선배라고 상사라고 뒤로 빠져서 근무 태만하는 건 못 봅니다. 관리자들은 일선에서 빠져서 관리를 하는 건 좋은데 직원들 관리도 좀 잘하도록 하세요. 스트레스는 안 받고 있는지, 요새는 뭐가 어려운지.”



###



“어떠셨습니까?”

“한마디로... 생각보다 많이 열악했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난 민원실에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그대로 말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을, 그것도 아주 상스러운 욕을 먹는 건 기분 더러운 일이더라구요.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임신을 한 공무원에게 쌍년 운운하던 그 자식의 면상이 떠오른다.


“그래도 대통령께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신 편이라 다행입니다.”

“다행인가요?”


남 일을 내일처럼.

공직자들에게는 필수 항목이다.

경험을 통한 배움도 있지만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


“현장 인원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셨겠는데요.”

“그렇죠 아무래도. 진상 하나도 내가 쫓아버렸고, 악질적인 상습 민원인이었는지 민원실 공무원들이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물론 불편한 사람도 있었겠지만요.”

“구청장요?”

“네. 아주 그냥 안절부절 못하더라구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상급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눈치보고 벌벌 떠는 직장인들이다.

자기 할 일만 잘하고 있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 아닌가.


“아마 눈치 보느라 그동안 방치하던 썩은 부위들 알아서 도려낼 겁니다.”



###



“네? 당분간은 민원을 저보고 받으라구요?”


손아타 과장은 갑작스럽게 구청장이 불러서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했다.


“그래. 니가 해. 애들 시키지 말고.”

“에이. 청장님 농담이 지나치시네. 제가 지금 구청 짬이 얼만데 민원이나 받고 있습니까? 아, 혹시 주차만이 요새 안 나오는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전담을 하던 사람이 빠졌으니 민원실에서 그전보다 고성이 오가는 횟수가 잦을 수도 있다.

청 내가 시끄러운 걸 가지고 그러나 싶었다.


“너 오늘 대통령 왔다간 알아 몰라?”

“아, 그거. 애들한테 듣기는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치과에 가면서 나가는 길에 근처에 볼일도 좀 보고 왔다.

그러면 안 되지만 암암리에 다들 그러고 있다.


‘별일이 있었으면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겠지.’


사단장이 일개 대대에 뜨면 난리가 난다고 하지 않나.

부대가 좀 황량해 보인다는 말에 전 부대원이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꽃을 심기도 하고, 페인트칠을 한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한마디라도 했으면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듣기는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는데 구청장은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아... 뭐 별일 없었다고 하던데요?”


애써 침착한 얼굴로 그렇게 되 물었는데 그게 아닌가?


“별일이 없어?”

“아... 네 뭐... 다들 별말 없던데... 요?”

“휴... 이런 답답한 놈 같으니.”


구청장은 답답한 듯 실내인데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손아타는 잽싸게 구청장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불여 줬다.


“니가 나보다 짬이 많냐?”


길게 연기를 한번 내뿜은 구청장이 자신을 보며 묻는다.

하지만 손아타는 여전히 습관적인 변명을 일관할 뿐이었다.


“네? 아, 그게 아니라...”

“입 다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잘못하면 모가지 여럿 날라가는 수도 있으니까.”


구청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였다.


“내가 아까 망신당한 것만 생각하면 정말. 무슨 대통령이 이런 구청에까지 와서 지랄이냐고. 지가 뭔데 민원인들 때문에 일선 공무원들 힘든 것까지 걱정을 하는 건데?”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다는 투로 구청장이 말을 하는 동안 손아타는 계속 혼자 생각했다.


‘주차만이 이 자식. 무슨 사고를 어떻게 쳤길래 청장이 이지랄인거야?’


가뜩이나 갑자기 밀린 휴가를 쓰겠다며 사라져서 골치 아픈 터였다.

얼마 전에는 검사한테 들어온 민원도 직접 받지 않았나.


“아, 그리고.”

“네?”

“너 얼마 전에 민원통화 직접 나간 적 있냐?”

“네? 아니 그걸 청장님이 어떻게...”

“나더러 직접 전화하라고 했다며? 그것도 검사가?”

“아, 그거요? 지가 검사면 검사지. 감히 청장님한테 사과 전화하라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제가 잘 마무리했습니다.”


마무리가 잘된 건 아니었고, 조금 찝찝하게 전화를 끊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야, 그런 걸 왜 니가 마음대로 판단하고 처리해! 너 나 짤리는 거 보려고 그래!”


잠시 잠잠하던 구청장이 다시 언성을 높이자 손아타는 다시 움찔했다.


“네?”

“그거 돌아서 나한테 다이렉트로 들어왔어. 너 내가 얼굴도 못 본 놈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줄 알아?”

“아...”


뭔가 많이 꼬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감도 안 잡혔다.


“그리고. 너 소문 듣자니 애들 그렇게 잡는다며?”


오늘은 욕을 먹을 팔자인가.


“자 잡기는요. 그저 인생선배, 사회선배 차원에서 가끔 충고 정도...”

“요새 애들 우리 때하고는 다른 거 몰라서 그래!”

“그렇다고 못 하는 놈을 두둔할 수도 없잖아요...”


손아타 말꼬리를 흐리며 다시 상관의 눈치를 살폈다.


“휴... 안되겠다. 너 책상 빼.”

“네?”

“당장 사표 쓰라고.“

“아니, 형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왜 니 형님이야 임마!”


사석에서는 술도 가끔 같이 한잔하고 형님 소리도 자주 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당장 손절당할 각이었다.


“너 혹시라도 이상한 짓 할 생각하지 마라. 내가 알고 있는 거 몇 개만 불어도, 너 옷 벗는 걸로 안 끝나고 콩밥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손아타는 느꼈다.

정말 책상을 빼고 내일부터 당장 새 일자리를 알아봐야 되는 거라고.



###



조금 더 국민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난 최근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입장문 발표를 매번 공중파를 통해서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번거로운 일이었다.


“국민 여러분 스스로를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부모이기 이전에 그냥 나 자신입니다. 소중한 나 자신. 나보다 소중한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 하나만 생각하라는 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가야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다며 무조건 나를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양을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스스로에게는 가혹하다.

여기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듯 하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부작용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유투브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한편 국민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기 위한 공익광고도 제작해서 내보내기 시작했다.

당장 효과는 볼 수 없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작은 것이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



###



구청에서 못쓴 연차를 쓰라는 통보를 갑자기 받은 지 일주일만이다.


‘후... 다시 출근이라니.’


구청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주차만의 가슴은 다시 갑갑해져왔다.

휴가는 휴가일뿐이다.

스트레스에서 잠시 해방이 됐을 뿐, 복귀하면 지옥 같은 일상이 다시 이어질게 뻔하다.


“안녕하세요.”


사무실에 도착한 주차만은 동료들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했다.


“휴가는 잘 다녀왔어요?”

“얼굴 좋아졌네. 역시 사람은 쉬어야 돼. 쉴 줄도 알아야 된다고.”


인사를 마친 주차만에게 동료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푹 쉬고 와서 기분 탓인지 동료들의 표정이 전보다는 부드럽게 느껴졌다.


“어?”


얼굴보기 무섭다고 생각했던 ‘손아타 과장’의 자리가 비어있는 게 보였다.

비어 있는 것뿐 아니라 명패 자체가 없었다.


‘갑자기 어딜 간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빈자리에 누군가 와서 앉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익숙했다.


‘어디서 봤는데...’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아뇨, 마시고 왔습니다.”


과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는 시원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 이거 한잔 남는데.”


커피를 권한 동료 여자 직원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난처하게 변하려는 찰나.


“아, 그래요? 그럼 저 주세요. 잘 마시겠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커피를 받아서는 시원하게 쭉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동료 여직원의 표정도 환해졌다.


“휴...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남자가 정말 아쉽다는 듯 말했고,


“그러게요. 정말 많이 아쉽습니다.”

“며칠이 정말 금방 갔네요. 업무는 할만 하셨어요?”


동료들 역시 많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마지막 유투브를 해볼까요?”


잠시 후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주차만 계장은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동구청 체험 마지막 날입니다. 대통령 최태웅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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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 주차민원과 공무원 23.11.12 434 10 12쪽
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61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4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6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3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500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6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50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30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5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62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4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71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9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8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3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8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81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6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30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3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3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5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7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2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5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2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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