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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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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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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30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0.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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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 촉법이고 나발이고

DUMMY

강남 00 아파트.


“후...”


권기태는 방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담배를 피는 중이었다.


"씨발... 아까 그 새끼 때리다가 잘 못 됐나?"


권기태는 담배를 입에 살짝 걸치듯 문 채 오른손을 까딱거렸다. 손목 쪽이 좀 욱신한 것 같기도 했다.


"병신 같은 새끼가 고자질이나 하고 지랄이야. 처 맞을라고."


광판은 권기태의 셔틀이었다.

담배 셔틀도 하고 빵 셔틀도 하고 시키는 건 다 하는 놈이었다.

원래는 다른 놈이 셔틀이었지만 자신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새로 고른 놈이 박광판이었다.


"기태야!"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다음 재를 털어버리고 그대로 바깥에 던져 버렸다.

지난번에 밑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담배 불똥을 맞을 뻔한 일이 있었다는 걸 알지만 개의치 않았다.


"왜?"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바로 눈살을 지푸렸다.


"너 또 담배 폈니?"

"무슨 헛소리야?"

"너 저번에 밑에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집 찾아와서 담배 불에 화상 입었다고 치료비 요구한 거 몰라? 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돈 많잖아. 돈 좀 주고 합의하면 되는데 왜 그래?"

"너 지금 그게 중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왠 잔소린데? 나가!"


권기태에게 엄마의 존재는 그냥 같이 살면서 밥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에휴... 너 요새는 학교에서 애들 괴롭히고 그러지는 않지?"

"괴롭히면? 뭐 어때서?"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나!"


듣다 못한 권기태는 엄마를 내쫓다시피 방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짜증나게 진짜."


기태는 애써 잠을 청했다.

누구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거나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떼우는 게 좋지만, 학교에서 왕 행세를 하는 그로서는 학교가 제일 편했다.

아이들이건 담임이건, 심지어는 교장 선생님까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판이었으니.



다음날.

태양 중학교. 점심시간.


"기태야. 야, 권기태."


아침에 이어 어제 설친 잠을 보충하고 있었다.

잠든 기태는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도 깨우지 않는 게 이 학교의 법이었다.


"아 씨발..."

"야, 일어나봐! 얼른!"

"씨발 새끼야! 뭔데 그래? 자는 거 안 보여?"


권기태는 짜증이 나서 깨우던 손을 치워버렸다.


"어?"


자신을 깨우던 사람이 동급생이 아니라 담임선생이라는 것에 살짝 놀랐다.

어른이라는 것에 놀랐고, 아무래도 평교사라는 직장인이다 보니 아이들보다 더 자신을 조심스러워하는 걸 잘 알아서였다.

사립학교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씨... 뭔데요?"

"너 일어나봐야 되겠어."

"그러니까 왜! 왜 그러냐구요?"

"경찰이 너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담임의 얼굴은 평소처럼 조심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는 기세등등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누가 왔다구요?"

"저기. 형사가 왔어."


형사? 낯선 단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권기태는 슬쩍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봤다.


"니가 권기태니?"


험상궂게 생겼다.

어느새 어른의 덩치만큼 커져서 길가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덩치인 자신이 봐도 주눅이 들 만큼.

본능적으로 주눅이 들었다.

그건 강자를 알아보고 알아서 숙이는 약자의 그것이었다.


"그런... 데요?"

"우리랑 같이 좀 갈까?"

"그러니까 왜요? 나 잘못한 거 없는데요?"

"그건 가보면 아는 거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권기태의 눈에 앞의 형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 나 체포하는 거예요?"

"체포?"

"내가 잘못한 게 있어야 잡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함께 가자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아직은.


"너 학폭으로 신고 들어왔어."

"학폭요? 증거 있어요? 내가 누굴 괴롭혔는데요."

"그러니까 가보면 안다는 거잖아. 이 자식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 하긴 드럽게 말도 안 듣게 생겼네."

"와... 형사라고 말 너무 막 하시네."


하지만 권기태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철컥.

형사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망설임 없이 수갑을 채워서였다.


"어?"

"놀라긴. 수갑 처음 차보지? 그러니까 죄를 짓지 말고 살았어야지."

"이거 왜 이래? 나 촉법이야!"

"촉법이고 나발이고 일단 가자."


단잠을 즐기던 권기태는 그렇게 자신보다 절반 정도는 덩치가 더 큰 험악한 형사들에 의해 개처럼 끌려갔다.



###



"자 교장 선생님. 한잔 받으시지요."


채연진은 조금 과한 자세로 술잔을 받았다.


"잔만 받겠습니다. 이따 보고 받을게 좀 많아서요."

"어허. 그래도 간만에 제가 이렇게 모시는데 사양 하시깁니까? 근무 시간인 건 알지만 이사장인 제가 권하는 데도요?"

"하긴. 저희들이 이런 자리에서 중요한 일도 대화로 잘 풀어야 학생들에게도 득이 되겠죠?"


채연진은 못 이기는 척 이사장에게 동조를 했다.

사립학교 교장인 채연진은 눈앞의 이사장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교장으로 부임한 후 두 번째 해였다.

앞으로 최소한 오 년은 더 해 먹어야 한다.

술로 밤을 새우자고 해도 마다하면 안 되는 자리였다.


"드시면서 얘기하십시다."

"네, 잘 먹겠습니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이제 점심시간이고 여차하면 이 자리에서 저녁까지 해결을 할지도 모른다.

두 번의 식사가 끝나면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이사장의 특성 상 밤이 깊으면 조금 더 은밀한 장소로 옮길지도 모를 일이다.


"요새 그 학생은 잘 지냅니까?"

"권기태 학생 말씀하시는 거죠?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더 말씀하실 거라도 있으신지요?"

"그런 건 아니고."

"..."

"듣자 하니 애들끼리 다툼이 조금 있었다구요?"

"아이고. 그걸 또 어떻게 들으시고. 다 제 불찰입니다."


채연진은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연신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다.


"여기저기 눈과 귀가 많아서요. 뭐 큰일 없이 해결됐다 듣기는 했습니다만."

"친구들끼리 사소한 언쟁으로 한 아이가 스트레스를 좀 받은 모양입니다만. 살면서 그 정도 스트레스 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흐음..."

"다행히 그 친구 담임이 제가 데리고 온 사람이라 크게 번지지 않도록 미리 잘 처리를 한 모양이더라구요."

"그렇군요. 아시겠지만 회장님이 각별히 챙기는 녀석입니다."

"네, 잘 알죠. 제가 교장 자리에 있는 한 무사히 졸업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태양 중학교는 사립이었고, 학원 재단의 모 기업이 태양 건설이었다.

건설로 돈을 번 회장이 교육 사업에 관심 있어서 작게 시작한 학교가 어느새 명문 사립이 됐다.


"뭐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이사장의 일장 연설이 되는 동안 채연진은 네네, 하는 정도의 맞장구만 쳐줄 뿐이었다.

이 인간 역시 본인의 말을 끊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태생이 있는 집안사람이라 이렇게 아래에 사람을 두고 떠드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무슨 문자가 자꾸 이렇게 오는 거지?'


학교 선생들에게는 이사장 만나는 자리니 숨이 넘어갈 만큼 다급한 일이 아니면 문자건 전화건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해뒀었다.


"잠깐만요. 우리 애한테서 문자가 자꾸 오네."

"네 편하게 전화 하셔도 됩니다."


채연진은 그 틈을 이용해 아까부터 자꾸 울리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열 개 정도 쌓인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



00경찰서. 형사과.

채연진은 권기태가 형사들에 체포돼서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온 참이었다.

이사장에게는 별일 없을 거라 잘 말했지만, 경찰서라는 얘기에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고는 식은땀이 흘렀다.


"기태야! 권기태!"


형사 앞에 조사를 받고 있는 권기태의 뒷모습이 보였다.


"교장 선생님!"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제 상봉의 시간이 몇 초간 이어졌다.

하지만 조사를 하고 있던 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앉아 임마! ... 교장 선생님이세요?"


형사는 서슬 퍼런 얼굴로 권기태를 다그친 후 채연진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네. 제가 태양 중학교 교장 채연진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학폭이라니요?"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피해 학생이 청와대 국민 청원을 넣었고, 직접 사건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아무리 국민 청원이어도 그렇죠! 아직 중학교 일 학년밖에 안된 아이를 이렇게 잡아와서는. 청소년과도 아니고 이렇게 형사과에서. 우리 기태가 얼마나 겁을 먹겠습니까. 그리고 형사 양반, 우리 태양 중학교 재단 어딘지 모르세요?"

"잘 알죠. 학원 재단 모 기업이 태양 건설인 거."

"그걸 아는 사람이..."


이쪽 동네에서는 경찰도 전화 한 통화면 어지간한 건 무마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입김이 있다.

태양 건설의 위치는 그 정도였다.

그래서 태양 건설 집안사람들은 어지간한 사고를 쳐도 사람을 죽이는 사건만 아니라면 돈으로 매수하고 권력을 동원해 사건을 덮었다.

물론 그 와중에 생긴 억울한 피해자는 부지기수였다.


"태양 건설 부사장도 어제 잡혀왔어요."

"네? 그게 무슨..."


채연진은 금시 소문의 말에 눈만 끔벅였다.


"아주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게 생겼네. 장남은 살인 혐의에 회장의 혼외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학폭에."


아무도 쉽게 태양 건설 회장의 혼외자에 대해서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경찰 같은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람이! 형사 양반 말조심해요!"

"뭐 조심할게 있나요. 사실이 그런데."

"그런데 어쨌든. 일단은 좀 풀어줍시다. 학폭인 건 뭐 조사를 하든지 하시고, 우리 권기태 학생 아직 촉법 소년이라구요. 그 정도는 잠깐 조사하면서 아셨을 거 아닙니까?"


좀 전 권기태가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말에 이사장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한 걸 기억하는 채연진은 교장 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어떻게 올라온 교장 자린데!'


이렇게 물러나 버리면 끝이다.

연금만 받아먹고 살거나 소일거리라도 하려면 아파트 수위 자리라도 알아봐야 할 판이었으니까.


"촉법 소년 알죠. 아는데."

"알면 어서 풀어줘야죠!"

"촉법 소년이건 뭐건 잘못했으면 잡아넣으라는 지시가 내려와서요."

"그러니까 누가요? 서장요?"


서장 정도면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수 있다.

좀 곤란한 상황이면 접대를 하든 뇌물로 입을 틀어막으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조금 높은 곳에 선을 대서 승진 약속을 해줄 수도 있다.


"아뇨."

"그럼 청장?"


일이 조금 꼬여간다고 생각할 즘이었다.


"아니예요 그것도."

"아니...라고요?"

"휴... 네. 어느 선인지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설마 국회의원의 입김이라도 있었던 건가?'


채연진의 머릿속이 하얘져 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충성!"


경찰서 입구 쪽에서부터 경찰들의 경례 소리가 이어졌다.


"아. 오셨나 보네. 진짜 오실 줄은 몰랐는데."

"뭐야 이거? 누가 오길래 그래요?"


채연진은 그렇게 물은 후 곧바로 형사의 우렁찬 경례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경례가 향한 쪽을 봤다.

그리고 자신이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자리보전이 아니라 자신이 죄를 지은 건 없는지 걱정을 해야 할 판이라는 것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과 선작, 그리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면 글쓰는데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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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8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1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4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0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7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7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2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1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6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79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3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7 12 12쪽
»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1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0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2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4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1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0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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