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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9,249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0.27 23:30
조회
727
추천
12
글자
12쪽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DUMMY

"수고들 많으십니다."

"그래. 학폭 가해자 조사는 잘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피해자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를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쪽은... 누구신가요?"


대통령이었다.

일개 학폭 사건에 대통령이 경찰서에 오다니.

채연진은 몇 번이고 현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쪽은..."


최태웅 대통령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

대통령은 이제 마흔 중반이라고 들었다.

나이로 따지면 자신보다 이십 년은 어렸다.

하지만 채연진은 공직 생활 평생 처신을 우선으로 해온 사람이었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해.'


그런 생각에 자신을 소개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뭐라고 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답은 금새 나왔다.

절대 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척!

채연진의 손이 거수경례 자세로 바뀌고 있었고,


"충성! 대통령님! 교, 교장 채연진! 입니다!"


쉰다섯인 현직 사립중학교 교장의 입에서 현역 군인인 듯한 관등성명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



"아."


내 눈앞의 중년 남자가 태양 중학교의 교장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무슨 선생님이 경례까지 하면서 관등 성명을. 많이 긴장했나 보네.'


조금 웃긴 상황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옆에 서있는 경찰들도 태양 중학교 교장의 돌발 행동에 웃음이 터진 모양이었다.


"교장 선생님이셨군요. 경찰도 군인도 아닌데 관등 성명이라니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이고. 연배도 한참 높으신 분이 이러면 제가 대통령이어도 부담스럽습니다."


내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교장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 학생인가요?"


딱 봐도 말 안 듣게 생긴 놈이다.

저런 놈 많이 봤다.

난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저런 건 타고 나는 걸까, 아니면 환경이 저렇게 만드는 걸까.


'답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대빵이라는 건 어린아이들도 다 안다.

물론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자리일 뿐이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의 눈에는 한나라의 대장이다.


'많이 쫄았나 보네. 그러게 착하게 좀 살지.'


이미 이곳까지 오는 동안 비서실장에게 눈앞의 촉법 소년에 대한 정보는 전해들은 상태였다.


"니가 권기태니?"

"네? 아, 네..."


내가 앞으로 다가가며 묻자 권기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좀 전의 경찰들이나 교장 선생님처럼 자신도 따라서 경례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박광판 학생 알지? 너랑 같은 반인?"

"네?"


내 물음에 놀란 목소리로 되물으면서도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린다.

지금 대답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고 있는 듯 하다.


"어제 밤에 니가 때린 박광판."

"아..."


늘 하던 행동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은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제 너한테 맞았거든.'


박광판이라는 학생의 의식에 들어갔던 어젯밤 그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그 얼굴을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기억 안 나니? 안 나면 기억나게 해줄까?"


아직 애는 애다.

여기 잡혀 와서 졸지에 처음 취조라는 것도 경험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덩치가 더 커지고 때가 더 묻은 후 더 나쁜 놈이 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애다.

순수하게 악할 뿐인.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도, 그 아이의 엄마가 고소를 해도, 당연히 집안의 재력으로 해결이 되는 줄 아는 무서울 게 없는 이제 한국 나이로 열네 살인 꼬마.


"대통령 아저씨가 나쁜 사람들 혼내줄 거거든. 잘못을 인정 안 하면 나쁜 사람의 친구들, 부모들까지 다 혼을 내줄 거야."

"아..."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좁은 땅 덩어리 안에서 태양 건설도 나름 재벌이랍시고 무소불위의 권력인 줄 알고 막 휘두르면서 살았겠지.


'이것 봐라? 이래도 눈치를 보고 사과를 안 하네?'


핏줄부터 썩은 건가 싶다.

조금 더 겁을 줘야 되겠다 싶었다.

바로 옆에 있는 형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형사님."

"네, 대통령님!"

"이 학생 잘못한 게 뭐 뭐 있습니까?"

"그게..."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세요. 말 가려서 안 해도 되니까 편하게요."

"음... 일단 최근 피해자 박광판 학생 상습 구타 혐의입니다. 그전에도 비슷한 피해자들 있었지만 이사장의 입김으로 피해자들이 오히려 전학을 갔구요. 학교 내에서 이른바 셔틀이라고 해서 이런저런 심부름도 늘 시키고, 금전 갈취 정황도 의심이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전혀 인정을 하지 않았구요?"

“그렇습니다.”


형사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죄목을 듣고 있던 권기태의 얼굴에 초조함이 조금씩 묻어난다.

평소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나쁘네."

"네?"

"나쁘다구요."

"아. 네... 그렇죠."

"태양 중학교 재단이 태양 건설 소유라면서요? 이사장도 그 집안 사람이구요?"

"... 네."


잠시 고민을 했다.

어디까지 벌을 줘야 할지.

아직도 소년법의 취지는 형벌이 아니라 교화가 목적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이런 나이의 아이들은 사람을 죽여도 촉법 소년이라는 이유로 벌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음..."


내가 고민을 이어가자 주변이 잠깐 소란스러워졌다.


"아. 태양 건설 측에서 나온 모양인데요."


옆에 있던 형사의 시선이 내 뒤로 향했다.

고개를 돌리자 과연 그곳에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변호인 집단인 듯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태양 측 변호인단인가요?"


내가 그렇게 물었지만 이제 막 나타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마 대통령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한 모양이었다.


"혹시 이 학생 변호사 자격으로 온 겁니까?"

"아... 네, 맞습니다. 태양 건설 법무팀입니다."


난처한 표정으로 소개를 하는 남자.

법무팀 대표 쯤 되는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촉법 운운하며 태양 건설의 입김으로 가해자는 보란 듯이 경찰서를 빠져 나갔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아무것도 못했겠지만.'


아무것도 없던 예전이라면 보면서도 속으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쁜 짓인 걸 알면서 뭐라 말도 못한다. 누군 가의 의식 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저 나쁜 꿈이라고 생각하며 지났던 날이 떠올랐다.

솔직히 어디에 사는 누구에게 일어나는 일인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멀리가 아니라 가까이, 심지어 아는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제는 다르지.'


대한민국 대통령.

행정부의 수반이며 국군 최고 통수권자다.

말 한마디면 군대와 경찰이 움직이고, 검찰과 정보 조직이 총출동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대놓고 대통령이 못하면 공개적으로 욕도 하는 마당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절대 권력자’ 일 것이다.


"형사님."

"네, 대통령님."

"소년법 개정 즉시 하겠습니다."

"... 네?"

"촉법 소년 같은 거 아예 없애 버릴 테니까 잘못했으면 벌을 줍시다."

"네. 알겠습니다."

"아직 사과도 하지 않는 권기태 학생. 전혀 뉘우치지 않는 것 같은데 바로 유치장에 넣어버리세요."

"네??"


유치장에 넣어버리라는 말 한마디에 경찰서 안이 크게 술렁였다.


"저... 대통령님."


그 말을 시작으로 태양 건설의 법무팀이 다가왔다.

경호팀이 그 앞을 막으려 했지만 난 괜찮다며 경호원을 제지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어설프게 변호하려는 생각 집어치우세요."

"아..."


단호한 내 말에 태양 건설 법무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내 최고 재벌의 법무팀이 온다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다 동원해서 벌 줄 겁니다. 필요하면 법 개정도 할 생각입니다.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기껏 혼외자 하나 때문에 태양 건설 회장이 직접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국세청이건 검찰이건 뭐든 움직여서 태양 건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적당한 선에서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후... 그랬을까요?"


아직도 내 결정이 옳았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촉법 소년 권기태에게 일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이유는 재차 범행시 정말 가혹한 벌을 받겠다는 약속이나마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소년법 개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


관련법은 살펴봐야 되겠지만, 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법을 개정하는 게 틀린 메모 하나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지시하시면 바로 시작은 하겠습니다."

"시작이라...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반대를 위한 반대부터, 소신을 주장하는 사람, 뭣도 모르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거야 어쩔 수 없죠. 필요한 건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원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적이 많으셨죠. 대통령께서 하시려고 했던 일들은 보통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일들이었으니까요."

"왜 그렇게 반대들을 할까요. 알고 보면 꼭 필요한 것도 많은데."

"귀찮고 번거로우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맞다. 그게 정답이다.

지금 당장 대충 먹고 살만하면 변화를 싫어한다.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할 거면 나중에 하라는 식이다.

그래서 고인 물은 썩고 나라는 병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참 그런데 말입니다 대통령님."


비서실장이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는 얼굴로 물어왔다.


"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뭘... 요? 아!"

"제 질문의 의도를 한 번에 알아차리신 것 같네요."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잠시 고민하던 난 사실대로 털어놔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 믿지 않으시겠지만.”

"편하게 쉽게 말씀하세요. 있는 그대로."


남들이 보기에 잠들어 있는 상황.

그 순간 잠들어 있는 사람의 의식은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헛소리가 아니게 들릴까.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장담하는데 전 별로 놀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세요."

"휴..."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 가끔 들어가요.”


난 한참을 더 고민하다가 털어놓았다.

비서실장의 얼굴은 의외로 놀람보다는 궁금함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식 속으로요? 어떻게요?"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저도 몰라요. 제 의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사고 당하고부터 이러네요.“

"의지로 되는 게 아니면 굉장히 불규칙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그럼 어제는 그 박광판이라는 학생의 의식으로?"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군요."


비서실장의 반응은 자신이 말한 그대로였다.

어렵게 털어놓은 내가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과 선작, 그리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면 글쓰는데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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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9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2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5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1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8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8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3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2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7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80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4 15 12쪽
»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8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1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1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3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5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1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1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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