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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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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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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510

작성
23.11.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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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DUMMY

그 날 저녁.


“너무 세게 나가신 거 아닙니까?”


나와 늦은 저녁을 함께 하던 비서실장의 입에서 우려 섞인 질문이 나왔다.


“그런 인간한테는 세게 나가도 된다고 봅니다.”

“주택국장이 제안한 내용은 완전히 마음에 드나 보네요?”

“해봐야죠.”

“백퍼센트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요?”


뭐든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완벽한 계획은 아닐 것이다.

관련 법도 손을 봐야 하고,

당장 집주인의 반대도 얼마나 설득이 가능할지 알 수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 짓는 건 빨리 하지 않습니까?”

“뭐... 그렇죠? 무리한 공사 강행하지 않고, 일본같이 내진 설계까지 완벽하게 하려면 더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이미 있는 집 위에 한 층 더 올리는 것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이미 살고 있는 집 위에 정식으로 증축을 하는 게 오래 걸리진 않는 걸로 안다.

한 달 정도면 되지 않을까?

급한대로 가건축으로 지어 올리면 더 빠를 것이다.

뭐가 됐든 볕 안 들고 장마철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반지하보다는 훨씬 낫겠지.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며칠 전 송판구 빌라촌에 다녀왔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이미 속하신 분들도 있고,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연설이 전파를 탔다.


-제가 직접 가본 반지하의 현실은 생각보다 참담했습니다. 물론 모든 반지하 주택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땅속에 들어가 있는 집이 어떻게 쾌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중파 방송국의 뉴스에서도 인터넷도 도배를 했던 송판구 세 모녀 자살사건은 꽤 이슈가 됐다.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다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오래 화제가 되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분들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들면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대통령으로서 죄송스러울 뿐이고, 그런 사태를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참담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밝힌 생각은 기본적인 주거복지에 관한 것이었다.


-전담 공무원을 투입해서 실사에 나설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열악한 환경의 주택을 선정해서 정부주도하에 사람이 살만한 집으로 바꿔놓겠습니다.

“말은 좋네. 그런데 저게 과연 실행 가능하겠어?”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정부가 자꾸 개입을 하면 이거 사회주의 국가 되는 거 아닌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저게 될 리가 없잖아?

“의도는 좋네. 그런데 저거 때문에 또 세금 왕창 뜯기는 거 아냐? 지금 내는 세금도 짜증나죽겠는데. 그리고 또 누구는 비싼 월세방 살고 싶어서 사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월에 이십만 원짜리 허름한 반지하나 들어가서 사는 건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대통령의 말은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곳간을 열어서 퍼주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야근을 불사하고 잠을 줄여가며 자기계발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 대부분 현대인들에게는 불공평한 처사처럼 들리기도 했다.



###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경계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다.

끼이익...


“안녕하세요. 주택국에서 현장조사차 나왔습니다.”

“누구요? 어디시라구요?”


반지하 원룸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자다가 일어난 얼굴로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저는 주택국장 한채만이라고 합니다.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께서 이번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반지하방의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 무슨 실태... 조사요? 대통령이 뭐를 어쨌다구요?”


밤새 일을 하고 간신히 잠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꿀잠에 빠진 자신을 깨운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그게 누가 됐든.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되는데요. 일단 이거부터 좀 봐주시겠어요?”


잠이 고픈 자는 그 무엇도 귀찮은 법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눈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보고 남자는 오해를 하고 말았다.


“아... 이런 거 안 해요!”

“저기 선생님! 이거 뭐 이상한 게 아니라...”

“꺼져 씨발!”


쾅!

자선단체 같은데서 설문조사나 모금 같은걸 온 거라 오해한 남자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원룸 문을 닫아 버렸다.


“아...”


한채만 국장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힘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하님. 옆집으로 갑시다.”

“네, 국장님.”


지하라고 불린 동료 직원은 한 채만의 뒤를 따랐다.


“힘들죠?”

“네? 아, 뭐.”

“오늘 내내 이렇게 문전박대만 당했잖아. 그것도 아니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나 받고 말이야. 내가 이름에 꽂혀서 반지하 주임을 차출했는데.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이럴 거면 차라리 주민 센터가 근무가 더 편했겠어. 그래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요새 취업도 힘든데 뭐든 열심히 해야죠. 공무원 시험도 얼마나 어렵게 붙었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조사를 다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서울에 주택수가 몇 갠데 이렇게 일일이 다녀서 어느 세월에 다 조사를 하나요? 갑자기 찾아오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불쾌해하는 문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일일이 발품을 파는 팀이 있고, 전화를 걸어서 유선 상으로 조사를 하는 팀도 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고용을 했죠.”

“아르바이트요?”

“실태 조사만 전담으로 하는 단기아르바이트. 아마 계속 채용중일 거예요. 벌써 채용된 사람은 우리처럼 여기저기서 집집마다 문 두들기고 있을 거예요.”

“음...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9급 공무원 반지하가 보기에는 의미 없는 삽질 같았다.


“조사가 끝난 주택은 일단 집주인과 세입자의 의견도 물어야죠. 아무리 좋게 해준다고 해도 지금이 더 좋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니까요.”


한채만 국장의 우려는 현실이었다.

며칠 후 밤. 청와대.


“반대가 이렇게 많다구요?”


보고서를 확인한 난 잘못 본 건 없는지 재차 확인을 했다.


“무응답은 반영 안 된 수치입니다. 아무래도 강제성이 없다보니...”


며칠 동안 발품을 팔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다시피 한 것이 굉장히 미안한 표정이다.

이런 일을 지시한 내가 미안해야 하지만.


“조사는 유선, 온라인, 오프라인 다 한건 맞구요?”

“그렇습니다. 일단은 진행률은 30퍼센트 정도입니다.”

“흠...”

“무응답과 반대는 성향이 비슷할 걸로 보입니다.”

“어떻게 비슷한데요?”

“믿지를 못 하는 거죠.”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정책일 테니.

한반도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었다.


“일단 조사 자체에 믿음이 없다라... 안되겠네요. 극약처방을 할 수밖에는.”

“어떻게 할까요?”

“다시 입장문을 내겠습니다. 증축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그 정도로 확실한 메리트가 없으면 집주인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그건 좀...”

“왜요?”

“주택이 한두 채도 아니고...”

“그중에서 일부만 지원을 한다고 하면 말들 많을 거 아닙니까.”


이런 일을 벌인 것 자체도 반발이 심한 걸 안다.

이미 비싼 월세를 부담하고 사는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박탈감도 상당할 것이다.


“일단은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니까,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럼 그 예산은 또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그걸 왜 국장님이 걱정하십니까?”

“네?”

“나라 곳간 걱정은 실무자들이 하실 게 아니라 대통령인 제가 하는 거죠.”

“혹시 너무 무리를 하시는 건 아닐까요?”


걱정이 가득한 말투다.


“왜요? 지지율 떨어질까 봐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보입니까?”

“... 사실 그렇습니다.”

“지지율 떨어지는 일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돈을 주면 좋아한다.

물론 그 돈이 세금이라면 다들 싫어하겠지.


“확실한 물주가 있으니까요. 결국은 돈이 문제긴 하네요.”

“돈이 있으십니까?”

“만들어야 되겠죠?”



###



“얼마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건 내일 회의하고 며칠 후 보고를 받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 뭐... 돈 구하는 건 걱정이 아니니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가장 쉬운 일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뭐하나.

실행할 능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데 왜 부른 사람들이 영세업체들입니까?”


비서실장은 그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왕 돈 써서 지을 거 제대로 확실하게 지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지금 고층빌딩 올리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큰 기술 필요한 거 아니니까 동네 가게에 일주겠다?”

“뭐 그런 것도 있는데 대기업한테 일거리 줘 봐요. 그게 또 제대로 되겠어요? 하청에 재하청, 또 거기서 재하청을 주겠지. 말들 많을 겁니다.”


대기업은 알아서 잘 한다.

일을 잘한다는 게 아니라 본인들 일거리는 알아서 찾는다는 뜻이다.

정부에서 이런 소소한 것까지 몰아줄 필요는 없다.

이런 건 영세업체들에게 주는 게 시장 활성화에도 좋다.

비리도 덜할 것이다.

만약에 생기는 비리를 적발하기도 수월하고.


“맞는 말씀 같습니다. 이미지에 도움도 될 것 같구요.”

“그렇죠?”


내가 내세운 공약 자체가 기득권에 반대, 재벌 그룹 개혁이었다.

그야말로 언행일치인 셈이니 여론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날.

태양건설 회장실.


“구멍가게들한테 내준다고?”

“일단 정부의 발표는 그렇습니다.”

“그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꾸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거야?”


권만채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전혀 숨기지 않고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치이익!

태양건설 본사는 전체가 금연건물이다.

단 한 곳, 회장실은 제외하고는.


“다른 회사들 반응은?”


태양건설은 건설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메이저이지만, 분야별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 재벌그룹과는 규모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일성건설과 장대건설 쪽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에스건설과 한용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들은 다른 걸로 먹고 살면 되니까 그런 코 묻은 돈은 쳐다도 안 본다 이거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비서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불같은 성격의 회장이다.

갈아치운 운전기사만 해도 올해에만 열 명이 넘는다.


“그 새끼는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전생에 우리 집안하고 원수라도 졌나?”


아들인 태양건설 부사장 권영태는 지금 감옥에 있다.

일차공판에서 십년을 선고받았다.

최고로 비싼 변호사를 붙였는데도 그 정도 형량이 나왔다.

당연히 항소를 한 상태이다.

결과는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주가는?”

“아직... 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호적상 아들과 혼외자의 연이은 사고로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 친 상태다.

다시 끌어올리려면 영업력으로 아직은 건재하다고 증명할 수밖에 없다.


“거래하는 하청업체들 리스트 좀 뽑아와.”

“네? 하청업체요 리스트요?”

“그래 죄다 뽑아와. 규모가 크건 작건, 구멍가게건, 우리 회사에서 공사현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으면 일당 노가다라도 죄다 뽑아와.”

“그건 왜...?”

“일 안할 거야?”

“아! 금방 올리겠습니다!”


눈치 빠른 비서는 상황판단을 금새 하고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권만채 회장의 나이는 일흔하고도 두 살이었다.

현직에서 물러나서 손자들 재롱이나 보고 살 나이지만 아직은 일 욕심도 자리 욕심도 많았다.

세상에 대한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니가 대통령이면 대통령이지. 감히 나를 물로 봐?”


권만채 회장은 이미 대통령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하는.


“계획대로 되나 어디 보자고.”


반지하 주거민에 대한 정책을 발표했다.

건축 인력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걸 죄다 영세한 업체 쪽으로 몰아주려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태양건설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거나, 일을 받아가는 사람이었다.

권만채 회장은 그들에게 압박을 가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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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9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2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5 9 12쪽
»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1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8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8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3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2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7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80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3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7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1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1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3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5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1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0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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