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9,246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12 18:30
조회
431
추천
10
글자
12쪽

(27) 주차민원과 공무원

DUMMY

서울 광동구청.


“네, 광동구청 주차민원과 주차만 계장입니다.”

-저기요.


주차만 민원과 계장은 날선 목소리에 잔뜩 긴장했다.

가뜩이나 스트레스에 머리가 쪼개질 지경인데 아침부터 공격적인 목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에 불법 주정차 신고했는데요.

“네.”

-단속 언제 나와요?

“신고하신 지역이 어디시죠?”

-둔촌사거리에 있는 상가 일층요. 대체 전화를 건 게 언젠데 아직도 안와요? 가게 문도 못 열고 있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


이런 일이 일상이다.

일상이 되면 좀 무뎌질 줄 알았는데 섬세한 주차만 계장은 무뎌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아저씨 이름 뭐예요? 무슨 일을 이딴 식으로 하냐고!


전화 속 상대의 목소리는 어렸다.

물론 목소리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고, 민원인을 나이를 봐가며 상대하면 안 될 일이지만,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사람에게 아침부터 막말을 듣자니 주차만 계장은 갑자기 홧병이라도 나는 듯 가슴이 답답해져오는걸 느꼈다.



###



“휴...”


자판기 커피 한잔에 담배. 대학 때부터 피워오던 담배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공무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꿀보직에 철밥통이라 생각해 담배부터 끊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현실이 막았다.

주차만 계장은 담배를 몇 시간 동안 못핀 사람처럼 연기를 쭉쭉 빨아들였고, 두 개째에 불을 붙였다.


“너 여기서 뭐해?”


직속 상사 손아타 과장.

그를 보니 주차만 계장은 다시 턱하니 숨이 막혔다.

민원인도 민원인이지만 손아타 과장 역시 자신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아까 진상 한명 들어왔다며?”

“... 네...”

“고생했네.”


어쩐 일로 다독여주기를 하나 싶다.

주차만 계장이 보기에는 손아타 과장은 꼰대의 대표 주자였다.


“그래도 얼른 그거만 피고 들어가. 지금 민원인들 줄서 있드라.”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별것도 아닌 일로 삿대질을 하며 따지는 사람들.

그중에는 몇 만 원짜리 주차딱지 때문에 고래고래 화를 내는 사람도 꽤 있었다.


“새끼 표정은. 힘내 임마.”

“...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사람들 다 이러고 살아.”

“...”

“그래도 우리처럼 꿀 빠는 직업이 어디 있냐. 여기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사람 많은 거 알지? 아무리 공무원 경쟁률 헐거워졌다고 해도 아직은 쉬운 곳 아니야. 너도 고과에 불이익 안 받으려면 정신 차리고 일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다 이러고 산다는 말. 나만 힘든 거 아니라는 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적응 못 하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정년 보장되지, 때 되면 진급되지, 퇴직하면 공무원 연금 나오지. 칼퇴근 하지.”


정작 주차만 계장은 칼 퇴근을 해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들어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수고하고.”


주차만 계장은 과장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하늘이 참 맑네.’


박*영이 부른 노래 제목이 기억난다.

‘낮에 한 이별’ 이라는.

그리고 숨이라도 크게 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허리까지 젖혀가며 숨을 크게 쉬었다.

구청 옥상에 눈에 들어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 죽기 딱 좋은 날씨다.’



###



“하...”


옥상에서 보는 하늘은 더 맑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옥상이라 더 가까워서 그런 걸까?


“다들 열심히 산다 정말.”


저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 다들 바빠 보였다.

건물 안에 일하는 동료들도 각자의 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왜 나만... 나만 이렇게 바보 같을까.”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총량이라는 게 있다.

할 수 있는 일도, 일의 범위도, 체력도, 스트레스도.

그래서 누구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자도 에너지가 왕성하고, 어떤 사람은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며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난 왜 이렇게 약하지...’


자신의 탓이 아닌데 자신의 탓을 한다.

사회가 주변이 가족이 그렇게 만든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피하고 또 피한다.

맞는 일을 못 찾았을 뿐이라며.

대다수는 그걸 굳이 견디고 살아가지만.


“후...”


언젠가부터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족들도 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서도 주차만 계장은 그저 나약한 아들일 뿐이었다.


“어이 동기야!”

“어?”

“경치 구경하냐?”

“어... 여긴 어쩐 일이야?”


동갑에 동기인 민원여권과 ‘강한영웅’이었다.

갑작스런 동기의 등장에 혼자 울적해 있던 주차만 계장은 당황했다.


“뭐냐? 그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 같은 표정은?”

“아 아니야. 무슨.”


소극, 섬세가 트레이드마크인 자신과 다르게 이 친구는 이름대로 놀았다.

성격도 대범하고 할 말은 다하는.

동갑에 동기가 아니었으면 과연 친해졌을까 싶은 부류였다.


“나 오늘 민원 넣었다?”

“뭐? 무슨 민원?”

“그거 알지? 대통령이 나와서 광고한 거.”

“아.”


주차만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의 직속기관으로 청와대 콜센터라는 기구가 생겼고, 민원 업무 협조관련으로 이곳 구청에도 공문이 내려와 전달을 받은 것을.


‘그런데 민원? 청와대에?’


자신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민원을 접수하는 공무원 입장에서 굳이 전화를 걸고 불만을 얘기해서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주차만은 그렇게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아직은 많이 경직된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뭐라 그랬는데?”

“뭐라 그랬게?”


일을 좀 줄여 달라든가. 부서를 바꿔 달라든가, 근무 환경을 바꿔 달라든가... 민원을 넣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월급 좀 올려 달라고 했지.”

“뭐? 월급을 올려 달라 그랬다고?”

“응. 멋지지?”

“와...”


그래도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

거기다 전화해서 9급 공무원인데 월급을 올려 달라 그랬다고?


‘대단한 놈이다 정말.’


어찌 보면 별것 아니지만 저런 실행력과 배포가 부러웠다.


“그랬더니 뭐래? 올려준대?”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묻고 말았다.


“걔네가 미쳤냐? 그냥 궁금해서 해본거야.”

“아...”

“그렇게 해서 올라갈 월급이면 벌써 올랐겠지.”

“그렇... 겠지?”

“그래도 너 그거 알아야 돼.”


동기는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울거나 떼쓰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 아무것도 주지 않아.”

“...?”

“가만히 있으면 사람 호구로 안다니까? 아 저 새끼는 월급을 저것만 줘도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하는구나. 이 새끼는 이 정도는 올려줘야 관두지 않고 다니겠구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나 사실 이것도 적성에 안 맞아서.”

“응?”

“오늘 관둔다고 과장한테 말했어.”

“뭐?”


강한영웅은 주차만의 숨 쉴 구멍이었다.

얼굴을 매일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루즈하게 풀어질 수 있는 건 이 친구 덕분이었다.


“언제? 언제까지 근무하는데?”

“미친 과장 새끼가 다음 달까지 근무를 하라잖아.”

“다음달? 그럼 다음 달까지가 마지막인거야?”

“미쳤냐? 몇 년 일하지도 않은 직장을. 이번 달 보름 남았으니까 이번 달까지만 한다고 했어.”

“와... 부럽다.”


진심이었다.

관두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지만 그 생각과 동시에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부모님은 엄청나게 보수적인 분들이었다.

한번 취직한 직장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월급 올려달라는 얘기는 왜 한 거야? 굳이 거기까지 전화를 걸어서?”

“그냥? 궁금해서?”


자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일을 궁금하다는 이유로 저질러버렸다.


“남아있을 동료들을 위해서? 하하하.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라. 그래도 대통령이 이번에는 다르다는데 혹시 정말 올려줄지 모르잖냐.”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왠지 주차만은 자신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뭐?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게?”


아버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얘는 밥 잘 먹고 왜 이래? 오늘 구청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도 똑같았다.

두 분 다 마치 얼굴을 그려넣지 않은 종이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좀 힘들어서...”

“얘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이러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렇게 툭하면 힘들어서 관두고 그러면 어디 다닐만한 직장 있을 것 같아 이 녀석아.”


강한영웅은 정말 관두려는 모양이었는지 오랜만에 거하게 사겠다며 퇴근 후에 보자고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집에 바로 가서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역시...’


관둔다는 말을 했더니 익숙한 반응이었다.


“니가 아직 책임감이 없어서 그러는 거다. 결혼하고 처자식 생겨봐라. 어디 그렇게 관둔다는 말이 쉽게 나오나. 참, 여보. 선 자리 알아본다며? 그건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오늘 얘 오면 얘기하려고 했어요. 차만아. 엄마 동창 딸 중에 교대 나와서 지금 초등학교 교사 하고 있는 애 있거든. 요번 주말로 약속 잡았으니까 시간 비워놔.”


부모님 말을 쉽게 거스른 적이 없었다.

중매는 처음이지만 평소라면 거절하지 않고 약속 장소로 나갔을 것이다.


“아 엄마는!! 왜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선은 무슨 선이야!!”


주차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얘가 안하던 짓을 하고 갑자기 왜 이래? 너 뭐 잘못 먹었어?

“이 녀석이! 너 엄마, 아버지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바로 호통이 날아들었다.


“나 진짜 힘들다고! 힘들어서 돌아버릴 것 같다구요! 왜 내 말을 아무도 안 믿는 거야!!”

“너... 이 자식...”

“아 아들...”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를 질렀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놀람보다는 황당함과 분노였다.

차만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이 자식! 너 거기 가만히 있어봐!”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릴 때 이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어릴 때처럼 회초리라도 들기 위해 뭔가 손에 집을만한걸 찾으러 가는 것이리라.


“아... 진짜...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낳아만 놨으면 다야? 이대로 내가 죽어도 좋아요?”


가장 편안해야할 집에서 직장에서보다 더한 답답함을 느낀 주차만은 그 길로 바로 집을 나와 버렸다.



###



주량은 센 편이지만 술을 즐기지는 않았다.

그건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고 가끔 하는 회식에 빠질 수 없이 참여하면서 더했다.

즐기지 않는 수준에서 싫어하는 수준이 돼 버렸으니.


“크아...”


마지막 술이라고 생각을 했는데도 달지는 않다.

이 쓴 걸 왜 병나발을 부는 걸까.


“강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씨발... 취하지도 않네.”


기분이 밑바닥으로 처박히니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욕도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우울함을 느끼는 시기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실행으로 옮기는 단계는 딱 한 끗 차이다.


“흐흐흑...”


갑자기 서러워 눈물이 막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죽는 게 억울해서?

물론 억울하다.

한사람이라도 지금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를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이르렀을까?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일 것 같은 전화.

‘강한영웅’ 동기였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전화할 때는 받지도 않더니만.

아마 그때 이놈이 전화를 받았으면 지금쯤 함께 소주 한 잔을 하며 위로를 받고 있을 텐데.


“늦었어 이제. 영웅아, 내가 미안하다.”


지금 받으면 뛰어내리지 못할 것 같았다.

휘리릭! 풍덩!

남은 소주는 한강에 흘려보냈고 병은 던져버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굳이 다 마시고 싶지가 않았다.


“아... 나 왜 이 모양이냐!!”


한강의 밤은 차가웠다.

아마 강물 속은 더 찰 것이다.

그래도 이미 주차만은 한강다리 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0)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23.11.13 384 8 11쪽
30 (29) 견디기 힘들면 버티지 않아도 됩니다 23.11.13 419 9 13쪽
29 (28) 개인의 총량 23.11.12 413 10 12쪽
» (27) 주차민원과 공무원 23.11.12 432 10 12쪽
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9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2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5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1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8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8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3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2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7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80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3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7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1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1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3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5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1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0 1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