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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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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27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0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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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3쪽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DUMMY

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5시였다.

혜경은 이십사 시간 감자탕 집에서 일을 막 마치고 퇴근하는 참이었다.

정확하게는 해고를 당하고 오는 길이었지만.


“혜경씨 미안한데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네? 갑자기 왜요?”

“손님들이 많이 불편해해서.”

“아...”


혜경은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걷는 게 조금 불편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치지 않은 사람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수준이었다.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대라서 일단은 채용했는데...”

“...”

“손님들도 그렇지만 주방 이모들도 불편해하고...”


혜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시간대에 근무를 하는 지배인도 자신을 불편하게 여길지 모른다고.


‘열심히 했는데...’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써주지 않았다.

공장 같은 곳에 취직을 하려면 못할 건 없었지만 아픈 엄마를 간호하려면 먼 거리는 출퇴근이 불가능했다.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면 좋았고, 버스로 이십분 거리까지가 엄마 케어가 가능한 거리였다.


“미안해. 이건 그동안 일한 이번 달치 월급. 한 달 안차서 날짜로 계산해서 넣었어. 우리 같은 가게는 주휴수당 뭐 그런 건 안 되는 거 알지?”

“네...”


사대보험은 당연히 안 되는 걸 알고 일을 했다.

회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감자탕집이니까.

어릴 때 사고로 다쳐서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해본적도 없기에 근로기준법에 당연히 명시되는 노동자의 권리 같은 건 알지도 못했다.


“오래 일해주기는 했는데...”


지배인이 말끝을 흐리는데 무슨 말인가 했다.


“그래도 아직 일 년도 안됐으니까 퇴직금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 네.”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불편한 몸으로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잘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하며 일했다.


‘그래도 퇴직금은 받을 줄 알았는데.’


사실 건강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래는 못할 거라 내심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퇴직금도 못 받을 줄은...


“그래도 월급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다.”


일하면서 깨트린 그릇도 많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걸음이 온전치 못했고, 무거운 감자탕 그릇을 들고 다니다보니 본의 아니게 사고를 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 월급에서는 따로 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겼는데...


“빨리 가야지. 엄마 배고플 텐데.”


혜경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순진했다.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었지만 자신이 당하는 불합리에도 무지했다.


“엄마 나 왔어.”

“왔니?”

“어? 언니도 와 있었네?”


청각 장애가 있는 언니는 자신처럼 식당일도 불가능했기에 집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공장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갑자기?”


혜경이 능숙한 수화로 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보고 싶어서. 너 좋아하는 고기도 이만큼이나 사왔다.


언니가 일하는 곳이 육가공공장이라고 했던가?


-직원가로 싸게 많이 사왔어. 너 오늘 이거 다 먹어.

“고마워 언니. 오늘 우리 가족 포식하겠네.”


이렇게 셋이 다 모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좋은날 일하던 직장에서 잘리고 왔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얼른 차려줄게. 씻고 나와.”

“네.”


혜경은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갔다.

엄마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어두운 것 같았지만 고생하는 딸들에 대한 미안함이라고만 생각했다.



###



국민연합당 대표. 권혁수.

지난번 소속당 중진의원 아들 문제로 찾아온 걸 내가 돌려보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엄청난 일을 벌이셨던데요.”

“엄청나요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 별일이 아닙니다.”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닙니까?”

“있는 것... 아, 죄송합니다. 기득권층이 보통 그렇게 말하죠.”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검사와 변호사 시절에 가끔 보던 사이였다.

사건이 직접 얽힌 건 아니어서 일 때문에 만나는 건 정계 입문 후였다.

잘난 놈이고 나름의 이상향도 있기는 했지만 나와는 애초에 가는 길이 다른 사람.


“이유? 밥그릇 빼앗기기 싫어서는 아닙니까?”

“밥그릇? 내놓아야 한다면 내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예요.”


스스로가 깨어있는 척하는 기득권들.

이런 놈들이 더 무섭다.


“밥그릇이 수억 개씩 되는 사람이 그중에 몇 개 내놓는다고 굶어 죽습니까? 버릴 그릇 있으면 좀 버리고 그렇게 하십시다.”


대학 때부터 좋은 일들도 많이 한 사람인걸로 알고 있다.

철저하게 기득권 쪽인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라는 소문도 많았었다.


“좋습니다.”


놈은 어느 정도는 포기한 심정으로 표정이 변했다.


“양보할건 하시죠.”

“뭘요?”

“하나씩 하자고요. 어차피 대통령님 오년 임기 내에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과연 불가능할까?

대한민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일들이 아니다.

그저 사람답게 먹고 입고 자고, 안전에 조금 더 신경 쓰고, 모두가 조금만 더 공평하자고 하는 일이다.


“야당에서 협조를 적극적으로 해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우리당 하나가 협조하면 가능하다고? 국민들은?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오천만 국민을 이기지는 못해요.”

“반대를 하기 위한 반대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내가 줄곧 하는 말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없어도 이 나라가 십년 이상은 더 빨리 자리를 잡고 성장을 했을 것이다.


“미국 갔다 온 것에 대한 환영은 이만하면 된 거죠? 어차피 별 성과도 없지 않았습니까?”


권혁수 대표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온 건 아니었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재야의 정치인, 그중에서도 미국에 칩거 중인 예전 정권 대선후보였던 사람 중 한명을 만나고 왔을 뿐.


“너무 바쁜티를 많이 내시네요.”

“바쁩니다. 아주 많이.”

“뭐가 그리 바쁜데요?”

“사람이 죽었거든요. 그것도 일가족이.”



###



권혁수 대표는 내가 아는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결이 나와는 반대여도 너무 정반대였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재직하는 내내 적이 될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쪽에서 뭘 하든 사뿐히 즈려 밟아주겠지만.


“경호가 확실히 줄었네요.”

“비서실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두 명 외에는 모두 원거리 배치를 했습니다.”


옆에 앉은 강재규 의전 비서관은 여전히 많이 경직돼 있었다.


“나하고 일하는 게 많이 부담스럽죠?”

“... 적응하는 중입니다. 빨리 적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생 많은 거 압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구요. 고생하는 만큼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답.

물론 사적으로 고생했다며 용돈을 주거나 할 수는 없었다.

이미 현식을 통해서 공무원의 복지 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지시해 놓은 상태였다.


‘이것도 말들이 많겠지?’


대통령이 하는 일들은 국민들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일들은 공무원들이 한다.

앞으로 과중한 업무 부담이 예상이 되는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납득할만한 수준의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 디테일은 구상하고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여깁니까?”

“네, 거의 다 왔습니다.”


도착한곳은 송판구의 한 빌라촌이었다.


“이쪽입니다. 지하 1호예요.”


계단을 다섯 개쯤 내려가는 방이었다.


“이런데도 사람이 사는군요.”


강재규 의전비서관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비서관님은 이런 데서는 안 살아보셨나 봐요.”

“네? 아, 그게 아니...”

“괜찮습니다. 모를 수도 있죠.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저도 이런 집에서는 안 살아봤습니다.”


김현식 비서실장이 예전부터 지원해온 사람, 그리고 현재 보좌진으로 채용된 사람들이 죄다 극빈층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것까지 다 보고를 받지는 않았으니 나도 알 수는 없다.

물론 탓할 생각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왜 그러세요. 죄송할 일은 아니예요. 일단 들어가 보죠.”


이미 쳐져 있는 폴리스라인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한발 들어갔다.


“후...”


맡아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이 냄새.

사람이 죽어서 방치된 곳에서 나는 냄새다.

난 지난밤 자살현장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중 한사람의 의식 속에.

세 모녀가 생을 마감한 곳은 바로 이 허름한 빌라의 반 지하였다.


‘여덟 평쯤 되겠네.’


아주 작은방이 하나, 그보다 조금 더 큰 방이 하나, 그리고 화장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위치였다.


‘이런 곳에서...’


나 역시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힘든 사람이 정말 많은 모양이다.

밑바닥 삶을 꽤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나도 부족하다.

그래도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고, 아르바이트로 어렵지 않게 생계는 유지를 했었으니까.

이런 음침한 반지하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다.


“괜찮으십니까 대통령님?”


어쩔 수 없는 냄새로 인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는걸 보고 걱정했는지 비서관이 물어온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네요. 이런 곳에서 살다가는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아요.”

“... 네...”

“주택국 국장님 만나서 제대로 된 대책을 한번 세워야 되겠어요.”

“제가 영국에서 살아본 적도 있는데요.”


갑자기 왠 영국?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그곳에서는 반지하, 설령 지하라도 해도 볕도 잘 들어오고 살기 좋은 집도 많았습니다.”

“아, 그래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지하에 있는 방이라도 해도 이렇게 열악할 이유는 없다는 거네요?”

“그렇죠.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요. 이집은 일단 오래되기도 했고, 애초에 채광이나 환기 같은 건 딱히 신경을 쓴 걸로 보이지도 않고...”


우리나라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주택 양식이다.

손봐야 할 게 정말 한두 개가 아니다.


“이곳에 사시던 분은 지금 영안실로 옮겨진 겁니까?”

“아직 시체안치실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아니 왜요?”

“아직 사건 종결이 안 났다고 하네요. 담당 경찰서가 일이 많은가 봐요.”


일이 많기는 하겠지.

이런 자살사건만 하루에 수십 건일 것이다.


“휴... 일단 나가죠.”

“다 보셨습니까?”


이렇게 빨리 나가냐는 표정이다.


“어떻게 살다 가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내 의식 속 기억은 엄마가 약을 탄 밥을 먹다가 두 딸이 눈을 까뒤집으며 숨을 거두던 모습이었다.

아주 잠깐이었고, 연결이 끊길 때쯤 엄마의 손에도 약이 들려있었다.


“너무 늦었어요. 불행하게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최대한 막을 것이다.



###



파파파팟!

반지하방에서 나와 빌라 입구로 올라오자마자 기다렸던 듯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아이고... 기자들이 많이 와 있네요.”

“네? 아, 그건 대통령님께서 지시하신 거라고...”


본인이 뭘 잘못했나 생각하는 의전 비서관.

물론 내가 지시한건 맞다.


“놀랄 거 없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서 놀란 거니까요.”


모든 방송국과 신문사,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까지 나와 있는 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어차피 홍보 차원에서 기자들을 불렀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지금보다는 조용하게 움직여야 되겠어요.”

“...?”

“혹시 모를 위험이 있으니까 경호는 유지하되 의전은 최소한을 생략하고, 티가 나면 안 되니까 차도 관용차가 아닌 걸로 바꿉시다.”

“...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돌아다닌 건 몇 번으로 족하다.

시간 나는 대로 암행시찰을 할 계획인데 너무 호들갑 떠는 것처럼 보이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지금 국정현안이 한두 개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사소한 일까지 둘러보시는 이유가 뭡니까?”


첫 질문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지만.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네?”

“국민들이 잘 사는 지 돌아보는 것도 국정의 한 부분입니다. 꼭 외국 정상을 만나고 국회의원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것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더 중요한 일...”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나이든 엄마와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두 딸이 한날한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

“뭐가 이것보다 중요합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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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23.11.13 383 8 11쪽
30 (29) 견디기 힘들면 버티지 않아도 됩니다 23.11.13 41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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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 주차민원과 공무원 23.11.12 431 10 12쪽
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8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1 11 12쪽
25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4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0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7 10 13쪽
»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7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2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1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6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79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3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7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0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0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2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4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0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0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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