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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9,242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11 18:30
조회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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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2쪽

(24) 공무원 비슷한 거

DUMMY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대통령님!”

“네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침 일찍 조리실에 들렀다.

서울지역 건축업계 종사자를 초대한 조찬 모임이 예정돼 있어서였다.


“고기 냄새가 죽이는데요?”

“일일이 굽는 건 좀 어려워서 불고기와 갈비찜 위주로 준비를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오실 분들이 몸 쓰는 일하시는 분들이라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노가다는 무조건 밥심이다.

그것도 고기가 가득한 밥상은 늘 함께 해야 한다.

대학 때 어쩔 수없이 노가다를 한번 나갔다가 몸소 체득한 바였다.


“양은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셔야 할 텐데요.”

“냄새 보니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요.”


현장 일꾼들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일당을 받는 노가다꾼이나 일인사업자 혹은 영세업체들까지 연락이 닿는 사람들은 최대한 초대를 했다.

공간 문제 때문에 백 명으로 한정한 게 아쉬웠다.


“대통령님 시간 됐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기분 좋은 아침이 될 것이다.

늘 큰 회사에서 제대로 된 돈도 받지 못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기술자다.

정부와의 직접계약을 통해서 제대로 된 일거리를 줄 것이고, 그들이 정성들여 짓는 집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어?”


이미 자리는 꽉 차 있었다.

그런데 표정들이 심상치가 않다.

아직 무슨 말이 나온 건 아니지만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조리팀장님이 아침부터 정성껏 준비한 밥상위의 음식들은 식어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시원하게 숟가락질을 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고 있다.


“아... 제가 들으려고 했던 말들은 이런 게 아닌데요...”


어이가 없다. 그리고 난감하다.


‘왜 이러는 거지? 일을 주겠다는데 거절을 한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 자금이 여유가 없으셔서 그러신 겁니까? 아니면 일꾼들 구하기가 어려우신건가요?”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물론 제가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납득이 되지 않네요. 정부와 직접 계약을 하면 사장님들도 좋은 거 아닌가요?”


직계약의 장점.

그건 바로 중간에 새는 비용이 없다는 거다.

하청에 재하청을 연속해서 주면서 중간에서 가로채는 비용이 고스란히 일하는 당사자에게로 간다.

일을 주는 정부입장에서도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고, 일을 하는 입장에서도 전보다는 나은 조건일 수밖에 없다.


‘속 시원하게들 말 좀 해보세요. 알아야 도울 게 있으면 도와드릴 거 아닙니까?’


그런 마음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시선을 줬다.

대체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물론 예전처럼 단지 나이가 많고 배운 게 없어서 보수당을 찍은 사람들은 아니다.

실제로 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득표율로 당선이 됐으니까.

상위 일 프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보통 사람들은 나를 지지하고 표를 줬을 것이다.


“저희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 중 한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그래서 누구보다 전문가들이시죠. 현장 역시 여러분들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잘 알고 있구요. 믿으시지 않겠지만 저 대학 때 건설현장에서 삽질도 제법 해봤습니다. 건설바닥 돌아가는 사정도 제법 알고 있구요.”

“그럼 잘 아실 텐데요.”

“구체적으로요.”


조금 전 속으로 생각만하고 시선만 줬던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들에게는 마냥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시장이나 도지사 정도만 돼도 한번 비벼볼만 하겠지만 대통령에게는 감히 엄두가 안날 것이다.


“뭐가 됐든 말씀을 해보세요. 여기서 나눈 모든 대화는 여러분과 저만 아는 내용입니다. 절대 바깥으로 새어나가거나 여러분들에게 불이익 가는 일 없을 거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배운 게 이것뿐이다’는 말 외에는 더 이상 나오는 게 없었다.

그저 눈치만 보며 이 불편한 자리가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설마?’


이렇게 되면 짐작 가는 건 하나뿐이었다.


“혹시 협박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아무도 말이 없다.

각자의 눈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혹시 이번 공사건으로 계약하는 사람은 다시는 그 바닥에서 일거리 못 받을 줄 알라는 협박이라도 받으셨나보군요.”


역시 묵묵부답.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대체 어떤 놈이 겁도 없이?’



###



“태양 건설이라구요?”


비서실장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건가?’


일개 건설회사가 정부가 개입해서 하는 일에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렸다는 사실에 태양건설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있는 것들이 더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물었다.


“거기 외동아들하고 혼외자하고 저번에 다 감옥 들어가지 않았나요?”

“그건 맞습니다.”


부사장 권영태는 당연히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옮겨졌다.

항소를 준비 중이라고 하지만 형이 낮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받았다.

혼외자인 권기태 역시 마찬가지.

소년범으로 수감 중이다.

물론 법으로 처벌받기 전에 괴롭힌 만큼 돌려받기도 했다.


“그럼 회장이 직접?”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공중분해 시켜버리겠다고 비서실장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왜요?”

“자꾸 이것저것 지시를 하셔서요.”

“아...”


회사는 공중분해를 시키더라도 근로자의 생존권은 또 다른 문제였기에 회사를 사들일 생각을 한다고 얘기 들었는데.


‘하긴 그게 하루, 이틀 안에 끝나는 일은 아니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나를 믿고 지지했지만 그들도 겁이 날것이다.

투표는 익명으로 하지만 생업까지 익명으로 처리할 수는 없겠지만.

대기업을 말을 안 들었다가는 고사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인드부터 바꿔야 하는데...’


태양건설을 혼을 내준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다른 대기업 건설회사도 한두 개가 아니니까.

늘 을의 입장이었던 사람은 항상 을로 살아간다.

인생의 대부분을.


‘좋은 생각이...’


그러다가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좀 바꿉시다.”

“네 말씀하시죠.”

“이번 반지하 주택 사업 관련해서 건설업 종사자들 전부를 공무원화 하는 방안을 마련해보죠.”

“네??”

“뭘 그리 놀라십니까? 내가 뭐 나라를 뜯어고치기라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게 그거랑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일단은 그렇게 추진하세요.”

“공무원이 너무 많으면 그 많은 사람들 월급...”

“이거 왜 이러세요? 비서실장님 지갑 털면 되잖아요.”


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비서실장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건 잠시 미루시고 태양건설 박살내는 것부터 서두르시죠.”

“바로 진행할까요?”

“네. 바로 해야 되겠어요.”



###



서울 외곽.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곽철근은 아내의 물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차려준 아침 밥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뿐이었다.


“답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요즘 같은 세상에는 공무원이 좋아. 따박따박 월급 받는 것만큼 안정적인 게 없다구.”


어젯밤부터 이어지는 아내의 잔소리.


“내 나이가 벌써 오십이 넘었다. 이 나이에 무슨 월급쟁이야. 할 줄 아는 게 공구리 치는 거랑 시멘트 붓는 거 뿐인 노가다라고.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되는 법이야.”

“하던 일은 그대로 하게 해준다면서?”


곽철근은 어제 대통령의 초대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온 후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기술 공무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야. 노가다를 무슨 공무원을 시킨다고.’


의욕만 넘치는 철부지 대통령이었다.

어제 조찬에서는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핵심은 바로 짚었다.

그리고 그쯤이면 알아들은 줄 알았다.


“사업하던 놈은 어디 가서 월급 받는 생활 안 맞아.”


곽철근은 아내에게 자신의 생각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왜? 한 달에 이백만 원, 이백오십만원 받으려니 성에 안차?”

“그래. 그거 가지고 우리 생활비도 안 나와.”

“나도 일하면 되지. 여보 우리 과한 욕심 좀 버리고 조금 아끼면서 살자.”

“아줌마가 다 늙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살림이나 잘해! 돈이야 내가 어디서든 벌어오면 그만이니까!”


곽철근은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아내 역시 작정이라도 한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벌어올 건데! 어디서 벌어올 거냐고! 지금 몇 달째 생활비 한 푼 갖다 준적 있어? 전세금 대출 이자도 내기 어려운 판이라 내가 친정에 손 벌리고, 애들은 학원 다니던 거 다 끊고 당신 몰래 아르바이트 하는 건 아냐고!”


아내가 잔소리는 일상으로 하지만 이렇게 언성을 높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애 때는 남자친구 기 세워준다는 이유로, 결혼을 한 후에는 힘들게 돈 벌어오는 가장이라며 큰소리 한번 낸 적 없었다.

한번 터진 아내의 외침은 계속됐다.


“얼마 전에 엄마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이제 손 벌릴 친정도 없네요. 돈 빌린 거 갚기도 어려운데 자꾸 집에서 전화 오면 전화 받는 것도 무서울 지경이라고! 딸내미는 둘 다 아빠 걱정한다고 알바하는거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잠도 줄여가며 공부하고 있고! 아빠라는 인간은 그런 것도 모르고 애들 보면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돈도 못 벌어오는 현장 나가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아내가 생활비 없어서 친정에 손을 벌리고, 장모님이 다쳐서 입원을 했다는 건 또 무슨 소리며, 아직 애기들 같은 딸내미들이 아르바이트를 나가다니?


“당신 돈 한 푼 못 가지고 들어온 게 일 년 가까이 돼가는 건 알아?”


벌써 그렇게 됐나?

한창 건설 경기 호황일 때는 월급쟁이들은 엄두도 못내는 목돈을 가져다주는 게 대수롭지 않았는데.

그래서 몸은 고되더라도 가장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요새 일거리가 많이 없어. 알잖아 불경기인...”

“경기 안 좋은 거 나도 알지. 안다고.”

“조금만 더 참으면 일거...”

“장담 못하잖아.”


사실이었다.


“당신이 혼자 고생해서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온 거 알아. 전세지만 그래도 당신이 먼지 마시며 일해서 벌어온 덕분에 이런 크고 좋은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도 감사하고 생각하고.”

“...”

“이제 나도 같이 할게. 조금만 덜 벌어도 월급쟁이 합시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공무원 비슷한 거라며? 그럼 잘릴 걱정도 없을 거고. 아끼면서 살면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사는 일은 없을 거잖아. 안 그래요?”

“휴...”


생각이 많아질 때였다.

집안에 단 둘만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큰딸이 방문을 조용히 열고 나와 아빠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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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23.11.13 384 8 11쪽
30 (29) 견디기 힘들면 버티지 않아도 됩니다 23.11.13 419 9 13쪽
29 (28) 개인의 총량 23.11.12 413 10 12쪽
28 (27) 주차민원과 공무원 23.11.12 431 10 12쪽
27 (26) 생방송 토론 23.11.12 458 10 15쪽
26 (25) 대통령의 면접 23.11.11 461 11 12쪽
» (24) 공무원 비슷한 거 23.11.11 455 9 12쪽
24 (23) 듣도 보도 못한 정책 +1 23.11.11 490 11 12쪽
23 (22) 일 똑바로 하세요 +1 23.11.10 498 10 13쪽
22 (21) 국정이 뭐 별거 있습니까 23.11.09 524 13 13쪽
21 (20) 아직 살만한 세상 +1 23.11.08 548 11 12쪽
20 (19) 정부는 약자의 편에 23.11.07 527 11 13쪽
19 (18) 검은머리 외국인 +1 23.11.06 533 12 12쪽
18 (17) 개인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23.11.05 558 11 12쪽
17 (16) 나 한국 살암입니다 23.11.04 552 12 11쪽
16 (15) 국번없이 012 +1 23.11.03 568 12 11쪽
15 (14) 암행경찰 +1 23.11.02 597 11 12쪽
14 (13)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23.11.01 615 11 12쪽
13 (12) 대통령 직속기구 +1 23.10.31 691 11 12쪽
12 (11) 청와대 콜센터 23.10.30 666 13 11쪽
11 (10) 국가가 책임지고 +1 23.10.29 680 11 12쪽
10 (9) 인생을 두 번째 사는 남자 +1 23.10.28 713 15 12쪽
9 (8) 나쁜 놈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23.10.27 727 12 12쪽
8 (7) 촉법이고 나발이고 +1 23.10.26 721 10 12쪽
7 (6) 학폭 관여 +1 23.10.25 841 10 13쪽
6 (5) 까라면 까세요 23.10.24 803 10 12쪽
5 (4) 대통령에 대한 시위 +1 23.10.23 875 9 12쪽
4 (3) 한줄기 빛 +1 23.10.22 911 10 12쪽
3 (2) 전투의 시작 +1 23.10.21 1,044 12 13쪽
2 (1) 낭만 대통령 +2 23.10.21 1,180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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