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e** 님의 서재입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진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ceco
작품등록일 :
2017.12.09 20:07
최근연재일 :
2018.02.24 20:0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561
추천수 :
8
글자수 :
161,902

작성
18.02.20 20:00
조회
84
추천
0
글자
11쪽

가을 -개강-

DUMMY

주희와 함께 나들이를 한 후부터 우리 둘 사이의 대화에 주희를 언급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문자를 보내도 그녀의 안부만 묻는 게 아니라 주희의 안부도 묻는 게 습관처럼 돼버렸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아기용품점이 있으면 걸음을 멈추었고 마트에 가도 어떤 분유가 좋은지 한번 살펴보게 된다. 맨날 주희 주희하니 한번은 그녀가 주희밖에 모르냐고 투덜대면서 자기가 좋아서 자기랑 사귀는지 주희가 좋아서 자기랑 사귀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난 그저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딸바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해뒀다. 그리고 그녀가 좋으니 주희가 내 딸같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뜨겁던 햇빛도 기세가 꺾이고 꿈같던 방학도 끝나가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되는 생각에 벌써부터 뭔가 짜증났다. 물론 고등학교 때처럼 학교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지만 카페 일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처음엔 일하는 시간이 지루했고 돈 버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이곳 식구가 되어 오히려 여기가 편했다. 게다가 그토록 기억 속에서 찾아 헤맸던 그녀와 함께이니 더욱 떠나기 아쉬웠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함께 방학은 끝났고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알바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3달 동안 일해서 얼마 벌지는 못 했지만 그 이상 가치 있는 방학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카페 식구들과 많은 정이 들었기에 인연도 이어나갔다.


동갑내기 윤미는 학교가 가까워 다니면서 계속 알바를 했고 가끔 대타를 요청하면 들어주기로 했다.

1년 동안 일한 지권이 형도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부를 한다며 내가 나가고 얼마 안 있어서 나갔다. 그 때문에 윤미가 자기도 관두겠다는 거 말리느라 혼났다고 그녀가 말했다.

여기에 관해서 직접 들은 말은 없지만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둘이 같이 일할 때는 내가 없을 때라 몰랐지만 저번에 한번 알바생들끼리만 모여서 술을 마신 날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됐다. 처음에 나, 윤미, 지권이형, 경식이, 그녀 이렇게 5명이서 술을 마셨다. 치킨집에가서 간단하게 치맥을 하고 경식이는 일이 있다고 빠진 후 4명이서 2차를 갔다.

가볍게 즐기고 싶었는데 지권이형이 달리는 바람에 생각보다 많이 마셨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 알딸딸하게 취했는데 그때 윤미의 약간 취한 모습을 보고 얼추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좀 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는 탓인지 지권이형 옆에서 술을 마시면서 은근 슬쩍 하는 스킨십이며 바라보는 눈빛이며 한 여인이 사랑에 빠지면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눈에 보였다. 나중에 그녀한테 물어보니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너무 티가 났다. 하지만 지권이 형은 별 다른 얘기가 없었다. 술자리에서 그녀가 약간 떠보는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그냥 대충 넘어갔다. 아마 지권이형이라면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지 않았을까?

지권이 형은 생긴 대로 약간 바람기가 있어 카페에 많은 여자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누군지 물어보면 친구 혹은 아는 동생같이 애매한 단어로 설명을 했다. 그런 형한테는 윤미도 그런 아는 동생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여자 마음도 복잡하지만 남자의 마음도 참으로 복잡하다. 같은 남자라도 잘 모르겠다. 뭐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저번처럼 카페식구들이 다 모여 회식을 했다. 그리고 이날 카페식구들에게 새롬 누나와 사귀는 사실을 말했는데 다들 그리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뭐야 다 아는 사실을?’ 이라는 반응이었다. 다들 직접 말을 안 했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장님은 그걸 알고 자주 마감을 우리한테 맡기고 일찍 갔다고 한다. 그냥 귀찮아서 갔으면서 핑계대는 거 같긴 하지만.

그 와중에 윤미는 어떻게 자기한테 말을 안 할 수가 있냐며 새롬 누나한테 배신감 느낀다고 말했다가 도리어 눈치가 없다고 사장님한테 욕만 먹었다. 지권이형도 저번에 우리끼리 술마시는 날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가만있었다고 한다.

이날 3차까지 갔는데 술을 왕창 취한 윤미가 지권이형한테 고백한 것은 나중에 들었다. 윤미가 그 후 필름이 끊겼기에 지권이 형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는 뻔하다. 지권이형이 받아들이거나 딱 부러지게 거절할리는 없고 분명 애매모호하게 말하면서 빠져나갔겠지.


나와 그녀 사이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리는 이 날 처음 관계를 가졌다. 회식이 끝나고 새빨개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서로 끌어 오르는 본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행여나 저번처럼 그녀가 질색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은근슬쩍 그녀가 눈치를 줬다. 아마 그동안 우리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고 그녀도 나한테 어느 정도 확신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피임을 철저히 했다. 우린 그전같이 감정만 앞선 어리숙한 것이 아닌 서로의 본능에 맡긴 채 쾌락을 넘어 몸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 그런 성인의 관계였다.

서로에게 더욱 성숙한 관계가 되려고 노력했다. 한때 만났던 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이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려고 했다. 법적으로 어른이라고 여겨지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못한 우리는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보면 철이 없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자신의 책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성숙해진다.


서로의 호칭도 정리했다. 알바 초창기 때부터 누나라고 불렀는데 사귀는 사이에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냐고 물었다. 그동안은 혹시나 가게에서 실수할까봐 호칭을 변경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실 그동안 만났던 애들도 나를 자기나 여보라는 호칭으로 불렀지만 나는 왠지 낯 간지러워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누나라는 호칭대신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하지만 여보라는 호칭은 왠지 그녀가 꺼려했다.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무슨 여보냐면서. 생각해보면 그녀한테는 그렇게 부르는 게 부담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개강을 하고 오랜만에 학교를 나가려니 어색했다. 이제 일은 안 해도 되지만 왠지 일을 가야될 것 같다.

아직 여름의 불씨가 남아있어 학교 가는 길은 고역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동기들이 반기는데 고등학교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개학을 하고 학교에 가면 꽉 차 있는 교실 자체가 반겼지만 지금은 몇몇 동기들만 나를 반긴다. 동기들과 강의시간을 어느 정도 맞춰서 들었기에 친한 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지만 많은 사람드이 그냥 타인들이었다. 방학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애들이 몇 있었다. 물론 대부분 남자애들이다.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 중 한 명은 직접 배웅도 해주기도 했지만 원래 항상 같이 수업을 듣는게 아니기 때문에 빈자리가 크지 않았다. 그보다도 문제는 나 역시 차례를 기다리는 도살장의 가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신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방학 때 뭐했냐는 식상한 질문은 환경이 변해도 오래된 전통처럼 이어져왔다. 그전 같으면 ‘그냥 집에 있었지’라는 말로 다 표현 했을테지만 이번 방학은 한 편의 영화를 핵심위주로 줄거리를 말해야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것도 230분되는 영화를 말이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청자의 입장을 고려해 5줄 내외로 서술하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래서 그냥 알바, 여자친구라는 두 단어로 표현했다. 그 두 단어로도 관중을 사로잡는 효과가 뛰어났다. 20대의 주된 관심사인 돈과 여자친구를 한 번에 얻었다는 것은 이번 여름이 수영을 다닌 여름보다 훨씬 성공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얻게 되는 고전적인 질문은 ‘얼마?’, ‘이뻐?’ 였다. 거기서 더 나가면 ‘한 턱 쏴’, ‘사진 보여줘’ 이다. 그 덕에 무전여행 갔다 온 동기에 대한 궁금증은 ‘고생했네’라는 말로 끝나게 됐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 몇 시, 어디서, 술 한 잔이다.


강의가 끝나고 카페로 갔다. 저녁엔 동기들과 한 잔 해야 하기에 지금 아니면 갈 시간이 없다. 카페에 들어가니 윤미와 처음 보는 하얀 피부에 살집이 있어 좀 둔해 보이는 친구가 함께 카운터에 있었다. 윤미는 웃으며 반겼지만 하얀 친구는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들은 얘기로는 이 친구가 되게 답답하다고 했는데 첫인상은 되게 착해 보이는 친구였다.


“새롬 누나는?”


“잠깐 사장님 심부름 갔어.”


“뭔 알바생들 놔두고 매니져를 심부름시켜?”


“뭐야? 지 여친 부려먹었다고 성내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


“아오 나한테도 반만 신경써줘 봐라.”


“아니 왜 내가 널 신경 써. 널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닥쳐라.”


“넵.”


잡담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들어오고 뒤이어 사장님이 양손가득 짐을 들고 들어왔다. 얼른 달려가서 사장님 짐을 받으니 ‘우리 오정이 군 생활 잘하겠다. 허허’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오자마자 사장님한테 방금 했던 말을 윤미가 일러 바쳐 팔불출이라고 한소리 듣기는 했지만.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하는 동안 오늘 학교 갔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시간 때우고 있는데 새로 온 친구는 혼자 멀뚱멀뚱 있다가 주문받으러 가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니 처음 여기 왔을 때가 생각났다. 나도 이런 대화에 끼지 못 하고 혼자 멀뚱히 있곤 했는데 어느새 다들 친해졌다고 생각하니 그 구인 광고 하나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잡담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벌써 30분이 지나있었다. 어느새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계속 있으면 실례라는 생각에 약속시간이 1시간 넘게 남았지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카페를 나오긴 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같이 놀기로 한 친구네 자취방에 가려고 핸드폰을 꺼내드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러 세웠다.


“저기요?”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사내가 있었다. 눈매가 약간 올라가 사나워 보이는 게 시비 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경계를 했다.


“저기 새롬이 남자친구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첫사랑은 이루어진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가을 -장벽- 18.02.24 66 0 11쪽
34 가을 -2년전 이야기- 18.02.23 78 0 10쪽
33 가을 -축제(2)- 18.02.22 115 0 12쪽
32 가을 -축제- 18.02.21 73 0 11쪽
» 가을 -개강- 18.02.20 85 0 11쪽
30 또 다시 여름 -나들이- 18.02.19 88 0 12쪽
29 또 다시 여름 -화해- 18.02.18 50 0 9쪽
28 외전 -형민이야기(2)- 18.02.17 74 0 11쪽
27 외전 -형민이야기- 18.02.16 60 0 10쪽
26 또 다시 여름 -불청객- 18.02.15 84 0 15쪽
25 또 다시 여름 -비밀연애- 18.02.14 97 0 9쪽
24 또 다시 여름 -결국엔- 18.02.13 76 0 9쪽
23 또 다시 여름 -또 다른 고백- 18.02.12 54 0 10쪽
22 또 다시 여름-회식- 18.02.11 78 0 11쪽
21 외전 -석재이야기- 18.02.10 84 0 13쪽
20 또 다시 여름-바다(2)- 18.02.09 82 0 10쪽
19 또 다시 여름 -바다- 18.02.08 83 0 10쪽
18 또 다시 여름 -고백- 18.02.07 83 0 13쪽
17 또 다시 여름 -보충학습- 17.12.26 102 0 10쪽
16 또 다시 여름 -니전화번호- 17.12.25 78 0 10쪽
15 또 다시 여름 -쉬는날- +1 17.12.24 105 0 10쪽
14 또 다시 여름 -질투- 17.12.23 109 0 8쪽
13 또 다시 여름 -아르바이트(2)- 17.12.22 70 0 11쪽
12 또 다시 여름 -아르바이트- 17.12.21 99 0 17쪽
11 여름방학 외전 -사랑이야기(3)- 17.12.20 89 0 11쪽
10 여름방학 외전 -사랑이야기(2)- 17.12.19 84 0 9쪽
9 여름방학 외전 -사랑이야기(1)- 17.12.18 123 0 10쪽
8 여름방학 -첫데이트- 17.12.16 128 0 5쪽
7 여름방학 -재도전- 17.12.15 150 1 7쪽
6 여름방학 -머저리- 17.12.14 191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