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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 님의 서재입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진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ceco
작품등록일 :
2017.12.09 20:07
최근연재일 :
2018.02.24 20:0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557
추천수 :
8
글자수 :
161,902

작성
18.02.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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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외전 -형민이야기(2)-

DUMMY

그렇게 몇 달이 지났던가.

어느새 짬이 차서 위에보다 아래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상병을 달고 병장을 달았다. 2차 정기 휴가를 나가고 포상휴가를 나가서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자신이 감당 못 할 일들을 한쪽으로 밀어 넣고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쑤셔 넣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꾹 눌러왔던 그것들은 결국 넘쳐버렸다.


3차 정기휴가를 앞두고 우연히 티비에서 본 미혼모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계기가 되었다. 혼자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미혼모를 보고 어쩌면 그녀도 저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애 아버지를 원망하는 인터뷰를 보면서 죄책감이 밀려왔다. 같이 보던 후임의 ‘저런 새끼들은 거시기를 잘라버려야 돼.’ 라는 말이 왠지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아 괜히 후임을 갈궜다.


애써 미루어뒀던 그 일들이 하루하루 압박해왔다. 그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와 잠도 잘 못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부대생활에 지장이 생겼고 이런 형민을 보고 그의 소대장이 무슨 일이 있냐며 면담을 자처

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다고 둘러대다가 결국 소대장에게 털어놓게 된다.

소대장은 말이 약간 거칠고 장난을 많이 치긴 하지만 병사들에게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사람이었고 이등병 때부터 자신을 많이 챙겨줬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대장에게 처음 말을 꺼냈을 때 일단 거친 욕부터 먹고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욕이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욕먹어도 싸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심지어 그녀조차 면전에 대고 욕한 적이 없었기에 죄 값을 받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그녀에게 가서 싹싹 빌고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대장에게 된통 혼나고 나니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날 저녁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에서 여보세요라는 말이 3번 나오고서야 입을 떼고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롬은 그럴 마음이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몇 번 전화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말년 휴가를 나가자마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며칠 동안 수소문하여 그녀가 일한다던 카페를 찾아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아직 오픈 안 했다는 말을 하다 표정이 굳어진다.


“여긴 왜 왔어?”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난 할 말없는데?”


“저기 그러지 말고 잠깐 시간 좀 내줘.”


“나 이거 준비해야 돼. 그러니까 나가줄래?”


“잠깐이면 돼.”


“야 나가라고. 니가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나타 나냐?”


“미안해.”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고 그대로 나가서 다신 내 앞에 나타나는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새롬아...”


“꺼지라는 소리 안 들려?”


“새롬아 그러지 말고....”


“뭘 그러지마 이 새끼야. 너랑 말 섞기 더러우니까 꺼지라고.”


목청이 커지자 안쪽에 있던 사장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며 나왔고 형민은 결국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쉽게 용서받지 못 할 거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용서는 구해야 한다. 몇 번 시도는 했으나 가까이 접근하지 못 했다. 새롬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는데 새롬과 함께 나오는 카페 알바생 때문에 접근할 틈을 못 잡았다. 새롬은 매일 그 알바생과 퇴근을 했으며 얼핏 둘이 사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지우고 다시 한 여자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걸 보니 앞으로 카페에 찾아오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카페에서 새롬에게 접근하다가 저 남자가 보기라도 했다간 새롬이 곤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롬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알바가기 전 시간에 집근처로 가 전화를 하였다. 새롬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근처를 서성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직접 문을 두드리고자 했는데 새롬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새롬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모습에 숨어버렸다. 갑자기 새롬이 나와서 당황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함께 나와서 숨은 것도 아니다. 새롬의 등에 업혀있는 아이를 보고 숨어버렸다.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럴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자신의 씨앗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3차 정기휴가를 마치고 나니 마냥 영원할 것 같던 1년 9개월의 군 생활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가고 전역 날이 다가왔다. 복귀 후에 휴가 간에 있었던 일을 소대장과 이야기를 했는데 소대장은 이번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남자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아무래도 용서를 구한답시고 마냥 밀어 붙일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하게 꼬인 응용문제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처럼 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답이라고 확정지을 만한 답은 없었다. 다만 정답에 가까운 것도 아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답만 있을 뿐이다.

대대장에게 전역 신고를 마치고 부대원들의 도열을 받으며 위병소를 몇 걸음 지나가니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위병근무를 서는 후임들이 손을 흔들자 같이 손을 흔들고 다시 걸어가는데 기분이 묘하다.


집에 가니 엄마가 ‘어 왔냐?’라는 말만 하며 계속 티비를 본다. 2차 정기 때까지는 그래도 반겨줬는데 포상과 말년휴가를 나올 때부터 어느새 심드렁해졌다. 배고프다고 밥을 달라하고 말년 때 새로 산 핸드폰으로 새롬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관둔다. 그것보다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단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가니 휴일이라는 팻말이 걸려있고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새롬의 집 근처에서 기다려보기로 한다. 집근처를 서성거리면서 기다리지만 대문은 좀처럼 열릴 생각을 안 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 공기가 서늘해진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지 팔뚝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점심때부터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라면이라도 먹을까하고 잠깐 근처 공원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간다. 거기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물을 붓고 전자렌지를 돌리면서 밖을 봤는데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무래도 새롬 같았다. 김밥과 라면은 뒷전으로 하고 뛰쳐나가 이름을 부른다.


“새롬아!!”


이름을 부르니 역시나 돌아보는 게 새롬이 맞았다. 단숨에 달려가 새롬의 앞에 선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너랑 할 얘기 없어.”


그러곤 다시 방금 온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려고 해 얼른 손목을 낚아챘다.


“미안해. 나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잠깐이면 되니까 제발.”


새롬은 그 손을 뿌리치고 가 다시 잡았으나 또 뿌리를 쳤다. 몇 번 반복하다 대뜸 날아온 따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황스러워 넋을 잠시 빼고 있으니 새롬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참을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마냥 착하던 새롬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기억 속엔 새롬은 누구를 때리거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게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새롬의 집 앞으로 가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아 문을 두들겼다. 소란스러워지자 새롬이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뭐하는 짓이야?”


“얘기 좀 하자고.”


“너랑 할 얘기 없다고 말했지?”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려하자 형민은 무릎을 꿇었다.


“새롬아... 미안해.”


그 모습에 새롬은 문을 닫다 말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지가 쓰레긴건 아네.”


“정말 미안해. 나 너무 겁났어.”


“어이가 없다 정말.”


“나 그동안 정말 많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 너한테 그렇게 말한 거, 그렇게 떠나버린 거, 전부.”


“그래서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건데?”


“나 너만 용서해주면 내가 저지른 거 다 받아들일 수 있어.”


“하... 미친 새끼.”


저번에 카페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새롬의 말이 상당히 거칠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만 더해졌다.


“아이... 같이 키우자.”


“뭔 소리 하는 거야? 아이?”


새롬은 울컥해서 언성이 높아지려는 것을 참고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한다. 근처 공원으로 따라오라고 앞장서서 간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서 팔짱을 끼고 다시 형민에게 조곤조곤 말한다.


“야 니가 뭔가 착각 하는가 본데 나 니 얘 지웠어.”


“나 봤어... 니가 아이업고 나오는 거...”


“아니 그 애 니 아이 아니야. 걔 내 조카야. 결혼한 우리 언니가 맡긴 애라고.”


“거짓말 하지 마. 내가 그것도 모를 거 같아?”


“지랄하고 있네. 그 얘 니 아이 아니니까 니가 책임지고 뭐고 할 거 없어. 우린 끝났고 우리사이에 남아있는 것도 없어. 너랑 나랑은 이제 안 보면 그만일 사이야.”


“그 남자도 니가 아이 있다는 거 알아?”


“야 이 미친 새끼야. 그 애 내 애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언성이 커지려하자 새롬은 자신을 억누른다.


“니가 그건 또 어떻게 아냐? 내 뒷조사했냐?”


“아니 카페에서 너 기다리면서 그 남자랑 나오는 거 봤어.”


“그래 좋아. 그건 인정. 근데 내가 아이가 없는데 알고 모르고 할게 뭐 있냐?”


“거짓말 하지 마. 나 군대 가기 전에만 해도 미혼이었던 니네 언니가 벌써 아이를 낳아 그렇게 키웠을 리가 없어.”


“니가 우리언니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여? 정 못 믿겠으면 호구조사라도 해보던가.”


“........”


“알겠으면 이제 그만 꺼지고 내 앞에 다신 나타나지 말아줘.”


“좋아 니가 아이가 있던 없던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한 일 정말 많이 후회해. 나 때문에 그런 일 겪게 한 거 내가 책임지고 싶어.”


“나 그 남자랑 잘 사귀고 있거든?”


“그 남자가 니가 낙태한 사실을 알고도 니 옆에 남아 있을까?”


“걔는 너같은 쓰레기랑 다르니까 제발 꺼져줄래?”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아니 진짜 시발. 그래서 뭐 걔한테 가서 너와 있었던 일을 일러바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


“야 이 개새끼야. 말하려면 말해. 대신 너 죽을 각오하고 떠벌려라. 내가 너 어떻게 해서든 가만 안 둔다.”


새롬은 독기가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본다.


“끝까지 개새끼네.”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공원을 떠난다.


형민은 벤치에 앉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올리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새롬의 분노가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너무도 찌질한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이러려고 찾아온 것이 아닌데 새롬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생각이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돌아서게 해야 한다.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그 아이는 분명 자신의 아이라고 짐작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일단 옆에 있는 그 남자가 거슬렸다. 분명 그 남자는 새롬의 거짓말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떻게든 그 남자를 떼어놓아야 한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둬들여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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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름방학 외전 -사랑이야기(2)- 17.12.19 84 0 9쪽
9 여름방학 외전 -사랑이야기(1)- 17.12.18 123 0 10쪽
8 여름방학 -첫데이트- 17.12.16 128 0 5쪽
7 여름방학 -재도전- 17.12.15 150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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