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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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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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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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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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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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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2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42화






항구도시 ‘에도라’에 도착한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여관을 찾는 것이었다.

새벽 동이 터오고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이었지만, 이들은 지난 이틀간 자지 못한 피로의 누적으로 졸려 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 기절하기 직전이야...”

“시험 기간일 때도 이틀 밤은 새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괴물 상어의 등짝에 올라탔던 두 사람은 혹시나 괴물 상어의 등에서 떨어질까, 그래서 어딘지 알 수도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지난 이틀 간 로그아웃을 하지 못한 신세였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고서 오직 근성으로 버티고 버텨왔던 이틀간의 항해.

정말이지 1시간만 더 항해했더라면 광개토와 슬기는 수면부족과 피로누적, 그리고 탈진으로 바다에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이었다.

상륙하자마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름 모를 여관으로 곧장 향한 그들은 숙박비를 던지다시피 내고는 침대에 몸을 걸치기 무섭게 잠이 들고 말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8시간 후 비슷한 시간대에 슬기와 광개토가 접속했다.

그들은 접속 하고서야 둘이 한 침대에서 로그 아웃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른바 한 침대에서 잠을 잔 것이었다.

“감히..니가..?”

슬기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막 로그인한 광개토를 노려보자, 광개토도 참담한 현실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슬기를 바라보며 황급히 도리도리 고개를 젓던 광개토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광개토는 둘을 한 방으로 안내한 여관 직원에 대해 분노했다. 대체 둘을 어떤 사이로 봤길래 한 방에, 그것도 침대가 하나 밖에 없는 방에 재운단 말인가!!

하지만 슬기는 곧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한숨 푹 자고나니 모든 사고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여유가 생겼다.

“뭐, 됐어. 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연하지 말입니다! 도저히 그럴..정신(‘얼굴’이라고 할 뻔 했다)이 아니었지 말입니다!!”

광개토가 고함을 지르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왔냐?”

반갑게 인사하는 빌 너머로 실리엔이 보였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접속했는데, 벌써 에도라에 도착해 있을 줄은 몰랐군.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거야?”

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주일 뒤에나 보자며 나갔던 빌이 예상보다 사나흘 일찍 접속한 것이었다.

빌과 실리엔이 방으로 들어오고, 슬기와 광개토가 간략하게 괴물 상어에 대해 얘기하자, 빌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꽤 즐거워했다.

“어쨌든 시간이 단축되어서 참 좋군. 안 그래도 전할 소식이 있었는데.”

빌이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라며 말을 꺼냈다.

“이거 요새 되게 유명한 얘긴데.. 둘은 왠지 모를 거 같아서 알려주지.”

빌의 추측대로 슬기와 광개토는 바깥소식에 깜깜한 터라 빌이 무슨 얘기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돌고 있는 소문인데, 스스로를 악마라고 칭하는 자가 나타난 모양이다.”

“악마?”

슬기와 광개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빌의 말을 따라했다. 악마의 자식들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악마라는 표현이 생소한 그들이었다(그들의 면전에 대놓고,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 제국의 남서 지역 쪽에 사흘 전부터 이상한 사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야. 겪어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악마라고 한다더군.”

익숙한 지명이 나오자 광개토가 눈을 빛냈다.

“한 제국이라면 제가 처음 시작했던 나라인데...그래서 말입니다?”

“그는 마주치는 족족 시온군이고 천마군이고 간에 다 박살을 내버린다고 하지.”

“헐, 대박!”

천마군을 감히 박살내버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강자가 시온군마저 박살내버린다는 건.. 언뜻 듣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아니, 천마군을 때려잡는 걸로 보아 우리 편임에 분명한데, 왜 같은 편인 시온군마저 죽여 버린단 말인가? 그야말로 미친놈이거나 천마 같은 놈이 분명했다.

둘의 반응을 잠깐 살핀 빌이 이어서 말했다.

“그를 겪어본 사람들이 말하길, 그가 꼭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하더군.”


이미 아군을 위협하던 천마군들은 몽땅 모가지가 날아간 채로 널부러져 있고, 아군들 역시도 당최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거둬 간 흑의의 사내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가씨라는 놈을 아느냐?”


“놈..? 이 새끼를 만나면 진짜 죽여버리든가 해야지. 크크크~.”

빌이 말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슬기가 뭔가를 알아챈 듯 두 눈을 벌겋게 달궈가더니 급기야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아, 사부님이시구나!! 역시 아군이고 나발이고 다 발라버리는 건 사부님뿐이시지 말입니다! 사부님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그런 미친 짓거리를 벌이겠습니까? 역시 사부님은 안 돌아가신 거였어!! 아니, 부활하신 거였어!”

광개토도 두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일어서자, 실리엔도 같이 일어서며 따라 말했다.

“부활하신 거였습니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난 슬기가 소지품을 챙기자, 광개토도 덩달아 자리를 정리했다.

“오빠, 그게 어디라구?”

기분이 좋아진 슬기가 모처럼 오빠 운운하며 빌에게 물었다.

“한 제국 남서 지역이라고 하더라. 부지런히 가면 2, 3주 정도 걸리지 싶은데.”

“당장 출발해, 그럼.”

“안 그래도 짐 다 싸놨지.”

역시 노련한 여행가답게 준비성이 철저한 빌이었다.


*


“아가씨라는 놈을 아느냐?”

방금 숨을 거둔 유저의 엎어진 등짝을 밟으며 천마가 내려섰다.

“네? 아가씨요?”

그렇게 말하는 40대의 남성 유저 ‘해수아비’는 속으로 천마를 욕했다.

‘빌어먹을!! 알고 보니 정신병자 아냐, 이거?!’

하지만 감히 생각을 입 밖으로 내놓을 정도로 간이 크지는 못했다. 그만큼 눈앞에 선 흑의의 사내는 무시무시했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 놈한테 평균 레벨 300인 우리 편 열두 명과 천마군 여섯 마리가 순식간에 당했어!’

그의 일행, 두 개 파티로 이루어진 공격대는 천마의 파편 운반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공격대였다.

평균 레벨이 300에 이르는 유저, 열두 명이 모여 있다보니, 보통 대여섯 명이 한 개 조를 이루는 천마군들을 사냥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이틀간 무려 여섯 개의 천마 파편을 파괴하는 동안 그들의 영웅적 모험은 아주 순조롭게 흘러갔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짧은 법.

그들은 결국 악마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처음 이자가 등장했을 때부터 왠지 불길했었다. 단조로운 흑의 무복을 입은 장신의 마른 사내.

이런 모습을 한 자들이야 여기저기 널리고 널렸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악마라고 불리우는 그자는 한껏 넘긴 장발 아래 드러난 이마 한가운데에 마치 눈동자처럼 희미하게 붉은 빛무리가 어려 있다고 했다.

눈앞에 선 사내 이마의 빛무리를 힐끔 쳐다본 해수아비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악마님이시군요!”

이미 인터넷을 통해 근방에 악마라는 녀석이 돌아다닌다는 루머는 접했던 바였다. 하지만 동영상 하나 없이 말과 글로만 전해지는 그 정보를 온전히 믿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파티의 평균레벨이 300에 이르다보니 파티원들은 악마라는 새끼가 나타나면 악어가죽대신 악마가죽으로 구두을 만들어 신고 다녀야겠다고 허풍까지 떨었었다.

‘악마 구두 대신 악마 모자를 썼구만, 그려.’

천마의 발아래 깔린 동료의 머리를 보며 해수아비는 두려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천마는 실성한 듯 멍 때리는 요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손을 쓸 때면 이렇게 넋을 놓아버리는 놈들이 가끔 있었다.

천마는 다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후회했다.

“동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하더니, 비록 칼국수는 맛있었다만 그래도 그때 다 죽여 버렸어야 하는건데...”

“서쪽인데요.”

그의 상념에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천마가 턱을 들었다.

“뭣이?”

“서쪽이라고요.”

해수아비가 다시 말했다. 그는 어쩌자고 악마의 말에 대꾸하느냐고, 그의 주둥이를 줘 패고 싶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렀고, 그는 말을 계속했다.

“소문으로 듣기로는 악마님은 서쪽으로 향하고 계시다던데요, 동쪽이 아니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천마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가 향하고 있던 서쪽을 가리켰다.

“이쪽이 동쪽..”

“서쪽입니다.”

서쪽을 향해 쭉 뻗어있던 천마의 손가락이 살짝 힘을 잃었다.

“동쪽이 아니더냐?”

“서쪽이라고요.”

“분명 해가 이쪽에서 뜨거늘?”

“그러니까 서.쪽. 시온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뜨죠.”

예전부터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 종종 단호박같은 성미를 드러내곤 하던 해수아비였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천마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방향을 잘못 잡은 지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흐음, 그래서 아가씨 놈을 아는 놈이 없는 게로구나.”

천마는 요괴들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았다(여전히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천마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대답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를 미친 놈 취급하는 모든 요괴 새끼들을 죽여 왔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때때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여 버렸던 적도 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공격은 친절하게도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생각해보면 요괴를 죽일 때의 그는 이상하리만치 의욕적이었다.

굳이 그렇게들 죽여야 했나 싶기도 했지만, 천마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이유인즉, 그는.. 선공 몹인 것이었다.

대부분의 레이드 보스가 그렇듯이 자신의 영역에 유저가 들어오면 먼저 공격하고야 마는 선제공격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공격에 앞서 대화를 먼저 시도한다는 자체가 사실 비정상적인 것이었는데, 장기간 만겁돌파의 망토를 착용하고 지낸 연유로 그의 데이터가 변질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행위였다.

아울러 그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 예컨대 먹을 것을 준다던가,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해 준다거나, 혹은 이로운 정보를 주는 유저들의 경우에는 죽이지 않기도 하니, 그는 이미 시스템의 영역을 꽤나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천마는 그에게 올바른 동쪽 방향을 알려준 해수아비를 살려 두기로 했다.

사망한 유저와 천마군이 떨군 전리품들을 허공섭물로 챙겨 든 천마가 돌연 말없이 자리를 떠나자, 공격대의 유일한 생존자, 해수아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올 때는 열둘이었는데, 그리고 도중에 맞닥뜨린 천마군만 해도 여섯이었는데, 그렇게 열여덟이 북적거렸던 이 숲속 공터에 이제 남아 있는 생존자라곤 오직 그 뿐이었다.

악마라는 새끼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의 팔다리가 날아다니고 머리가 터져나갔던 것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해수아비는 그가 어떤 연유로 목숨을 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에 대해 감사하며 중얼거렸다.

“시발, 뒈지는 줄 알았네. 뭐 저런 악마같은 새끼가 다있어? 마빡에 불 붙인 꼬라지하고는, 확 불나서 뒈져버려라!”

“그거 본좌에게 하는 욕이렷다?”

갑자기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유일한 생존자는 등골이 얼어붙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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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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