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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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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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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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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3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3화





“힘들어 죽겠다, 진짜.”

투박하게 생긴 카메라를 던지듯 내려놓은 슬기가 고급스러운 소파에 몸을 던지다시피 드러누웠다.

“야, 그거 비싼거야. 더럽히지 말고 내려와.”

“비싸봤자 니껀데, 뭐 어때? 그리고 지혜 너, 언니한테 자꾸 야야 해라. 그러다 혼난다?”

슬기의 말에 곁에 서 있는 우아한 귀부인 복장을 한 여자가 움찔했다.

“그런 멍청한 표정은 짓지 말고.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 같잖아.”

“멍청? 너나 나나 지능은 똑같거든!”

버럭 화를 내는 귀부인은 놀랍게도 슬기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도한 듯 상큼한 매력을 풍기는 눈매, 작지만 오똑 솟은 콧날, 우윳빛으로 매끄럽게 빛나는 피부와 작지만 도톰하니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는 입술까지.

따로 디폴트값이 존재하지 않는 시온에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동일한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들었거나, 아니면 유저가 쌍둥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랬다. 두 쌍둥이 자매, 언니인 슬기와 동생인 지혜가 시온 상에서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지혜는 난데없이 찾아온 언니의 꿍꿍이가 궁금했다. 가문의 도움은 필요없다며 저 멀리 시궁창 같은데서 게임을 시작했던 언니였다.

“왜, 바로 옆방이 내 방인데. 찾아온 게 어때서?”

“실없는 소리말구.”

현실에서야 두 자매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시온 안에서 둘의 신분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슬기가 평민 모험가이자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일개 기자인 반면, 지혜는 이 공국을 다스리는 공작의 딸이자 공국의 안주인이었다.

슬기가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이 동네에 블랙이라는 사람있지?”

“그런 이름이 한둘인가?”“그 NPC들 챙겨준다며 되도않는 짓거리 하는 사람 있잖아, 몰라?”

“아, 그 사람이라면.. 알지. 지금 우리 감옥에 있을걸?”“뭐, 진짜?”

뜻밖의 좋은 소식에 슬기의 표정이 밝아졌다. 블랙이 이 지역에 있다고 하면 열심히 찾아다닐 생각이었는데, 뜻밖의 길보였다.

“잘됐다. 나, 그 사람 인터뷰를 따야 하거든.”

“그것 때문에 온 거야?”

살짝 실망한 듯한 지혜의 표정에도 슬기는 개의치 않았다.

“편집장이 원체 지랄을 떨어야지 말이야. 이번에도 인터뷰 못 따내면 자를거래나 뭐래나?”

“근데 어쩌지? 감옥에 일단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는 인터뷰를 할 수 없잖아.”

“왜? 면회 같은 거 안 돼?”

“정신 차려, 여긴 시온이야. 그딴 거 없다고.”

“에이, 그럼 어쩌지? 감옥에 몰래 들어가야 하나? 아님 나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냐,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려고.”

소파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슬기를 한동안 쳐다보던 지혜가 예전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던 불만을 어렵사리 꺼냈다.

“근데, 언니. 왜 자꾸 내 이름 써?”

“응?”

“아니, 왜 자꾸 기사에 언니 이름 안 쓰고 내 이름을 쓰냐구?”

“아, 그거? 왜? 안 돼?”

“아니..그게. 안 되는 건 아닌데..”

당연히 되는 걸 왜 안 되냐고 묻는 듯한 슬기의 뻔뻔함에 지혜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똑같이 생긴 둘은 서로의 것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고, 언니인 슬기가 특히나 더 그러했다.

슬기는 지혜의 옷이나 소지품을 제 것처럼 여겼고, 가끔은 이름까지도 바꿔쓰기도 했었다(항상 슬기가 먼저 제안했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외모였지만, 조금 더 섬세한 성격을 가졌던 지혜는 그것이 언제나 말 못할 불만이었다.

“재밌지 않아? 사람들이 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안다는 게? 이런 건 쌍둥이가 아니면 누리지 못할 특권 같은 거라고. 그리고 여기에서 넌 지혜도 아니잖아. 안 그래요, 엘리스님?”

슬기가 지혜의 캐릭터명인 엘리스를 언급했다. 거울 나라의 엘리스(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2부)는 지혜의 최애 소설이었고, 엘리스라는 캐릭터 이름은 거기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으면서 캐릭터명은 왜 본명으로 지었대?”

“내 맘.”

“얼굴도 안 바꾸고.”

“님두염.”

“나이 서른 먹고도 그러고 싶어?”

“님두염.”

“에잇, 반사.”

“반사에 반사~♡”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내민 슬기의 표정은 미모와 별개로 그야말로 밉상 그 자체였다. 매일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얼굴이면서도 도저히 꼴보기 싫었던 지혜가 결국 짜증을 냈다.

“안되겠어. 야! 그냥 여기서 나 한 대 쳐.”

“응? 내가 사랑하는 동생을 왜 때려?”

“나 때리고 그냥 감옥으로 꺼져 버려.”

지혜의 신분은 공작가의 영애이자 안주인. 그런 그녀를 때렸다간 단번에 감옥행이 자명했다. 그리고 지금 감옥에는 인터뷰 대상인 블랙이 있었다.

“아, 그 수가 있구나! 그럼 마음껏 인터뷰 할 수 있겠어!”

지혜의 배려 깊은(?) 제안에 탄복한 슬기가 주먹을 불끈 쥐고 지혜를 때릴 준비를 마쳤다.

“어머, 지혜야, 아니 엘리스님? 그런데, 내 직업이 권사라고 말했던가?”

“자, 잠깐! 생각해보니 날 때릴 필요까진 없을 거 같아.”

슬기의 주먹에 응집된 기운의 붉은 빛 탓에 얼굴이 붉게 물든 지혜가 겁먹은 얼굴로 급히 손을 들었다.


결국 슬기는 지혜 대신에 지혜가 불러온 경비병을 때렸고, 경비병 폭행죄로 블랙이 묵고(?) 있다는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러 개의 감방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블랙이 있는 그 감방으로 가게 된 것은 지혜의 배려 덕분이었다.


*


“지혜라고 해요.”

‘윽!’

여기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느껴졌던 가슴의 먹먹한 통증은, 갑자기 나타났고 갑자기 사라졌다.

‘방금 그건 뭐였지?’

도훈이 눈을 감고 방금 느꼈던 기이한 기운에 대해 집중하려는데 지혜라는 거짓 이름을 댄 슬기가 다시 말했다.

“자는 척 해봐야 감옥에서는 로그아웃도 안 될텐데, 그냥 저랑..”

“안다고, 이래뵈도 너희들 같은 기자 나부랭이보다 감옥 경험이 열배는 더 많다고.”

“..너희..들..? 기자.. 나부랭이요..?”

도훈은 슬기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심상찮은 기색을 느끼고 슬쩍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도도해보이던 눈매 양 끝이 휘어져 올라간 슬기의 표정이 매섭기 그지없었다.

“야이 시벌, 감옥이나 맨날 들락날락거리는 주제에 꼴에 갑이라고 말 참 짧게 한다? 니가 무슨 연예인이야? 정치인이야? 뭔 몸값이 그리 비싸서 인터뷰 한마디도 못 섞겠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인터뷰 한번 한다고 니 얼굴이 닳아, 목소리가 닳아? 오히려 이런 기회가 생기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절이라도 하면서 하셔야 하는거 아니세요?”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화가 조금 풀렸는지 슬기의 목소리가 상냥한 어투로 다소 돌아왔지만, 도훈의 어리둥절하고 어안벙벙한 표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슬기가 배시시 웃었다.

“평소 NPC에 대한 인식 개선에 관심이 많다고 들어서요. 어때요, 어차피 한 감방에 둘러앉은 사이라 시간도 많을 텐데 길고 자세하게 얘기를 나눠볼까요? 호호호.”

그 모습에 도훈은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혹시 조증이니?”

“확, 이 새끼가 그냥!”

도훈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한 여자 같은데, 무방비로 누워있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도훈과 슬기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고, 그 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갔다.

“나의 과거는 편견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고아라는 편견, 대학도 나오지 못했다는 편견. 변변찮은 직장도 없다는 편견. 그렇게 사람들은 늘 나를 편견으로 대했지. 그런데...NPC들에겐 그런 편견이 없었어. NPC들에게 난 그저 똑같은 유저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거야.”

‘이 무슨 븅딱같은 소리지?’

하지만 숱한 인터뷰를 성공했던 프로답게 슬기는 아무 내색하지 않고 도훈의 말을 경청하는 척 했다.

“그래서 NPC를 도왔다. 많은 유저들이 모르고 있겠지만, 알고 보면 NPC들은 저마다 생각이 있고, 삶이 있는 존재들이야.”

“그 말씀은 NPC들이 생각을 하는 존재들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슬기의 질문에 도훈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턱을 긁적였다.

“글쎄, 점심엔 뭐 먹을까? 내일은 뭘 입지? 하는 그런 고민들을 생각이라고 말한다면 NPC들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지.”

“그러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

“하지만 말야.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이런 감정들을 생각이라고 부른다면.. 그래, NPC는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도훈의 단언에 슬기는 충격을 받았다.

‘NPC가 살고 싶어 한다고? 그들에게 생존욕구가 있다고? 말도 안 돼.’

빠르게 혼란스럽던 마음을 다잡은 슬기가 물었다.

“혹시 그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당연히. 그런 것도 없이 내가 NPC들을 도와줬을까!”

도훈의 대답에 슬기의 가슴이 가볍게 뛰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보여주긴 좀 그렇군. 이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부분이라.”

“아, 그럼 언제 보여주실 건가요?”

슬기는 그 만나기도 어렵고, 인터뷰를 따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블랙과 무려 두 번째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들떴다.

도훈이 손가락을 펼치고 가만히 세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나중에 여기서 나가게 되면, 6구역으로 와.”

“여기 가몬시의 6구역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게 말하던 슬기는 문득 도훈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나중이라고요?”

“응, 난 이제 나갈 거거든.”

“네?”

도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그리고 중갑을 입은 경비병이 나타나더니 도훈을 불렀다.

“블랙, 석방이오.”

“엥? 석방?”

깜짝 놀란 슬기가 감방문을 나서는 도훈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야, 블랙님? 님 가시고 나면 여기 나 혼자만 남는 거예요?”

“넌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지?”도훈의 질문에 슬기는 빠르게 대답했다.

“경비병을 때렸다고..”

“그럼 아직 열네 시간은 남았겠네. 수고.”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훈의 모습이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혼자 남게 된 슬기.

한동안 멍하니 감방 돌 벽을 응시하고 있던 슬기의 입술이 이윽고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날 속여??”

감방에 들어올 생각만 했지. 출옥하는 시간이 이렇게나 차이날 줄 몰랐던 슬기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의 전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그녀 본인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겠지만, 당장 분노로 눈이 돌아버린 슬기에게는 본인 외의 다른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점찍어진 화풀이 상대가 바로 옆방 여자였다.

“아오, 오늘 밤에 넌 뒈졌어!!”

로그 아웃 하자마자 옆방으로 달려가 피의 보복을 할 생각에 슬기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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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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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56화 20.01.02 356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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