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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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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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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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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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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48화





“꼬맹아, 받아라.”

슬기가 내민 망토를 무심한 표정으로 받아들던 실리엔이 생긋 웃었다.

“고마워, 언니.”

망토를 착용한 실리엔의 말투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실리엔의 모습이 이미 익숙한 슬기였지만, 한편으론 NPC 주제에 사람 행세를 하는 그 모습에 아직도 가끔 빈정이 상하기도 했다.

“어쭈, 이제 액면가로 10살 밖에 차이 안 난다 이거지?”

처음 일행에 합류할 때만 해도 10살 남짓한 꼬맹이였던 실리엔이 어느덧 청소년의 앳된 티도 벗어버리고, 이국적이면서도 눈부신 미모를 뽐내는 20대 초반의 여인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족히 열서너 살은 차이 나 보이는 겉모습이었는데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심야라 슬기는 살짝 열 살로 우겨 보았다.

아마도 광개토라도 있었다간 틀림없이,

“누님, 노안이라도 오신거지 말입니다.”

라며 속을 긁었을 게 뻔했다.

“이만 주무시지, 늙은 언니.”

광개토 없는 자리에 이제 실리엔이 빙긋 웃으며 속을 긁는다.

“아놔, 망토 줄 때마다 기분 나빠!”

빽-하고 소리를 내지른 슬기는 천막용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곧 숲속은 인기척 하나 없이 오직 풀벌레들의 소리와 휘황한 달빛으로만 가득찼다.

광개토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접속 종료했었고, 슬기도 방금 자정의 소요공 수련을 마치고 자러 들어갔다.

빌은 접속 시간이 들쑥날쑥한 편이었지만 어쨌든 광개토와 슬기가 접속해 있는 시간에 맞춰 접속하는 편이라, 새벽은 온전히 실리엔만 홀로 있는 시간이었다.

달빛에 실리엔의 새하얀 미니드레스와 잿빛 망토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흐음, 여기에는 있겠지?”

주위를 슬쩍 둘러보는 실리엔의 눈빛에 살짝 붉은 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녀의 본디 정체는 언데드 군주. 군주는 그가 거느리는 신하와 백성이 있어야 비로소 군주라고 할 수 있는 법.

수하 하나 없는 실리엔은 하루 중 서너 시간, 자유를 갖게 된 이 시간마다 주변의 언데드 몹들을 찾아보곤 했다.

찾기만 한다면 그녀의 수하로 삼을 생각인데 아직까지는 허탕의 연속이었다. 제대로 부활하지 못한 그녀로서는 주변에 있는 언데드를 감지하는 힘이 썩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마다 일행들 몰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면서도, 실리엔은 망토를 들고 튀어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일체 하지 않았다.

아직 광개토를 이용한 성장의 여지가 더 남아있기도 했고, 지난 몇 개월간의 동행으로 점점 일행들을 진짜 그녀의 일행으로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실리엔은 가벼운 발놀림으로 나뭇가지를 몇 차례 디디며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에서 나무 꼭대기로 훌쩍 이동하며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서양 처녀귀신이었다.

곧 그녀의 시야에 여기저기 몹을 사냥하고, 던전을 찾아 해매는 유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밤에도 이렇듯 시온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고만고만한 몹을 사냥하는 유저들의 허약한 목덜미를 멀리서 지켜보던 실리엔이 살짝 고민에 빠졌다.

“하나만 빨고 튀어?”

최소한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겠다는 실리엔의 이성과, 먹이를 보면 흡혈을 하고야마는 언데드 군주의 본성이 충돌했다.

망토가 없었다면 당연히 본성이 앞섰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인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저 오동통하고 하얀 살결을 봐. 저 가는 목덜미를 앙, 하고 깨물면 맛있고 달콤한 액체가 추르릅하고 내 입 안 가득 퍼져나가면서... 분명 살찌겠지?”

기승전 다이어트로 결론을 내리며 실리엔은 본성을 억제했다.

그리고 그런 흡혈의 본성을 억제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실리엔에게 마치 보상처럼 언데드의 기척이 느껴졌다. 몇 주 만에 처음 느껴보는 백성의 기척이었다.

언데드의 기척을 따라 귀신처럼 나무 꼭대기들 위로 날듯이 달려간 실리엔의 눈앞에 곧 50 기 가량의 묘가 한데 모인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을씨년한 야밤의 산속 공동묘지. 하지만 군주로써 백성을 갈망하는 실리엔의 눈에 이 묘지는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녀의 영토였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선객들이 다수 있었다. 바로 무덤에서 기어나오는 해골들을 두더지 게임하는 흠씬 두들겨 패대는 유저들이었다.

귀엽디 귀여운 동그랗고 하얀 해골들의 머리통들이 유저들의 흉악하기 이를데 없는 칼질과 주먹질에 여지없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 전사가 거대한 도끼의 철제 자루를 양손으로 움켜쥐고서 빙글빙글 돌며 해골병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퍼퍼퍼퍽-

이제 막 무덤에서 몸을 일으킨 해골병 세 구가 도끼의 돌풍에 휩쓸려 심각한 피해를 입은 듯 비틀거렸다. 하지만 해골병 사이를 뚫고 나온 전사, 토네이도도 반격을 받아 다소간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마리안님!”

토네이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피통이 10분의 1 정도 밖에 안 깎였는데도 힐러를 불러댔다. 그는 전형적인 만피 지향 탱커였다(주: 항시 만피를 유지해야만 안심하는 탱커, 달리 안전제일 탱커라고도 한다).

“넵!”

작은 체구에 귀염상인 마리안은 전형적인 힐러형 외모였다. 흰색 로브를 입은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토네이도를 가리키자, 토네이도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마리안님!!”

탱커의 다급한 재촉에 마리안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내심 혀를 찼다.

‘종이에 베여도 호들갑 떨 새끼! 덩치가 아깝다, 이것아!’

하지만 그 순간, 앞서 있던 다른 파티원들도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마리안!”

“사제님!!”

왜? 마리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파티원들을 돌아보는 순간, 그녀의 등을 뚫고 가슴으로 3개의 꼬챙이가 튀어나왔다.

“어머? 이게 뭐지? 켁!”

이렇게나 길게 자란 손톱을 처음 본 마리안은 흉기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흉수의 손톱이 빠져나가자 심장에 구멍이 나버린 마리안은 그 즉시 강제 로그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이어서 힐러를 죽인 유령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이 하얀 잔상만 남을 정도의 빠르기로 마법사와 궁수를 덮쳤다.

스샤샤샥

어찌나 적의 공격력이 강한지 두 파티원은 각기 한방 만에 로그 아웃 당하고 말았다.

“아니, 60렙대 사냥터에 이게 뭐야?!!”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탱커, 토네이도가 적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지만, 어느덧 등 뒤로 돌아간 적은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렇게 한 무리의 파티를 불과 몇 초 만에 순삭해 버린 실리엔은 이어서 무덤의 다른 한켠에서 사냥중인 다른 파티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1분이 지날 무렵, 무덤에서 사냥하던 다섯 파티는 모두 실리엔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핍박자들이 사라지고 나자 그제야 온전히 온몸을 일으키는 해골병들.

겨우 두 팔 두 다리를 힘껏 뻗어보는 해골병들을 바라보며 실리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물론 감정에 복받치거나 눈물이 나오려 해서 눈시울이 붉은 건 아니었다. 언데드를 감지하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려 하는 언데드 군주의 눈빛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

“이 허약한 것들아, 이대로 가다간 너희 뼈다귀들은 평생 대가리만 깨지다가 뒈져나갈 것이다. 이제 그런 어리석은 짓은 그만하고, 본 군주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죽은 자 들 중에서 깨어나게 하리라.”

허약한 것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힘을 합치고 모아야 하는 법. 50 여기의 무덤에서 일어난 해골병들이 실리엔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얼싸안으며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꽈드득, 꽈드득.

해골병들의 뼈와 뼈가 맞부딪히고 긁히며 마찰하는 소리를 냈다. 곧 그들은 마치 액체인냥 서로 뭉치고 합쳐지기 시작했다. 회백색이던 뼈들이 뭉치고 모이며 점차 짙은 색깔을 띄어나갔다.

꽈드득, 꽈드득.

이윽고 50여 구의 해골병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한 구의 거무스름한 해골병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한 구의 해골병은 그 많은 해골병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해골병에 비해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마치 덜 자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실리엔이 그녀보다 머리 하나 만큼 작은 그 해골병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후를르 경과 우그그 경이 죽은 이후로 본 군주의 수발을 들 신하가 없었는데, 스켈레톤 킹, 네가 이제부터 나의 수발을 들어야 하겠다. 그런고로 이제부터 네 이름은 까드득 경이다.”

일찍이 후를르 경과 우그그 경도 그들이 내는 소리를 가지고 성의 없게 작명한 이름들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실리엔이 그의 머리를 붙잡고 이마에 입맞춤을 하자, 까드득 경이라 이름 붙여진 스켈레톤 킹이 꽈드득 꽈드득 뼈마디를 부딪치며 기뻐했다.

“내가 아직 힘이 온전하지 못해 경의 외형이 볼품없지만, 본녀의 성장과 함께 경도 점차 성장할거니까, 외모 가지고 불평하면 다시 죽여 버릴 거야.”

자신의 팔다리를 들어 보이며 불만스런 기색을 보이던 스켈레톤 킹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만히 텅빈 눈구멍으로 실리엔을 올려다보던 스켈레톤킹이 소리 없이 입을 달그락 거렸다.

‘엄마.’

어차피 모든 언데드들은 군주의 사기(邪氣)로 살아가는 존재. 모자 관계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기에 실리엔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 살짝 치맛자락을 들었다.

그러자 스켈레톤 킹은 순식간에 연기로 변하며 실리엔의 옷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스켈레톤킹은 실리엔이 소환할 때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올 것이었다.


스켈레톤 킹을 만들기 위해 모든 사기를 토해낸 공동묘지는 더 이상 해골병이 리젠되지 않는 평범한 묘역이 되고 말았다.

사기로 번들거리던 비석들은 이제 한낱 퇴색되고 낡아빠진 돌덩이에 불과했고, 그림자만으로 공포를 조장하던 주변의 나무 그림자들은 이제 그냥 아무 감흥 없는 그저 달빛 따라 흐느적거리는 힘없는 그늘일 뿐이었다.

하지만 공동묘지를 빠져나오는 실리엔의 입가에는 충만함으로 미소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천마의 손에 그녀의 심복이던 후를르 경과 우그그 경이 소멸된 후, 신하 하나 없던 실리엔이 드디어 새 신하를 얻은 것이었다.

기분 좋은 충만감에 실리엔의 발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그렇게 천천히 공동묘지를 벗어나던 참이었다.

꾸르릉 쾅-

갑자기 새까만 빛의 번개가 크고 강력한 천둥소리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땅을 향해 정통으로 내려 꽂혔고, 세상을 잡아먹을 듯 했던 천둥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뒤이어 물기 하나 없이 비쩍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본 군주의 영역에서 누가 허튼 짓을 하느냐?”

마치 백 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듯이 갈라진 그 목소리는 마음속의 칠판을 송곳으로 사정없이 긁는 것처럼 닭살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듣는 이의 몸을 절로 배배 꼬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실리엔이 돌아보자, 방금 까만 번개가 꽂혔던 곳에는 넝마나 다름없는 로브를 걸친 말라빠진 해골이 있었다.

하지만 해골병들의 생기 없이 흐느적거리는 뼈와 달리 리치의 해골은 새까만 해골 사이로 음산한 사기가 번뜩 번뜩 푸른빛을 내뿜어 매우 강력해 보였다.

실리엔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강력한 언데드가 이윽고 크게 소리쳤다.

“나는 동모아 지역의 언데드 군주, 천년강시 ‘태고’니라.”

그는 일단 NPC답게 대뜸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 지역의 언데드 군주이자 강력한 강시인 태고는 그의 영역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백성을 빼가는 걸 느끼고서 다급히 날아온 것이었다.

만겁돌파의 망토를 착용하고 있어서 얼마든지 제약(자기소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실리엔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본녀는 트랜실 지역의 언데드 군주, 실리엔 반 작퀸이다.”

실리엔의 자기소개에 태고가 잠깐 움찔했다. 딴 동네 언데드 군주가 왜 여기 와서 상도덕에 어긋난 짓을 한단 말인가?

인상을 찌푸린 태고가 위협적인 어조로 외쳤다.

“본좌는 천년을 살아온 강시 왕이며, 온갖 죽은 것과 죽지 못한 것들의 조종이니라!”

그러자 실리엔도 다시 소리쳤다.

“본녀는 고귀한 혈통의 엘더 뱀파이어 로드로서, 어둠과 어둠에 기생한 것들의 주인이니라!”

맨날 천마에게 채이고, 슬기에게 구박받고, 광개토에게 사랑(?)같은 걸 받아오며 억눌려왔던 실리엔의 본성이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뜨겁게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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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64화 20.01.05 359 4 12쪽
163 163화 20.01.04 350 4 11쪽
162 162화 20.01.04 360 6 11쪽
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158 158화 20.01.03 356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156 156화 20.01.02 356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3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151 151화 19.12.31 373 6 13쪽
150 150화 19.12.31 366 4 13쪽
149 149화 19.12.31 36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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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146화 19.12.30 41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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