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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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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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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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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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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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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56화





슬기가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하늘 높이 떠 있던 그 환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환상이었어.’

보고 싶은 나머지, 머리가 눈을 속인 것이었다.

두 눈을 감은 슬기의 귓가로 태고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 역시 자유란 좋은 것이군!! 그래, 본 군주는 드디어 자유다, 자유란 말이다! 이제 본 군주는 너희 두 놈들에게 본때를 보인다음,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세상의 왕이 될 것이란 말이다!! 으하하하~!”

초목을 떨쳐 울리는 태고의 선언과 함께 슬기와 광개토를 감싸고 있던 사기가 한층 파랗게 빛을 내뿜으며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슬기는 부식독이 몸에 닿기도 전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슬기는 마치 비명을 크게 지를수록 고통이 덜 하기라도 할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아~~!!”

이건 뭐, 썩어 들어가는 피부보다 비명 지르는 목이 더 아플 수준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건 그 비명을 듣고 있어야 할 사람들의 귀였다.

역시나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만년설산을 맴도는 매마른 한풍이 이런 소리일까? 차갑기 그지없는 호통에 슬기는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온몸 어디도 아픈 구석이 없었다. 부식독이 닿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차갑디 차가운 그 목소리가 너무도 낯익은 목소리라는 사실 앞에서 다른 건 모두 사소했다.

두 눈을 번쩍 뜬 슬기가 태고의 뒤편에 선 사람을 보고는 끝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인마!!”

슬기가 감정을 듬뿍 담은 욕설을 와락 내뱉자, 욕설은 바람같이 날아가 태고의 뒤에 선 천마의 귓가에 찰떡같이 갖다 붙었다.

부시독의 공격에 두 눈을 질끈 감았던 광개토도 그제야 천마의 등장을 알아 차렸다.

“아...!!”

제멋대로 뒤로 넘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천마의 새까만 눈동자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마에는 붉은 빛으로 희미하게 눈동자와 같은 무늬가 어려 있는데, 항상 앞머리 내린 천마만 봤던 둘에게 이 모습은 꽤나 낯설었다.

천마가 슬기와 광개토를 보더니 슬쩍 고개를 들어 시선을 깔며 말했다.

“네놈들이냐?”천마의 질문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슬기와 광개토는 동시에 대답했다.

“응, 우리야!”

“그렇지 말입니다!”

역시나 많은 것들이 생략된 대답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한 슬기와 광개토를 보며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통 기억이 안 나는군.’

천마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과거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로서는 내심 과거 속 동료들을 만나면서 기억의 회복이 조금이라도 있길 바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만나고보니 전혀 효과가 없지 아니한가!

일단 무엇보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딘가 비실대는 허약한 청년이나, 얼굴도 못생긴게 빽빽 비명이나 질러대는 아줌마는 그가 상상하던 동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네 놈이라 들었건만, 나머지 둘은 어디 있느냐?”

하늘같은 사부의 질문에 광개토가 냉큼 대답했다.

“그놈! 그놈 손에 우리 리엔이가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광개토의 손짓에 따라 천마의 시선이 태고의 왼손에 붙들린 채 축 늘어진 실리엔에게 향했다. 가냘픈 체구의 미인이 강시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게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손 떼, 이 칡뿌리같은 새끼야.”

그다지 크게 말하지도 않았건만, 천마의 목소리는 쩌렁하니 태고의 심령을 흔들었다.

“크윽!”

태고는 답답한 신음을 내뱉으며 그만 실리엔을 놓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천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멍청하니 태고의 손에서 실리엔이 벗어나는 걸 보고 있던 광개토는 천마의 질문이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뒤늦게 알고 허겁지겁 뒷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배추 형님은 아직 도착 안했는데, 아마 남쪽에서 여기로 한창 오고 있는 중일 겁니다.”

“아..”

천마가 광개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 놈이었나,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배추라는 말에 천마는 단번에 오던 길에 만났던 한 사내를 떠올렸다. 자신을 보자마자 어디론가 열심히 귓말 벌레를 날리던, 노란 곱슬머리가 배추잎처럼 보이던 사내였다.

그를 보는 순간 불현듯 크게 살심이 동하였고, 천마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즉시 그의 목숨을 거두고 말았었다. 같은 편인 줄 알았으면 살수를 뻗지 않았을 텐데.

“괜히 같은 편을 죽이고 말았군.”

그러나, 원래 천마는 수차례 빌을 죽이려고 한 바가 있었었다. 꿍꿍이를 알기 힘든 자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기억을 잃어서 몰라보게 되고서야 오랜 숙원을 이루고 만 셈이었다.

그렇게 광개토와 천마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슬기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슬기의 눈과 입에서 마침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저씨!! 우리 기억 안나?! 우리 모르겠냐고!”

그제야 광개토도 눈앞의 천마가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뭐, 정말로 내가 악마가 맞다면 조만간에 기억이 나겠지.”

천마가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슬기와 광개토를 거쳐 태고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태고는 실리엔을 놓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실리엔과의 접촉이 끊어지는 순간 잠잠하던 인공지능의 제어가 다시 시작되려 한 것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다시 자유를 빼앗기고 말거야!’

자아를 잃고 다시 인공지능의 제어 아래 놓이는 것이 싫었던 태고는 이를 악물며 그의 발 앞에 주저앉은 실리엔을 집어 들려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동이 한발 빨랐다. 거의 실리엔의 목을 움켜쥐기 직전이었던 태고는 그만 그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태고는 시퍼런 안광을 불태우며 슬기와 광개토를 노려보았다.

“천년강시, 나 ‘태고’의 무덤에 죽음을 찾아온 자들이 누구냐!!”

태고는 아까 등장하며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이건 항시 전투 전에 했던 태고의 시그니처 대사였다.

하지만 천마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광개토와 슬기는 태고의 말을 귀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히려 태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정신을 차리게 된 실리엔이 손톱을 내세워 대신 대답했다.

“감히 모든 사마의 주인이신 천마님의 직계이신 작은 주인 놈의 권속인 나를 신부로 삼겠다고? 꿈도 야무진 늙은이 같으니라고!”

태고의 강력한 권능에 눌려 정신을 잃다시피 하며 끌려 다녔던 지난 순간들이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웠던 실리엔의 분노가 집결된 공격이었다.

하지만 태고는 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언데드 중의 언데드, 언데드 군주였다.

갑자기 발밑에서부터 뻗쳐 올라온 실리엔의 기습적인 손톱 공격에 당황해 하면서도 언데드 군주다운 빠른 반응을 보였다.

태고가 날렵하게 양 손을 뻗자, 양손에서 피어오른 푸른 사기가 신속하게 덩어리지며 손톱을 막아냈다.

아니, 막아내었다고 생각한 순간, 실리엔의 손톱이 사기 덩어리를 가차 없이 쪼개며 전진하더니 순식간에 태고의 손바닥을 할퀴었다.

“크악!!”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태고는 주먹을 움켜쥐어 실리엔의 손톱을 양손에 가두었다. 그 모습이 일부러 고통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손톱이 조금씩 미끄러지며 태고의 뼈만 남은 손을 조금씩 잘라가자 태고가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리면서도 클클 거리며 웃어댔다.

“으으윽, 클클, 으윽, 그래, 이거지!! 자유! 이것 때문에 본 군주가 너와 결혼을 하려는 것이었지.”

실리엔의 손톱이 손을 베어내는 순간, 그 직접적인 공격을 통해 전달되는 만겁돌파의 청량한 기운이 다시금 태고의 정신을 일깨웠던 것이었다.

태고는 혹여나 실리엔의 손톱이 빠져나갈까봐, 손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실리엔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태고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사기들이 크게 일어나 실리엔을 감싸버린 뒤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미 죽은 상태인 실리엔에게는 부시독이 아무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때 광개토가 실리엔이 다시 태고의 수중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사, 사부님!! 저 도라지 같은 것이 다시 우리 리엔이를 붙잡았습니다!”

“멍청하고 모자란 놈아, 도라지가 아니라 칡뿌리니라.”

천마가 즉각 광개토의 잘못된 발언에 대한 정정에 나섰다.

“저 새끼(태고)는 볼 때마다 인상이 구겨지는 게, 꼭 씹을 때마다 인상이 구겨지는 칡뿌리 같은 새끼가 분명하다.”

슬기는 천마의 막말에 주목했다. 분명히 천마는 지금 망토를 착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막말과 욕설을 일삼았다.

기억을 잃은 것도 그렇고, 앞머리를 뒤로 제낀 것도 그렇고 무언가 예전과는 달라 보였다.


태고는 천마가 자신을 뭐라 부르든 아무래도 좋았다.

“어디 한번 칡뿌리한테 맞아보아라!!”

태고가 시퍼런 안광을 한층 더 불태우자, 손을 뻗지도 않았는데 푸른빛의 사기가 한데 뭉쳐서는 천마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눈 깜짝할 새에 천마의 머리 위에 다다른 사기는 삽시간에 넓게 퍼지며 그물과 같은 형태로 천마의 온몸을 감쌌다. 이 공격은 아까 슬기와 광개토가 꼼짝없이 당했던 바로 그 공격이었다.

피시시시

사기의 진실된 정체는 부시독. 부시독이 천마의 몸을 덮자, 접촉된 곳들이 일제히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강한 산성의 연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피시시시

그런데 이상했다. 금세 녹아버릴 것만 같았던 천마의 몸은 물론, 그의 의복에도 아무런 부식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시시 하는 증발음은 여전했다.

“아니!!?”

태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피시시거리며 증발해버렸던 것은 천마의 옷, 천마의 피부가 아니라 그의 퍼런 사기였던 까닭이었다.

일방적으로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부식독이 모두 증발하여 사라지자, 태고는 당황을 넘어 황당함을 느끼고야 말았다.

“뭐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사기를 치는 것이냐!!”

지나친 분노의 폭발로 태고의 시야가 살짝 흐려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야, 그런데 어느덧 천마가 그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헉!!”

태고의 입에서 튀어나온 헛바람은, 갑자기 다가온 천마의 신출귀몰한 신법 때문에 놀란 것이었는지, 아니면 천마의 가벼운 일수에 실리엔의 손을 손톱과 함께 움켜쥐고 있던 그의 두 손이 손목부터 뎅그렁 날라가서였는지 알기 어려웠다.

두 손을 잃고, 사기까지 사라진 채로 뒤로 나동그라진 태고를 바라보며 천마가 광개토를 불렀다.

“좀 전에 보아하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던데, 본좌의 제자라면 이런 허접 새끼쯤은 맨손으로 때려죽일 수 있겠지?”

태고 앞으로 나선 광개토는 아까 태고와 육탄전을 벌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잠깐의 전투였지만, 사기만 없었다면 충분히 해볼만했다고 자평했다.

“당연하지 말입니다. 이런 놈한테 진다면 제가 장을 지지지 말입니다.”

“흐음, 장을 지진다는 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어느새 몸을 일으킨 슬기가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러니까, 장이란 손바닥을 가리키는 말이고, 지진다는 건 간장을 부은 다음 불에 끓인다는 의미니까, 장을 지진다는 말은 손에다가 간장을 붓고 뜨겁게 끓인다는 의미지.”

“흐음, 맛있겠구나.”

천마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자, 슬기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하여튼 먹는 거 밝히는 건 변하지 않았네. 암튼 맛도 맛이지만, 일단은 엄청 아플거야. 산 채로 보글보글 끓이는 거니까..”

“아니, 누님. 뭘 그리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그러십니까?”

화들짝 놀란 광개토가 급히 상황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럼 네 놈이 지면 정말로 장을 지지는 거다.”

천마의 언행일치를 아는 광개토로서는 이제 정말로 질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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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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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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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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