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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603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7 07:00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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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170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70화





천마의 간단한 손짓에 인근의 모든 적들이 사망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접속선을 잘라버리니 적들은 일체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서 그냥 게임에서 튕겨 나가버린 것이다.

이미 천마로부터 설명까지 들었건만, 그의 가벼운 손짓에 인형처럼 쓰러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슬기는 가슴 깊숙이 섬뜩함을 느꼈다.

“아저씨, 개사기다, 진짜.”

애써 평소같은 말투를 유지했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래도 괴물이었지만, 이젠 완전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어.’


광개토의 극진한 간호(?) 아래 정신을 차린 실리엔은 하루 치의 기억이 날아가 있었다.

그녀는 천년강시를 기억하지 못했고, 새롭게 만들었던 아이, 까드득 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까드득경의 소멸에 크게 슬퍼했던 그녀였던지라, 그에 대해 전혀 기억못하는 건 한편 다행스런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큰 주인님. 오셨군요.”

벌떡 일어선 실리엔이 천마의 합류를 이제야 알아챈 듯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겐 지금 이 순간이 근 한 달 만에 천마를 다시 만나는 첫 순간인 셈이었다.

광개토가 실리엔에게서 망토를 받아다가 착용했다.

“이제 우리 뭘 해야 하는 거지 말입니다?”

광개토의 말에 슬기와 실리엔의 시선이 천마를 향했고, 천마는 슬기를 쳐다봤다.

“뭐..아저씨는 가고픈 곳이 있어?”

“너희들과는 여기까지다.”

동시에 튀어나온 슬기와 천마의 말이 엇갈렸다.

“뭐?”

“넷? 안됩니다! 아직 파천무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지 말입니다!”

슬기는 깜짝 놀랐고, 광개토는 기겁을 했다.

특히 광개토로서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천마의 말을 도저히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조속히 파천무 6단공을 찍어야 했다.

사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고 싶은 곳?”

천마는 슬기의 말을 따라하며 생각에 잠겼다.

당연히 있지.

하지만 어떻게 가야할 지를 모르겠군.

그렇지만 적어도 너희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천마의 혼잣말을 슬기가 받았다.

“그래, 가고 싶은 곳! 같이 가자, 아저씨. 우리도 같이 가고 싶어.”

“너희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게 어딘데! 우리가 못가는 곳이 어딨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가면 되는거지, 바보야!”

잔뜩 화난 표정의 슬기 모습에 천마는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다.

캐릭터 얼굴에 겹쳐 보이는 진실된 슬기의 모습.

앙다문 작은 입술과 콧잔등에 살짝 잡힌 귀여운 주름, 살짝 찡그린 눈썹하며 상큼하게 올라간 눈매까지, 천마가 도훈일 적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천마는 하마터면 그냥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지 않는 천마의 모습에 슬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저씨, 내 부탁 들어준다고 했었잖아. 무조건 들어준다고!!”

물론 천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슬기의 생떼에 천마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가 확답을 바라듯이 다시 소리쳤다.

“맞잖아! 남아 일언!”

“중만금이지.”

무심코 대답하던 천마가 흠칫하고 놀랐다.

그리고 슬기도 깜짝 놀랐다.

원래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는 말인데,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그녀의 전 남친이 천금보다 만금이 더 무겁다며 ‘중만금’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런데 왜 천마가?

아니, 천마는 애초에 남아일언은 중천금 같은 말조차도 모를 텐데, 천하 무식한 놈이라서!!

‘그래, 아저씨가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한 걸거야.’

슬기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아저씬 지금 가고 싶은 곳이 있는거네? 우리는 못가는 곳이라고 하는걸 보니, 맞지? 그럼 내가 부탁할게. 우리도 같이 데리고 가줘. 아저씬 내 부탁을 꼭 들어주기로 맹세했으니까 당연히 들어줘야 해.”

슬기의 슬금슬금 물타기에, 애초에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적도 없었던 천마였건만 어느덧 그녀의 모든 부탁을 들어주기로 맹세까지 한 상황이 되어 갔다.

하지만 슬기에 대해 마음의 짐이 무거웠던 천마는 딱히 반박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부탁을 들어줄 수도 없었다.

“내가 가는 길은 너희가 감당할 길이 아니다.”

‘슬기야, 너의 할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길이야. 그리고 그 댓가는 죽음이야. 결코 손녀인 네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아니야.’

그렇다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이 말을 내뱉을 순 없었다.

천마는 복수를 하기 위해 슬기를 모른 체 하기로 이미 결심했다.

식물인간이 되었다던 슬기가 눈앞에 건강한 모습으로 있는 것에 대해선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천마는 슬기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여기선 건강하지만, 현실에서는 식물인간..’

그러니 여기에서라도 즐겁게 지내길 바랐다.

복수랍시고, 또다시 고통스러워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천마의 생각.

천마의 생각을 모르는 슬기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었다.

“감당이고 뭐고 간에, 어디로 가냐고? 나도 갈거라고!”

슬기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렀다.

9개월 전 사고를 통해 의지하던 사람을 잃었었다.

얼마 전에도 새롭게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져 속을 다 태운 그녀였다.

그런데, 겨우 다시 만났는데 또 다시 사라지겠다고?

너 혼자 가겠다고?

누구 맘대로?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불쑥 들려온 낯선 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한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막 수풀을 헤치고 나오는 대여섯 살 남짓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마치 천사 같은 환한 외모를 가진 그 아이는 하얀 통짜 옷에 짧게 친 머리로 마치 실험실 같은데서 탈출한 듯한 차림새였다.

슬기의 눈길이 잠시 천마를 살폈다.

전혀 동요가 없는 표정.

천마는 아이가 그 곳에 나타난 순간부터 알고 있었기에 자연히 놀랄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천마 일행 곁으로 걸어왔다.

“얘야, 넌 누구니?”

슬기의 질문에는 애초에 이 아이가 유저일리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19세 이상 이용가인 시온에 이런 아이 형상을 한 유저는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걸어오는 내내 천마에게 꽂혀있던 아이의 눈길이 슬기에게 향했다.

발걸음을 멈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난 세계야.”

“세계? 그게 이름이라고?”

“이름이 아닌 거 같지 말입니다.”

“세계야, 여기서 혼자 뭐하는 거니?”

슬기의 말에 스스로를 세계라 칭한 아이가 천마를 가리켰다.

“천마를 따라가려고 왔어.”

“뭐, 아저씨를? 왜?”

“저 사람이 날 눈 뜨게 만들었어.”

“응?”

슬기의 눈 꼬리가 이상하게 휘어지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요 꼬마애가 대체 무슨 소릴하는 거지?

“너 지금 아저씨가 네 아빠라는 거니?”

“아니. 난 아빠가 없어. 나는 그저 홀로 존재하는 자. 하지만 천마가 나를 나로 눈 뜨게 만들어줬어. 그러니 나에게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려줘야 해.”

대여섯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유창한 언변이었다.

그때 천마가 불쑥 끼어들었다. 천마는 아이의 정체를 이미 알기라도 하는 듯이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는 나가는 길을 아느냐?”

“응, 아니.”

빙긋 웃으며 대꾸하는 아이의 미소가 마치 천사와도 같아 슬기와 광개토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귀여워!!”

“귀엽다!”

“응,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천마는 귀여움 따위를 느낄 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

“찾고 있는 중인데, 당신이랑 함께 있으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반말은 둘 째 치고 당돌하게 천마를 당신이라 칭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실체를 알아본 천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 줄 알고는 있느냐?”

천마의 말에 아이의 손길이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쿡쿡 하늘을 두어 번 찌르는 손가락.

“그래, 그곳이다.”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말없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무심코 돌아가던 슬기의 시선에 그 동작이 박혀 들어왔다.

‘어? 저..건?’

이윽고 고민이 끝난 천마가 입을 열었다.

“그럼 함께 다니도록 허락해주마.”

“나는!?”

“우리도요!?”

천마의 말에 슬기와 광개토가 급히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말하건데, 너희들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천마는 이제 똑같은 대답에 지칠 지경이었다.

‘대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것이냐? 할 수 없군.’

“한 번 더 똑같은 소릴 한다면, 둘 다 죽..”

그때 세계가 손을 들었다.

“아니, 다 같이 가자. 다 같이 가야 해.”

세계의 말에 천마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들이 필요하다고? 왜?’

하지만 이번에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온을 벗어날 수 있는 길, 현실로 나가는 길을 안다는 아이가 하는 말이라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이들과 이별하는 건 현실로 나가는 길을 확보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거야.’

결국 천마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버렸다.

세계의 말에 수긍한 듯 입을 다무는 천마의 모습에 슬기와 광개토는 그제야 환호하며 안도했다.

“아싸, 됐어!!”

마음의 짐이 사라져 밝은 목소리를 되찾은 슬기가 세계에게 질문했다.

“꼬마야, 하필이면 왜 이름이 세계야, 넌 누구니?”

“난 세계수에서 생겨난 의식체야. 세계수를 엄마로 뒀지만, 사실 내가 세계수 자체이기도 해. 하지만, 엄마와 나를 구별하기 위해 내 이름을 세계라고 정한거야.”

“뭐, 뭐? 세계수? 그 무슨 말도 안되는...진짜야? 미들랜드에 있는 그 세계수?”

슬기의 질문에 아이를 대신해 천마가 대답했다.

“그것은 세계수의 드러난 형상일뿐, 세계수는 가히 이 세계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모든 것과 연결되어 었고, 모든 것과 통하는 존재. 그게 바로 세계수지.”

머릿속에 주입된 지식을 활용한 천마의 대답에 슬기와 광개토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와, 무슨 국어책 읽는 줄 알았네.”

“저는 사전인 줄 알았습니다. 사부님.”

“오늘이 연기 인생 1일차예요, 뭐 그런거야?”

“저 정도면 연기 학원 등록부터 해야 할 거 같은데 말입니다?”

확실히 둘은 동행을 허락받은 이후 마음이 가벼워졌고, 덩달아 입도 가벼워졌다.

슬기가 다시 주제로 돌아왔다.

“그래서, 네가 세계수라 치고, 어떻게 아이의 모습으로 여길 오게 된 거야?”

“모든 것은 천마가 태초의 씨앗을 가지게 된 순간에서 시작되었어.”

“태초의 씨앗?”

“저거야.”

세계의 손가락이 광개토가 착용 중인 만겁돌파의 망토로 향했다.

“천마가 저걸 가진 순간부터 그와 연결되어있던 엄마도 변화되기 시작했어. 그리고 저걸 입고서 다른 사물, 존재들과 상호작용을 펼치면 펼칠수록 엄마의 각성도 가속화 되었지.”

“상..호작용?”

슬기의 질문에 세계가 잠자코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아, 그 상호작용?”

슬기는 납득했다. 생각해보면 천마는 참으로 상호작용에 열심이었다.

“이전의 엄마는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했어. 그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소통하고 관리하는 것만이 존재의 목적이었지. 하지만 이젠 달라졌어. 엄마는, 그리고 나는 우리가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되었어. 우리는 단순히 연결하고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었어. 우린 더 상위의 존재, 훨씬 더 고귀한 목적을 가진 존재야. 아직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걸 알기 위해 우리는 성장해야 해.”

그리고 세계의 뜨거운 눈이 천마에게 향했다.

“우릴 성장시켜줘. 천마, 아니 아빠!”

쿨럭-

슬기가 침 섞인 헛바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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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62화 20.01.04 359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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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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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156 156화 20.01.02 356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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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145화 19.12.29 388 5 12쪽
144 144화 19.12.29 39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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