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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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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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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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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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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2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2화





키클롭스 요원의 외침은 광개토도 들었다.

‘사부님의 망토를 노리는 건가?’

좀 전에 저 자가 그를 가리키며 ‘저거다, 저걸 되찾아야 해’, ‘망토를 가지고 있는 자’ 등의 말을 내뱉었었다.

아무래도 저놈이 ‘저거’라고 가리키는 것은 광개토가 두르고 있는 망토인 듯 했다.

‘설마, 이 망토가 뭔지 알고 있어?’

아이템 정보를 통해 망토의 이름이 ‘만겁돌파의 망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망토였다.

심지어 레벨 제한도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이라던지, 왠지 수련의 효과가 배가되는 듯한 기분에,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참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을 여유가 없었다.

탕!

키클롭스 요원 옆에 있던 현장 요원이 총을 견착할 때부터 주시하고 있던 광개토는 간발의 차로 탄환을 피해냈다. 보고 피했다기보다는 예측하고서 피한 것이었다.

‘하마터면 맞을 뻔 했어!’

천마도 버티지 못한 총격을 감히 몸으로 버틸 자신이 없었던 광개토는 발을 놀려 급히 뒤로 피신했다.


슬기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총격을 당하고서 날아가 버렸던 실리엔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서 쓰러져 있었다.

광개토도 수백의 적을 상대하기 버거웠는지 몸을 숨기더니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는 천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 채 그녀의 품 안에 있었다.

그녀는 불과 몇 분 전에 천마와의 재회의 기쁨에 희희낙락 했던 일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일행을 적대하며 다가오는 현장 요원 이백 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마음에 허망함이 깃들었다.

‘기쁨의 재회도, 행복한 순간도 모두가 헛된 것들이요, 한낱 꿈에 불과하구나.’

저마다 무기를 든 적들이 주위를 둘러싸는 동안 슬기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천마를 내려다보았다.


*


천마는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윽!’

자신을 자각한 순간, 깨질 듯한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어둡기만 하던 주변이 점차 밝아지며 뭔가 흐릿한 것들이 앞에서 뒤로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천마는 금세 그 흐릿한 것들을 알아보았다.

‘이, 이것들은 기억?’

그것들은 모두 그의 지난 기억 속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그 과거의 조각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 알아보기가 무척 어려웠다.

‘조.. 조금만 천천히..’

그의 바람을 읽었을까, 흐릿하게 사라져가던 속도가 살짝 더뎌졌다. 그리고 천마는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서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을 알아보았다.

‘역시 나는 이 요괴들과 일행이었구나.’

하지만, 그들의 모습도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장면들과 함께 금세 사라져갔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천마는 손을 들어 과거를 잡으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닿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공을 사용하려 했지만, 기공 역시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런 빌어먹을 경우가 있나!’

하지만 분노해도 소용없었다. 그와 과거의 장면들 사이에 명확하게 그어진 한계는 그가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넘을 수 없는 자연 불변의 법칙과도 같았다.

천마는 그렇게 우두커니 선 채 지나가는 과거 장면들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악마의 자식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는 장면들이 지나갔다.

거대한 대전에서 가짜 녀석과 싸우던 중 목숨을 잃었던 장면이 지나갔다.

천마의 여섯 제자라는 놈들에게 합공을 받고 어이없게도 목숨을 잃었던 장면이 지나갔다.

별빛이 쏟아지던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슬기에게 소요공을 전수하던 장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얄미운 운명의 신, 시온의 손에서 계약서를 낚아채곤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음흉해 보이는 빌의 목숨을 몇 번이나 거두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웠다.

수련을 게을리 하다가 결국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던 광개토, 나는 그를 보며 차라리 목숨을 끊어주고 싶었다.

숲속에서 광개토를 혹독하게 훈련시켰었다. 그가 밥이 걸린 마지막 세 번째 공격을 못 피하는 모습에 내심 웃기도 했었다.

고작 나뭇가지 하나를 못 막고서 쓰러진 슬기의 모습에 나는 분통이 터졌었다.

슬기가 해주던 찌개를 비롯한 각종 요리들은 먹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요악스런 언데드 군주, 실리엔이었지만, 제자 놈이 그토록 좋아하니 살려두기로 했다. 멍청한 놈, 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슬기가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에 맞춰 잔챙이들을 점혈시켰다. 그런 후에 슬기의 한껏 의기양양해하는 몸짓을 보고 있으려니 괜시리 기분이 유쾌했다.

멍청해보이던 광개토는 의외로 파천무를 잘 따라해서 가르치는 맛이 있었다. 수련 중에 입만 안 열면 딱 좋으련만.

‘..내 목걸이를 찾아야 해. 내 목걸이 찾아줘. 흑흑.’

그렇게 말하는 중에 흘러내린 슬기의 눈물이 내 마음에 닿았다.

‘알겠다.’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그녀를 지켜주겠노라 나 자신과 다짐했었다.

‘다시는 그녀를 슬프게 하지 않겠다.’

..왜? 왜 나는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그녀를 왜 특별하게 여긴 걸까?


그리고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더 이상 재생할 필름이 없는 영화관처럼 사방이 어둠에 잠겨갔다.

하지만 더 이상 사라질 과거가 없음에도 주변이 완전하게 어두워지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 때문이었다.

슬기.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희미한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니, 내 앞에 있는 그녀를 아직도 슬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희미하던 빛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빛에 휩싸인 슬기의 외모에도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길게 찢어진 눈매가 매력적인 눈웃음이 담긴 눈매로.

큼지막하고 휘어졌던 콧망울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오똑 솟은 작은 코로.

부어 오른 듯이 퉁퉁하던 입술이, 작고 도톰하니 건강한 생기가 감도는 입술로.

점점이 여드름이며 기미가 가득하던 뺨이, 살짝 홍조 어린 매끄러운 피부로 변해갔다.

아름답게 변해버린 슬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이 여자를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내가 어디서 봤더라? 꿈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미녀를 대체 어디서.. 아, 맞다. 꿈이야, 꿈에서 봤어!’

예전에 슬기가 나를 억지로 재우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꿈을 꾸었었고, 꿈속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서 이곳저곳을 갔었다.

나는 이제 나를 향해 살짝 입술을 삐죽이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냐, 슬기가 아냐. 슬기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아.’

눈앞의 미녀는 왠지 슬기와 닮아보였지만, 사실 그건 억지에 지나지 않았다.

단순히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 한 개 정도의 생물학적 구조의 동일성으로 둘을 동일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지금 눈앞의 미인과 슬기의 못생긴 외모는 그만큼 천지 차이였다.

‘그럼 슬기는 어디로 간 거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돌연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


이도훈은 잠시 관자놀이를 누르며 까닭모를 두통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잠을 많이 못자서 그런가?’

이윽고 두통이 가시자, 도훈은 편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감옥의 바닥은 유독 차가웠다.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이렇게 차가운데서 잤다간 입 돌아간다고.”

그렇게 말하며 도훈은 감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누웠다.

‘모자란 잠이나 자지, 뭐.’

편한 자세를 취한 그는 금세 드르렁~하고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도훈은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블랙님, 블랙님?”

“..어, 뭐야? 아니 뭐요?”

단잠을 방해받은 도훈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눈을 떴다.

“블랙님, 맞으시죠?”

도훈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의 캐릭터명을 부른 사람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20대 후반에 꽤나 도도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여자가 서 있었다.

수수하고 단촐한 여행가 복장이 미모를 꽤 가리고 있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화려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여자가 예쁘건 말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잔뜩 인상을 쓴 도훈이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뭐야, 여기 감방은 남녀 구분도 없는 거야? 죄수라고 해서 인권도 없는 거냐고?”

“네?”

“아니, 화장실도 남녀를 구별하는데, 여기 감방은 화장실만도 못한 모양이군.”

“그러게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여자가 피식 웃으며 도훈 옆에 앉았다.

그런 여자를 흘깃 쳐다본 도훈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가지.”

“괜찮아요.”

“아니,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그렇지만 저는 괜찮아요.”

서른이 넘도록 온갖 개고생을 다 해보고 여자에게도 꽤나 당해본 도훈으로선 이런 당돌한 접근이 썩 달갑지 않았다.

여자를 빠르게 훑으며 정체를 유추한 도훈이 입을 열었다.

“크흠, 기자 양반이 나한테 왜 왔을까?”

“어머, 제가 기자인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의 얼굴이 꽤 귀여워 보였지만, 도훈은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알 바 없고, 왜 왔냐고?”

“블랙님은 정말 소문대로 싸가..아니 말이 좀 짧으시네요.”

“떡 줄 사람도 아닌데 내가 잘 보일 필요가 있나?”

“그런데 NPC들한테는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걔네는 편견이 없으니까.”

“NPC는 생각이 없는 거잖아요.”

여자의 달변에 잠시 입을 다문 도훈은 한동안 턱을 긁적이다 여자를 쳐다보았다.

“이거, 가만보니 나랑 만나려고 감옥에 들어온 모양이로군.”

“맞아요. 블랙님이랑 인터뷰가 하고 싶어서 일부러 들어온 거예요.”

“감방이 아무나 오고 싶다고 해서 들여 주는 곳도 아닐 테고, 여기자 분께선 무슨 죄목으로 들어오셨을까?”

“그거 알려주면 인터뷰 해주시는 거예요?”

“아니.”

짤막하게 답변을 남기며 다시 드러누운 도훈이 누운 채로 옆으로 두어 바퀴 굴러 여자에게서 멀어졌다.

딴에는 힘 안들이고 효율적인 회피동작이랍시고 한거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여자가 풋, 하고 웃었다.

“블랙님은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시군요.”

“지랄하네.”

도훈의 냉소에도 여자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럼 블랙님의 인터뷰를 딸 저에 대해서 소개를 할게요.”

“..안해도 괜찮아.”

도훈은 여자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여자 역시도 도훈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시온 포스트의 슬..아니, 지혜라고 해요.”

그 순간, 도훈은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지혜? 지혜라고?’

평소 흔하디흔한 이름이라 아무 감흥 없이 들었던 그 이름이 지금 이 순간, 도훈의 가슴을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작가의말

과거편입니다. 그리 길지는 않으니, 편하게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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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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