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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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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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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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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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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6화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진즉에 열 번의 인터뷰는 끝이 났지만, 슬기는 블랙을 떠나지 않았다.

블랙도 슬기를 보내지 않았다.

슬기는 기자라는 직업을 포기했고, 블랙과 같은 직업을 선택했다.

NPC 인권 운동가.


아니, 그건 그냥 둘이서 하는 소리였고, 공식적인 그들의 직업은 ‘탐정’이었다.


*


새까만 흑의에 얼굴마저 숯검댕칠을 한 블랙이 다가와 슬기에게 물었다.

“다들 나갔어?”

“어.”

“샤먼은?”

“그 놈도 나갔어.”

“확실해?”

“그럼!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나갔어. 확실하다고!”

블랙의 등 뒤 저 멀리로 붉은 빛이 하늘 높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노을빛과는 확연히 다른 날것 그대로의 붉은 빛이었다.

그의 방화로 오크 부락이 열렬히 불타고 있었다.

모든 오크들이 진화 작업을 하러 간 탓에 정작 블랙과 슬기 주변은 오크 새끼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콰앙-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하늘 높이 불은 빛이 솟구쳤다.

값비싼 상급 화약의 고급진 폭발음이었다.

저 정도 화재라면 오크 샤먼이라 할지라도 단번에 진화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 탐정 맞아? 탐정인데 왜 불을 지르고..”

“자, 그럼 2단계로 가볼까?”

슬기의 투정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블랙이 앞장서 움직이자, 슬기도 별수 없이 그를 따랐다.


블랙과 슬기는 오크 부락의 신당으로 뛰어들었다.

둘의 목표는 신당 안에 있을 오크 부락의 신물이었다.

슬기의 보고대로라면 신물을 지키고 있을 경비병이며, 오크 샤먼이며 모두 진화 작업을 하느라 자리를 비웠을 것이었다.


“젠장.”

신당에 진입하자마자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으며 블랙이 우뚝 섰다.

간신히 윤곽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어둠 너머에 오크 샤먼이 서 있었다.

언뜻 봐도 여느 오크들에 비해 월등히 큰 키와 단단한 어깨, 게다가 가슴팍에는 사람의 머리통만한 두개골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그 모습이 한층 섬뜩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손에 들린 까만 지팡이마저 괜히 요사스러워보였다.

신당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오크 샤먼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슬기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분명히 나갔는데?”

“두 놈이었나 보지.”

꽤나 큰 규모의 오크 무리라 어쩌면 샤먼이 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정작 그 불길한 추측이 들어맞자 블랙으로선 입맛이 썼다.

블랙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플랜 B다.”

“B가 있었어?”

“오빠가 저놈을 상대할 테니까 넌 곧장 뒤쪽에 있는 신물을 빼 와.”

당황한 슬기의 표정을 무시하고 블랙은 차분하게 지시했다.


오크 부락의 신물.


본디 오크들은 큰 무리를 이루기 어려운 족속들이었다.

워낙 호전적인 놈들이라 같은 오크 종족이라 하더라도 일족이 아니라면 적대하고 보는 것이 그들의 습성인 까닭이었다.

그런 오크들이 드물게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있는데, ‘신물(神物)’이 있는 경우였다.

신물을 중심으로 오크들은 그들의 종특인 적개심마저 버려가며 모여들었고, 그것이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둘은 전략을 짰다.


첫째, 방화를 통해 오크들의 시선을 돌린다.

둘째, 신당에 잠입해 신물을 탈취한다.

셋째, 인근 고원의 오우거 서식지에 신물을 갖다 놓는다.

넷째, 신물을 찾으려는 오크와 오우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

다섯째, 꿀을 빤다.


그렇게 나이스한 방법으로 다음의 퀘스트를 완료할 생각이었다.



***퀘스트 ‘오크 퇴치 (4)’***


그동안 당신들의 노력으로 고마 마을은 아슬아슬한 평화와 안정을 누려왔습니다만,

당신들의 활약이 빛날수록 오크들의 분노도 커져갔습니다.

이제 분노한 오크들의 칼날이 마을로 향합니다.


오크 부락을 파괴하여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모색하십시오.

NPC 마을에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십시오.



블랙의 지시대로 슬기가 벽에 붙어 게걸음으로 돌아가자, 오크 샤먼의 고개가 슬기를 쫓았다.

“움직인다, 죽는다! 멈춘다, 다리!”

슬기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던 샤먼이 돌연 신속하게 지팡이를 들어 블랙의 은밀한 검격을 막았다.

캉, 날붙이와 나무로 된 지팡이가 부딪혔는데, 금속성이 울렸다.

“젠장!”

기습 공격이 실패한 블랙은 오크 샤먼이 지팡이를 휘둘러 오자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몸을 숙이며 빠르게 적의 등 뒤로 돌아갔다.

전투의 승리공식 하나, 적의 사각지대를 이용할 것!

뒤로 물러서면 안전하겠지만, 사각지대로 파고들면 위험한 만큼 공격찬스가 생긴다.

적의 측면을 파고들던 블랙은 좌수의 단검으로 적의 옆구리를 찍었다.

턱.

단검이 옆구리에 단단하게 대어진 적의 방어구를 가르지 못하고 답답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시야에 가득 담겨오는 묵빛의 지팡이!

어느새 돌아선 오크 샤먼의 반격이었다.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속도로 들이닥치는 그 빠른 공격에 블랙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한다!’

블랙의 머릿속에 적색신호가 가득 켜지는 순간, 적의 지팡이 공격이 느려졌다.

아니, 적의 공격이 느려진 게 아니라 일순간 블랙의 인지 감각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이었다.

지팡이뿐만 아니라, 잔뜩 인상을 쓴 샤먼의 얼굴에 천천히 퍼지는 미소하며, 천천히 휘날리는 옷자락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느려져 있었다.

‘초감각이야!’

말로만 듣던 300레벨 이상 전용 스킬 ‘초감각’을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며 초인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했다.

‘죽을 위기에서 저절로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이라고 했지?’

그 말은 지금의 상황이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말?

최근에 300레벨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이 순간 블랙은 죽고 말았을 것이었다.


샤먼의 옆구리를 힘껏 밀치며 블랙은 뒤로 굴렀다.

그렇게 적과의 거리를 벌린 블랙이 자세를 다잡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와, 오크 나부랭이가 왜 이렇게 긴장 타게 만들어?”

고작 오크 마을에서 이런 긴장감이라니?!

오크 샤먼이 여타 오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녀석은 그 중에서도 특출난 녀석이었다.

방금도 그랬다.

애초에 회피를 목적으로 밀었다지만, 적어도 녀석도 휘청거렸어야 정상인 것인데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게다가 녀석의 단순해 보이는 지팡이 공격에 초감각이 발동되기도 했었다.

오크의 단조로운 공격에 죽을 뻔했었다는 거다.

“어디 가서 300레벨이 오크 샤먼한테 맞아죽을 뻔했다고 하면 격 떨어지는 농담이라고 하겠지?”

블랙은 양손에 쥐어진 한손검과 단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소리한다, 웃긴다, 같다, 삼백.”

웃음기 섞인 그르르 거리는 샤먼의 말에 블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한다..웃기는..삼백 같은..?”

오크 특유의 이상한 문법으로 이루어진 말이 블랙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조합되었다.

“...300 같은 웃기는 소리한다고?”

블랙의 추측에 오크 샤먼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녀석이 곧장 앞으로 성큼!

녀석의 지팡이가 위에서 아래로 번개처럼 내려 꽂혔다.

부우웅-

블랙은 비스듬히 전방으로 이동하며 장검을 들어 지팡이를 빗겨냈다.

이번에도 뒤로 피하기보다는 다소 위험하더라도 반격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윽!’

비스듬한 각도로 미끄러트려 망정이지, 제대로 받았다간 검이 부러졌을지도 모를 힘이었다.

그러면서도 블랙은 빠르게 단검으로 눈앞에 드러난 샤먼의 오른쪽 허벅지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본인의 힘에 샤먼의 공격에 실린 강력한 힘까지 절묘하게 더한 내려찍기였다.

키잉-

믿을 수 없게도 단검은 피부를 뚫지 못하고, 금속성을 내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블랙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방으로 몸을 날리며 앞구르기로 자리를 벗어났다.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자세를 다 잡은 블랙이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 이미 풀 버프 상태였구나.”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오크 샤먼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 블랙과 슬기를 맞이한 것이었다.

거대 무리를 이끄는 오크 샤먼의 주술적 역량이 풀 버프로 이미 발현되어 있는 상황!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블랙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처음에는 짙은 어둠 탓에 겨우 윤곽만 알아볼 수 있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니 한결 주변의 상황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바닥에 그려진 적갈색의 주술진.

‘약화진이군. 이것 때문에 내가 약해진 거야.’

그리고 사방에 걸린 각종 동물들의 머리뼈.

그저 장식인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하나같이 주술 토템이었다.

비어있는 눈구멍마다 희미하게 붉은 빛이 어려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함정이었구나!’

블랙은 비로소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 정도 준비가 있었기에 오크 샤먼 따위가 300레벨을 넘어서는 유저를 압도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든다, 목걸이. 해골 대가리, 너!”

블랙의 일방적인 치고 빠지기가 몇 차례 이루어지자 샤먼의 안광이 붉게 피어올랐다.

피해를 주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단단히 골이 난 모양이었다.

크아, 하고 괴성을 지르는 샤먼의 입으로 까만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심상치 않은 그 모습에 블랙은 저 멀리 임무를 수행중인 슬기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마침 신물을 집어 드는 슬기의 모습이 보였다.

신물은 손바닥 두 개를 붙여놓은 듯한 크기의 납작한 조각상으로 머리 세 개 달린 히드라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슬기가 신물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소리쳤다.

“어떡해? 인벤토리에 안 들어가!”

“조용해!!”

하지만 이미 샤먼의 고개가 슬기 쪽으로 돌아섰다.

블랙이 그토록 목숨 내놓은 공격을 펼치며 주의를 끌었건만, 샤먼의 어그로는 단번에 신물과 신물을 든 슬기로 향했다.

“쿠화악!! 당장 내려놔라!! 자른다, 손가락, 여자 인간아!!”

즉시 블랙에게서 관심을 거둔 오크 샤먼이 슬기를 향해 위협적인 몸짓으로 성큼성큼 두세 걸음 달려 나갔다.

300레벨을 달성한 블랙도 힘겹게 상대하는 녀석인 만큼 슬기에게 가도록 두어서는 안됐다.

블랙이 장화에서 비도 하나를 꺼내들었다.

휘발성 기름을 잔뜩 먹인 탓에 비도는 무척이나 번들거렸다.

“좀 더 있다가 멋있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블랙이 중얼거리면서 세차게 팔을 뿌렸다.

쉭-

날카롭게 휘어져 날아간 비도가 오크의 옆구리를 제대로 가격했지만, 곧바로 작은 불꽃을 튀기며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콰항-!!!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샤먼의 옆구리에서 거대한 불꽃 광채가 폭발했다.

폭발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오크 샤먼은 폭발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블랙 역시 뒤로 날아가 버렸다.

“뭐, 뭐야? 오빠, 무슨 일이야?”

날듯이 달려온 슬기가 블랙을 부축했다.

다행히 블랙은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폭발에 직격당한 샤먼은 옆구리가 통째로 날아갔고, 그대로 절명해 버린 상태였다.

“이건 무슨 스킬이야?”

오크 샤먼을 일격에 격살해버린 강력한 공격에 슬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블랙은 대답을 피했다.

이건 스킬이 아니었다.

처음 격돌 때에 적의 허리를 붙잡고 미는 척하면서 상급 화약 주머니를 하나 붙여 놓았었고, 이후 휘발성이 강한 공격을 적중시켜 폭발을 유도한 것일 뿐이었다.

바위를 부술 때나 사용하는 상급 화약의 폭발력을 한낱 육신이 버텨낼 리 만무했다.

하지만 블랙은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또한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블랙이 슬기의 빈손을 쳐다보며 물었다.

“신물은?”

“어? 떨어뜨렸는데 깨졌어.”

“뭐?”

신물의 형태가 머리 셋 달린 히드라 모양일 때부터 왠지 기분이 찜찜했었는데, 그게 부서졌다고 하니 아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꽉 잡고 있었어야지.”

“갑자기 그런 폭발이 있었는데 안 놀라고 배겨!?”


그때 어둠보다 더 어둡고, 신당 내부를 모두 뒤엎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났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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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62화 20.01.04 359 6 11쪽
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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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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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50화 19.12.31 366 4 13쪽
149 149화 19.12.31 359 4 12쪽
148 148화 19.12.30 37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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