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612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6 07:00
조회
339
추천
4
글자
12쪽

16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7화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나는 순간, 강대한 적의 기척을 눈치 챈 블랙이 슬기를 부둥켜안으며 신당 밖으로 몸을 날렸다.


크와아아-!!


등 뒤에서 거대한 적의 괴성이 들려왔다. 오랜 세월 쌓아둔 한을 일거에 쏟아내는 듯한 괴성이었다.

블랙은 뒤돌아 적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개를 돌릴 단 한순간의 동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순간이었다.

블랙은 슬기를 더욱 굳건히 안으며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러자 블랙의 품에 안긴 탓에 자연스레 뒤를 보게 된 슬기가 신당을 부수며 몸을 일으킨 머리 셋 달린 거대한 용의 모습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저, 저게 뭐야? 용처럼 생겼는데 대가리가 세 개야, 오빠!”

“히드라야. 신물이 깨지면서 풀려 나왔든지, 소환되었든지 했을거야.”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블랙이 대답했다.

어쩐지 신물의 모양이 히드라 형상일 때부터 기분이 더럽다고 생각한 터였다.


블랙의 빠른 판단과 신속한 움직임 때문에 히드라는 잠깐 사이에 블랙과 슬기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괜히 기지개를 좀 오버해서 폈다가 짜증날 일만 늘어버린 셈이었다.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나 꽤나 짜증이 난데다가 그의 긴 잠을 방해한 것이 분명한 놈들을 눈앞에서 놓쳐 버린 히드라로서는 분노를 풀 다른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 히드라의 눈에 보인 것이 오크 부락의 화재였다. 큰 불 주위로 오크들이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 곳이다.”

“저 놈들이 우릴 가둬놨었어.”

“우릴 깨운 놈도 저기 있을 거다.”

히드라의 세 머리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의견을 통일했다.

곧 히드라는 거대한 몸을 이끌고 주변의 어설프게 지어진 오크 주거 건물들을 박살내며 화재가 난 곳으로 이동해갔다.


둘은 히드라를 피해 신당 주변의 바위틈에 난 조그만 동굴로 숨어들어 있었다.

화재가 난 곳을 향해 멀어져가는 히드라의 모습에 둘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인줄 알았어.”

“비슷하긴 하지. 다만 히드라는 드래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마이너 버전이야. 마법도 못쓰지. 날개도 없고. 무엇보다 좀 멍청하지.”

블랙은 슬기의 부족한 상식을 보완해주었다. 지난 1년여 간의 동행중에 흔히 있어온 일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나자 블랙은 그제야 슬기의 뺨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황급히 신당을 벗어나다 어디 긁힌 모양이었다.

“쯧, 여자 몸에 흉져서 좋을 게 없는데.”

“아야.”

블랙이 상처를 만지자 슬기는 그제야 상처가 난 줄 알고 신음을 뱉었다.

가방에서 회복약을 꺼내 슬기에게 건네며 블랙이 말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자.”

“퀘스트는?”

“퀘스트고 뭐고 간에, 히드라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몹이 아냐.”

히드라는 공격대 규모의 공략 인원이 필요한 강력한 몹이었다.

블랙이 판단하기로 당장 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숨죽이고 숨어있을 수밖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슬기가 말했다.

“우리가 실패도 다 해보네?”

“..그래. 첫 실패네.”

“그럼 이번 퀘스트 영상은 지워버릴까?”

“왜?”

“실패했으니까.”

“실패한 기록은 지우겠다? 전직 기자라서 그런지 기록 조작에 관심이 많군.”

“뭐, 뭐?!”

발끈하려던 슬기는 블랙의 눈가에 깃든 웃음기에 그만 웃고 말았다.

자연히 손에 쥐고 있던 노스텔지어의 목걸이도 다시 놓았다.

“좋아. 이건 성공이니 실패니 그런 게 아닌, 그냥 우리의 이야기고 추억이니까. 안 건드릴게.”

슬기는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 노스텔지어의 목걸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난 일 년 간의 기록, 블랙과 그녀의 동행, 그들의 추억이 담긴 목걸이였다.

그때 둘에게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띠링-


퀘스트 ‘오크 퇴치 (4)’ 가 완료되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났던 강대한 오크 족의 세력이 완전히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오크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 ‘고마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당신에게 감사해 합니다.


*보상 물품: 없음

*보상 금액: 없음

*보상 XP: 165,000,000


“음?!”

“어? 오빠도 떴어? 퀘스트가 완료되었대. 대박!”

“..히드라가 열일한 모양이네.”

아무래도 히드라가 오크들을 미친 듯이 밟아 죽인 모양이었다.


크롸롸롸--!!


마침 블랙의 말에 맞추어 저 멀리서 히드라의 괴성이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잡아 죽였건만, 자신의 잠을 깨운 원흉들은 끝내 찾지 못한 히드라의 분노에 찬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곧이어 또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띠링-


***퀘스트 ‘새로운 위협’***

오크 족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더욱 거대한 적이 등장하였습니다.

신물의 속박에서 벗어난 ‘삼두 히드라’가 파괴 본능을 앞세워 ‘고마 마을’을 덮치려 합니다.


히드라의 위혖을 제거하십시오.

님들이 싼 똥을 치워 주십시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흠, 싼 똥을 치우라는데? 메이커 녀석이 결국 시스템 메시지로 본색을 드러내는군.”

“오빠, 메이커도 어지간히 급했나봐. 히드라의 위혖이래, 오타 어쩔?”

둘은 오래전부터 그들을 전담해 퀘스트를 만들어주고 있는 메이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메이커가 이렇듯 대놓고 퀘스트 메시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메이커를 비웃은 후에 슬기가 물었다.

“할거야?”

“아니.”

“역시 그렇지.. 뭐? 안 해?”

블랙의 안한다는 말이 뜻밖이었는지 슬기가 눈을 크게 떴다.

블랙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해, 아니 못하지. 저걸 우리 둘이서 어떻게 잡냐.”

“그럼 어떡해, NPC들이 많이 죽을 텐데.”

“그렇다고 불가능한 걸 할 수는 없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뭐, 잠깐..!”

슬기가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말릴 새도 없이 블랙의 몸이 스르르 노란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


둘은 지난 한 달 전부터 그래왔듯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불편한 기색으로 반찬을 집던 슬기가 결국 입을 열었다.

“오빠, 정말 그냥 그대로 둘거야?”

“지혜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죽을건데.”

“어짜피 NPC일 뿐이고. 그놈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그래도 사람들이 죽는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이 얘긴 그만하자, 지혜야.”

그 말을 끝으로 도훈이 굳게 입을 다물고 말없이 밥을 먹자, 슬기는 조용히 도훈의 눈치를 살폈다.


그건 그렇고 도훈은 슬기의 이름을 여전히 지혜로 알고 있었다.

슬기가 처음에 자신을 지혜라고 소개한 이후로 한 번도 정정하지 않은 탓이었다.

사실 지혜와 슬기는 이름 외에는 다를 것이 없는 쌍둥이 자매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지혜라는 이름을 빌려 쓰더라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슬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말없이 식사를 하던 슬기가 조심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럼.. 오늘 계획보다 시온도 빨리 끝냈는데, 우리.. 할아버지한테 갈까?”

그 말에 도훈이 턱을 매만졌다.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말했었잖아. 오늘 할아버지 생신이라고. 사실 할아버지가 오빨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 어차피 게임도 빨리 끝냈고..”

“영감님. 나 되게 싫어 하셨잖아.”

“그땐 그랬지만.”

“그때고 지금이고, 난 여전히 고아에, 부자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그런 이유로 날 싫어하신 분이 이제 와서 날 달리 보실 이유가 없지.”

이번에는 슬기가 입을 다물었고, 슬기의 긴 침묵에 도훈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도훈은 말없이 슬기의 화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앙다문 작은 입술에 콧잔등에 살짝 잡힌 귀여운 주름, 살짝 찡그린 눈썹하며 상큼하게 올라간 눈매가 도훈의 눈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도훈은 화난 슬기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 가자, 가.”

“정말이지? 남아 일언.”

“중만금이지.”

도훈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슬기가 확답까지 마무리 지었다.


귀여운 커플 헬멧을 착용한 둘은 도훈의 바이크에 올라탔다.

슬기의 할아버지가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도훈의 성미를 아는 슬기가 먼저 거절하고 나섰다.

곧 둘을 태운 바이크는 시내를 벗어났고, 국도로 진입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도로는 환했고, 퇴근 시간을 살짝 비켜난 터라 차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몇 시까지라고 했지?”

“아홉 시까지 오면 된대.”

“생신잔치를 그렇게 늦게 해?”

“몰라, 그냥 오라니까 가는 거지.”

“지혜야, 아홉시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럼 더 땡겨!!”

“알았어, 꽉 잡아. 놓치면 그냥 두고 간다!?”

“흥, 누가 혼자 가게 냅둔데? 귀신이 돼서라도 달라붙을 건데?”

“야, 너라면 귀신이라도 땡큐야. 하하”

“난 오빠라도 귀신은 싫어!”

“뭐? 하하하”

“하하하”

바람 소리 가득한 가운데 둘은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옆에서 나타난 트레일러가 둘을 쳐 날려버렸다.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차량이었다.


허공을 날며 도훈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땅에 떨어졌다.

등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고, 곧이어 등에서 허리,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시야에 보이는 그의 팔은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너무나 큰 고통에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저 편에 슬기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청순함을 돋보이게 하던 흰색 면티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고, 그녀의 머리를 보호하던 헬멧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도훈은 젖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그녀를 향해 천천히 기어갔다. 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머리와 뺨, 턱을 거쳐 목으로 줄줄 흘렀다.

한편으로는 이해 못할 지금의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트럭은? 사고 낸 새끼는 왜 안 오지? 설마 뺑소니를 당한 거야?’

도훈은 망가진 몸뚱이로 기어코 슬기 곁에 이르렀다.

“괘..괜찮아?”

도훈이 정작 하나도 괜찮지 않은 제 목소리로 슬기에게 물었다.

하지만 슬기는 눈을 뜬 채 도훈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오빠, 몸이 안 움직여. 말이 안 나와. 무서워, 오빠!’

슬기가 미동도 하지 않고 눈만 굴려대자, 도훈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지혜야, 왜 그래. 왜 그러냐고, 지혜야!”

이토록 고통스러운 순간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내 남자의 입에서 자신이 아닌 동생의 이름이 불러지는 것을 보며 슬기는 뒤늦게 통탄했다.

‘오빠, 그거 아냐, 내 이름. 내 이름이 아니야. 내 이름은..’

“스..스....”

슬기는 뒤늦게 자신의 본명을 밝히려 했지만, 나오는 건 바람 새는 소리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도훈도 점점 시야가 흐려져 가는 걸 느꼈다.

그건 시야를 가릴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 탓만이 아니었다.

도훈은 냉정하게 그와 슬기의 상황을 판단했다.

“피..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의식이...흐려지고 있어. 이대로는.. 둘..다 죽을거야..”

도훈은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냈다. 비교적 멀쩡한 왼손으로 슬기의 손을 붙잡았다.

여전히 슬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눈만이 수많은 감정을 내비치며 그를 위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슬기를 쳐다보던 도훈은 그녀의 모습을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담아내며 눈을 감았다.

그의 고개가 숙여졌고, 이마가 차가운 도로 바닥에 닿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무식 천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1 171화 20.01.07 374 5 12쪽
170 170화 20.01.07 364 4 12쪽
169 169화 20.01.06 350 5 13쪽
168 168화 20.01.06 347 4 13쪽
» 167화 20.01.06 340 4 12쪽
166 166화 20.01.05 365 4 12쪽
165 165화 20.01.05 368 4 12쪽
164 164화 20.01.05 359 4 12쪽
163 163화 20.01.04 350 4 11쪽
162 162화 20.01.04 360 6 11쪽
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158 158화 20.01.03 356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156 156화 20.01.02 356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3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151 151화 19.12.31 373 6 13쪽
150 150화 19.12.31 366 4 13쪽
149 149화 19.12.31 360 4 12쪽
148 148화 19.12.30 376 5 13쪽
147 147화 19.12.30 370 4 12쪽
146 146화 19.12.30 418 5 13쪽
145 145화 19.12.29 388 5 12쪽
144 144화 19.12.29 391 4 11쪽
143 143화 19.12.29 404 5 12쪽
142 142화 19.12.28 402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