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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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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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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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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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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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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58화





태고가 사라지자, 그의 영향 아래 통제받고 있던 수천에 이르는 왕릉 강시들이 일제히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질서 정연하게 서 있던 강시들이 갑자기 무질서하게 움직이자 순식간에 왕릉 안은 어수선한 시장통처럼 되어 버렸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강시들, 제자리에서 통통 뛰는 강시들, 그리고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다른 강시들과 몸을 부딪쳐 대는 강시들.

그리고 인근에 있던 강시들은 일행을 발견하고는 흉성을 드러내며 양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인간의 호흡을 감지한 강시들의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바로 슬기와 광태토에게 달려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도 사방은 꺼지지 않은 불길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불을 무서워하는 강시들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크아악!!”

“햐악!! 햑!”

강시들은 불 때문에 접근도 못하면서 괜히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과 소리에 천마가 쯧쯧하고 혀를 찼다.

“불쌍한 것들. 부모를 잃고서 갈피를 못 잡고 있구나.”

강시들의 부모라 할 수 있는 천년강시, 태고를 때려잡은 당사자가 그런 소리를 하니 꽤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그 말에서 광개토는 어떤 힌트를 얻었다.

“사부님, 이 강시들이 군주가 없어서 이러는 거라면 군주를 다시 세워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부라는 말이 난생 처음 듣는 냥 낯설면서도 또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고 느끼며 천마가 턱을 들었다. 계속 말해보라는 몸짓이었다.

“우리 리엔이가 다름 아닌 언데드 군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 있는 강시들도 리엔이의 부하로 삼아버리게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들을 계속 보고 싶다고?”

슬기가 눈을 부라리며 끼어들었다.

실리엔도 모처럼 슬기의 말에 동의했다.

“이런 더럽고 천박한 것들을 부하로 삼으라니, 미친 거 아니야?”

아직 망토를 벗지 않은 실리엔은 욕을 하는데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아니, 난 그냥 언데드 군준데...부하도 없고 해서, 리엔일 생각해서 말한 건데..”

그때 우왕좌왕하는 강시들을 비집고 까만 해골병, 까드득 경이 나타났다.

꽈드득 꽈드득.

까드득 경이 다가오자, 실리엔이 좀처럼 보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까만 해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구나.”

왠지 모르게 행복해 보이는 몸짓으로 몸을 배배꼬는 까드득 경을 보며 슬기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아까 이게 엄마를 찾는다고 입을 벙긋거리던데, 얘가 말하는 엄마가 꼬맹이 너 맞지?”

이미 슬기보다 살짝 키가 더 커버린 실리엔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살짝 턱을 끄덕였다.

“근데, 왜 개토한테는 아빠라고 하는거지?”

슬기의 돌발 발언에 옆에 있던 광개토가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상기된 얼굴로 광개토가 실리엔을 쳐다보자, 실리엔이 황급히 망토를 벗어 그에게 던졌다.

만겁돌파의 망토로부터 벗어나자, 실리엔의 표정은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

슬기는 인공지능의 뒤로 숨어버린 새침한 표정의 실리엔을 보며 그녀의 임기응변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임무를 완수한 까드득 경은 까만 연기로 화해 실리엔의 치마폭으로 사라졌다.


“강시와 뱀파이어는 결이 다른 언데드라 한데 섞일 수 없다. 개와 고양이가 한 무리로 섞일 수 없음과 마찬가지니라.”

천마가 광개토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개랑 고양이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워본 경험이 있는 광개토가 말대꾸를 했지만, 천마는 무시한 채로 또 다른 고려사항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의 군주가 된다면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건 알고 지껄이는 거냐?”

그 말에 광개토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실리엔을 여기에 두고 가야 한다니,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헉!!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지 말입니다.”

고개를 조아리던 광개토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잿빛 망토를 보고 천마에게 내밀었다.

“사부님, 사부님의 망토입니다.”

하지만 망토를 슬쩍 일견한 천마는 도로 고개를 돌렸다.

“일 없다.”

천마는 만겁돌파의 망토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잿빛은 그의 선호 색상도 아닐뿐더러 그에게는 원래 맞춤형 망토인 ‘천마의 망토’가 있었다.

그러하니 만겁돌파의 망토를 ‘처음’ 보는 천마로서는 망토를 갖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가질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손만 뻗어 만져보았더라도 망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청량감에 냉큼 욕심을 가졌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마는 그가 지난 몇 개월간 그 망토를 한시도 빼놓지 않고 착용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광개토는 천마가 망토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슬그머니 자신이 착용했다. 안 그래도 지난 한달 가까운 기간 동안 망토의 효능을 톡톡히 누려온 그였기에 천마가 가지길 거부하자 두 번 권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맡아두고 있겠습니다.”

“야, 나도. 밤엔 내가 써야지.”

천마가 소유권을 거부하는 모습에 슬기도 얼른 한발 걸쳤다.


천년왕릉을 떠나려던 천마는 왕릉 안에 ‘전리품’이 많을 거라는 슬기의 말에 왕릉 내부로 앞장서서 진입했다.

비록 수천의 강시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강시들은 일행의 행보에 거의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저 강시들 중 진입 경로에 있던 소수만이 괜히 양손을 쳐들고 달려들다 천마의 손짓에 박살나 버리곤 했다.


왕릉의 중심부는 좁은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었지만, 애시당초 길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천마에게 그런 것은 무의미했다.

쾅쾅쾅쾅-

천마의 움직임에 따라 앞을 가로막던 벽마다 천마 몸만 한 구멍이 생겨났다. 벽을 부숴가며 이동하는데도 천마의 전진 속도는 무척 빨라,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은 부지런히 쫓아가야 했다.

그렇게 천마스러운 방법으로 순식간에 미로를 돌파한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관 두개가 놓인 황금색 석실이 나타났다.

분명히 강시에게 조명 따위는 필요 없을 텐데, 여기저기 박힌 야명주들 덕분에 어스름한 저녁 무렵 정도로 주변 사물이 분간 가능했다.

화려하게 치장된 두 개의 관은 크기가 다소 차이가 났는데 그중 작은 관은 언뜻 봐도 이번에 새로 만든 듯해 보였다.

“어, 관이 두 개네? 하나는 좀 전에 죽은 강시 대장 것일 거고, 요 작은 건 누구 거지?”

닫혀있는 작은 관을 쳐다보던 슬기가 광개토를 툭툭 쳤다.

“열어 봐.”

“아, 누님이 열어보십시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슬기도, 광개토도 상대가 열길 바라는 눈치였다.

서로 관을 열어보라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실리엔이 끼어들었다.

“소녀의 것입니다.”

“뭐?”광개토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동모아의 언데드 군주가 자기랑 같이 살자며 만든 관이랍니다.”

“오, 그럼 여기가 너네 신혼 방이야?”

슬기는 싱글거리는데, 광개토는 분통을 터뜨렸다.

“천년 강시면 천년 살았다는 소리아냐? 천살이나 처먹은 놈이 감히 우리 리엔이를 넘봐? 이런 늙어빠진 도둑놈이 있나!!”


일행들이 신혼방이니 어쩌니 하는 동안, 천마는 관 뒤쪽에 놓인 선반 위의 보물들을 살펴보았다.

각종 값비싸 보이는 그릇하며, 식기등이 선반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멀리서 봤을 땐 살짝 반짝거리기도 하는 것이 뭔가 있어 보였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모두 곱게 썩어 있었다.

천마가 슬기를 쳐다봤다.

“무엇이냐, 이것들은.”

“아, 천 년 천 년 하더니 진짜 다 썩어버렸네. 얘네들은 어떻게 천 년 전 걸 아직도 가지고 있을 생각을 했지? 강시라서 이런 거 안쓰나?”

다시 살펴보니, 선반도 녹이 쓸데로 쓸어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릇과 식기 등의 물품들도 부식되거나 썩어서 사용이 불가능해 보였다.

“진짜..마지막 쇼핑을 한지 한 천 년쯤 되었나 본데?”

물건을 뒤적여 보던 슬기가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가만히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잔뜩 부식된 그릇 한 점을 들고 우두커니 서있는 천마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아무 것도 못 느꼈겠지만, 슬기는 천마가 슬슬 열 받고 있음을 느꼈다.

‘아놔, 왜 이런 거 밖에 없지? 아저씨 마음에 들 만한 게 뭐라도 하나 있어야겠는데!’

천년 왕릉의 묘실은 쓸데없이 천년의 역사가 잘 고증되어 있었다.


천마가 그렇게 그릇 한 점을 들고서 가만히 서 있자, 슬기의 눈에 비로소 앞머리를 깐 천마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왔다.

날카롭지만 가늘지는 않은 까만 눈썹이 쭉 뻗은 아래로, 검은자위와 흰자위의 경계가 뚜렷한 날선 눈매가 천마의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게 뻗은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은 그가 한고집하는 까탈스러운 성격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이마에 붉은 빛으로 빛나는 문양이었는데, 마치 눈동자 같기도 하고, 그냥 의미 없는 표식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성격대로 못됐게 생긴 얼굴이지만, 잘생겼어.’

같이 다닌 지 4개월이 넘어가는데, 항상 앞머리를 내리고 있었던 터라 제대로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노스텔지어의 목걸이 속 전 남친의 얼굴과 눈앞의 천마를 비교했다.

‘아저씨도 빠지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더 나아. 그 사람은...’

그리고 슬기는 비로소 깨달았다.

‘기억이 안나..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나.’

그가 죽은 지 벌써 10개월. 목걸이가 사라진 탓에 과거 회상을 못한지도 4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들을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바로 천마와 동행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이제 그 사람을 생각하려 한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그저 눈앞의 천마, 하나뿐이었다. 더욱이 이제 천마의 본 얼굴까지 보게 되었으니 더욱 천마만 떠오를 것이었다.

예전의 그 사람은 이제 정말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슬기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이 생각들이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나와 과거를 함께 했던 사람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데, 왜 난 별로 슬프지 않은걸까?


“누님,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면 천하의 사부님이라 하실지라도 놀래십니다.”

상념에 잠겨있던 슬기를 광개토가 가차 없이 현실로 잡아끌었다.

“뭐, 인마?”

슬기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괜히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실 때는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가면서 보시라는 말씀이지 말입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실력이 늘다보니 예전의 소심하던 광개토도 많이 능글맞아졌다.

기가 찬 슬기가 오히려 천마에게 눈을 돌렸다.

“아저씨, 내가 뚫어져라 쳐다봐서 혹시 기분 나쁘고 그래?”

슬기의 말에 천마의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사실 천마는 아직 슬기 일행이 그의 동료였다는 사실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중이었다. 이들을 데리고 다닐 것인가, 아니면 앞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그냥 무시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잠깐 하던 천마는, 곧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항상 처음은 특별한 법이다.

천마는 이런 고민을 할 정도라면 잠시 같이 다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천마는 슬쩍 고개를 가로지었다. 추하면 어떻고 못나면 또 어떠한가, 원래 천마는 요괴를 처치하는데 미추를 기준으로 판단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슬기와 광개토가 보기에는, 슬쩍 슬기를 쳐다본 후 눈을 감고서 고개를 가로젓는 천마의 모습이 영락없이 광개토의 발언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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