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595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6 12:00
조회
346
추천
4
글자
13쪽

16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7화





모든 것이 흐릿했고, 불분명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영원한 감옥이란 말이지?”

“원천적으로 탈옥이 불가능한 감옥이지요. 이미 여러 고객님들께서 확인하시고 만족하신 부분입니다. 곧 처치가 완료되면 이 자는 저희 서비스에 완전히 귀속될 것이고, 이 자에게 남은 건 그저 끝없는 고통의 순환에서 괴로워하는 일뿐입니다.”

“허튼말이나 과장된 표현은 질색일세.”

“아, 네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도 나중에 틀림없이 대만족하실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였는데, 둘 중 위압감이 가득한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더라?

하지만 자꾸만 흐릿해져가는 의식 탓에 도저히 생각을 이어가기가 요원했다.

나이 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가치 없는 놈 하나 때문에 나의 소중한 것을 잃을 뻔 했네. 아니, 잃은 거나 다름없지. 전신불수가 되었다고 하니.”

퍽-

어디선가 아련하게 타격음이 들려왔지만, 도훈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놈은 최고로 특별하게 다뤄주게. 내 친히 종종 들여다볼 것이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 손녀가 이딴 놈 때문에! 으득!!”

잔뜩 분노가 실린 마지막 말이 가물가물하던 기억을 일깨웠다.


‘지혜 할아버님?’

분명히 그분의 목소리였다.

우리나라의 오 대 재벌 중 하나인 삼우 그룹의 오너!

대한민국 경제계의 살아있는 신화, 임건호 회장!

처음에 지혜의 할아버님이 바로 그 분이라는 걸 알았을 땐 너무나도 놀랐었던 도훈이었다.

그리고 도훈이 고아에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바뀌어버린 할아버님의 눈빛.

그 눈빛은, 감히 넘보아선 안 될 것을 넘본 종놈을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그 눈빛에서 전해오는 멸시와 거부, 그리고 악의.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눈빛이 아니었었다.

결국 도훈은 도망치듯 슬기의 본가를 빠져나와야 했고, 이날에 이르기까지 다시 찾아간 적이 없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회장님?”

“마지막?”

“네, 이제 곧 뇌를 적출해서 시스템과 연결해버리고 나면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은 끝이니까요.”

“음, 그럼 지금은 들을 수 있고?”

“네, 다 듣고 있을 겁니다. 어차피 처치가 끝나면 모두 잊어버리고 말겠지만요. 처치라는 게 원래 기억을 봉인하고 데이터를 주입하는 거라서 말이죠.”

“그럼, 잠시 자리를 비워주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이번에는 임건호 회장의 목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그가 대뜸 말했다.

“이건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적의에 도훈은 마음속으로 반발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슬기가 어떤 앤데, 감히 자격도 안 되는 네깟 놈이 넘보느냐.”

‘저도 제가 부족한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를 사랑합니다...그런데 슬기라고요? 슬기가 누굽니까?’

도훈은 지혜더러 슬기라고 부르는 회장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회장은 도훈의 그런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

도훈의 머릿속이 혼잡스러운 가운데, 회장이 말을 계속 이었다.

“게다가 한 달 전부터 동거를 시작했다고?”

‘우린 정말 서로를 사랑합니다!’

“감히 우리 손녀와 동거를 하다니, 다시 말하지만 너의 죄는 영원한 감옥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아도 부족해. 그래서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네놈을 그런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야.”

‘네..?’

“이제 네놈과의 악연도 마지막이구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하겠다.”

그리고 회장은 지금껏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네 놈 때문에 슬기가, 슬기가 식물인간이 되었다! 네놈이 슬기를 넘보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보낸 차만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이크를 타고 다니지만 않았더라면!! 슬기까지 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야!!”

그의 분노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네놈 탓이다! 네놈의 분수를 모르는 욕심이 결국 내 사랑스런 손녀의 인생까지 파괴해버린 것이야!!”

그 순간 도훈은 진실을 깨달았다.

‘할아버님, 아니 당신이, 당신이 트럭사고를 일으켰어? 당신이 그 사고를 사주한 거였어!?’


생신 모임이라며 도훈과 슬기를 불러낸 것이 이 늙은이였다.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어 최단 루트로 이동하게 강제한 것도 이사람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났을 당시, 현장에 오가는 차량이 없었었다.

이사람 정도의 권력가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


아무리 도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지만, 살인을 교사할 정도였을 줄이야!

아니, 사실 그 정도의 악의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정말로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었다.

그의 악의는 도훈을 넘어 제 친손녀의 미래까지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놓고 그 책임을 도훈에게 전가시키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넌 악마다! 너야말로 인간 이하야! 네가 지혜를 망가뜨렸어!! 네가 나의 지혜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복수하겠어! 기필코 복수하고야 말겠어!!’

도훈은 크게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그의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그쳤다.

어찌된 일인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직 듣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박사 말이, 지금 얘기들은 어차피 모두 잊게 될 거라고 하는데, 덕분에 내 울분을 조금이나마 토해낼 수 있어 다행이구나. 잘가라. 앞으로 지옥에 있을 네 놈을 종종 들여다 봐주마.”

그리고 그것이 도훈이 기억하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 후, 최후의 처치가 시작되었고 도훈은 기억을 봉인당한 채로 영원한 감옥, 시온의 NPC가 되어 영원히 플레이어들에 의해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 고통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기억을 봉인당한 도훈의 의식은 그렇게 NPC에 귀속되어버린 것이었다.


다만, ‘최고로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회장의 요청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관리자가 도훈을 가장 특별한 NPC인 천마에 넣어버린 것은 회장이 미처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


그리고 현재.

모아 고원의 천년왕릉.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군 천마와 그런 그를 부둥켜안고 있는 슬기.

그리고 둘을 포위한 채로 다가오는 수십 명의 작전팀 현장 요원들의 모습은 먹이를 향해 몰려드는 개미떼의 모습 같았다.

일부 작전팀은 키클롭스의 명령에 따라 망토를 착용한 채로 숲속으로 사라진 광개토를 쫓아갔고, 몇몇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실리엔을 단단하게 포박하고 있었다.


“당신들 누구야?! 누군데 다짜고짜 총질이야!”

슬기가 몰려드는 작전팀들을 노려보며 소리쳤지만 대꾸하는 자는 한명도 없었다.

“아주 조직적으로 오는 걸 보니 어디 길드나 단체 같은데, 너희들 지금 완전 실수하는 거야.”

역시나 작전팀은 한마디 대꾸 없이 포위망을 좁혀 왔다.

급기야 슬기는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너희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하는 짓거리야? 이 분이 누군지 모르지? 이 분이 말야, 그 유명한 악마라고, 악마! 알아? 그 무시무시한 천마의 제자들을 개박살 내버렸던 진짜 어마무시한 사람이라고! 방금은 방심하다가 몇 대 맞았는데. 곧 정신 차리면 니들 피눈물 흘리면서 후회한다?”

“그 자는 악마가 아니라 천마다.”

슬기의 말에 대답한 건 현장 요원이 아니라 키클롭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자는 사람이 아니라 NPC지. NPC 천마, 그게 그 자의 진면목이다.”

이어진 키클롭스의 폭탄 발언에 일순 주변은 음소거라도 된 양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정작 동요를 일으킨 것은 슬기가 아닌 같은 편, 현장 요원들이었다.

“뭐? 동명이인이라며?”

“진짜 이 놈이 그 천마?”

“이번 확장팩의 그 천마라고?”

그래도 요원들은 정예답게 동요하는 중에도 포위를 흩트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던 슬기는 표정만 살짝 굳어졌을 뿐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보다 슬기가 주목한 것은 이들이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 공격을 해왔다는 점이었다.

슬기가 키클롭스 중 하나에게 물었다.

“알고 있다고? 그럼 알면서 공격해 온 거야, 왜?”

“그를 회수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 게임 내에 두 명의 천마는 존재할 수 없다.”

키클롭스의 대답에 슬기는 문득 궁금해졌다.

“두 명의 천마... 그럼 어느 쪽이 진짜지?”

뜻밖의 질문에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던 키클롭스가 간신히 대답했다.

“..그쪽이 진짜다.”

“아저씨가 진짜구나, 다행이야.”

“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그냥... 진짜라니까 다행이다 싶어서.”

“어이가 없군. 진짜니 가짜니 그딴 건 아무 의미가 없어. 우리가 수거해가면 그자는 곧 삭제 처리되고 말거다.”

“안 돼!”

키클롭스의 냉혹한 말에 슬기가 소리쳤지만, 키클롭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크크, 네 년이 뭔데 안 된다고 하는 거냐. 네가 그런다고 해서 될 게 안되고, 안될 게 되는 게 아니야.”

“안 돼, 아저씨는 그렇게 막 지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미 다른 천마가 시나리오대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러니 한쪽이 없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제멋대로 벗어난 그 놈이다.”


“내 운명?”

갑자기 가슴을 찌르듯 파고 들어온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워, 듣고 있는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한기어린 목소리의 주인공,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키자, 모든 현장 요원들은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저도 모르게 한걸음씩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천마를 붙잡고 있었던 슬기마저도 놀란 표정으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는 조용히 뇌까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금 정해진 내 운명이라고 했나?”

‘영원한 감옥에서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게 나의 운명이라고 했던가?’

그에게 적중된 수천 발에 이르는 망각의 탄환은 천마의 근원을 거슬러 그 이전, 전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망각 너머의 기억을 불러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기억에 따르면, 그를 죽였던(그것은 죽인 것과 다름없었다) 임건호 회장은 그가 영원한 감옥에서 고통 받고 또 고통 받길 바랐었다.

영원한 고통의 감옥.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천마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천마의 시선이 키클롭스의 경악한 표정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갑자기 너털웃음을 짓는 천마.

천마의 머릿속에 그를 영원한 감옥에 가두려 했던 임건호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흐흐, 내 운명에 따르면, 나는 절대 죽을 수가 없어. 죽을 수가 없다고.”

‘영원한 고통을 겪게 하려는데 죽일 리가 없단 말이지.’

하지만 이 자리에서 천마의 말을 이해한 사람은 그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천마는 한 번 더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몇 번을 다시 보고 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일단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이중의 이미지로 겹쳐 보였다.

하나는 캐릭터의 얼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저의 진실된 얼굴.

그리고 그들의 정수리에서 빠져 나온 가늘고 희미한 끈이 모두 북쪽을 향해 뻗어 있는 것들이 보였다.

저 끈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거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끈이었지만, 초인적인 시력을 가진 천마의 눈에는 그저 잘 보이기만 했다.

“음, 헛것이 보이는 건가?”

천마는 몰랐지만, 이 현상은 그가 진정한 자아를 되찾으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마침내 되찾은 도훈의 자아와 그의 신체에 흐르는 파천무의 기운, 그리고 완벽하게 변이되어 그의 중심에 자리잡은 ‘만겁돌파의 망토’의 영향이 한데 섞여 이처럼 시온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저씨, 괜찮아? 괜찮은 거야?”

그 목소리에 천마는 그제야 슬기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동안, 반푼이에 불과했던 자신을 챙겨줬던 여자.

도와주겠다면서 사실은 일을 더 크게 벌리기 일쑤였던 여자.

그럼에도 천마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기억을 찾은 이상 더 이상은 별 볼일이 없는 여자.

“괜찮다.”

대꾸하며 무심코 슬기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천마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무식 천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1 171화 20.01.07 373 5 12쪽
170 170화 20.01.07 363 4 12쪽
169 169화 20.01.06 350 5 13쪽
» 168화 20.01.06 347 4 13쪽
167 167화 20.01.06 339 4 12쪽
166 166화 20.01.05 365 4 12쪽
165 165화 20.01.05 367 4 12쪽
164 164화 20.01.05 358 4 12쪽
163 163화 20.01.04 350 4 11쪽
162 162화 20.01.04 359 6 11쪽
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156 156화 20.01.02 356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151 151화 19.12.31 373 6 13쪽
150 150화 19.12.31 366 4 13쪽
149 149화 19.12.31 359 4 12쪽
148 148화 19.12.30 376 5 13쪽
147 147화 19.12.30 370 4 12쪽
146 146화 19.12.30 418 5 13쪽
145 145화 19.12.29 388 5 12쪽
144 144화 19.12.29 390 4 11쪽
143 143화 19.12.29 404 5 12쪽
142 142화 19.12.28 402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