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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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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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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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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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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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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0화





시온은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예컨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힘들거니와, 유를 이유 없이 무로 되돌리는 것 또한 불가능한 세상이다.

일단 생겨나버린 것들을 없애려면 마땅한 사유나 근거가 있어야만 했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게 죽는다는 ‘사건’없이 죽음이라는 ‘결과’를 내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는 시온이라는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틀이다.

이런 원인과 결과의 긴밀한 상호작용, 즉 인과의 율이 깨어진다면 이 유기적인 세상은 근간부터 무너져 붕괴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것이 시온이라는 게임을 만든 게임 회사에서 시온의 일개 NPC라 할 수 있는 천마를 강제로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 개월 전, 천마대책위원회(이하 천대위)에서 두 명, 중국의 크래프팅 팀, ‘키클롭스’에서 네 명, 해서 총 여섯 명의 인사들이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 처음 모였었다.

그 미팅에서 키클롭스 측이 ‘천마 대책 프로그램’의 첫 번째 순서로 요구한 것은 바로 게임 내에 ‘망각의 열매’를 구현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천마는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창조되어진 자입니다.”

“이런 자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무기가 갑자기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렇기에 천마를 잘 상대하려 한다면”

“죽이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롤백(roll back: 현재의 데이터가 유효하지 않거나 망가졌을 때 이전의 데이터로 되돌리는 행위)을 시켜 버리는 게 낫습니다.”

키클롭스에서 나온 네 사람은 각자 말하면서도 마치 한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묘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쨌든 이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이른 바 천마를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려버리자는, 그러니까 천마성을 탈출하기 이전의 깔끔한 상태로 되돌려버리자는 아이디어였다.

“과거로 돌리는 게 가능합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게임(시온)은 인과율을 정확하게 지키는 게임이라 그것도 말이 안 되는거 같은데..”천마대책위에서 나온 직원의 말에 키클롭스의 네 사람이 다시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일단 게임 내에 망각의 열매라는 걸 만들면”

“우리가 그걸로 데이터를 롤백 시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겠다는 거요.”

그러니까 제작사측에서 일단 쇠라는 재료를 만들어 내면, 크래프팅 팀에서 그 쇠를 가공하여 총탄을 만들어 내겠다는 이치였다.

“우리는 재료를 다루는 자들이오. 재료 자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쪽 설정을 보아하니, 천마는 만독불침에 불사지체나 다름없는 존재더군.”

“천마 정도 되는 존재만이 천마를 상대할 수 있게 해놓았으니.”

“그런 자를 대체 어떤 무기로 죽인단 말이오.”

다시 첫 번째 사람에게 차례가 돌아갔다.

“재료를 만드는 것은 그쪽의 소관이니, 망각의 열매를 게임 내에 구현하시오.”

“심근경색? 뇌종양? 암? 이런 걸로 죽일 수도 없는 이상!”

“강제적인 죽음을 선사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상, 아마도 최선은 천마의 데이터를 롤백 시켜,”

“그가 버그 데이터로 변질되기 이전으로 되돌려 통제가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일 게요.”

키클롭스의 제안은 언뜻 허무맹랑한 듯 하면서도 나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이길 수 없으면 피하라고 했던가, 결국 키클립스의 제안은 천마를 이기지 못한다면 천마를 이길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만들면 된다는 소리였다.

키클롭스의 제안에 등장하는 ‘망각의 열매’라는 것은 소위 과거를 잊게 하는 효능을 가진 열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수많은 판타지에서 종종 등장하곤 했던 것이라, 시온의 판타지적 세계관에 그리 이질적인 아이템이라 볼 수도 없었다.

이제라도 만들면 시온의 세계관에 적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아이템이란 소리였다.

이 정도 아이템의 창조라면 잠수함 업데이트(유저에게 알리지 않는 업데이트)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지 싶었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재료를 구현해 낸다면, 이제 이걸로 천마를 상대할 무기를 만드는 것은 세계 5대 크래프팅 팀 중 하나인 ‘키클롭스’에서 해낼 일이었다.


그 후 이런저런 토의가 오갔지만 결국 천대위는 키클롭스의 계획에 따라 망각의 열매부터 게임 내에 창조해내기로 하였다.

없던 아이템을 새로 만드는 것, 그것은 있던 것을 없애는 것에 비하면 월등히 쉬운 일이었다.


*


시온의 이벤트 관리팀 산하 집단인 ‘시온 조정 작전팀’(이하 작전팀)의 역할은 각종 이벤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변수를 조정하는 것이다.

조정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악질적인 유저’나 ‘버그가 발생한 NPC’를 대상으로 회유 및 제제, 제거 활동 등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이런 사태를 조정하고 막기 위해 기본적으로 GM이라는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었지만, 가끔은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창설 당시의 작전팀은 꽤나 자율적인 전술 수행이 가능하여 시온이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6년 전의 그 유명한 ‘화이트래빗 스캔들’ 이후로 시온 내부에서도 완벽한 정보의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작전팀의 상황도 변해버리고 말았다.

정보를 쥐고 있는 소수의 관리 요원이 계획하고 지시하면, 현장 요원들은 그저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일전에 현장 요원인 ‘빌헬름 텔’ 역시도 관리 요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차은혜의 명령에 그의 성적취향을 무시당하면서까지 임무 수행을 강요받은 일이 있기도 했었다.(당시 천마의 환심을 살수 있다면 몸이라도 던지라는 식의 명령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작전팀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쓸만한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시온 작전팀의 현장 요원 이백 명은 신속한 걸음걸이로 천년왕릉에 접근했다. 이들이 천마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은 천마에게 목숨을 잃은 빌헬름이 곧장 시온 본부로 알려준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모아 고원 일대에서 잠복해 있던 모든 현장 요원들이 치안대들만 사용한다고 알려진 순간이동술로 빌이 있던 지점으로 순식간에 모여든 다음 천년 왕릉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바로 여기로 날아오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신입 요원이 왜 바로 여기로 오지 않고, 빌이 있던 지점을 한번 거쳤는지 작게 불평을 터뜨렸지만, 그건 치안대가 가진 순간이동의 원리를 모르는 탓에 생겨난 불만이었다.

치안대는 원래 악랄한 유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그 유저의 근처로 순간이동을 하게 되어있었다.

즉, 특정 장소가 아닌 특정인, 그것도 식별 가능하고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원리인 것이었다.

그와 같은 원리로 작전팀은 역시나 현장 요원이기도 한 빌의 위치를 따라 이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작전팀의 요원들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저마다 하나같이 목에 둘러맨 잿빛 스카프로 닦아내었다.

원래 용도가, 이 물품을 배급한 키클롭스의 말에 따르면 천마의 기감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스카프라는데, 당장에는 실감이 나지 않는 효과라 지금처럼 더운 때에는 괜히 더운데 더 덥게 만드는 물품에 불과했다.

키클롭스의 맴버가 직접 작전팀에 동참하여 작전을 수행한다는 계약에 따라 방금 전 작전팀에 섞여 온 키클롭스의 멤버 두 남녀는 자신들이 만든 역작, ‘숨겨진 그림자의 스카프’로 땀이나 닦아대는 현장 요원들의 행태가 아니꼬웠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땀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자 별 수 없이 스카프로 땀을 닦아냈다.

그러나 그렇게 땀을 닦아 내는 동안에도 모든 요원들의 오른손(왼손잡이는 왼손)만큼은 투박하게 생긴 검은 장총의 손잡이를 절대 놓지 않았다.

그 장총의 정체는 키클롭스가 제작하여 제공한 두 번째 물품으로 이름하여 ‘망각의 총’이라 불리우는 물건이었다.

키클롭스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한발 맞으면 하루 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버그와 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무기 아이템이었다.

한 발로 하루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이백 발을 맞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키클롭스는 한 발이 하루라고 해서, 이백 발이 이백 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이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많은 기억을 잃게 되고, NPC의 경우에는 자연히 롤백까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첫 망각의 열매가 생성되기까지 일 개월, 그리고 그 열매를 재료삼아 망각의 총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일 개월이었다.


“그러니까 이 스카프를 매고서 그놈한테 가까이 간 다음, 총을 쏘면 되는거죠?”

“이봐, 제발 좀 총구는 돌리고 말하게!”

다소 어리바리한 행동을 보이는 부사수에게 현장 요원 ‘발트웰’이 인상을 썼다.

“아, 죄송합니다.”

“조심 좀 하게, 그거 맞으면 정말 기분 더럽다고. 밤새 퍼마신 다음 날보다도 더 괴로웠단 말이지.”

정말로 망각의 총을 맞아본 경험이 있었던 발트웰은 그날의 끔찍한 경험이 떠올랐는지 한 차례 어깨를 떨었다.

“정말로 맞아봤다고요? 대체 왜 그런..”

“자세한 것 묻지 말게, 자네가 그런 기밀을 알게 된다면 난 자네를 쏠 수밖에 없어.”

발트웰에게 동료들과의 제비뽑기에 지는 바람에 실험실의 몰모트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

“아, 묻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하루 치의 경험치가 날아간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간밤에 잊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어제 오늘 사이에 레벨업을 했다면 말하게. 내가 기쁜 마음으로 대가리에 한 발 갈겨 줄 테니까.”

“아닙니다. 레벨업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그럼 지금 그냥 한 발 맞아봐도 손해 볼 일은 없겠구만.”

“네? 하루가 날아간다는데 그게 어찌 손해가 아닙니까?”

“왜 이래, 어제도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고원만 지키고 있었는데, 그런 하루쯤은 오히려 사라지는 게 낫지 않겠나? 크크크.”

“그러고 보니 한 일주일은 사라져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부사수의 말마따나 지난 일주일간 모아 고원 정상에서 오지도 않는 천마를 기다리며 하늘만 바라보고서 추위에 떨었던 경험은 두 사람에게 확실히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또 맞고 싶지는 않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거든.”

이들의 대화는 천년 왕릉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 당도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천년왕릉에 도착한 이백 명의 시온 작전팀은 곧 갈고리를 이용해 3미터 높이의 외벽을 일사분란한 모습으로 가볍게 넘어 갔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천년왕릉의 외릉을 무질서하게 우왕좌왕하는 강시들의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현장 요원들이 넘은 외벽은 동남쪽 부분이었다. 이 근처에는 대부분 불에 타죽은 흔적만 남아있고, 살아 있는 강시들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화공으로 강시들을 공격한 모양이로군.”

현장 요원들은 이것에 대해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천마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그저 비행능력이 있고, 위험한 놈이며, 우선적으로 망각의 총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키클롭스에서 나온 두 남녀는 생각이 달랐다.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요?”

가까이 있던 현장 요원들의 수장 ‘한슨’이 물어왔다.

“우리가 쫓고 있는 천마는 이딴 강시들 따위, 화공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 죽여버릴 수 있는 강력한 존재예요. 그런데 이런 조잡한 화공이라니, 당연히 이상한 일이지요.”

그들이 쫓고 있는 존재에 대해 필요 이상의 내용까지는 모르고 있던 현장 요원들이 키클롭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뭐요? 우리가 쫓고 있는 자가 천마라고요? 그 천마?”

“아, 아닙니다. 동명이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자 역시도 호락호락한 강자가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키클롭스들의 변명에 현장 요원들이 동요했지만, 그래도 여러 산전수전을 겪은 현장 요원들 답게 동요는 가볍게 그쳤다.

“일단 강시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은신 단계를 2레벨로 높여야 겠소.”

한슨의 말은 빠르게 현장 요원들에게 전파되었다.

곧 여기저기의 현장요원들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숨겨진 그림자의 스카프’의 은신 능력이 단순히 기척을 숨기는 1단계를 넘어 형체는 물론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마저 완벽하게 숨겨주는 2단계가 발동됨에 따라 벌어진 일이었다.

곧 현장 요원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은 물론 자신의 모습까지도 볼 수 없는 은신 2단계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숨긴 현장 요원들은 왕릉의 내릉 입구를 향해 포위망을 형성해 나갔다. 서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애초에 정해진 각자의 위치를 숙지하고 있기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변으로 강시들이 이따금 뛰어다니기도 하고, 몸을 부딪쳐 오기도 했지만, 강시들은 은신 2단계 효과로 생기마저 지워져 버린 현장 요원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장 요원들은 오직 자신의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내릉 건물의 출입구를 향해 망각의 총을 겨누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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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62화 20.01.04 359 6 11쪽
161 161화 +2 20.01.04 381 3 13쪽
»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5 4 12쪽
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156 156화 20.01.02 355 6 12쪽
155 155화 20.01.02 359 5 12쪽
154 154화 20.01.01 359 4 13쪽
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152 152화 20.01.01 36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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