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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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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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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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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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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69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9화





‘나는 천마지만, 한편으로 이도훈이기도 하다.’

천마로서 가지고 있는 기억들, 그러니까 각종 무공에 대한 지식이라든지 일곱 제자와의 관계에 대한 지식 등이 그의 머리 한켠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록 NPC 관리팀에서 NPC를 만들면서 주입한 가상의 기억이지만, NPC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자신의 과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이 기억들이 NPC의 행동의 전반적인 부분들을 특정하고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천마의 기억을 가진 그는 틀림없이 천마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이도훈’의 기억도 존재했다.

고아로 자랐고, 그리 행운이 따르지 않는 삶이었지만, 시온을 통해 제 2의 삶을 발견했고, 무엇보다 지혜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었던 한 남자의 온전한 기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한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기필코 찾아낼 것이다.

‘왜?’

의식은 이렇게 살아있지만, 아마도 그의 육신은 없어졌든지, 있더라도 죽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즉, 그는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자의 비틀린 의식 탓에 지혜마저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누구에게 복수하겠다고?’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자, 날 죽이고 지혜까지 죽은 것과 다름없게 만들어 버린 자!


임건호!


그에게 복수한다!


그런 생각들에 빠진 나머지 천마는 뒤늦게야 슬기의 존재를 알아챘다.

‘고마웠고, 미안하다.’

마음속으로 짧은 인사를 남기며 고개를 돌리던 천마는 슬기를 보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여전히 못생긴 얼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슬기의 그 못생긴 얼굴에도 겹쳐 보이는 다른 얼굴이 있었다.

뭉툭한 콧망울 대신 작고 오똑한 콧날.

소세지같은 입술 대신 붉고 도톰한 하트 모양의 입술.

가늘게 찢어지기만 한 눈 대신 도도한 매력이 흘러나오는 단아한 눈매.

인세에 드문 추녀의 모습 속에 목련을 연상케 하는 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천마만이 볼 수 있는 슬기의 진면목이었다.


극히 짧은 순간, 천마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갔다.

‘왜 이 여자가 지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거지?’

천마는 슬기의 진면목이 지혜와 완전히 일치 한다는 점에서 큰 혼란을 느끼면서도 생각을 이어나갔다.

‘가만 이 여자..슬기, 아이디가 슬기였었지?’

‘지혜도 아이디가 슬기였었어.’

‘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본명도 슬기라고 했었는데?’

그리고 임건호 회장이 그에게 건넸던 마지막 대화들이 떠올랐다.

-슬기가 어떤 앤데, 감히 자격도 안 되는 네깟 놈이 넘보느냐.

-네 놈 때문에 슬기가, 슬기가 식물인간이 되었다! 내 사랑스런 손녀의 인생까지 파괴해버린 것이야!!

‘회장은 지혜를 슬기라고 불렀어. 그놈이 지혜의 이름을 잘못 불렀을 리가 없어.’

그 놈과 지혜는 조손지간이었다. 절대 이름을 잘못 부를 리가 없다.

그와 함께 가끔 자신의 이름을 어색해 하던 지혜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지혜가 나에게 이름을 틀리게 가르쳐 준 것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졌다.

‘지혜가 슬기였어, 아니 슬기가 슬기였어!’

비로소 천마는 깨달았다.

아울러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에 대한 해답도 찾았다.


왜 주점에서의 첫 만남에서 슬기를 안 죽였었는지.

왜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울컥했었는지.

왜 그녀의 부탁을 꼭 들어주겠노라고 결심하게 되었었는지.

왜 그녀의 말이라면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었는지.

왜 그녀를 찾아 헤매었었는지.

그리고 지금 왜 이토록 고마우면서도 가슴이 아픈 것인지.


모든 것을 알아버린 천마는 애써 목소리를 무뚝뚝하게 만들었다.

“너는 더 이상 본좌의 일에 신경 쓰지 말아라.”

천마는 이제 임건호 회장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지혜, 아니 슬기지만. 자신과 그녀의 복수를 위해 그녀는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슬기의 대답은 천마의 예상에서 많이 빗나갔다.

“지랄하네. 아저씨한테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음?”

“쌈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주제에 뭘 신경을 안 써, 안쓰긴! 아저씨는 내가 있어야 돼. 봐봐. 방금도 이 아가씨가 시간을 벌어줘서 겨우 정신 차린거잖아. 아저씬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내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만 한다고!”

“끄응..”

슬기의 팩트 폭행에 천마는 신음을 흘렸다.

슬기의 못생긴 얼굴 너머로 사랑해마지않는 지혜의, 그러니까 진짜 슬기의 얼굴이 잔뜩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천마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천마의 시선이 문득 슬기의 머리꼭지에서 나온 황금빛의 끈으로 향했다.

천마의 눈에만 보이는 끈이었다.

끈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북쪽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먼 곳으로 하늘하늘 뻗어 있었다.

천마의 이성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슬기의 끈만 왜 이렇게 환하지?’

다른 사람들과 형태는 동일했지만, 월등히 환하게 빛나는 끈의 광채에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 끈은 뭐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거지?

왜 슬기의 것만 유독 밝게 빛나지?


“이놈들이, NPC랑 유저가 사랑놀음을 하고 있구나!”

현장 요원의 수장인 ‘한슨’의 외침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제야 이상하게 훈훈하던 분위기의 마력에서 벗어난 키클롭스가 소리쳤다.

“사격을 개시하세요!”

“탄환이 얼마 없어서 신중하게..”

“잔말 말고 쏘시라고요.”

“크흠, 일제 사격!!”

키클롭스의 명령에 한슨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현장 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타탕-

이전의 사격소리보다 확연히 작아진 소리.

남아 있는 망각의 탄환의 수는 생각보다도 작았다.

“제발 한 발만 맞아라!”

“죽어, 죽으라고!!”

얼마 남지 않은 망각의 탄환을 쏘며 현장 요원들은 염원을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염원을 접수할 신은 이곳에 없었다.

도훈의 기억을 찾으며, NPC의 습성을 이겨낸 천마는 더 이상 괜히 몸으로 공격을 때우는 멍청한 NPC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탄환이 날아오는 걸 바라보며 천마는 슬기를 허공섭물로 밀어내며, 그 자신 역시 반대방향으로 스르륵 이동했다.

표횰하기 그지없는 귀신같은 몸놀림에 모든 탄환들이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흐앗! 진짜 천마다!! 진짜라고!!”

불과 몇 분전에 총탄 앞에 맥없이 무너졌던 천마였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은연중에 천마를 얕잡아 보고 있던 현장요원들은 천마의 귀신같은 몸놀림에 큰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적들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천마는 문득 드는 생각에 우뚝 서버렸다.

‘저 끈을 건드리면 어떻게 될까?’

현장요원 각각의 머리에서 뻗어 나온 백수십 가닥의 끈들이 하늘거리며 북쪽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이 꽤 장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숲 쪽에도 수십 가닥의 끈들이 하늘로 넘실넘실 뻗어 있는데, 거기에도 유독 환한 빛을 내는 한 가닥이 보였다.

‘저건 아마도 제자놈의 것?’

천마는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놈들부터.’

그의 가벼운 손짓이 허공을 갈랐다.

쫙-

후두둑

가벼운 손짓과 달리 날카롭게 뻗어나간 천마기가 거대한 무형의 칼날이 되어 단번에 백팔십에 이르는 끈들을 잘라버렸다.

‘잘라지는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백팔십 여명에 이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과 같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인형에서 떨어져 나간 끈들은 삽시간에 북쪽 하늘로 빨려가듯 사라져 버렸다.

생기가 완벽하게 사라진 백수십 개의 몸뚱아리들을 보며 슬기가 덜덜 떨었다.

“아저씨 방금 뭐한 거야?”

“글쎄.”

천마 역시도 뜻밖의 상황에 살짝 당황한 참이었다.

둘은 말없이 한동안 주인 잃은 몸뚱아리들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일 분이나 지났을까, 슬기가 기괴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 시체가 안 사라지네? 뭐지?”

빛으로 화해 사라졌어야 마땅한 유저들의 몸뚱아리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모습에 슬기는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아저씨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얘네들 왜 안 사라져?”

당황한 슬기의 질문에 천마는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접속이 끊어졌을 것이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도 캐릭터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을 것이야. 어쩌면 그들은 이제 부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뭐라고? 왜?”

“내가 연결을 끊어버렸기 때문이지.”

말을 하면서 천마는 점점 머릿속에 확신이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지식을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확인하는 것 같은 과정이었다.

원래는 모르던 것이었지만, 검색을 하고 내용을 읽는 순간,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천마는 자신의 대답이 거의 100% 진실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그냥 단순하게 뒈진 게 아니라, 아예 영영 뒈져버린 거라고?”

“다시 말 하건데, 이들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그저 앞으로 시온에 접속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인 거지.”

“크크큭, 그러니까 시온에서만큼은 영영 뒈져버린 거네?”

“..굳이 그 표현을 쓰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와, 아저씨가 개사기 캐릭터란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 도가 지나친 거 아냐? 와, 진짜 개사기네.”

천마는 어딘지 씁쓸한 표정으로 거친 입담을 자랑하는 슬기를 바라보았다.

‘나의 사랑스럽던 지혜가 어쩌다 이 꼴이...’

“아참, 개토 구해줘야 하는데! 좀 전에 한 스무 명쯤 되는 적들이 걔를 쫓아갔었거든. 그리고 꼬맹이도 잡혔었는데!”

“실리엔은 저기 잘 누워있다.”

말하는 중에 천마의 시선이 여전히 포박당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실리엔에게 향했다.

혹시나 잘못 본건가 싶어 안력을 잔뜩 끌어 올려봤지만.

‘끈이 없어, 역시.’

천마는 고개를 들어 자기 머리 위를 바라봤다.

역시나 그에게도 끈이 없었다.

‘NPC들은 끈이 없어. 그리고 난 NPC야...적어도 NPC 신세인건 분명해.’

하지만 존재에 대한 고찰을 하기에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

“아저씨, 얼른 개토 구해주러 가자. 걔가 많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좀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 도와줘야 돼.”

슬기의 성화에 천마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은 이 시점에, 천마로서만 존재하던 시기에 거뒀던 제자 한 놈의 목숨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슬기의 부탁은 여전히 감성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웠다.

천마는 한손으로 슬기를 안고, 기공으로 실리엔을 들고서 하늘로 떠올랐다.

‘일단은 제자놈부터 구하자. 그때까지만.. 아주 잠시만 더 같이 있는 거야.’

천마는 이별의 시간을 잠시만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


광개토는 적들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해 심적으로 지쳐가는 중이었다.

거칠 것 없는 평지였더라면 압도적인 주력으로 다 따돌렸을 테지만, 숲속은 아무래도 그의 주무대가 아니었다.

반면에 현장 요원들은 산이나 숲, 계곡같은 환경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훈련받은 자들로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피드를 훈련과 경험으로 극복하며 광개토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젠장, 열 명만 되었더라도 한번 붙어보는 건데!’

애석하게도 적의 숫자는 스무 명. 실리엔과의 전투 장면을 잠깐 보았지만 적들은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었다.

‘이놈들 정체가 뭐지? 무슨 북한 공작원, 뭐 그런건가?’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벼운 소리가 머리 위쪽 허공에서 들려왔다.

싹둑 싹둑

싹둑 싹둑 싹둑 싹둑

마치 끈 자르는 가위질 같은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뒤쪽에서 풀썩 풀썩 쓰러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쫓아오던 적들이 실 끊어진 인형마냥 달려오던 자세가 급격히 무너지며 바닥에 거꾸러지고 있었다.

‘무슨..? 사부님인가?’

광개토의 경험에 따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면 대부분 천마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그의 추측은 적중했다.

모든 추격자들이 땅바닥을 뒹굴자 곧 광개토 앞으로 천마와 슬기 그리고 포승줄에 단단히 묶인 실리엔이 내려왔다.

“아이고, 리엔아!”

광개토는 황급히 실리엔을 묶은 줄부터 이빨로 끊어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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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화 20.01.03 35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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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5화 20.01.02 358 5 12쪽
154 154화 20.01.01 35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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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52화 20.01.01 36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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