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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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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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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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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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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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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4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4화





도훈이 나가고, 스물네 시간이 지나고서야 슬기는 감옥을 나왔다.

감방 생활 열네 시간에 로그아웃하고 수면을 취한 시간이 여덟 시간. 그리고 현실에서 꼭 해야 할 일들(예를 들어 피의 보복이라든가) 때문에 두 시간이 더 지난 것이었다.


무한의 백팩을 둘러매고, 투박하게 생긴 카메라(어차피 마법으로 움직이는 거라 정교한 기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외에는 가벼운 여행자 옷차림을 한 그녀는 곧장 빈민들의 거주지인 6구역으로 향했다.

웬만한 유저들은 이런 빈민촌에 잘 가지 않았는데, 퀘스트라 해봐야 가진 것이 없는 빈민들이 주는 퀘스트가 전부였고, 그런 퀘스트들의 돈벌이라는 게 신통찮을 게 뻔한 터라 당연한 결과였다.

6구역의 초입에 들어선 슬기는 곧장 좌우로 판잣집이 빼곡하게 들어찬 오르막길을 올랐다.

빈민가 특유의 묘하게 썩은 냄새에 한손으로 코를 틀어막다보니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인데도 금방 숨이 찼다.

“아놔, 헉헉. 하루 지났다고 사라지고 헉, 그러진 않겠지? 헉.”

그녀의 혼잣말에 답문이라도 하듯 오른편으로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소리를 쫓아 달려간 그녀의 시야에 빈민촌에 거주하는 빈민들로 보이는 NPC 5,60명 가량이 위쪽 편에 서 있고, 그 맞은 아래편으로 3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도시 경비대로 보이는 병사 20명가량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두 진영의 한 가운데 지점에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그녀가 찾고자 했던 그 사람, 블랙이 있었다.

기자답게 카메라로 양 진영의 대치 상황을 한 차례 찍은 슬기가 블랙이 있는 가운데 무리로 다가갔다.

그 곳엔 빈민 쪽의 대표로 보이는 세 사람과 경비대의 장교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 대해 목청 높여 소리치고 있었고, 블랙은 빈민 측 쪽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마침 경비대 장교가 소리쳤다.

“이미 공녀님의 명에 따라 재개발이 결정되었다 하지 않소! 그러니 이만 버티고 집들을 비우시오.”

“애초에 이 구역은 우리같은 빈민들을 위해 정해진 곳이오!”

“애초라는 건 없소. 그저 당신네들 조상이 무단으로 점거한 걸 그동안 눈감아 준 것일 뿐.”

슬기가 가만히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니 경비대가 빈민가를 밀어버리려는데, 빈민들이 저항하는 모양이었다.

빈민 대표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 이 지역은 도시 건설에 이바지한 우리 조상들이 그 댓가로 받은 곳이오. 우리 구역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에 똑똑히 쓰여 있는 역사란 말이오. 글자를 읽을 줄 안다면 아니라곤 못하겠지!”

“글쎄, 눈이 있다면 그런 기념비 따윈 없다는 것부터 알 텐데?”

“뭣이?”

빈민 대표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데, 블랙도 덩달아 놀란 기색을 띄며 입을 열었다.

“뭔 소리야? 어제만 해도 있었는데?”

블랙의 말에 경비병 장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아무래도 본관이 기억하는 어제와 그대가 망상하는 어제가 다른가 보군.”

“허 참, 내가 어제 니들이 그거 부수려는 거 막다가 그것 때문에 감옥 간 거잖아? 그게 없었으면 내가 니들을 왜 막았고, 감옥을 왜 가?”

“그대가 감옥에 간 것은 우리 경비대의 공무 집행을 방해했기 때문이오. 블랙님.”

“그러니까 네놈들의 공무라는 게 뭐였었냐? 기념비 파괴. 그게 니들 공무 아니었어?”

“우리는 그저 6구역으로 진입하려고 했을 뿐.”

“와 발뺌하는 거 보소. 그냥 진입하려는데 그 큰 망치를 들고 들어왔었다고? 길이 없디? 길이 없어서 벽이라도 부셔야 했었냐?”

“우린 그런 적 없소.”

경비대 장교의 발뺌에 도훈이 손을 들어 급히 슬기를 불렀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일루 와봐.”

“네?”

“이것 봐, 이거! 얘네들 말야. 거짓말을 한다고.”

“그래서요?”

슬기의 대답에 도훈의 표정이 세상 멍청한 놈을 본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게 뭐겠어? 자신을, 자아를 지키겠다는 방어기제의 발현 아냐? 달리 말하면 생존 본능이라는 거지.”

“거짓말이 생존 본능이라고요?”

슬기가 도훈이 말하는 논리적 비약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자 도훈이 차분한 어조로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에 들어갔다.

“생각해봐, 원장 엄마가 식탁에 놔둔 천원 어디갔냐고 물어. 꼬마는 그 돈으로 과자를 사먹었지만 엄마한테는 못 봤다고 말해. 왜? 그 돈을 자기가 썼다고 말하면 죽을 때까지 처 맞으니까. 그러니까 안 죽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거야. 돈을 본적이 없다고. 즉 생존 본능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거라고.”

말을 하던 도훈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슬기의 시선을 느꼈다.

“이해했어?”

“아, 네. 안 죽기 위해서 구라를 친다. 그거죠?”

“그렇지.”

“그래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기 NPC들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고요? 이게 어제 말한 그건 가요?”

“그렇지. 그런데 그뿐만이 아냐.”

도훈의 손가락이 윗 편에 자리 잡은 빈민 진영을 가리켰다.

“저들의 눈을 봐봐. 어때?”

“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요?”

슬기의 대답에 도훈이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이거 쪼렙이구만. 권사가 안력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어머, 제가 권사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슬기는 깜짝 놀랐다. 어제는 그녀의 직업이 기자라는 걸 단박에 맞추더니, 오늘은 계열이 권사인 걸 단번에 맞춰버렸다.

“됐고. 카메라 들고 가까이 가서 찍어. 어차피 내 인터뷰에 배경 영상으로 깔아야 할 테니까.”

“아, 네.”

슬기는 도훈의 명령 같은 지시에 빈민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슬기는 빈민 진영에 서있는 NPC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건!?’

그동안 그녀가 만났던 NPC들, 그러니까 상인 NPC라든가, 각종 안내인 NPC들의 눈빛들은 하나같이 소위 죽은 눈빛이었었다.

분명 저마다의 역할에 따라 움직이고 말을 걸면 그에 걸맞는 상식적인 대답을 내어 놓지만, 그들과 상대하다보면 컴퓨터, 혹은 그리 수준 높지 않은 인공지능을 상대하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빈민 NPC들의 눈빛은 달랐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생동감이 넘쳤고, 집을 잃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엿보였다.

그 모습에, 정말 NPC가 맞긴 한 건지 부쩍 의심이 든 슬기가 가까이 있는 40대 아줌마 NPC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름이 뭐예요?”

“반가워요, 여행자 아가씨. 아름다운 날씨죠?”

그 생뚱맞고도 인공지능다운 대답과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갑자기 썩어버린 아줌마의 눈빛에 슬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NPC야, 확실해.’

잠시 슬기의 말을 기다리던 아줌마는 놀란 슬기가 말을 잇지 못하자, 곧 다시 경비병 진영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어? 다시 눈에 생기가 돌아왔어!’

경비병 진영을 노려보는 아줌마의 눈에는 어느덧 다시 생기와 의지가 흘러 넘쳐댔다. 이 기이한 현상에 슬기는 다른 NPC들에게도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죽기 딱 좋은 날씨구만.”

“여기서 뭐하세요?”

“어차피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 살아서 무엇할까?”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죽기 딱 좋은 날씨구만.”

“..제가 기잔데요.”

“어차피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 살아서 무엇할까?”

같은 대사를 반복하는 현상. 영락없는 NPC였다.


“실례지만, 이름 좀 여쭤도 될까요?”

“아, 반갑수다. 내 이름은 보먼이라네.”

“여기가 어디죠?”

“가몬 시 6구역, 빈민구역이라오.”

그리고 슬기가 입을 다물자, 보먼이라는 NPC도 입을 다물고는 멀뚱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유저의 질문에 대답만 할 뿐, 절대 먼저 유저에게 질문하지는 않는 것. 이 또한 NPC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였다.


‘역시 이들은 모두 NPC가 분명해.’

하지만 지금 경비병 진영을 향해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노려보고 있는 저 이글거리는 눈빛들은 그녀를 상대할 때 보였던 그 멍청한 눈빛과 완전히 달랐다.

‘정말 이들에게 생존 욕구가 있는걸까? 그리고 그런 욕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그 뜨거운 시선들을 카메라에 가득 담은 슬기는 다시 양 진영의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그간 블랙이 주장하던 것들에 대한 근거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와 제대로 된 두 번째 인터뷰를 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빈민 대표 세 명과 경비병 장교 둘만 있을 뿐, 블랙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경비병 장교 둘은 장검과 방패를 들고서 언제라도 공격태세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은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빈민들 역시도 어디서 구했는지 사뭇 날카로운 낫이며 호미같은 농기구들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대치 따위가 아니었다. 슬기로서는 그들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든 말든, 빈민가가 쓸려나가든 말든, 혹은 경비병이 인명피해를 입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블랙과의 인터뷰, 그리고 신문사에서 생존해 나가는 것이었다.

양 주먹에 붉은 기운을 끌어 모은 슬기가 그들의 치열한 대치 한가운데로 끼어들며 외쳤다.

“블랙님 어디 갔어요?”

그러자 경비병 중 하나가 대답했다.

“블랙님은 감옥에 갔소.”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슬기가 당황해 하는데, 경비병 장교가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 우리 경비대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여..”

“또요?”

“그가 본관의 행사를 무력으로 막아서니..”

“아놔, 이 인간, 감옥에 열 번도 더 갔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어쩔 수 없는 조치였소.”

“이것 참, 어이가 없네. 그럼 나도 또 감옥에 가야하는 거야? 에휴.”

슬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달리 다른 수도 없었다. 블랙은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인물이기에 막연하게 그의 출감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슬기가 경비병 장교를 노려보자, 장교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슬기는 애써 화사한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저기, 저도 감옥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권사의 뛰어난 안력에 장교의 목울대가 꼴깍하고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


“이봐요. 블랙님. 감옥으로 도망간다고 제가 못 쫓아올 것 같았나요?”

어제와 똑같은 감방에서 다시 슬기와 마주한 도훈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않고 그저 눈만 껌벅거리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아니, 난 그냥 슬쩍 밀쳤을 뿐인데. 내가 안 밀쳤으면 그놈 그거, 호미에 찍혀 죽었을 거라고. 내가 밀쳐서 겨우 살아난 건데, 그래놓고 목숨의 은인인 나에게 공무 집행방해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도훈의 열정적인 변명에 슬기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냥 밀쳤다고요?”

“응, 살짝. 그래서 아마 두 시간 정도만 있으면 내보내 줄걸? 때린 건 아니니까. 하하..그런데 왜 그런 세상 망한 표정을 짓는거지?”

“아, 아니..저..전 으흑.”

별안간 터진 슬기의 눈물에 도훈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아, 왜 갑자기 울고 그래? 기자라면 무엇보다 멘탈이 강해야지.”

“아아, 어떡해요. 전..”

슬기가 눈물을 흘리는 영문을 모르는 도훈으로서는 그녀가 뒷말을 잇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흑,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경비병을 또 때리고 말았다구요.”

그 말에 도훈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고, 슬기는 주저앉고 말았다.

“어떡해요? 또 저만 혼자 열여섯 시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하잖아요. 흑~.”

“열네 시간이야. 두 시간은 내가 같이 있어줄 거니까.”

“흐앙~!!”

도훈의 친절에 슬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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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1화 +2 20.01.04 382 3 13쪽
160 160화 20.01.03 384 4 13쪽
159 159화 20.01.03 36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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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157화 20.01.02 36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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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3화 20.01.01 36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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