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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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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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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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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70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20.01.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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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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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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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5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55화





콰콰쾅--!

까만 벼락에 이어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직후, 벼락이 내리꽂혔던 곳에서 물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거칠고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감히 본 군주의 안식처에서 날뛰는 하룻강아지가 누구냐?”

벼락 탓에 휘휘 날리던 먼지들이 갑자기 불어닥친 일진광풍에 삽시간에 날아가 버리자, 슬기와 광개토 사이에 넝마에 가까운 로브를 걸친 까만 해골이 보였다.

여타 언데드들의 썩어가는 뼈다귀들과 달리 섬뜩한 죽음의 기운이 줄줄 흘러넘치는 새까만 뼈 주위로 시퍼런 사기가 안개처럼 넘실거리고 있는 게 딱 봐도 보스몹의 등장 같았다.

바로 동모아 지역의 언데드 군주, 천년강시 ‘태고’의 등장이었다.

원래 태고는 모험가들에 의해 천년왕릉의 강시들 중 정확하게 백 구가 쓰러지면 자동으로 등장하는 천년왕릉의 보스몹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등장은 삼백 구가 쓰러지고서야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딴 설정같은 건 슬기와 광개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천년강시, 나 ‘태고’의 무덤에 죽음을 찾아온 자들이 누구냐!!”

태고가 자신의 시그니처 대사를 읊으며 자기소개 겸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둘의 눈에 당장 들어온 것은 그런 허접한 문구나 늘어놓는 까만 뼈다귀 따위가 아니라, 그 뼈다귀의 왼손에 꼭 붙들린 채 늘어져 있는 실리엔이었다.

“리엔아!!”

광개토의 애타는 부르짖음에 실리엔이 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왔냐?..변태 주인놈아.”

“아하하...거참, 내가 어딜 봐서 변태라고.”

“이만치 컸는데도 맨날 머리 쓰다듬잖아. 그리고 (딴 곳도..)”

“내가 당장 구해줄게!!”

광개토는 실리엔이 더 이상 힘겹게 입을 여는 걸 원치 않았기에 그녀의 말을 큰 목소리로 잘랐다(그래서 실리엔이 말 중 괄호 안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무사하면 그걸로 되었다.

하지만, 주종간의 감격스런(?) 상봉과 상관없이 졸지에 듣보잡 취급을 당하고 만 태고는 기분이 상했다.

태고가 분노함에 따라 그의 휑한 두 눈에 퍼런 사기가 집중되자 마치 섬뜩한 안광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태고가 위압적인 자세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놈이!? 누군데 본 군주의 신부를 구하니 마니 씨부렁거리는 것이냐!?”

“뭣이, 신부?! 크항!! 네 놈은 누군데 나의, 나의..시녀를 멋대로 신부라고 우기느냐?”

광개토는 더 세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역시나 팔을 벌려 일부러 몸을 부풀리고는 크게 호통치며 실리엔이 그의 종속임을 언급했다.

그러자 그의 말에 태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 나부랭이가 뒈지고 싶은거냐? 어디서 감히 언데드 군주의 주인을 자처하느냐. 주인은커녕 종으로도 못쓸 허약해 빠진 족속 주제에!”

태고 입장에서 광개토의 발언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감히 인간 주제에 언데드 군주를 종으로 부린다? 동급의 언데드 군주인 자신도 억지에 억지를 부려 겨우 결혼하려고 하는 마당에 감히 어쩌고 어째?

태고가 시퍼런 안광을 활활 태우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그의 말에 엄청난 무게감이 실렸다. 광개토로서는 감히 토도 달지 못할 정도였다.

광개토는 뭐라도 말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였지만, 반박은커녕 한번 기세에서 밀리자 입도 뻥긋 못하고 겨우 침이나 삼키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슬기가 끼어들었다. 천마 앞에서도 할 말 못 할 말 다 했던 슬기에게 태고의 박력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선 시대 보쌈문화도 아니고, 어디서 구닥다리 뼈다귀 새끼가 마음대로 여자를 납치해 가놓고 지맘대로 신부래, 신부가? 너 인마, 조선 시대 뼈다귀야?”

태고는 슬기의 매서운 국사 질문에 일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조선 시대가 언제인가, 나보다 더 이전 시대인가?’

조선을 들어봤을 리가 없는 천 년 전 왕이었던 NPC 태고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단은 강짜를 부리기로 했다.

“본 군주는 이 나라의 왕, 다른 어느 법도 따를 필요 없고, 따르지도 않겠다. 그저 내가 신부로 삼겠다고 정했으니 그걸로 족하니라! 너희 잡것들의 눈치 따윈 보지 않겠다!”

태고의 퍼런 사기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슬기를 압박해 들어갔다. 슬기는 피하려고 했지만, 형체가 없는 사기의 움직임이 슬기보다 한발 빨랐다.

삽시간에 슬기의 주변을 둘러싼 사기. 슬기가 이 기운에 어떻게 대항해야할지 고민하고 망설이는 동안, 사기의 일부가 슬기의 피부에 닿았다.

“아악!”

사기의 정체는 부식독이었다. 부식독이 닿은 슬기의 피부가 퍼런색에서 검은 색으로 빠르게 변색되며 동반된 강렬한 고통에 슬기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순간, 슬기 덕분에(?) 태고의 관심이 슬기로 집중되자 겨우 위압감에서 벗어난 광개토가 반격에 나섰다.

10여 미터를 빠르게 달려간 광개토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날듯이 뛰어오르며 양발을 빠르게 교차했다. 시저스킥, 일명 가위 차기였다.

상반신을 비스듬히 아래로 향하게 하며 날래게 걷어찬 광개토의 오른 발차기에 태고의 까만 목덜미가 닿을 무렵, 별안간 태고가 왼손을 들어 방어에 나섰다.

아니, 방어에 나서려던 태고는 왼손에 들린 실리엔의 존재를 깨닫고는 방어를 멈추고 급히 회피에 들어갔다. 어쨌거나 적의 공격에 신부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어 동작을 급히 회피 동작으로 바꾸려하자, 태고의 움직임에 찰나 간 빈틈이 드러났고, 광개토의 오른 발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태고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쩍-!

태고가 기우뚱거리며 주춤하자, 광개토는 아직 허공에 떠있는 두 발을 빠르게 교차하며 연달아 발차기를 차 넣었다.

쩍, 쩍쩍-

광개토가 오른 발로 땅을 디디기까지 무시무시한 발차기 세 방이 더 들어갔다.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오른 광개토의 연속 공격은 결코 상대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태고의 반응은 그저 휘청이기만 했을 뿐, 광개토가 뒤집혔던 몸을 바로 세우고 다시 달려들 준비를 할 무렵에는 태고 역시도 어느새 원래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크크크, 하루살이인줄 알았는데, 그나마 벌처럼 똥꼬에 침 한 방 숨겨둘 정도는 되는구나.”

“벌침도 많이 쏘이면 죽어, 빙신아!”

그 말과 동시에 광개토가 다시 달려들었다.

모든 행동에 파천무의 묘리가 깃든 광개토의 쾌속한 전진은 태고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진 주먹과 손날, 팔꿈치의 연속기!

“이 새끼! 말하다 말고 비겁하게!!”

태고는 얼떨결에 욕을 내뱉으며 방어에 나섰지만 왼손이 실리엔을 붙잡고 있는 탓에 오른 손과 보법만으로 광개토의 공격을 막아야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붙잡힌 실리엔의 존재가 도리어 그에게 핸디캡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아마 태고가 실수로라도 실리엔을 내밀어 방어를 시도했더라면 광개토의 약점을 단번에 알았을 텐데. 승리의 여신이 광개토에게 미소짓고 있었다.

일개 인간의 공격에 쩔쩔매던 태고는 결국 크게 분노하고 말았다.

“별 같잖은 벌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침을 들이미는구나!”

벌은 일단 침을 놓고 나면 목숨을 잃는 법, 태고가 생각하기에 이정도로 날뛰었으면 이제 그의 손에 죽더라도 광개토에게 별 여한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태고는 슬기를 압박하고 있던 사기를 거두어들였다. 삽시간에 까맣기만 하던 태고의 해골에 푸른빛이 번쩍번쩍 감돌기 시작했다.

광개토는 똑같은 형태로 공격을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금 전의 공방과 다름없이 그의 공격과 태고의 방어가 맞부딪혔는데, 팔과 팔이 부딪힌 순간, 그의 팔이 시커멓게 변색이 되며 고통을 호소해 왔던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고통에 놀라며 화들짝 물러서는 광개토에게 슬기가 외쳤다.

“부딪히지마, 부식독이야!!”

슬기의 말대로 살짝 맞부딪혔을 뿐인데도, 왼팔의 손목 아랫부분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안 때리고 어떻게 이깁니까?!”

광개토가 짜증을 내며 슬기 곁으로 훌쩍 물러서자, 태고는 그런 그를 쫓지 않았다. 태고로선 근접전이 그나마 약점인데, 적이 알아서 물러나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슬기가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아직도 주변은 불바다였다.

슬기는 빠르게 불붙은 장작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걸로 공격하자!”

슬기가 장작을 드는 순간, 거의 동시에 광개토도 근처에서 불붙은 장작을 하나 집어 들었다.

“뭐, 천년이고 자시고 뭐라 씨부리던데, 어쨌든 강시는 강시지 말입니다. 그리고 강시는..”

“불에 약하지.”

슬기가 광개토의 말을 이어 받았다.

그때 태고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발출된 사기 덩어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광개토와 슬기의 손에 들린 불꽃을 감쌌다.

쾅-

사기가 불꽃을 감싼 순간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과 사기가 폭탄처럼 터졌고, 그 충격에 광개토와 슬기는 튕겨나가듯 바닥에 처박혔다.

넘어진 채 귀와 코, 입으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둘에게 태고가 한마디 던졌다.

“바보 멍청이들아, 본 군주는 안 약하지롱!”

거칠고 탁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말투. 태고의 빈정거림이 폭발로 생긴 이명을 뚫고 둘의 머릿속에 똑똑히 들려왔다.

꽤나 기분이 더러워진 광개토가 겨우 힘을 끌어다가 입을 열었다.

“이놈 왠지, 이전에 겪었던 몹들이랑은 좀 다른 거 같은데 말입니다.”

“좀 더 짜증나지?”

“그렇지 말입니다. 졸라 짜증나게 합니다. 살짝 욕도 하는거 같고, 마치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이..”

“아마도 망토 때문이겠지?”

슬기가 고개만 살짝 들어 태고의 왼손에 들린 실리엔을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실리엔의 등에 잿빛 망토가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태고가 의기양양해하는 와중에도 둘의 낌새를 눈치 챘다. 태고가 시퍼런 안광에 이채를 떠올리며 둘에게 날아왔다.

“오호, 너희들.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뭐, 인마.”

누운 채로 태고를 맞이한 슬기가 잔뜩 인상을 쓰며 오리발을 내밀려고 했지만, 망토의 영향으로 몹으로서의 제약에서 상당히 벗어난 태고는 속지 않았다.

“아니야, 잡것들 주제에 분명히 본 군주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군.”

“아, 욕설 같은걸 할 수 있게 된 거?”

“오호,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속이 후련해지는 말들을 말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그리고 귀로 듣는 순간, 기분이 더러워지고, 속이 답답해질걸, 이 시커먼 삼일 못 싼 변비 똥쪼가리같은 개 뼈다귀야!”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상태였지만, 입만은 그녀의 뜻대로 옹알종알 잘 움직였다. 슬기의 거한 욕설에 태고가 움찔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년 말대로 남이 하는 걸 듣는 건 좋지 아니하군.”

그리고 태고의 뻗은 두 손에서 연기처럼 일어난 시퍼런 사기가 둘에게 다가왔다.

삽시간에 둘을 감싸버린 사기. 이제 이 사기가 콧구멍과 입 속으로, 그리고 피부를 파고들면 둘은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때 슬기는 뿌연 연기들 사이로 하늘 저 편에 떠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예전에 항상 봐왔었던,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항상 상상해왔던 그 그림자. 슬기는 죽을 때가 되어서 환상을 본다고 생각했다.

‘아니, 고작 게임에서 죽는 건데, 환상까지 볼 건 없잖아?’


작가의말

늦었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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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화 20.01.03 383 4 13쪽
159 159화 20.01.03 36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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