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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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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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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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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0화

DUMMY

729년 1월 19일.

728년의 마지막 해가 저물고, 파우스의 생일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게누아 모험자 길드는 한창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오늘도 험한 일을 해서 하루를 살아가는 모험자들이 협력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길드 로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평소에는 짧고 얇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거리의 엘프들 중에서도 다리를 가리는 긴 바지를 입은 사람이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기온이 낮아진 상태.

같은 일상, 같은 이야기, 같은 풍경이 이어질 것 같았으나 변화는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그럼 이번 사태는 국왕 폐하께서 의도하신 게 맞았군요."



한창 길드가 바쁜 와중이지만 오늘 파우스는 게누아 백작의 저택에 호출되었다.

게누아 백작, 미니엘 행정관과 셋이서 회의를 하던 파우스는 게누아 백작이 거의 1개월이나 걸려서 얻어온 정보를 듣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고 미니엘 행정관 역시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예, 왕실 주방의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엘프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번 왕위계승 분쟁에서 폐하는 2왕자 전하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1왕자 전하를 견제를 하고 계십니다."



벌써 수면 위로 떠오른지 몇 개월이나 된 사비니 왕국의 1왕자와 2왕자의 대립은 그야말로 꺼지지 않는 불씨 그 자체였다.

대륙 최남단 도시를 다스리면서 중앙 정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게누아 백작이 이번 사태의 전말 일부를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왕실 주방에 요리사로 들어간 엘프들이 여전히 그에게 협력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며 만약 이 연줄이 없었다면 그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아예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실 주방 요리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국왕의 명에 의해 울테리올 공자가 중앙군을 이끌고 출진해 밸리안 왕국의 남부 지역을 침공했던 때인 724년, 전쟁이 종결되고 논공행상이 끝난 뒤 국왕 루이와 1왕자가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1왕자가 아버지인 국왕에게 전쟁과 국가 운영 쪽에서 의견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이때 국왕과 1왕자 사이에 균열이 생긴 걸 놓치지 않은 2왕자가 5년 동안 끈질기게 그 틈을 파고들었고, 이를 눈치 챈 1왕자는 남동생을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그러나 2왕자는 다소 거만하다는 대중의 평가를 받는 형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며 힘을 키웠고, 그런 대립은 얼마 전에 있던 2왕자가 직접 1왕자의 부하를 고발하는 것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이미 어떤 계기로 1왕자에게 마음이 떠나있던 루이 왕은 두 아들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인지 2왕자의 행동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인하면서 1왕자 파벌과 2왕자 파벌의 대립이 본격화 된 지금 게누아 백작은 고민에 빠졌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작의 장자인 울테리올 공자가 2왕자 쪽 핵심 인물인 브락스 후작이 여는 파티에서 2왕자와 대놓고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는 말이 사교계에서 나왔다는군. 거기에 공작의 차남인 세네카 백작 역시 그 파티에 함께 참석했었던 걸 보면 울테리올 공작은 사실상 2왕자에게 붙었다고 보는게 맞겠지."



평소에 대립을 하던 울테리올 공작가의 두 형제가 모두 2왕자 쪽에 붙었다는 건 사실상 울테리올 공작의 지지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파우스는 의문을 제기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제가 세네카 백작과는 여러 해 일해봤기에 잘 아는데 근거나 이유가 없으면 이렇게 빠르게 입장을 정할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인 공작이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파우스와 게누아 백작은 대화를 하면서도 뭔가 납득이 안된다는 투였고 옆에서 듣고 있던 미니엘이 말했다.



"공작가가 2왕자를 이렇게 대놓고 지지한다는 건 1왕자 쪽에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심각한 결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1왕자가 먼저 공작가에 적대행위를 했거나"



이 왕국에 단 하나뿐인 공작가가 이렇게 대놓고 적장자가 아닌 2왕자를 지지한다는 건 남부의 엘프들이 중앙 정계에 신경쓰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뭔가 있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일단 이 문제는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왕실 주방 쪽의 연줄 만으로는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으니 부길드장이 가지고 있는 북부 쪽 연줄에 기댈 수 밖에 없군."


"들어오는 정보가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이상 중앙 정계의 폭풍에 신경 써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해당 안건에 대한 회의는 여기서 종료.

세 사람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 다음 서류는 케일런 교단에 대한 것이었는데 협력 관계로 돌아선지 몇 개월 밖에 안되는 이들은 악신의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의외로 별다른 사고 없이 제 할 일을 잘해주고 있었다.



"그보다 케일런 교단이 의외로 도움이 되네요. 전 그들이 사고를 대놓고 칠 줄 알았는데"


"예, 일단 글로르나르 도련님 주변에 돌던 안 좋은 소문들 대부분이 그들 덕택에 해소된 것만으로도 그들과 타협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케일런 교단은 신과 신도 모두 남의 연인을 빼앗는 짓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에 케일런 교단이 게누아 백작가와 협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니엘이 바람을 피워서 글로르나르를 낳았다는 터무니 없는 누명은 금방 벗겨졌다.

남의 연인을 빼앗거나 바람을 피우는 자들은 상대가 왕이라도 척살해버리는 미친놈들이 얌전히 게누아 백작가에 협력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케일런 교단이 게누아 시에 허락 받고 만든 임시 신전이라는 이름의 불륜 조사 전문 흥신소에는 오늘도 엘프들의 울음과 고성이 오가고 있었으나 도덕적,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백작은 어차피 불륜이나 바람을 허용하는 것보다 이들을 어느 정도 진압하고 자기 짝을 배신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소 소란이 일어나는 것 정도는 인내할 생각이었다.



"나나에게 새로운 소식은 안 들어왔나?"


"남쪽 해안가 개척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안가 몬스터 퇴치와 가도 정비에 앞으로 반년은 더 투자해야 하고 사람들을 정착시키고 제대로 마을로서 기능하게 하는데 최소 3년에서 4년은 걸릴 겁니다. 물론 군사적 거점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용 가능합니다만"



파우스는 현재까지의 개척 상태를 토대로 계산한 보고서를 내밀었고 게누아 백작은 조용히 보고서를 읽었다.

지금 백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남쪽 해안가에 만들 게누아 시의 위성도시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아직도 한참이 걸릴 게 분명했다.

미니엘 행정관은 이미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파우스에게 미리 보고서를 받아서 읽어놨기에 보고서에서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려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엘프들에게는 짧지만 중앙 정계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속도입니다."



중앙 정계의 판도가 요동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미니엘 행정관도 훌륭한 개척 속도라고 칭찬을 했겠지만 왕위 계승 분쟁이 터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4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게다가 수도 엘레키움에서 움직이고 있는 엘프와 다크엘프들은 영향력과 입지가 좁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숫자가 부족했다.



"괜찮다 미니엘. 어느 정도 대응책은 마련해뒀다."



그러나 게누아 백작은 미심쩍어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쪽 해안가 개발을 밀어붙일 작정이었다.

대체 무슨 대응책을 가지고 있는지 딸인 미니엘과 부하인 파우스에게 털어놓지 않았지만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는 게 분명했고 백작은 중앙 정계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고 딱 잘라 말하고는 이번에는 미니엘에게 물었다.



"작년 세출입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더구나"



작년에 게누아 백작가는 파우스가 온 뒤 연금술 공장을 새로 짓고 비싼 기기를 들여놓는 것도 모자라서 남부 해안가 개척을 시작해서 쌓아 놓은 예산을 상당수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작의 예상보다 돈이 많이 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대륙 서부와 체결한 향신료과 과일을 수출 계약 때문이었다.

사비니 왕국 모험자 길드 중앙회가 대륙 서부와 대륙 남부 상인 길드들에 중개한 계약건이 잘 풀려서 대륙 최남단의 향신료 생산지인 호겐 지방의 지배자인 게누아 백작과 상업길드에 연줄을 지닌 멜린 자작가의 수입이 대폭 증가했다.



"재작년 대비 감소지만 작년의 투자금액을 생각해본다면 꽤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수출 물량을 슬슬 조절해야한다. 이번에는 돈이 급해서 수출을 늘렸지만 무턱대고 생산량을 늘리면 땅은 물론이고 우리도 버티지를 못해."


"예, 물론입니다."



게누아 백작은 돈이 된다고 무작정 향신료 생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땅과 주변 환경 상태를 생각하면서 지시를 내렸다.

호겐 지방에는 아직도 미개척지로 남은 정글들이 많이 있고 그곳들을 전부 향신료를 만드는 농지로 만들면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미개척지가 미개척지로 남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안 그래도 작년 수확철에 정글 속의 몬스터들이 향신료 농장에 자주 출몰해서 모험자 길드에 의뢰량이 증가했고, 개척으로 점점 밀어내고 있지만 정글 속의 유독한 해충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골칫거리였다.

대형 몬스터는 병사와 모험자로 처리할 수 있지만 해충들은 아무리 방역을 해도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계속 밀려들었다.

지금은 게누아 시와 개척이 끝난지 수십 년이나 지난 도시들은 사람들이 짧고 얇은 옷을 입고 다니지만 게누아 백작이 막 태어났을 무렵에는 몇몇 도시에서는 긴팔과 긴바지를 입어서 해충이 달라붙는 걸 경계해야 했던 적도 있다고 할 정도로 해충들은 큰 문제였다.


세 사람은 한참동안 여러가지 문제로 논의를 했고 회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미니엘 행정관이 깜빡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부길드장의 장녀가 올해 입학 예정이었죠?"


"예, 헤르는 작년에 7번째 생일이 지났습니다."


"그럼 장녀 말고 나머지 아들과 딸은 어쩌실 생각이죠?"



미니엘 행정관의 말에 파우스는 잠깐 고민했다.

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는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저와 아내 둘 중 하나가 빠지기에는 지금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럼 아이데스와 루스티아나를 저희가 맡고 싶습니다만"



그 순간 미니엘과 파우스는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고 한 명은 상대의 눈에서 큰 기대와 욕망을, 다른 한 명은 상대의 눈에서 고요한 잔잔한 바다를 느꼈으나 그 바다의 수면 위에 조금씩 부글거리는 방울이 올라오는 걸 보았다.



"그동안 여러가지 억측과 누명과 선동 때문에 글로르나르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습니다. 하필 유모에게도 자식이 없어서 젖형제도 없었지만 그 아이는 아이데스와 루스티아나에게 금세 마음을 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도자가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만 사실 지도자는 누구보다도 자기 사람이 필요한 법. 아이데스와 루스티아나는 분명 글로르나르를 제대로 보좌해줄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이데스는 이미 미니엘에게 제대로 찍혀버린 상태였다.

사실 찍혔다기보다는 미니엘 행정관이 일방적으로 좋아한다고 해야겠지만 그 좋아하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훌륭한 작업도구를 찾아서 기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게누아 백작과 미니엘 행정관은 가신이 되라는 권유는 멈췄지만 뒤로는 새로운 부길드장 후보를 찾고 있다는 걸 파우스도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파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끌어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기회가 오면 바로 파우스를 즉시 가신으로 받아들이려고 밑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밀어붙일 시기가 아니었기에 백작과 행정관은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이다.

피정복민인 엘프들의 지도자인 게누아 백작이 군과 병사를 늘리면 사비니 왕국 중앙 정계는 당연히 이들이 독립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게 분명하기에 게누아 백작은 아예 게누아 시의 모험자 길드 간부들을 자기 사람을 채워넣어서 모험자를 사병 대신 써먹고 있었다.

가뜩이나 이런 중앙 정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모험자 길드 부길드장을 명분도 없이 억지로 자기 가신으로 끌어들인다면 분명 모험자 길드 중앙회를 통해 사비니 왕국 중앙 정계에도 정보가 흘러들어갈 것이고 여러 파벌들의 시선을 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명분이 있어야 했다.

모험자 길드 간부가 모험자 길드를 그만두면서도 별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모두에게 좋은 명분이 필요했다.

백작과 행정관은 그 명분이 생기는 걸 기다리며 새로운 부길드장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아이들 엄마와 아이들과 상의하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니"



파우스는 답변을 회피했으나 미니엘은 웃고 있었다.

그 상쾌한 미소 속에는 분명 시커먼 속내가 감춰져 있었으나 파우스의 가족들에게 완전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파우스는 별 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사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모험자 길드보다 귀족가문의 가신 쪽이 훨씬 인식이 좋다.

그것도 차기 후계자의 친구이자 오른팔이라면 모험자로서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정도가 아니면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많은 돈에는 많은 욕망이, 높은 지위에는 높은 위험이 따르는 법.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귀족과 고위 공무원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자유는 없다.

귀족들에게는 귀족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파우스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연 머리는 좋지만 어딘가 얼빵한 아들을 이런 험악한 사회에 벌써부터 내던지는 것이 옳은 일인가 파우스는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툴루스 주교의 몸에 강림하기 전, 화려하지만 비극으로 점칠되어 있던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파우스는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비극이 닥쳐오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냐는 마음 속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볼 수 없게 된 빛나던 왕국의 타락해버린 왕궁과 미쳐버린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하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한 방에서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서서히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자신의 날개를 이불 삼아 덮은 채 죽어간 자신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에게 모든 것을 되찾게 해주겠다며 손을 내밀던 존재들을 거부하고, 목숨을 보전해주겠다는 존재들이 허상에 불과하다며 부정하고, 그 무엇에게도 살려달라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택한 길의 끝에 구원 따윈 없고 타락해버린 왕궁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왕국에서 이젠 가장 작은 벌레조차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기에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모른 채 자신의 시신이 조용히 썩어갈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죽음이 드넓은 바다에 손톱 만한 돌을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 그 길을 택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파우스는 어느새 자신이 회의가 끝나 백작가에서 나와 어두워진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프와 다크엘프 남녀들이 웃으면서 거리의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먹고 있는 걸 보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꼬치를 팔고 있는 걸 보고 주머니를 뒤적거렸으나 아뿔싸.

지갑에는 안타깝게도 동전 대신 영수증만 뒹굴고 있었다.

그 영수증은 상업길드에서 구입한 연금술 재료들에 대한 것이었으니 지갑이 텅 비어버린 이유는 분명 며칠 전에 연금술 재료 구입하고 지갑 안에 돈을 보충해놓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파우스는 잠깐 고기꼬치를 보다가 몸을 돌려 집으로 걸어갔다.

그의 집은 오늘도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문을 열자 거실에 있던 가족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빠다옹! 아빠! 빨리 밥! 저녁!"


"아빠! 쟤가 또 나 꼬리로 때렸어!"


"아이데스! 누나한테 쟤가 뭐니! 그리고 꼬리가 네 얼굴을 친 건 고의로 때린 게 아니라 실수잖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작은 딸과 아들은 투닥거리고, 아내와 장녀는 그걸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는 이런 소란스러움마저 반가웠고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위해 식탁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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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화 23.07.19 17 1 22쪽
92 92화 23.07.19 12 1 14쪽
91 91화 23.07.19 13 1 20쪽
90 90화 23.07.18 12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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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6화 23.07.14 16 1 24쪽
75 75화 23.07.14 16 1 11쪽
74 74화 23.07.14 15 1 21쪽
73 73화 23.07.14 1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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