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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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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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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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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DUMMY

저택 매입, 연금술 실험실과 작은 대장간 추가 증설, 가구 배치, 아이들 교육 문제 등으로 레아와 파우스는 거의 보름 가까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대륙 남부에서도 해안지대와 가까운 최남단 지역 중 하나인 게누아의 기후는 그야말로 찜통 더위라는 말이 어울렸다.

태양이 내뿜는 열기와, 습도 모두 높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레아와 아이들의 복장은 더위를 견디기 위해 현지인들과 비슷해졌다.

파우스는 그 와중에도 늘 입던 회색빛 수도복을 고집하다가 레아에게 한소리 듣고서야 면으로 만든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게 되었다.


파우스가 레아에게 선물해준 미스릴 합금 풀 플레이트는 온도 조절 마법과 주문을 심어놓기 위해 파우스에게 되돌아가는 바람에 레아는 갑옷의 개수가 끝날 때까지 사용할 현지 사정에 알맞는 방어력이 높으면서도 어느 정도 통기성 높은 갑옷을 새로 구매해야 했다.


처음에는 끔찍할 정도로 더운 기후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인간, 엘프, 드워프, 수인을 포함하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결국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레아와 파우스 가족이 게누아로 이사 오고 13일이 지났을 때 놀랍게도 파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어느 정도 적응하는데 성공하였다.


헤르와 루스티와 아이데스 삼남매는 금세 근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헤르는 대인공포증은 거의 치료되었지만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고, 아이데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무표정 소년이지만 그나마 붙임성 좋은 루스티가 금방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들의 형제자매들을 언니 헤르와 동생 아이데스에게 연결시켜줬던 것이다.


아이들끼리의 친분을 통해 레아와 파우스는 게누아 백작이 만들고 지원하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과 연결을 만들 수 있었다.

학부모들로부터 게누아 사립학교에 대한 정보와 평판을 수집한 레아와 파우스는 고민 끝에 올해 9월에 생일이 지나 7살이 되는 헤르를 내년에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기로 하였다.


레아는 그 호탕하면서도 선은 안 넘는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강한 여자이기에 게누아 모험자 길드 직원들과 금세 친해졌다.

모험자라는 직업은 난폭한 사람들이 많고 짐승과도 같은 힘이 제일이라는 논리로 움직이는 자들이 많다.

레아는 그런 모험자 업계에서도 베테랑 소리를 들을 모험자였다가 길드 직원으로 전업한 케이스라 모험자와 길드 직원 양쪽의 고충을 알고 있어 능숙하게 중재를 해냈다.


그러나 파우스 아니, 게누아 시의 주민들은 보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파우스에게 익숙해지지 못한 모양새였다.

레아와 파우스 가족이 게누아에 온지 13일이 지나 7월로 달이 넘어갔지만 파우스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모험자 길드장 나나스 멜린과 장인길드 사람들, 게누아 백작 정도였다.

모험자 길드 부길드장이 모험자 길드 직원들과 모험자들보다 다른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과 친한 사람이 더 많은 건 누가봐도 문제였다.

다크엘프, 엘프, 인간을 가리지 않고 다들 파우스를 대하기 어려워했다.



"저기 레아 씨, 문제가 생겼어요."


"혹시 또 남편이랑 로스미르 문제는 아니겠죠?"



7월 5일.

오늘도 통기성 높은 복장으로 게누아 모험자 길드의 직원으로서 로비에서 일하고 있던 레아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접수원 놀디엘이 자신을 찾은 것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물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어제와 똑같은 말을 했다.



"예, 또 그 문제에요. 부길드장 님이 훈련장에서 로스미르를 가지고 놀고 계세요."


"하여간 남정네들이란..."



로스미르는 게누아 모험자 길드에 등록된 젊은 다크엘프 모험자로서 상당히 호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망나니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는 걸 참지 못하고,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눈도 뒤떨어져서 상대가 강하건 약하건 마음에 안들면 일단 들이박고 보는 곤란한 성격을 지닌 모험자였다.

파우스가 부임하고 일주일 만에 길드 로비에서 로스미르와 시비가 붙었고 파우스는 로스미르를 자비없이 때려눕혔다.

그 후 로스미르는 매일 같이 파우스에게 도전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이야아앗!"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동작이 너무 크다. 움직임이 굼뜬 몬스터 상대라면 모를까 대인전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레아가 훈련장에 도착하자 오늘도 목검을 든 파우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있는 로스미르가 보였다.

늘 무표정하던 파우스도 질렸는지 평소와는 달리 짜증이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파우스는 집요하게 로스미르의 손목을 노리는 척하면서 다리와 몸통을 후려갈겼고 타박상이 심해져서 피부가 터져나와 목검에 피가 묻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방어와 회피, 거리 조절도 못 배운 녀석이 모험? 제대로 된 훈련부터 받는 게 좋을 거다."


"시끄러! 부길드장이면 다야? 난 내 방식대로 최강이 될 거라고!"



로스미르는 그 와중에도 들고 있는 목검을 놓지 않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기에 다른 길드직원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파우스는 분명 시야 밖의 사각지대일텐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훈련장의 모래를 밟자마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면서 로스미르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백 살도 넘은 양반이 백 살도 안된 어린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내가 이 짓 좀 그만하라고 했지!"



파우스는 레아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검을 내리치면서 로스미르가 상단을 방어하도록 유도한 뒤 무릎으로 로스미르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후려쳐서 기절시키고는 목검을 닦아서 훈련장 구석의 거치대에 놓고 레아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길드직원들과 모험자들은 몇 명은 로스미르에게로 다가가 상태를 살피고, 일부는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100살이 넘었다고? 그런데 저런 젊은 얼굴이면 인간이 아닌 건가?"


"하프엘프일 수도 있고, 애 셋 중 둘이 호랑이 수인인 걸 생각하면 혹시 여러 종족이 섞인 믹스가 아닐까?"


"아, 그래서 애들 중 둘이 귀랑 꼬리가 있던 거구나 수인의 피가 섞인 하프엘프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지."



금세 길드 직원들 사이에서 오해가 퍼져나갔지만 파우스는 딱히 바로 잡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파우스는 손에 감고 있던 천을 풀면서 레아에게 말했다.



"나는 적당히 봐주고 있다. 내가 무자비한 녀석이었다면 저 녀석은 2일째에 뼈가 부러져서 병동 신세를 지고 있었을 거고 지금까지 우리가 녀석을 볼 일도 없었을 거다."


"미안해요 타우리엘, 그 꼬마 좀 돌봐줘요."



레아는 모험자 길드 교관 중 한 명인 타우리엘에게 부탁하고 파우스를 데리고 훈련장에서 나오며 말했다.



"가지고 놀지 말고 일격에 보내버려서 소란 좀 안 일어나게 하면 안 돼? 벌써 일주일 째라고 일주일 째!"



원래 파우스와 로스미르의 실력차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레아가 와서 개입할 여지도 없이 금세 끝날 수준이다.

그런데 싸움이 이렇게 질질 끌리는 것은 그저 파우스가 로스미르를 가지고 놀면서 힘 조절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 로스미르 혼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파우스가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으로 로스미르를 써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덕분에 시비를 거는 놈이 그놈 하나로 줄어들었지 않나?"



파우스가 로스미르와 시비가 붙고 대판 깨진 로스미르가 파우스에게 도전을 거듭한지 일주일 째, 처음에는 나나스 멜린이 다른 지역에서 영입한 파우스의 실력을 의심하던 길드 직원과 모험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파우스와 레아의 실력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로스미르를 아예 가지고 놀면서 샌드백 대신 때리는 파우스의 성품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포기할 줄을 모르는 로스미르를 농락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요새는 난폭하기로 유명한 몇몇 파티조차 로비에 파우스가 보이면 트러블 일으키지 않으려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덤으로 그런 파우스가 고분고분 말을 듣는 상대인 레아의 실력에 대한 평가도 지나칠 정도로 올라가 레아는 그때마다 자기 실력은 파우스보다 뒤떨어진다고 해명을 해야할 정도였다.



"이제 다들 어느 정도 우리 실력을 알았으니까 평판 관리 좀 하라고 이 양반아."


"포기하지 않는 쪽은 내가 아니라 그 꼬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이 증설이 완료되었으니 못 다한 연구를 하고 싶다."



파우스는 어제 간신히 증설이 끝난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의 정돈을 오늘 내로 끝마치고 지연된 연구들을 재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로스미르는 매일 같이 얻어맞고 끝내 기절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로스미르 꼬마가 내일도 도전해오면 어쩔 거야?"


"역시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평판에 좋지 않으니 좋게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래도 안 먹히면?"


"적당하게 처리할 생각이니 걱정마라"



파우스는 내일 최후통첩을 한 뒤에도 로스미르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 아예 재기불능으로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레아는 불안감 밖에 안드는 남편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며 통로를 지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타티아 모험자 길드 로비의 2배가 넘는 면적의 넓은 로비의 테이블과 의자에 모인 모험자들이 휴식 겸 정보교환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누아 남쪽 해안가 몬스터 토벌에 갈 친구 없어?"


"서남쪽 향신료 농장에서 긴급 퀘스트! 농사를 방해하는 거대 멧돼지와 거대 원숭이 토벌인데 같이 갈 모험자?"


"이 정보는 꽤 비싸다고? 맥주로는 안되고 좀 도수 높은 놈을 줘야겠어 형씨."



아벤티스 모험자 길드처럼 펍 혹은 바 형태의 술집이 있는 게누아 모험자 길드 로비는 낮부터 상당히 활기찬 모습이었다.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화폐로는 금화나 은화 대신 주로 포션이나 술이 오고갔다.

정보 교환에 사용되는 화폐 중 인기가 가장 좋은 건 과일즙과 얼음, 도수 높은 술을 섞은 시원한 트로피컬 칵테일이었다.



"큭, 그 정도 정보라면 내 특제 칵테일 레시피를 알려줘도 될 정도군. 잘 보라고 딱 한번만 만드는거 보여줄 테니까."



그러나 그 트로피컬 칵테일도 통일된 규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험자 별로 제각각이었다.

어떤 파티는 칵테일에 포션을 사용하고, 어떤 파티는 특정 과일의 특수한 부위를 사용하고, 어떤 파티는 흔하디 흔한 재료의 혼합 비율을 기가막히게 조정해 특수한 맛을 내고는 했다.

다른 지역 모험자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특수한 문화는 대륙 남부 엘프 부족의 전통 중 일부가 게누아 모험자에게 스며들어 자리잡은 것이었다.


모험자 중에는 길드와 제휴를 맺고 각각의 클랜이나 파티만 알고 있는 특수한 칵테일을 맛보고 그 모든 칵테일에 순위를 매겨 공시해주는 일을 하는 자도 있을 만큼 트로피컬 칵테일 제조 및 교환은 게누아 모험자들 만이 가진 특별한 문화였다.



"저거 부길드장이잖아?"



신나게 정보교환을 하던 모험자들 중 일부가 파우스를 발견하고 얼어붙었고 모험자들 사이에서 침묵의 파도가 한차례 퍼져나간 뒤 방금 전과 같은 떠들석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속삭임들이 제각기 들려왔다.



"멍청한 로스미르 녀석이 또 쓰러졌나보구만... 그 새끼 눈깔은 유리구슬인게 분명해. 아무리 상대방 역량 재는 눈이 부족한 초보자라도 그렇지 한 눈에 봐도 강해보이는 작자한테 왜 덤벼"


"로스미르 대신 두들겨 팰 샌드백 찾으러 온 거 아냐?"


"저 눈빛 좀 봐! 살인자의 눈이야!"


"내가 왕국 북부에서 온 모험자한테 소문 들었는데 북부 대영주 밑에서 반역 귀족 심문하는 일을 종종 의뢰 받을 정도로 고문에 일가견이 있는 고문기술자라던데?"


"귀족 놈들이 같은 귀족 고문하는 일을 맡길 정도라고? 대체 고문을 얼마나 잘하는 거야."



안타깝게도 파우스에 대한 유언비어 중 일부는 사실이었다.

예전에 파우스가 반역자 티겔리를 고문했던 때 그 솜씨가 마음에 들었던 세네카 백작이 이후에도 가끔 범죄자 심문 및 고문을 그에게 의뢰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름끼친 것인지 알고 있는 레아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지만 파우스는 되려 로비의 길드 소속 바텐더 쿨캄에게 다가가 말했다.



"말의 목덜미 칵테일 한 잔"



그 말을 들은 쿨캄은 이름 그대로 금빛의 쫙 달라붙는 장갑을 끼고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 잔에 레몬껍질을 길게 잘라내서 배치한 뒤 얼음과 함께 넣고,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 생강즙을 넣고 게누아 인근에서 채취할 수 있는 탄산이 섞인 약수와 보라색 빛을 띄는 푸른 꽃의 뿌리와 여러 향신료를 섞은 약주 농축액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쿨캄은 말없이 술을 파우스에게 건넸다.


파우스는 잔을 천천히 기울여 마시고 잔에 반쯤 남은 술에서 시선을 돌려 로비에 모여있는 모험자들을 둘러보았다.

파우스와 눈이 마주치면 괜히 시비가 걸릴 거라고 생각한 건지 모험자들 대부분은 눈을 피했지만 그 중에서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카라니보르"


"뭐야?"



그 엘프는 술에 취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해 파우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파우스는 그가 그저 술 취한 척을 하고 있을 뿐 제정신이라는 걸 꿰뚫어보고 있었다.

파우스는 쿨캄에게 브랜디 한 병을 달라고 하고는 브랜디를 들고 그 엘프가 앉아있는 테이블 반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이름은 카라니보르, 랭크는 은, 주무기는 검, 꽤나 신뢰받는 베테랑으로 5명의 동료가 있음, 선대 길드장 마스터 네르비나의 평가는 쓸만한 엘프, 맞나?"


"..."



자신에 대한 상세정보를 말하는 파우스를 보는 카라니보르의 눈빛은 더 이상 연기가 의미없다고 깨달은 건지 진지해졌다.

주변의 다른 모험자들은 숨을 삼키며 혹시 두 사람이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파우스는 천천히 브랜디 병을 카라니보르 앞으로 밀어서 건네며 말했다.



"지명 의뢰를 하고 싶다만 혹시 선약 있나?"



파우스의 말을 들은 카라니보르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브랜디 병의 라벨을 꼼꼼이 살펴보며 말했다.



"지명 의뢰? 내용은?"


"게누아 남쪽 해안가의 해안 동굴 조사다. 탐색 거점으로 사용할 만한 장소가 없는지 알아보고 싶군."


"그쪽으로 진출하는 건 옛날옛적에 실패했어. 해안가 중에서 몬스터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지점은 극히 한정되어 있고 몬스터들의 영역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바뀌는 바람에 지금 얻은 정보가 다음달에도 그대로 유지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카라니보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고 그들의 대화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모험자들 중 일부는 김이 빠지는지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자기들끼리 떠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카라니보르 역시 악명이 자자한 부길드장이 아무래도 공을 세우려고 무리한 시도를 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기려고 했으나 파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라니보르 옆으로 가더니 주머니에서 조용히 은화를 꺼내 카라니보르 앞에 쌓아놓으며 말했다.



"선금으로 은화 열장, 아무 일 없어도 거점으로 사용될 만한 장소를 찾아오면 은화 20장, 중대한 뭔가를 발견해 보고하면 건당 금화 1장. 그외 의뢰 중에 사냥한 소재의 평균가격의 1.2배로 매입."


"의뢰서는?"



카라니보르는 혹여나 파우스가 임무완료해도 선금 외의 돈을 떼먹는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파우스는 품속에서 미리 작성한 의뢰서를 꺼내서 건넸다.

의뢰서는 모험자가 사인할 부분만 비어있고 나머지는 전부 작성이 완료되어 있었다.


그러나 카라니보르는 서명하고 의뢰를 받는 걸 망설였다.

제 아무리 부임한지 보름 정도밖에 안됐다고 하더라도 파우스는 타티아에서도 부길드장직을 맡고 있던 고위 간부고 실력도 뒷바침이 되는 자였다.

그런데 이런 쉬운 의뢰에 이런 고액을 걸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명의뢰를 한다?

카라니보르는 저 차가워보이는 부길드장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의뢰를 받아들였다.


카라니보르는 당장 조사해보겠다고 나갔고 그 뒤 5명의 모험자가 따라갔다.

카라니보르의 파티가 나간 뒤 직원구역으로 돌아온 파우스와 레아에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나나스 멜린이 다가와 말했다.



"만약 해안가에도 없으면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러면 저 넓은 정글을 일일이 찾아보거나 미끼를 던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파우스가 카라니보르에게 의뢰를 한 건 나나스와 협의가 되어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정작 레아는 전혀 들은 게 없었기에 길드마스터와 남편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따라갈 수 없어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최근 이 게누아 내에서 살인사건이 급증했다는 것 알고 있나?"


"들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살인사건들 상당수가 공통점이 두 개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레아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뜸들이지 말라고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고 파우스는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첫번째 공통점은 동기다. 지난달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70%는 치정살인이었다."


"그럼 다른 하나는?"


"두번째는 협력자가 있는데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고 마법과 주문으로도 협력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는 거다."


"그거..."


"그래, 바람 피우다 살해당한 오르갈 부길드장 사건과 똑같다."



파우스는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이 만들어지지 않은 지난 보름동안 계속해서 오르갈 부길드장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르갈 부길드장 치정살인 이후로 게누아에서 급증한 치정살인 사건들의 피의자들이 죄다 어떤 능력 혹은 마법에 의해 협력자의 존재를 말할 수 없었다는 걸 알아냈다.


한 둘이면 모를까 10명도 넘는 치정살인의 범인들이 죄다 똑같이 협력자의 존재를 실토하지 않고 있는 것도 모자라 파우스의 사고탐색 주문에도 저항하며 협력자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던 것에서 파우스는 상대가 개인이 아닌 조직이며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억을 관리하는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섞여있다고 추측해 나나스 멜린에게 보고하였다.


멜린은 파우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조부인 게누아 백작의 협력을 얻어내 도시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이제 도시 밖을 수색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으음..."



레아는 파우스와 멜린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뭔가 떠오른 건지 골똘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파우스가 물었다.



"왜 그러지?"


"우리 대륙 북부 국가들 돌아다닐 때 이거랑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아서 말이야. 그때 분명... 뭐였더라?"



레아는 뭔가 떠오를 것 같지만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을 끄잡아낼 수 없어서 답답한 얼굴로 계속 생각했고 파우스는 나중에 생각나면 알려달라고 하고 다른 업무에 들어갔다.

레아는 근무시간 내내 대륙 북부 국가들에서 있었던 일과 치정살인을 연관시켜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퇴근 후 집에서 아이들과 씻고 저녁 먹는동안 치정살인과 관련된 기억이 싹 날아가버렸다.


레아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5일 후, 너덜너덜해진 카라니보르의 파티가 모험자 길드 로비의 문을 박차고 쓰러지듯이 뛰어들어온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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