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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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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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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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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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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DUMMY

728년 7월 16일.

오늘도 게누아의 거리는 평화로웠다.

케일런 교단의 기습 시위로부터 5일이 지났으나 이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이혼 전문 변호사 집단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5일 전, 보고를 받은 게누아 백작이 이들에게 현상금을 걸었으나 죄목은 겨우 조세회피 및 탈세, 고성방가, 토지 불법점거 및 사용 정도였고 걸려있는 현상금이 은화 10장도 되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모험자나 현상금 사냥꾼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케일런 교단 입증파는 서쪽으로 향하며 무분별하게 불륜, 바람, 외도를 폭로해 혼란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루노 주교의 케일런 교단 입증파는 딱히 살인을 저지르거나 누군가를 때리거나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조사 후 그 내용을 마을이나 도시 한복판에서 폭로하는 것이었기에 법적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브루노 주교의 입증파는 단순한 광신도가 아니었다.



"아주 난리도 아니네"



한창 작업이 진행중인 게누아 백작 소유의 거대한 창고 안에서 창고를 공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감독하던 레아는 올라온 보고서를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와중에 귀족들의 스캔들은 폭로하지 않고 증거만 수집하고 떠났어? 똑똑하네."



이제까지 CCC, 케일런 교단의 성직자들을 체포하려고 시도한 사비니 왕국 남부의 지방 영주들이 몇 명 있었지만 지방 영주들이 브루노 주교를 체포하려고 해도 명분은 소란을 일으키고 고성방가로 사람들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수준인데다 케일런 교단 성직자들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기에 어지간한 기사와 병사들로는 체포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불륜 증거를 수집당하고 폭로당하지 않은 귀족들 중 일부는 되려 브루노 주교에게 굽신대기 시작했다.

단순한 광신도였다면 귀족이고 뭐고 안가리고 다 터트렸겠지만 브루노 주교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자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케일런 교단은 자신들에게 건네지는 뇌물과 기부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체포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이들이 기부받는 것은 오로지 10명이 조금 넘는 케일런 교단 성직자들이 일용할 음식 뿐이었고 돈이나 귀금속은 절대로 받지 않았다.

게다가 언제나 조사 내용 발표 직전에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공익을 위해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을 공표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고 이 때문에 며칠이 지난 지금은 은근히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설마하니 게누아 백작까지 그들을 내버려두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자기는 켕길 게 없다는 의미일 거다."



게누아 백작은 은근슬쩍 케일런 교단 성직자들을 감시하는 이들을 붙여놓았고 이를 통해 케일런 교단이 흘리고 있는 사비니 왕국 남부 귀족들의 불륜 증거를 받아먹으며 정치적 고지를 점거할 수 있었다.

이는 게누아 백작이 아내 외의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케일런 교단에게 약점 잡힐 게 없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창 CCC, 케일런 교단에 대한 이야기를 부부가 꽃 피우고 있던 그때 고용된 엘프 일꾼 하나가 모르타르 재료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파우스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이건 어디다 놓을까요?"


"이쯤에 놓으면 될 것 같군."



파우스는 자신이 직접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설계도에는 텅 비워진 건물의 왼쪽 위를 기준으로 가로축과 세로축이 그려져 있었고 1파수스(1.48m)마다 각 축에 줄이 하나씩 그어져 한칸이 1제곱 파수스를 의미하고 있었다.


지금 레아와 파우스가 있는 거대한 창고가 있던 부지는 예전에 사비니 왕국의 국왕이 호겐 지방 정복을 하면서 게누아 시에 지어놓은 것을 철거하면서 마련된 것이었다.

전쟁 중에 엘프들로부터 수탈 및 약탈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던 거대한 창고는 전쟁이 끝난 뒤 게누아 시와 함께 게누아 백작이 왕국으로부터 넘겨받았고, 게누아 백작 저택이 지어지기 전까지 여러 물자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은 창고 건물 자체가 낡아서 처치곤란한 잡동사니를 쌓아두는데 사용되고 있었는데 게누아 백작은 파우스에게 이 거대한 창고를 포션 및 연금술 물질 제조 공장으로 개조해달라고 의뢰라는 이름의 명령을 내렸다.

파우스가 의뢰를 받아들이기 전부터 백작은 창고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를 죄다 밖으로 꺼내서 재고조사를 진행해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이 구분된 뒤에는 쓸 수 없다고 판정된 것들은 죄다 소각장으로 보내버렸다.



"게누아 백작이 엘프치고는 급진적이라고는 듣기는 했지만 직접 봤을 때는 고지식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보여서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보통 화끈한게 아니네."



게누아 백작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냐면 게누아 백작은 처음에는 기존 창고를 재활용할 생각이었으나 파우스가 창고 벽이 너무 낡아서 철거하고 지반 상태 파악도 해야 한다고 하자마자 마법사들을 동원해서 낡고 오래된 창고를 즉시 날려버릴 정도로 급진적이었다.


그러고는 하루만에 지하1층에 지상 2층짜리 포션 및 연금술 물질 제조 공장 설계도를 그려온 파우스에게 공장 건설 및 내부 설비 마련까지 몽땅 맡겨버렸고 파우스는 게누아 시의 장인 길드에 사람 모집 공고를 내고 소유의 가방, 위상도약 파우치 등의 아공간 보관소에 있던 연금술, 제약 장비와 설비를 꺼내 점검부터 해야 했다.

백작이 먼저 모집공고를 냈던 건지 반나절만에 일꾼과 기술자들이 모여들어 파우스의 지시대로 움직여줬다.



"그런데 공장이 굳이 필요할까? 게누아에는 실력있는 엘프 연금술사와 약사들이 많이 있잖아?"



의뢰를 받아 게누아 백작이 만든 사립학교에 헤르, 루스티, 아이데스 3남매를 입학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긴 했지만 레아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고 파우스는 일꾼들이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지 살펴보며 말했다.



"고용하고 싶어도 고용하지 못한 거다."



레아의 말대로 게누아에는 실력있는 엘프 연금술사와 약사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이 알고 있는 연금술과 약학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고전적인 연금술과 고전적인 약학이다.

약초를 뜯어다 멧돌로 갈고 절구공이에 찧어서 마녀들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연금술 솥에 넣고 국자로 휘휘 저어서 만드는 그런 고전적인 연금술 말이다.

이들 중 실력이 출중한 장로나 원로급 엘프는 파우스에게 실력이 뒤처진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누아 백작이 그들을 고용하지 않고 파우스를 불러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엘프 연금술사와 약사들이 게누아 시에 아직도 머물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게누아 백작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그 첫번째 이유는 당연하게도 원한 때문이었다.

게누아 백작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게누아의 다크엘프 중 고위급 연금술사가 없었다.

반대로 엘프 쪽에는 꽤 실력있는 연금술사와 약사들이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아직도 호겐 지방 정복 전쟁 당시의 원한을 잊지 않고 간간히 저급이나 중급 포션을 납품하는 것 이상의 협력을 거부했다.



"두번째 이유는 엘프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 혹은 고집 때문인지 아니면 외부와 적극적인 교류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수십 년이기 때문인지 대다수의 엘프 연금술사나 약사들이 고전 연금술, 고전 약학 분야에서는 나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뛰어나지만 자동화, 대량생산, 컴파운드 디자인 및 합성루트 최적화 쪽으로는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두번째 이유는 게누아 백작이 원하는 게 단순한 연금술 설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파우스처럼 자동화된 최신 설비의 라인을 설계하고, 운용해본 자가 없었다.

게누아 백작이 나나스 멜린을 통해 파우스를 데려오려고 한 이유 중 북부 대도시 타티아의 모험자 길드에서 재료만 넣으면 자동으로 약을 만드는 설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거라고 파우스는 추측하고 있다.



"그럼 백작의 의도는 공장에서 저급, 하급, 중급 포션과 연금술 물질을 대량생산하면 일단 먹고 살아야하긴 하니까 약사들은 중상급 이상의 포션을 납품하고 연금술사들도 품질 높고 희귀한 연금술 물질을 납품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도 최소한의 포션 공급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다."



의도가 어찌됐건 게누아 백작의 목적은 엘프 약사와 연금술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의해 나오는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이고 받을 걸 받아먹은 레아와 파우스가 할 일은 프로답게 게누아 백작이 지불한 값에 걸맞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었다.

해가 지자 일꾼들은 죄다 퇴근해버렸고 레아와 파우스 역시 잠깐 모험자 길드에 들려 그날 성과를 나나스 멜린에게 보고하고 집으로 갔다.



"다녀오셨어요"


"다녀와쪄여?"



집에 돌아가니 입가에 물고기 기름 사탕을 물고 있는 헤르와 레몬맛 사탕을 물고 있는 루스티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데스에게 달라붙어 있는게 보였다.

아이데스는 제일 어리지만 제일 어른스러운 얼굴로 아빠와 엄마에게 빨리 이 귀찮은 것들 좀 떼어내라는 눈빛을 보냈고 레아는 아이데스에게 물었다.



"누나들 잘 돌보고 있었어?"


끄덕



아이데스는 레아의 물음에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고 루스티는 그걸 보고는 뒤늦게 기억났다는 얼굴로 화내며 말했다.



"엄마! 밖에서 토끼 잡아오려구 했는데 아이데스랑 언니가 자꾸 못하게 방해했쪄! 혼내죠!"



아무래도 루스티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은 아이데스가 누나를 입다물게 하려고 준 뇌물이었던 모양이다.

레아는 은발 머리에 나있는 호랑이 귀를 펄럭거리는 루스티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아서 들어올리며 말했다.



"토끼는 다음에 엄마랑 같이 가서 잡아오자? 응?"


"약속?"


"아니 약속은 못해"


"뿌우우우!"



약속은 못해준다는 말에 루스티는 삐져버렸다.

그러나 레아는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부풀리며 복어처럼 항의하는 둘째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욕실로 데려갔고 파우스는 헤르에게 따라가라고 말하고는 아이데스를 살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건?"


"치즈"



아이데스는 파우스에게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책장으로 향했다.

책장 앞에 간 아이데스는 낑낑대면서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자 파우스를 바라보았고 파우스는 아이데스가 꺼내려던 책을 꺼내서 바닥에 놔줬다.

그러자 아이데스는 두 번째 책을 툭툭 건드렸고 파우스는 그 책도 꺼내줬다.

책들의 이름은 공용어 익히기, 마법 기초 입문서였다.


파우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아이데스를 바라보았지만 아이데스는 파우스의 눈빛에도 흔들림 없이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용어 익히기 책은 애시당초 어린애를 위해 작성된 책이기 때문에 그림이 대부분이라 보기 좋지만 마법 기초 입문서는 책을 읽는 자가 어느 정도 글자를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작성된 것이라 이제 겨우 세살짜리 어린애가 읽기에는 힘들텐데도 아이데스는 마법 기초 입문서에 나오는 글자가 뭔지 모를 때마다 공용어 익히기 책과 비교하면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한계가 왔고 아이데스는 끙끙대면서 일어나서 책장 제일 위에 있는 두꺼운 국어사전을 향해 나무로 된 장난감 블록을 던지며 파우스를 바라보았다.

파우스는 사전을 꺼내줬고 아이데스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이 세 권의 책을 보면서 이제 파우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파우스는 레아가 두 딸을 다 씻기고 다시 거실로 나올 때까지 아이데스를 바라보았고 레아가 깨끗하게 씻긴 헤르와 루스티를 데리고 오고서야 목욕탕으로 가서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왔다.

파우스가 다시 거실로 나와보니 거실에서 헤르와 루스티가 아이데스에게 무슨 책 읽고 있냐고 들러붙어 있었고 레아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데스는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누나들을 무시하고 있다가 파우스가 거실로 나온 걸 보고 빨리 이 귀찮은 것들 좀 떼어내라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내가 부탁하면 아빠는 무조건 들어준다는 확신이 가득차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는 잠깐 아이데스와 딸들을 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그냥 주방으로 가버렸고 아이데스는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도와주..."


"헤르, 루스티? 아이데스가 책보는 것보다는 너희랑 놀고 싶다고 하는구나"


"진짜?"



아이데스는 도와주기는 커녕 되려 귀찮은 누나들을 아예 붙여놓으려는 아빠의 태도에 충격받아 버림받은 고양이 같은 얼굴로 파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파우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방으로 가서 레아와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수십 분이 지나 저녁식사 준비가 끝나서 아이들을 식탁으로 부른 레아는 아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머나 얘 왜 이래?"


"흥!"



아이데스는 삐져버렸다.

평소에 감정표현도 별로 안하던 애가 완전히 삐져버린 걸 본 레아는 당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파우스는 아들이 드디어 제대로 된 감정표현을 하는 걸 보고 만족했다는 얼굴로 저녁식사 시간 내내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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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3.07.17 1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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