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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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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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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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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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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74화

DUMMY

다시금 한 해의 가장 어두운 날이 찾아왔다.

태양이 힘을 회복하는 한 해의 끝을 예고하는 태양절 전날.

타티아 시의 거리는 하늘에 깔린 우중충한 구름들 때문에 한층 더 어두워보였다.

눈은 내리지는 않았지만 차가운 바람이 거리의 바스라지기 직전의 낙엽들을 마저 치우는 와중에 타티아 모험자 길드 로비에서 근무하다 잠깐 휴식시간을 가지기 위해 직원 구역으로 들어온 레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레아 언니, 이번에는 부길드장 님이 생일 선물로 뭐 준다고 했어요?"


"나도 몰라. 작년에 이거 받았으니 올해는 소소하게 토론테스산 와인 한 병이나 사달라고 했는데 그 양반이 준비해놓은 게 있다고 하더라."


"나도 남친이 좋은 선물 줬으면 좋겠다."



레아는 자신이 입고 있는 흰색과 붉은색으로 도색된 미스릴 합금 갑옷의 목보호대를 툭툭치면서 말했고 접수원 레길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 남자친구를 떠올리며 부러움을 드러냈으나 휴식시간이 끝났으니 복귀하라는 니키치나의 눈빛에 후다닥 접수처로 향했다.


레아는 레길렌과 교대로 들어온 접수원 아이렌에게 밖은 여전히 바쁘냐고 물어보려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때문에 휴식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와야 했다.

바깥에 나와보니 타티아 지부에서 유명한 말썽쟁이 샤반이 또 접수원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얌마 샤반, 너 또 의뢰인을 때렸냐?"



레아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옆으로 가서 말했고 샤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길드에서 가져간 의뢰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기껏 이 추운 겨울에 잘 나오지도 않는 마력을 들이마셔서 열린 블루 루버 열매를 구해갔건만 살짝 얼었다고 의뢰완료 확인을 안해주려고 하는데 그럼 때려야지. 레아 씨,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면 참는 사람입니까?"


"그럼 납품을 안하면 되잖아."



일단 샤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샤반이 평판이 안좋다는 걸 알고 이용해먹으려는 악성 의뢰인인 것 같은데 그걸 굳이 때려야했냐고 묻자 샤반은 지금 생각해도 열이 뻗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납품 안하려고 했더니 내가 가져온 열매를 회수하기도 전에 내 눈앞에서 자기 애들한테 먹여버리고는 애들이 그런거니까 넘어가자고 개 수인도 아니면서 개소리를 하는 걸 살려뒀는데?"


"너 참을성이 많이 좋아졌구나 그런 쓰레기 새끼를 살려두다니."



레아는 그걸 안죽이고 넘어가다니 샤반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감탄하며 니키치나에게 항의한 마을사람을 블랙리스트에 올리자고 건의했다.

니키치나는 길드 조사원을 파견해서 샤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해당 마을 전체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샤반은 거의 처음으로 길드 직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이해해줘서 기분이 조금 나아진건지 평소와 달리 난동부리는 일 없이 괜히 시간 낭비만 했다며 투덜거리면서 길드 로비의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샤반은 지난 번에 안드레스에게 랭크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몬테그의 말을 역으로 받아치며 넘겼지만 그래도 위기감이 들긴 했던 모양이었다.

최근에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조금은 참는 일이 많아졌고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의뢰 성공률이 꽤 높아진 상태였다.

물론 다른 모험자들과 비교해봤을 때는 여전히 의뢰인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지만 이 정도로 개선되었다면 조만간 샤반이 은 랭크로 승급하는 건 확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샤반이 물러나자 오늘도 접수원들에게 자신의 랭크가 왜 이러냐며 항의를 하려던 모험자들은 레아가 생각보다 일찍 로비에 나와 있는 걸 보고 기가 죽어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태양절 하루 전날이라 그런지 꽤 북적거리는 길드 로비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더 북적거렸고 레아는 슬슬 할 일 없는 놈들은 의뢰서 하나씩 가지고 나가서 돈이라도 벌라고 교통정리를 해야 하나 생각할 때 갑자기 입구 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아아악!"


"뭐야?"



비명이 들리자마자 갑옷의 건틀렛을 고쳐 끼운 레아는 급히 달려갔고 모험자들은 길을 열어주었다.

모험자들이 열어준 길의 끝에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람이 죽었어!"


"으아아아!"



모험자 길드 정문 근처 바닥에는 늑대 수인 모험자 한명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행동 불능 상태인지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쳤다.

가슴팍에 대각선으로 긴 상흔이 남겨져 피를 뿜어내는 늑대 수인 모험자와 그 앞에서 피 묻은 롱소드 한자루를 들고 있는 엘프 모험자를 본 레아는 즉각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닫고 엘프에게 달려들었다.

엘프 모험자는 길드 직원 명패를 갑옷의 흉갑에 붙인 레아를 보고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듯이 검을 놓고 두 손을 들어올렸고 레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 모험자의 두 손을 등 뒤로 돌리게 해서 밧줄로 포박하며 말했다.



"누가 쓰러진 녀석한테 포션 좀 써봐! 돈은 길드에서 지불한다."



레아의 말에 뱀 수인 모험자 한명이 허리춤의 벨트에서 포션을 꺼내 쓰러진 늑대 수인에게 먹였지만 늑대 수인은 포션을 삼키지 못하고 입에서 줄줄 흘렸다.

얼마 안 가서 늑대 수인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버렸고 레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필 생일날 귀찮게 사건이 터지네. 피해자는?"


"죽었습니다."



엘프의 포박을 끝낸 레아는 엘프 모험자를 거칠게 다루지 않고 근처 의자에 앉혀놓고는 피해자에게 포션을 먹이려고 한 뱀 수인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일반 폭행이나 상해와 달리 살인은 이런 인명경시 풍조가 있는 시대와 국가에서도 큰 죄다.


게다가 사법권이 없는 모험자 길드 직원 입장에서 길드 건물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처리는 귀찮기 짝이 없다.

조사는 조사대로 해야 하고 처분은 도시의 공권력을 지닌 경비대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길드 직원으로서 레아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 위해 목격자들을 상대로 탐문에 들어갔다.



"이봐! 입구 근처에 있던 사람 중에 이 엘프가 왜 늑대 수인을 죽였는지 이유 아는 사람?"


"몰라요 레아 씨, 저 엘프 녀석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고요!"


"난 베어버리고 수인이 쓰러지는 부분 밖에 못 봤어."



이 타티아 모험자 길드에 출입하는 모험자들 대다수는 입구보다는 접수처와 게시판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모험자들이기에 입구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본 사람이 얼마 없는 모양이었다.


레아는 피해자와 용의자를 바라보았다.

죽은 늑대 수인 모험자도, 죽인 엘프 모험자도 레아가 처음보는 자들이었다.

복식을 보아하니 피해자와 용의자 둘 다 중부 출신인 것 같았고 레아는 모여든 구경꾼 중에 대륙 중부 출신이면서 그나마 말이 조금 통하는 몬테그를 찾으려고 했지만 몬테그는 오늘 모험자 길드에 없었다.



"피해자를 왜 죽였지?"



레아는 뒤늦게 달려온 다른 길드 직원들에게 현장 보존을 해달라고 하고는 용의자 심문에 들어갔다.

그러나 엘프 남자는 진지한 얼굴로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당방위입니다."


"정당방위? 이놈이 먼저 공격했단 말이야? 혹시 피해자와 대륙 중부 전쟁에서 적으로 만난 사이였나?"



늑대 수인 쪽이 먼저 공격을 해서 반격한 것이라면 설령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정당방위가 성립되어 풀려날 수 있다.

용의자인 엘프는 그걸 알고 있기에 얌전히 붙잡히고 저항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레아는 피해자의 시체와 용의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과연 엘프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일지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렸지만 엘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오늘 처음보는 수인입니다."


"아니, 오늘 처음보는 놈을 정당방위랍시고 베어버렸다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저기 쓰러져 있는 늑대 녀석이 당신을 공격했다 그 말이야?"


"레아 씨, 그 엘프 정당방위가 맞아."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엘프의 말에 찬동하며 말했고 레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샤반의 것이었고 뒤를 돌아온 레아는 상당히 놀란 얼굴로 샤반을 바라보았다.

성격이 지랄맞아서 파티원도 없는 샤반이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경우는 드문데 그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레아는 샤반에게 이유를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했고 샤반은 손에 들고 있는 잔의 내용물인 술을 들이키고 말했다.



"죽은 놈은 이 타티아 길드에 처음오는 놈이었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친구 둘과 함께 연신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군. 그리고 입구 근처에서 들어오는 모험자들을 하나씩 살피다가 저 엘프가 들어왔을 때 수인 세 놈이 수군거리더니 한놈이 나이프를 투척했지."



샤반이 입구 근처를 가리키자 그곳에는 분명 아침에 출근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나이프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레아가 다른 직원을 시켜서 나이프를 가져오게 해서 살펴봤는데 나이프는 날이 서있지 않은 뭉툭한 것이었다.

샤반은 길드 직원이 들고 있는 나이프를 보고는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신참한테 실력 테스트랍시고 날을 안 세운 뭉툭한 나이프를 던지고 반응을 보려고 했던거 같은데 보는 눈이 없었지. 저 엘프 형씨 모험자로는 초짜지만 분명 어디선가 칼로 밥 벌어먹던 사람인 모양이야. 나이프가 날아드는 걸 감지하자마자 고개만 돌려서 피하고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저기 쓰러져 있는 수인놈을 단번에 베어버리던데 정말 깔끔한 칼 솜씨였어."


"내가 봤을 때는 갑자기 엘프가 섬광처럼 쓰러진 수인한테 달려드는 것만 보였는데"


"나도야. 그런데 샤반 녀석은 저 엘프 형씨가 검을 휘두르는 걸 제대로 봤단 말이야?"



샤반의 말에 몇몇 모험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레아는 샤반의 증언을 듣고 이상한 부분을 깨닫고 말했다.



"3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머지 둘은?"


"지 친구가 검에 베이니까 바로 문 열고 도망치던데?"



샤반은 정문을 가리키며 말했고 레아는 아까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을 때 누군가 모험자 길드 밖으로 허겁지겁 나가는 모습을 봤던 걸 떠올리고는 샤반한테 말했다.



"확실히 지은 죄가 없다면 친구를 죽인 녀석을 잡으려고 들어야 하는데 도망쳤으니 의심되네. 그 새끼들 얼굴 아는 게 너 밖에 없는거 같은데 가서 잡아와."


"어허, 제대로 퀘스트 발주부터 해줘."



샤반은 보증도 없는 구두계약은 못 믿는다는 듯이 말했고 레아는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즉석에서 퀘스트 발주서를 써서 샤반에게 줬다.

샤반은 발주서를 받더니 내용 확인도 안하고 룰루랄라 웃으면서 길드를 나섰다.

아무래도 길드 직원인 레아가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샤반이 길드를 나서고 채 반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는 도망친 수인 둘을 잡아와서 레아가 써준 발주서와 함께 내밀었다.

레아는 수고했다며 바로 보수를 지급했고 샤반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동료들과 용의자인 엘프 남성을 전부 안쪽의 심문실로 불러서 조사를 한 레아는 조서 작성을 끝내고 짜증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날을 세우지 않은 나이프를 던져서 피하면 실력테스트였는데 대단하다고 칭찬해서 추켜세워서 술 사주고 넘어가고, 피하지 못하고 맞으면 실력 떨어지는 신참이라고 판단해서 삥을 뜯는 악질 범죄자들이었네. 중부 지역의 알짜배기 모험자들만 넘어오면 좋을 텐데 꼭 이런 놈들이 섞여 있다니깐"



늑대 수인 3인조는 확인 결과 모험자 증명패도 없는 대륙 중부 카싯 왕국 출신 범죄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신참 모험자를 겁박해서 장비나 돈을 강탈하는 짓을 해왔는데 어느날 사람을 잘못건드려서 범죄행위가 들통나 원래 등록했던 카싯 왕국에서 모험자 자격을 박탈당해 쫒겨난 상태였다.


카싯 왕국에서 자격을 박탈당해 쫒겨난 늑대 수인 3인조는 엘람 왕국에서 똑같은 짓을 하려던 찰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아나비 왕국은 대륙 중부 모험자 길드들과 따로 협정을 맺었기에 이들이 카싯 왕국에서 저지른 일이 알려질 확률이 높아 대륙 중부 소식에 어두운 더 남쪽 왕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물론 새출발을 위한 게 아니라 평소에 하던 초보자 삥뜯기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 3인조는 타티아 모험자 길드에 도착해서 길드 로비에 흐르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최근 대륙 서부 모험자 길드로부터 들여온 신형 모험자 플레이트에 온갖 정보가 다 기록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모험자들이 떠들어대는 부정확한 이야기를 듣고는 혹시 신형 플레이트로 등록을 하면 길드 기록이 공유되어 자신들의 범죄 이력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착각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타티아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자금도 없는 상황이라 적당히 돈이 많아 보이는 녀석에게 삥을 뜯고 바로 떠나기로 하고 노렸던 것이 엘프 모험자였다.

평소처럼 사냥감을 물색할 시간도 없이 급한 마음에 그냥 돈이 많아보이는 어수룩한 녀석을 지목해 나이프를 던진 수인의 최후는 끔찍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직원 구역의 심문실에서 엘프 모험자 프룬은 설마 정당방위인게 밝혀졌는데 자신을 경비대에 넘길 생각은 아닐거라는 눈빛으로 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프룬은 모험자로 전업한지 2개월 밖에 안된 신참이었다.

그는 대륙 중부의 라르사 왕국 출신으로 원래는 군인이었지만 상관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퇴직금도 못받고 짤려서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모험자로 전업했다는 모양이었다.


나이프가 날아드는 것에 반응해 상대를 베어버린 건 전장에서 쉴새도 없이 구르다보니 몸에 밴 습관 때문이라고 증언하였고 실제로 레아가 테스트를 해보자 포박된 상태로도 제대로 습관이 튀어나오는 게 확인되었다.



"상황상 정당방위가 맞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예고도 없이 날아든 나이프를 피할 수 있는 실력이니 바로 상대를 베어버리는 게 아니라 로비 경비 담당인 나를 불렀어야지."


"길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이프가 날아드는데 그런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프룬은 드디어 평온한 기색으로 위장하는 걸 멈추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레아는 일단 칼부터 뽑아서 휘두르는 저 습관 안 고쳐놓으면 나중에 일이 터질거라고 생각했는지 뒤늦게 심문실에 들어온 가비에게 조사한 내용 말해주고 프룬의 처분을 맡겼다.



"이번에는 운 좋게 넘어가는 거지만 그 습관 안고치면 조만간 착각으로 엉뚱한 사람을 베어버리고 경비대에 끌려가서 교수형 당할 거 같은데 내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해주마."


"예? 예?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기요?"



프룬은 포박에서 풀려났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가비에게 안쪽 길드 직원용 훈련장으로 끌려갔다.

만약 사건이 길드 밖에서 벌어졌다면 사비니 왕국의 법과 타티아 시의 관례에 따라 이 엘프는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정당방위로 상대를 죽인 것이라도 노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졌을 수도 있었다.


레아는 일단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비가 맡았으니 경비대에서도 말이 안나오게 제대로 처리해줄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로비로 나왔다.

죽은 늑대 수인의 시체는 조사가 끝났기에 바로 치워졌고 죽은 놈의 두 동료는 모험자 길드에서 쫒겨나 초상화가 타티아 경비대로 넘어갔다.

아마 한동안 타티아에서 몸성히 돌아다니려면 경비대의 이목을 끄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기..."



그때 뱀 수인 모험자가 레아에게 말을 걸어왔고 레아는 그가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기억해내고 말했다.



"아아! 아까 포션 준 모험자! 돈 줘야하는 걸 깜빡했네!"



레아는 바로 직원구역으로 가서 포션값 시세표를 가져와서 돈으로 지불하려고 했으나 뱀 수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돈이 아니라 똑같은 포션으로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레길렌! 하급 포션 재고 있어?"


"아뇨, 오늘 분량은 다 팔렸어요!"



안타깝게도 모험자 길드에서 준비한 판매용 하급포션은 이미 재고가 소진된 상태였다.

레아는 이 뱀 수인이 왜 돈이 아니라 현물로 달라고 했던 건지 깨달았다.

아마 이 뱀 수인은 레아가 사건 조사를 하느라 직원구역에 있을 때 벌써 포션 구입을 시도했다가 재고가 다 떨어져서 포션을 구하지 못해 레아를 기다린 게 분명했다.

레아는 잠깐 고민하다가 레길렌에게 말했다.



"위에 가서 중급 포션 2병만 받아와"


"2병이요? 1병이 아니라 2병?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무 문제 없어."



레아의 말을 들은 레길렌은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레길렌은 중급 포션 2병을 들고 내려왔고 뱀 수인은 레아에게서 중급 포션 한 병을 받고, 나머지 한 병의 구입의사를 밝혔다.

레아는 뱀 수인에게 돈을 받고 포션 2병을 넘겼고 뱀 수인 모험자는 중급 포션 2병을 허리춤의 벨트에 넣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험자 길드를 나섰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 뒤 직원구역으로 돌아온 레길렌은 의아한 얼굴로 레아에게 물었다.



"레아 언니, 그런데 왜 하필 2병이었어요? 그 사람이 준 건 하급 포션 1병이었잖아요. 그냥 중급 포션 한 병만 줬어도 되는거 아니었을까요?"


"아까 그 뱀 수인 벨트봤어?"


"아뇨"



올해 20살이 된 레길렌은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레아가 설명을 해주려던 찰나에 니키치나가 먼저 대답했다.



"바지의 슬라임 체액이 묻은 흔적, 텅 빈 벨트의 포션 칸, 정산줄에 서있던 것까지 생각하면 그 뱀 모험자는 아마 미궁에서 이제 막 나와서 정산을 위해 길드를 방문한 사람이었을 거야."


"니키 언니 말이 맞아. 이제 막 모험 끝내고 돌아와서 포션 재고가 부족해서 걱정하던 차에 내 도움 요청에 주저없이 자신의 마지막 포션을 줄 정도의 훌륭한 인성이라면 앞으로 자주 협력하게 될 확률이 높겠지?"


"인성이 좋은 모험자는 드무니까."



레아가 지불한 포션 한 병은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수고, 나머지 한 병은 주저없이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하지만 레아도 그저 순수한 호의에서 그런게 아니라 저런 훌륭한 인성의 모험자라면 투자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중급 포션을 한 병 더 준 것이었다.

게다가 단 둘이 있을 때 그런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모험자 길드 1층 로비에서 이랬으니 타티아 모험자 길드는 자신들을 도와준 모험자에게 섭섭치 않게 보상을 해준다는 이미지를 다른 모험자들에게 심을 수 있었다.



"그럼 2병을 준 이유는..."


"내가 중급 포션 가져오라고 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다른 모험자들은 그게 중급 포션인지 하급 포션인지 구분 못하잖아? 한 병이 더 늘어난 쪽이 확실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그냥 무작정 호의를 돌려준 게 아니라 철저한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는 것에 레길렌은 감탄하였고 니키치나는 레아를 칭찬하였다.



"나날이 사람을 상대하는 실력이 늘어나네 레아."


"내가 여기서 일한 게 몇 년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니키 언니. 하지만 언니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니키치나와 레아는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냈고 레길렌은 도저히 못따라가겠다는 얼굴로 음료수를 들이켰다.

니키치나는 레길렌이 마시는 레몬과즙을 탄 물을 잠깐 바라보다가 뭔가를 말하려던 차에 뒤늦게 기억났다는 듯이 레아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가비가 훈련시키는 거 살짝 봤는데 그 프룬이라는 엘프 상당한 실력이야. 아마 샤반이랑 타입은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인 거 같아."



샤반은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지 실력만 놓고 보면 은 랭크 최상위권에 시간 좀 들이면 금 랭크도 가능한 실력자다.

그런 샤반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프룬 역시 상당한 실력자라는 의미인데 프룬이 심문 과정에서 말해준 이야기를 떠올려보며 이상했다.



"그 정도야? 경험만 쌓으면 금 랭크도 꿈은 아닌 레벨이라는 소리인데 전쟁 중인데도 저런 녀석을 내친 라르사 왕국은 인재가 썩어 넘치나?"


"저런 인재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썩어들었을지도 모르지."



그저 우드힐 왕국 왕세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충동적으로 그를 암살해버리고 그 죄를 목격자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라르사 왕국과 엘람 왕국은 전쟁이 벌어진지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뻔뻔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정도 인재가 국외로 유출되고 있는데 막을 생각도 안한다는 건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레아는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국제정치를 신경쓰는 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언니 오늘 생일파티할 건데 올래?"


"뭐, 특별히 일도 없으니 갈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에 니키치나는 제대로 호응해줬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 퇴근할 때가 되자 니키치나, 메건, 파우스, 레아 네 사람은 레브메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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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3.07.17 12 1 14쪽
85 85화 23.07.17 12 2 15쪽
84 84화 23.07.16 20 1 17쪽
83 83화 23.07.16 14 1 14쪽
82 82화 +1 23.07.16 18 1 14쪽
81 81화 23.07.16 13 1 15쪽
80 80화 23.07.16 12 1 19쪽
79 79화 23.07.15 16 1 20쪽
78 78화 23.07.15 16 1 15쪽
77 77화 23.07.15 14 1 16쪽
76 76화 23.07.14 16 1 24쪽
75 75화 23.07.14 16 1 11쪽
» 74화 23.07.14 16 1 21쪽
73 73화 23.07.14 13 1 16쪽
72 72화 23.07.14 15 1 28쪽
71 71화 23.07.13 1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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