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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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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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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DUMMY

근무가 끝나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친 레아와 파우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이들을 1층에 내버려두고 서재에 들어왔다.

포션 공장도 순조롭게 가동되고 있고, 모험자 길드 업무도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레아와 파우스 가족에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귀중한 저녁 식사 직후 가족의 평화를 위한 시간을 소모해가면서 논의를 하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헤르가 집에 있었으니까 맞벌이 생활도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내년부터가 문제인데 해결책 생각나는 거 있어?"



레아와 파우스 부부 앞에 내던져진 문제는 다름이 아닌 아이들 문제였다.

올해 7살 생일이 지나간 헤르는 내년부터 학교에 입학할 예정인데 그러면 맞벌이 부부인 레아와 파우스의 남은 아이들인 루스티와 아이데스를 누가 돌보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타티아에 살고있었을 때는 집과 아이들을 돌봐 줄 믿을만한 존재인 쌍둥이 여신 교단의 수녀들이 있었고, 올해 6월에 게누아에 도착했을 때는 일찍 철이 든 헤르가 동생들을 돌봐줬지만 헤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직 4살, 3살에 불과한 루스티와 아이데스 둘만 집에 남겨지게 된다.

물론 게누아 백작이 세운 사립 학교는 수도 엘레키움에 있는 왕립 학교마냥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아닌 통학제라 초등반인 헤르는 오후에 집에 들어오겠지만 헤르가 집에 없는 오전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당신이 전에 썼던 그 복제 주문으로 우리 중 한 명을 복제해서 집에 놔둬야 하지 않을까?"


"그 주문은 시전하는데만 반나절이 걸리고 무엇보다 본체가 계속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긴급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가 힘들다."


"아, 하긴 예전에 썼을 때도 미묘하게 반응이 느려서 조마조마 했었지 참."



레아는 예전에 파우스가 복제품 생성 주문으로 자신을 복제해 본체는 나나스 멜린을 추적하는 암살자들을 추적하고, 복제품은 그랜드마스터 선출 회의에 참석시켰을 때 복제품 쪽이 계속 반박자씩 반응이 느려서 회의 중 엉뚱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던 걸 떠올리며 머리를 긁었다.



"역시 보모나 유모를 고용해야 하나? 백작이 설비값 지불 언제 해준다고 했어? 포션 공장 내부에 깔린 최신식 연금술 설비랑 기기 전부 당신이 직접 만든 거잖아. 손해보고 팔아먹는 멍청한 짓은 했을 리가 없고 어느 정도 마진을 붙여놓은 거 아니야?"


"미니엘 행정관이 10월이 되기 전까지 해결해준다고 했으니 월말에나 돈이 들어올 거다. 분명 가계부는 +인데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파우스는 북부의 대도시 타티아에서 길드마스터인 돈귀신 로드리고 밑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남부의 대도시 게누아로 이사를 오면서 집과 가구를 새로 장만하는데 돈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해버렸다.

아직 저금에 여유는 있지만 파우스가 연금술 및 야금술 연구를 한다고 평소에 쓰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이번에 포션 및 연금술 제조공장에 들어간 파우스가 직접 만든 연금술 설비와 기기 값이 게누아 백작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안에 들어간 설비와 기기 대부분을 파우스가 직접 제작했고 파우스 본인의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1~5%씩 마진을 붙여서 납품 및 설치를 했기에 분명 어음과 계약서를 포함한 가계부 내용은 자산이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작 수중에 돈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하는 연구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 무슨 연구를 하길래 돈이 타티아에 있을 때보다 더 들어가는 거야? 아다만틴 소드 제작에 미련을 아직도 못 버렸어?"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연구다."


"그럼 뭔데?"



레아의 물음에 파우스는 따라오라고 하고는 서재를 나와 연금술 실험실로 향했다.

파우스는 연금술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주저없이 왼쪽 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온갖 시약이 진열된 선반들이 있었는데 파우스가 선반 하나를 끄잡아낸뒤 아무것도 없는 벽 틈새에 손톱을 넣고 높이 잡아당기자 높이 2.5m, 가로폭 2m, 두께 50cm의 통짜 모르타르 벽이 끌려나오며 비밀공간이 드러났다.



"이건 또 언제 만들어놨어?"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인 길드 사람들 눈을 속이고 몰래 만드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왜 손잡이나 자동으로 열리는 장치를 안 달아놔서 낑낑대면서 여는 거야? 드럽게 무거운데다 잡아당기기도 힘든 이런 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뭔가 특이한 장치를 해놓으면 전문가들은 금방 눈치챈다. 그래서 고의로 아무 장치도, 아무 마법도 없고 밀어서 여는 것도 아니고 이 좁은 틈새에 손톱을 넣고 당겨야 열 수 있게 만들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자물쇠나 손잡이를 달아놓은면 이런 방면의 전문가인 로그에게 들키고, 마법으로 환영을 걸어놓으면 마법사의 마법 탐지 주문에 금방 발각된다.

하지만 손잡이도 없는 높이 2파수스(2.8m), 가로폭 1.5파수스(2.1m), 두께 하프 파수스(70cm)의 통짜 모르타르 벽을 손잡이도 없이 손톱 힘만 가지고 끄잡아내야 하는 보안체계라면 아예 자물쇠나 손잡이 같은 것이 없어서 찾는 것도 힘들고 부수지 않고 여는 것도 힘들 게 분명했다.

레아는 남편이 이렇게까지 해서 숨기려는 것이 뭔지 궁금해졌고 비밀공간 안에 들어가 마석등을 켜는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제 주문을 나한테 건 적이 있었어?"



대략 3제곱 파수스(약5.5평) 정도되는 비밀방에는 석영을 깎아만든 투명하고 거대한 관과 수술대가 있었는데 수상하기 짝이 없는 투명한 푸른색 액체가 가득 차 있는 석영유리관 안에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또 다른 레아였다.

레아는 투명한 푸른색 액체가 차 있는 석영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를 보고 파우스가 복제품 생성 주문을 자기한테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파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예비 육체 겸 신체개조수술 적용 목적의 배양 클론이다."


"배양 클... 뭐?"



파우스는 아무래도 천천히 설명을 해주는게 낫다고 생각한 건지 수술대 옆 의자에 올려져 있는 연구노트를 펼치고 레아에게 필요성 자각, 연구 목적, 결론 등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왼팔의 감각은 돌아왔나?"


"아니,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좀 둔해. 그런데 이게 왜?"



레아는 파우스와 처음 만났을 때 사지가 절단된 상태였고 파우스는 잘려나간 팔다리를 붙이면서 레아의 신체에 대대적인 개조를 가했다.

그러나 타이런트 베어에게 뜯어먹힌 부분의 완벽한 재생이 불가능했던 건지 아니면 파우스의 수술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레아의 왼팔의 감각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전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재수술을 하자니 지금까지 바쁘게 사느라 시간도 없고, 어떤 부작용이 더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라 섣불리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기서 나는 생각했다. 본체를 건드릴 수는 없으니 아예 클론을 만들어 최대한 개조를 해놓으면 예비 육체 확보와 더불어 지금까지 하지 못한 신체개조까지 다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 일석이조가 아닌가."


"..."



레아는 남편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기질에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예비 육체를 만들어놨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괴한 표정이 되었다.



"당신 가끔보면 쓸데없는데 너무 집착을 해. 지난 번에 아다만틴 검 줄 때도 충분히 튼튼하고 잘 잘리는 검인데 실패작이라면서 다시 만들려고 하더만"


"절대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 육체는 레아 너에게 지금까지 행한 모든 수술의 문제점을 보완한 개선된 새로운 장기를 이식하고, 뇌와 눈을 조정해 암시야 능력과 초월적인 동체시력을 부여하고, 내구도 문제와 마력운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뼈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성질이 있는 특수한 미스릴합금으로 전신의 모든 뼈를 코팅하고, 마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맨몸으로 강철검의 절삭력마저 견디는 튼튼한 피부, 인간의 것에서 훨씬 진보된 근섬유 다발,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추가적인 시술과 수리 없이 평범한 식사와 포션 섭취만으로 재생하는 재생력까지 모든 걸 갖춘 육체란 말이다."


"하아아암.... 예이~ 예이~ 그것 차아아암 대단하네. 너무 고마워서 눈물 나오는 것 좀 봐."



레아는 파우스의 설명이 지루했던 건지 하품을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고는 영혼이 단 1웅키아(27g)도 들어있지 않은 건성건성한 태도로 파우스를 칭찬했다.

그러나 파우스의 설명을 곰곰이 곱씹어보던 레아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잠깐만, 내 예비육체 뼈로 미스릴 합금을 썼다고? 그동안 그 많던 돈이 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나 했더니 이런거 만들고 있으니까 돈이 없지! 앞으로 애들 키우면서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이런데 쓸 돈이 있냐 이 양반아!"



레아는 그동안 파우스가 연금술 실험한답시고 쏟아부운 돈이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 이제야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면서 남편의 귀를 잡아당기려고 했으나 파우스는 여전히 그 민첩한 몸놀림으로 레아의 손길을 전부 피해버렸다.

레아는 결국 파우스의 귀를 잡아당기는 걸 포기하고 자신의 예비육체가 담긴 석영유리관 앞으로 돌아와서 투명한 푸른색 액체 속에 잠겨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저 육체로 갈아 탈 일이 없는게 좋은데"


"어째서지? 얼굴이 마음에 안 드나? 코를 좀 더 세워놓을 수도 있다."



파우스는 도망치던 걸 멈추고 레아 옆으로 돌아와서 유리관 안의 레아와 옆에서 살아움직이는 레아의 얼굴을 비교해보면서 혹시 자신이 복제를 잘못해서 얼굴이 다른가 생각했으나 레아가 말을 꺼낸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경국지색의 절세미녀까지는 아니지만 내 얼굴도 꽤 예쁜 편이거든! 난 내 얼굴에 불만 없어!"



비록 멸망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족 출신이라 레아의 얼굴은 본인의 말대로 꽤 반반한 편이었다.

레아는 파우스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쳤고 파우스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건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맞아줬다.

파우스가 순순히 맞아주자 레아는 화가 났던 것이 풀렸는지 유리관 안에 담긴 자신의 예비 육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저 몸으로 갈아타게 된다는 건 지금 이 몸이 뇌에 박혀 있는 내 영혼이 담긴 보석빼고 싹다 갈려나갈만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잖아."



확실히 그 말대로 새로운 몸으로 옮겨가야 할 상황이라면 기존의 육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는 이상하다는 듯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꼭 그런 게 아니라도 갈아탈 수 있지 않나? 저쪽이 성능이 더 좋다."


"솔직히 모가지 날아가고 내장도 몇 번 휘저어지고 뼈도 무수히 박살나서 누더기마냥 수리되었더라도 난 내가 태어나서 계속 살아온 이 몸에 애착이 있거든? 내 몸과 영혼은 아예 못 쓰게 된 것도 아닌데 성능 좋다고 휘릭휘릭 갈아끼우는 부품 같은 게 아니야! 알아들어?"



레아는 예전에 파우스에게 처음 진실을 들었을 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영혼의 중요성을 외쳤던 것처럼 영혼과 육신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말했지만 파우스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레아에게 말했다.



"사고로 몸을 옮기는게 아니라면 기존 육체를 예비육체로 삼아서 보관할 수 있는데 대체 왜 그걸 가지고 그렇게 날카롭게 구는 거지?"


"..."



레아는 남편을 사납게 쏘아봤지만 파우스는 난폭한 모험자도 겁에 질릴 레아의 무시무시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끄덕도 하지 않고 되려 더 심한 소리를 했다.



"오늘 밤에 한번 예비 육체에 이상이 없나 테스트해보겠나?"


"내가 어쩌다 이런 놈이랑 같이 살자는 생각을 했던 걸까? 모가지 날아갔다가 다시 붙일 때 실수가 있었던 게 분명해"



레아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고 투덜거렸고 파우스는 지금까지 한 말이 전부 진심이었다는 듯이 빨리 대답해달라는 표정으로 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우스의 표정을 본 레아는 내가 졌다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애들 재우고 올 테니까 준비해놔."



파우스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술 준비를 시작하였고 레아는 실험실 밖으로 나가 거실에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봐봐 얘가 바로 내 친구인 꽃님이야."


"우애옹? 에, 에, 에취!"


"킥킥킥"



거실에서는 꽃을 모자 대신 눌러 쓴 작은 존재가 헤르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가 헤르가 소개를 해주자 루스티의 앞에 착지하더니 자신이 쓰고 있던 꽃 모자를 벗어서 루스티의 코를 꽃잎으로 간지럽히고 있었다.

루스티는 꽃가루 때문인지 재채기를 크게 했고 그걸 본 아이들은 킥킥 웃었다.

레아는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눈을 비볐고 인기척을 느낀 작은 존재는 아이들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니 그대로 허공에 스르륵 녹아내리듯이 사라져버렸다.



"방금 그거 뭐였니?"


"애옹, 그거 언니 친..."


"쉬잇!"



레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작은 존재가 사라진 자리를 가리키면서 물었지만 루스티와 아이데스가 엄마에게 대답하려는 순간 헤르가 입 앞에 손가락을 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루스티와 아이데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들 특유의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 공유를 상기시킨 헤르의 행동에 루스티와 아이데스는 입을 다물었고 레아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려다가 조금 있다가 육체를 갈아타야 한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아이들을 침실로 데려가며 말했다.



"나중에 엄마한테 제대로 말해줄래?"


"네"


"오늘은 일찍 자자"



헤르, 루스티, 아이데스를 침실로 데려가서 하나씩 재운 레아는 실험실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방금 그건 틀림없이 식물의 정령이었다.

예전에 헤르가 추운 겨울에 여름꽃을 엮어서 생일선물을 줬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헤르에게는 정령사의 자질이 있는 모양이었다.



"진로를 정령사 쪽으로 잡아야 하나? 그런데 엘프들 사이에서 정령사 이미지가 어떻더라? 백수였던가?"



레아는 정령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실험실로 향했고 비밀방에는 이미 수술준비를 끝낸 파우스가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채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아는 말 없이 수술대 위에 누웠고 파우스는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천천히 레아에게 마취를 하면서 물었다.



"애들은?"



레아는 그냥 헤르에 대해 말하려다가 파우스를 골려줄 방법이 생각났는지 마취기운이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가 마취가 되기 직전에 말했다.



"헤르가 정령을 불러내서 놀고 있던데..."


"정령? 그게 무슨 소리냐?"


"..."



그러나 파우스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레아는 마취가 되어 의식을 잃어버렸다.

파우스는 레아를 깨워서 자세한 걸 물어볼까 하다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몸 교체를 시작하였다.


몇 시간이나 계속된 수술로 머릿속에 있던 영혼이 담긴 보석은 새로운 육신으로 옮겨졌고 파우스는 새로운 육체와 기존의 육체의 수술부위를 봉합한 뒤 포션과 신성마법의 치유 주문을 퍼부어 깔끔하게 수술흔적을 지워버리고 기존의 레아의 몸을 보존액이 담긴 석영유리관에 넣어버렸다.

레아의 새로운 육신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였으나 시체 같았고 파우스는 레아의 가슴과 머리에 손을 대고 마력으로 신호를 줘서 장기들을 깨웠다.


심장 쪽의 추가 이식된 장기와 뇌에 삽입한 보석에 마력적인 신호가 주입되자 심장이 뛰고, 영혼 보석이 뿌리를 내려 뇌와 결합되었고 파우스가 가슴과 배를 만지며 호흡을 유도하자 머지 않아 시체와 다를 바가 없던 육신이 잊고 있던 호흡법을 기억해낸 것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 시작하였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 정상적으로 되돌아가고, 어깨와 팔이 조금씩 움찔거리기더니 이내 레아는 눈을 뜨고 몸을 옆으로 돌려 구역질을 했다.



"우웩! 웩! 이거... 웩! 뭐야? 켁켁켁! 우웩!"



레아는 입에서 파란색 액체를 연신 토해내고는 그 씁쓸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 파란 액체는 다름이 아니라 레아의 새로운 육체의 폐와 위에 남아있던 보존액이었고 파우스는 아내가 바닥에 토해낸 보존액을 마법으로 공중에 띄워서 대야에 모아놓고는 레아에게 물병을 건넸다.

레아는 물병을 낚아채듯 받아서는 바로 입을 헹궈서 파우스가 준비한 대야에 뱉어냈고 입을 닦은 뒤 말했다.



"이 퍼런색 물을 몸에서 미리 빼낼 수 없었던 거야?"


"최대한 빼낸 게 그거다."


"옛날에 프로그맨 토벌 중에 물속에 빠져서 물 잔뜩 먹고 죽을 뻔했을 때 생각났어."


"폐에 들어차도 호흡이 가능한 액체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기분이 그렇다는 거야 기분이!"



레아는 투덜거리면서 피가 묻어있는 수술대에서 일어나 아까 벗어놓은 자신의 옷을 챙기다가 문득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레아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느껴지는 왼손의 감각을 느끼며 손가락 하나하나를 접었다 펴보았다.

분명 왼손은 모든 것이 느껴지고 레아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생소한 감각이었다.

파우스는 수술대의 피를 닦아내고 소독제를 뿌려 마무리한 뒤 수술도구를 세척하기 위해 상자에 담으며 물었다.



"몸에 이상은?"


"왼손의 감각이 몇 년 만에 돌아오니까 되려 생소하네. 다시 적응하는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아"




그때 수술대에 맺혀있던 소독액 방울 하나가 떨어졌고 레아는 빠른 움직임으로 손을 뻗어 그 방울을 왼손 검지 손톱 위에 올려놓았다.

손톱 위에서 굴러가는 소독액 방울을 보던 레아는 석영유리관 안에 눈을 감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유리관 앞으로 다가가 관 안에 잠들어있는 자신의 예전 육체에 남아있는 흉터들을 보면서 자신의 새로운 몸과 비교해보았다.



"지금보니까 나 모험자 일 하면서 진짜 많이 다쳤었구나. 진짜 성한데가 없네"


"걱정마라. 시간내서 옛 육체도 전부 고쳐놓을 거다."



파우스는 레아의 어깨를 손을 올리고 레아의 예전 육신을 함께 내려다보며 말했고 레아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고 있나 보겠다며 실험실을 나가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헤르, 루스티, 아이데스 삼남매는 잠 안 자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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