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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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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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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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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DUMMY

게누아에 도착한 레아와 파우스 가족을 모험자 길드의 길드장인 나나스 멜린이 직접 환영하러 나온 것은 길드 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30여년 동안이나 이 도시에 깔려있던 사비니 왕국의 호겐 지방 병합 후 유지된 [요직에는 다크엘프가 등용된다]는 법칙이 깨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파우스가 요 몇 년 동안 모험자 길드에 보급된 장거리 통신 수단 채터 박스의 개발자이기 때문이었다.


나나스 멜린은 레아와 파우스 가족을 길드 직원들에게 소개한 뒤 바로 길드장 전용 마차에 그들을 태워 백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백작의 저택은 북부 대도시 타티아의 주인인 세네카 백작의 저택보다도 크고 화려했지만 정작 분위기는 굉장히 아담하고 검소하게 보였다.

그 이유는 바로 저택 옆에 있는 높이가 50파수스(74미터)가 넘어가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나무 옆에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나무는 단순히 높이만 높은 게 아니라 둘레 또한 무지막지했다.

예전에 대륙 남부 엘프 부족들이 전부 참여하는 의회가 저 나무 안에 마련된 큰 방에서 열렸다는 말이 결코 허황한 소문만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정도로 나무는 거대했다.


물론 엘프 부족 의회는 사비니 왕국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회의장으로 사용된 게누아의 고목 역시 지금은 출입금지 구역이 되어 유일하게 출입을 허가받은 자들인 다크엘프와 엘프 정원사들이 열심히 가지치기를 하고 나무에 달라붙는 벌레들을 쫒아내면서 관리할 뿐 누가 안에서 사는 일은 없게 되었다.



"도시에 들어오기 전부터 보여서 크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네. 가까이에서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야."



백작의 저택이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까지 마차가 이동하자 창 밖을 본 레아는 감탄을 내뱉었고 나나스 멜린은 웃으면서 레아에게 말했다.



"더 놀라운 건 이 나무가 이 사비니 왕국 남부에서 가장 큰 나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나무가 있다고요?"



지금 보고 있는 이 게누아 고목의 위용도 엄청난데 이것보다 더 큰 나무가 있다는 말에 놀란 레아가 묻자 마스터 멜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예, 아직 개척이 되지 않은 이 사비니 왕국 중부의 아페닌, 혹은 아페니니라고 불리는 산맥 안에는 최초의 엘프를 낳은 축복받은 세계수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 높이가 100파수스가 넘어가는데 먼 옛날 신들의 다툼으로 인해 세계수에 불이 붙었고 불타는 세계수에서 떨어져 나온 솔방울들이 자라서 그 중 하나가 이 게누아의 고목으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건 그냥 신화일 뿐인게 아닐까요? 그럼 실제로 가장 큰 나무는 이 게누아 고목이 맞는게..."


"그런데 최근 아페닌 산맥을 탐사하던 게누아의 조사대가 쓰러져 있는 거대한 고목을 발견했는데 그 높이가 60파수스(약 89미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너무 커져서 나무 밑동이 나무 전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것 같다더군요. 부러진 나무는 게누아 고목과 같은 종인데다 나이테 숫자도 게누아 고목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귀환한 조사대가 보고한 것으로 보아 세계수가 불탈 때 흩어진 세계수의 솔방울들에서 자라난 형제자매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마스터 멜린은 세계수 전설과 신화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돌려말했으나 레아는 믿기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파우스는 되려 고개를 끄덕이며 멜린의 동의했다.



"몇몇 나무의 솔방울들은 산불 정도의 고온에 노출되어야만 발아하는 특성 때문에 극심한 폭염이 왔을 때나 산불이 꺼진 뒤 잿더미 위에서 자라난다. 아마 세계수 역시 그런 까다로운 번식 방법을 가지고 있는 나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수 전설이 내려오는 아페닌 산맥에서 게누아 고목과 같은 종류의 나무가 발견되었으니 어쩌면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그런 나무가 있어?"



보통 나무는 불꽃과 상극인 것이 당연한 상식이기에 산불이 나야만 번식할 수 있는 나무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레아는 아예 처음 듣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나스 멜린 역시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열을 내뿜어 고의로 화재를 일으키는 걸로 주변을 태워버리고 자신의 종만 뿌리는 식물도 존재한다."


"나무가 불을 내? 그건 그냥 몬스터잖아. 돌연변이 파이어 트렌트라고 불러야 하지 않아?"


"몬스터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씨앗의 껍질이 썩어가면서 화학작용으로 인한 발열을 일으켜 낙엽에 불을 붙이는 그런 종류다."


"당신 실험실에 있던 물을 끼얹으니까 폭발하는 그 금속주괴처럼?"



그 말을 들은 멜린은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파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파우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고 멜린은 다시 눈을 창밖의 게누아 고목으로 돌리고 말했다.



"그럼 세계수의 자식들인 게누아 고목 같은 나무가 쉽게 발견되지 않은 건 산불이 난 상황에서 씨앗이 불이 꺼질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극악의 발아 조건 때문이란 말입니까?"



멜린은 고목으로부터 다시 파우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고 파우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답변은 회피성 발언이었다.



"단지 그런 특이한 나무가 있고 세계수가 불탈 때 솔방울이 흩어졌다는 신화를 듣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럼 조사대가 가져온 아페니니 고목의 솔방울과 게누아 고목의 솔방울에 불을 붙이는 실험을 해본다면?"



멜린은 게누아 고목의 솔방울에 불을 질러본다는 대담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대한 게누아 고목의 부모라는 전설이 있는 세계수는 대륙 남부 엘프 신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런 세계수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존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라지만 지금도 하나하나 약재나 마법약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서 발아시키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수의 솔방울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태워버린다는 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게누아 고목에서 나온 솔방울이 발아한 적이 몇 번 입니까?"


"사람 머리통보다 큰 솔방울이 1년에 2개에서 많으면 5개 정도 생기긴 합니다만 발아까지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래 보존하려고도 시도해봤지만 무슨 수를 써도 3개월 내로 썩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1년에 10개도 안나오는, 왕족에게나 공급하는 귀한 약의 재료로 사용되는 그 귀중한 솔방울을 단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태워버리는 걸 게누아 백작께서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역시 안될 확률이 높겠죠?"



멜린은 조부인 게누아 백작이 그런 터무니없는 실험을 허락해줄 리가 없다고 낙담하였다.

이야기가 오고가는 사이 마차는 벌써 게누아 백작의 저택 입구를 통과해 저택 본관에 도착했고 마중 나온 다크 엘프들이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응접실로 안내된 레아와 파우스 가족은 멜린과 함께 백작의 입실 허가를 기다리며 간단하게 차를 마셨고 잠시 후 그들을 안내해준 다크엘프가 와서 그들을 데려갔다.



"들어와라"



안내된 곳은 거대한 홀이 아닌 게누아 백작의 서재였다.

예전에 세네카 백작과 만났을 때와는 달리 게누아 백작은 거창하게 신하들을 모아놓고 대면식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집사로 추정되는 다크엘프는 이제 자기 일은 끝났다면서 서재 문 앞에 그들을 두고 가버렸고 마스터 멜린이 대표로 서재의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멜린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보인 것은 책도, 엘프도 아니었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내리는 햇빛이었다.

햇빛에 익숙해지자 보인 서재에는 아무런 고용인도 없이 탈색된 하얀 머리카락에 갈색 피부를 지닌 다크엘프 한명이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책상 옆으로 나와 걸어오고 있었다.

나나스 멜린은 역광 때문에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그 다크엘프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외조부님."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게 아쉽구나 나나."



더 앞으로 걸어와 이제야 역광에서 벗어나 얼굴이 제대로 보이게 된 게누아 백작은 나나스 멜린의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 200년이라는 엘프들의 노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나게 해주었다.

그는 이미 장성해서 아이를 낳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의 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이라기보다는 아직 이마 주름이 덜 생긴 건장한 중년으로 보였다.

백작은 근엄하고 차가워보이는 인상이었으나 세네카 백작처럼 모험자를 상대로는 하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린 눈을 한 사람과는 달리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은 진중한 눈빛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군. 내가 로히르 멜리프 게누아 백작일세."



엘프들의 평균수명은 200살이지만 그건 이 험악한 세상의 환경 때문에 평균치가 낮아졌을 뿐이고 공식적인 기록 상에서 500살까지 살다간 엘프도 있었다.

마법적, 약물적인 보조가 없을 때 엘프들이 보통 인간 노인과 유사한 외모가 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260살 이후부터이며 관리를 잘한 경우에는 300살을 넘기고도 중년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올해로 태어난지 294세를 넘긴 게누아 백작은 그 상당히 관리를 잘한 엘프에 속하는 자였다.

백작이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파우스는 예법에 따라 예전에 세네카 백작에게 했듯이 절도있는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이번에 게누아 모험자 길드의 부길드장으로 부임한 파우스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와 아이들입니다."


"레아입니다."


"헤르에요"


"루스티!"


"아이데스입니다."



백작은 아이들에게는 웃는 얼굴을 보이려고 했으나 워낙 근엄하고 냉혹해보이는 기본적인 얼굴에 눈웃음이 더해지니 어째 표정이 되려 흉악해보였다.

헤르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 다리 뒤로 숨어서 호랑이 귀가 달린 머리만 빼꼼 내밀었지만 루스티는 여전히 헤실거리는 얼굴이고 아이데스는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이었다.

인간 부부의 자녀 3명 중 2명이 수인인 걸 보고도 백작은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레아는 그의 눈길이 아이데스에게 이유도 없이 잠깐 향했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걸 놓치지 않고 보았다.



"선조들께서 이 만남을 축복하시길,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내 딸의 원수를 갚아주고, 내 손녀를 구해준 것에 대해 다시 인사를 하고 싶네"



게누아 백작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자 레아는 당황했으나 뒤늦게 몇 년 전 그랜드마스터 선출 시기에 암살당한 게누아의 전 길드마스터 네르비나의 이름이 네르비나 M. 게누아, 지금 눈앞에 있는 게누아 백작의 둘째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마스터 네르비나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범인들을 넘기지 않은 그랜드마스터에게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암살 원인은 네르비나가 브란트를 상대로 인종차별을 했기 때문이었으니 결국 그 아이가 죽은 건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지만"



게누아 백작은 잠깐 슬픈 얼굴을 드러냈으나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는 다시금 레아와 파우스에게 감사를 표 하고는 상업길드의 믿을만한 부동산 업자를 나나스 멜린을 통해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하고 딸 미니엘과 협의 중이던 일이 급해서 이만 가봐야하겠다면서 먼저 서재에서 나갔다.

백작이 떠난 뒤 멜린과 함께 다시 백작의 저택에서 나온 뒤 마차에 오른 파우스는 가족들이 전부 마차에 탄 것을 확인하고 창 밖의 백작가 저택을 보며 말했다.



"백작께서 부인과의 사이에서 첫째를 낳고 육아경험이 없으셨을 때 꽤 고생하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백작은 자기 장녀인 미니엘의 이야기는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그걸 파우스가 어떻게 아냐는 얼굴로 레아가 묻자 나나스 멜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이모님께서는 지금도 그것 때문에 가끔 짜증을 부리시죠. 어떻게 소중한 딸한테 장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냐면서"


"그 이름이 그런 의미였어요?"


"지금도 예전도 마찬가지로 인간과 엘프를 다 합쳐도 고대 엘프어를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큰이모가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남에게 가르칠 수준은 되는 나이 많은 엘프가 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엘프들이 기초나마 어린 엘프들에게 고대 엘프어를 가르쳤고, 고대엘프어 기초 수업 때 자기 이름의 의미를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다 같이 알게 되는 바람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큰이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나나스 멜린은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게누아 백작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큰 딸이 놀림당하게 된 걸 보고 게누아 백작은 둘째 딸부터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었으나 동시에 둘째 딸부터는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바람에 차녀 네르비나는 자만심이 넘치는 아이로, 멜린의 어머니인 삼녀 티누켈레는 그런 네르비나에게 짓눌려서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게누아 자작의 장녀 미니엘은 백작가의 영지를 관리하는 행정가로서 활약하며 게누아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게누아 북쪽의 아페닌 산맥 인근을 개척하면서 조사대를 파견하는 것도 미니엘이 담당한 일이었다.


차녀인 네르비나는 어차피 언니가 딱히 문제가 없기에 게누아 백작가를 물려받을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일찍 깨닫고 자기 길은 자기가 개척하겠다고 집을 나와 모험자로서 대성했으나 인성 문제로 여러차례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게누아 백작이 대놓고 뒷수습을 해줘야 했던 일이 자주 있었다.


막내인 티누켈레는 오르갈 남작가와 쌍벽을 이루는 게누아 백작의 왼팔, 멜린 자작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게누아 백작의 두 팔로 일컬어지는 현 오르갈 남작과 선대 멜린 자작은 전혀 다른 타입의 다크엘프였다.


현 오르갈 남작이 무력으로 유명했다면 선대 멜린 자작은 보급과 계략에 능했다.

오르갈 남작이 전장에서 앞장서서 선봉장 역할을 한 반면 멜린 자작은 뒤에서 보급과 외교를 담당했다.


사비니 왕국 내에서 명성은 오르갈 남작이 높은 반면 멜린 자작이 작위가 더 높아진 것은 오르갈 남작은 다크엘프들이 엘프 진영에서 사비니 왕국을 상대로 저항할 때 인간들을 상대로 대활약한 반면 선대 멜린 자작은 다크엘프 부족장이었던 게누아 백작이 승산이 없는 싸움을 그만두고 사비니 왕국으로 갈아타도록 설득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비니 왕국에서는 자신들을 가로막은 오르갈 씨족보다 부족장 로히르를 설득해 전황을 뒤집어버린 멜린을 더 높게 평가해 자작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래서 호겐 지방이 사비니 왕국에 병합된 뒤 아퀼레이아로 옮겨간 과격파 엘프들은 오르갈 남작이 펼치는 엘프 차별 금지는 믿을 수 있지만 현 게누아 백작을 꼬드겨 배신하게 만든 멜린 자작가가 하는 말이라면 바다가 파란색이라는 말도 믿지 않을 정도로 증오했다.


네르비나를 암살한 과격파 엘프 출신 길드 직원 아르젠테가 네르비나를 죽인 뒤에 마스터 브란트에게 좋을대로 이용당하면서도 꾹 참고 어떻게든 나나스 멜린을 죽이려고 했던 건 이런 배경이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자이라 오르갈 부길드장이 죽은 사건에 대한 조사가 거의 끝났는데 일단 범인이 자기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자이라 씨에게 앙심을 품었고 그게 살인 동기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를 도와준 이들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로 판명되었지요."



선대 멜린 자작은 호겐 지방 병합 전쟁 종결 직후 자작 위를 받고 방심하다가 배신자를 처단하겠다는 일념으로 침투한 과격파 엘프 특공대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 아들이 작위를 물려받아 자작 아들과 결혼했던 티누켈레는 생각보다 빨리 자작부인이 되었다.


그런 티누켈레의 딸인 나나스 멜린은 남동생이 작위를 물려받을 예정이라 마침 남편도 자식도 없는 네르비나 밑으로 가서 일하고 있었다.

나나스 멜린은 배신자 멜린 자작의 핏줄일 뿐만 아니라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고 다니던 네르비나의 후계자고 온건파 엘프 거두였던 마스터 브란트가 처형되게 만들었으니 과격파 엘프들이 나나스 멜린을 견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자이라 씨를 죽인 다크엘프는 아퀼레이아 쪽과는 그 어떠한 연결점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게다가 지금 이야기 들어보니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온건파 다크엘프인 오르갈 남작가 쪽 사람을 제거하는 건 되려 아군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인 게 아닐지?"



레아가 도통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하자 나나스 멜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나스 멜린 본인에게 해를 가한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굳이 부임한지 얼마되지도 않고 차별 철폐를 밀어붙이는 오르갈 남작의 딸인 자이라를 죽인 건 과격파 엘프에게는 되려 악수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 제3세력의 개입을 의심하는 겁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이러니 의심을 도저히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조부님도, 큰이모도 외부세력이 끼어들어 엘프와 다크엘프의 갈등을 촉발시키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나스 멜린은 엘프와 다크엘프의 갈등을 촉발시켜 이익을 얻으려는 제3세력의 개입일 수도 있다는 파우스의 말에 동감한다며 대답했다.

그들을 태운 게누아 모험자 길드 마차는 어느새 게누아 상업길드 건물 앞에 멈춰섰고 마부인 다크엘프가 도착했다고 마차의 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나스 멜린은 먼저 마차 문을 열고 내리며 말했다.



"일단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하고 집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좋은 매물로 알아봐달라고 아버님의 지인들께 부탁드렸으니 분명 제대로 된 집을 준비해놨을 겁니다."



사망한 선대 멜린 자작이 보급 및 정치질을 하면서 만든 연줄은 그 아들인 현 멜린 자작에게 그대로 승계되었고 멜린 자작은 현재 게누아 상업길드의 큰손이자 비선실세였다.

그런 멜린 자작의 딸이자 현 게누아 모험자 길드의 수장인 나나스 멜린이 부탁을 해왔으니 건성으로 준비해놨을 리가 없었다.


파우스는 매물로 나와있는 저택 중에서 레브메 저택 때와 마찬가지로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는 물건을 원했고 레아는 레브메 저택 때처럼 하숙생을 받을 생각은 없지만 가족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적당히 침실이 많은 저택을 원했다.

마침 게누아 시 외곽에 적당한 매물이 하나 있었는데 하필이면 모험자 길드가 있는 게누아 서남쪽 큰길가와는 정반대인 북동쪽 외곽지역이었다.



"역시 출근하는데 시간이 걸리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고객님? 모험자 길드 인근에 있는 이 매물로 전환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 집은 다 좋은데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을 증설할 공간이 안 남는 것 같습니다만"



상업 길드의 부동산 업자는 그 점을 우려했는지 다른 매물을 보여줬지만 파우스의 의지는 완고하였고 결국 북동쪽 외곽 지역의 저택과 모험자 길드 인근 매물을 직접 가서 확인한 끝에 북동쪽 외곽 지역의 집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상업 길드의 업자는 10년 만기 20분할 지급을 제안했지만 그동안 파우스가 챙겨놓은 돈이 꽤 많아서 파우스는 금화가 가득 담긴 자루를 건네주는 일시불 결제를 해버렸고 상업 길드의 업자는 금화 자루의 금화를 세보더니 저택 매매가보다 많다는 걸 깨달았다.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 증설 공사는 조금 시일이 걸립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럼 바로 장인길드에 협조요청을 하겠습니다."



그 초과분량이 딱 소형 대장간과 연금술 실험실 증설 비용 견적이라는 걸 깨달은 업자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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