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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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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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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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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DUMMY

레브메 저택으로 돌아와 레아의 생일파티 준비를 하는데 가장 열정적으로 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파우스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파우스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발만 씻고 며칠 전부터 준비해놓은 빵의 재료와 생크림을 가지고 뭔가를 주방에서 만지작거렸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목욕탕에서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니키치나와 레아, 메건이 주방에 들어와서 본 것은 초승달 모양의 빵과 거기에 생크림을 정교하게 바르면서 예쁘게 썰어놓은 과일을 준비하는 파우스와 옆에서 장식에 쓸 수 없는 과일 파편을 주워먹고 있는 헤르와 루스티, 아이데스였다.


헤르는 파우스가 조각하고 남은 파편을 건네주면 그걸 두 동생의 입에 하나씩 넣어줬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루스티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로 입가에 다채로운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과일 파편을 묻히고 좋다고 박수를 쳤다.

아이데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얌전히 누워서 입에 들어온 과일조각을 우물거렸다.

다만 눈이 시도 때도 없이 휘릭휘릭 돌아가며 주변을 탐색하는 것으로 보아 경계를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였다.



"어라? 케이크네요."


"그게 뭔데 니키 언니?"



레아는 살아생전 본적이 없는 음식을 알아본 니키치나에게 물었고 박식한 니키치나는 저게 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폭신폭신한 빵에 생크림을 발라서 만든 초승달 모양의 빵이 바로 케이크야. 대륙 동부에서 뭔가 기념할 일이 있으면 케이크를 먹는다던데."



레아는 니키치나의 설명을 듣고 혼신을 다해서 빵에 생크림 바르는 작업을 끝내고 초승달 모양 케이크에 조각한 과일을 올리기 시작한 파우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초승달 모양 빵 부분은 티아라고 과일은 그 티아라에 박는 보석 역할인가?'



레아는 파우스가 만들고 있는 케이크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점점 과일들이 위치를 찾아가자 파우스가 티아라 형상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초승달의 흰색 케이크 위에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석류 알들을 배열해 무늬를 만들고, 노란색의 큼직한 망이페라 과일을 마름모 형상의 보석처럼 깎아서 중앙에 배치했다.

케이크가 완성되고 그동안 미리 조합해서 끓여둔 고기 스튜를 담은 대형 냄비의 뚜껑이 달그락거리기 시작하자 파우스는 오븐 안에 넣어둔 아르겐타비스 구이의 상태를 보더니 씻고 오겠다고 주방에서 나가버렸다.

음식 준비라는 생일 파티에서 가장 고된 작업은 파우스가 끝냈으니 다른 사람들은 나머지 자잘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파우스가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레아의 생일을 기념해 선물을 준비한 사람들은 니키치나, 사예스 주교, 파우스, 마지막으로 헤르였다.

파우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선물을 주라고 하고는 완성된 요리들을 담아서 테이블에 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주는 선물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자, 이건 내 선물"



가장 먼저 선물을 건네준 건 니키치나였다.

토론테스산 와인과는 다른 타입이지만 북부의 왕이라 불리는 네비올로와 쌍벽을 이루는 남부의 대표 와인 알리아니코의 라벨이 붙어있는 와인 병이었다.



"언니 이거 수도랑 남부에서도 쉽게 못 구하는 녀석인 거 아냐?"


"괜찮아, 알리아니코 와인이라고 해서 모든 제품이 가세가 기울어질 정도로 비싼 건 아니야."



니키치나는 부담가지지 말라는 얼굴로 레아에게만 슬쩍 가격을 알려줬고 레아는 의외로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으면서도 선물용으로 적당한 가격에 납득했다는 얼굴로 니키치나에게 말했다.



"고마워 언니 잘 마실게"



레아는 속으로 니키치나의 생일에 건네줄 선물은 괜찮은 걸 구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음으로 선물을 건네준 것은 사예스 주교였다.

쌍둥이 여신 교단을 대표해 사예스 주교가 준비한 선물은 축성한 성수 세트로 예전에 헤르에게 줬던 선물보다는 저렴하지만 성수의 유용함은 모험자인 레아가 성직자들 다음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 어, 엄마. 선물이에요."



헤르는 꼬리를 통제하지 못하고 붕붕 흔들면서 레아에게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하고 작은 상자를 줬다.

레아는 거리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천으로 싸여있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상자에서 나온 것은 꽃을 엮어 만든 반지였다.



"이거 어떻게 만든거야?"



레아는 상당히 놀랐다.

헤르가 준 꽃반지는 절대 말린 꽃을 엮어서 만든게 아니었다.

꽃과 줄기는 방금 막 꺾은 것으로 보였고 심지어 겨울에 피는 꽃도 아니었다.

꽃반지를 구성하고 있는 제프스 블루, 에키네시아, 헬레니움 꽃은 여름에 피어나는 꽃이라 지금 시기에는 어딘가의 연구소 온실 같은 곳이 아니면 절대 구할 수 없다.


레아는 여름도 아니고 이 추운 겨울에 대체 어디서 헤르가 꽃을 가져온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파우스를 바라보았으나 파우스는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고 헤르는 친구와의 약속이라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분명 밖에 나갈 때 무조건 전투수녀 한명이 보모로 아이들에게 붙을 텐데 그들로부터 헤르가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은 들을 기억이 없었다.



"그럼 그 친구한테도 고맙다고 해야 하니 다음에 소개시켜줄래?"


"응응!"



레아는 뭔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딸이 노력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고맙다고 헤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헤르는 엄마가 뭔가 납득은 안되지만 일단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뻐하며 레아의 다리에 달라붙어 얼굴을 부비부비 했다.



"자자, 이제 메인 선물이네"



레아는 다른 사람들의 선물은 성의만으로도 고맙지만 파우스에게만큼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파우스는 좀 괴팍하지만 선물로 준비하는 물건의 품질은 확실하다.

물론 늘 비싼 선물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건 파우스가 뭘 준비해놨는지 레아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말했던 그거지? 응? 뜸 들이지 말고 보여줘"



레아는 기대감에 손을 만지작 거렸지만 어쩐지 파우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표정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같이 산 세월이 있는 레아는 그 미묘한 표정과 행동을 통해 파우스가 곤란해하고 있다는 걸 간파하였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길래 선물을 건네주는 걸 꺼려하는가?

혹시 제조에 실패한 건가?

그러나 파우스 성격에 제조에 실패했으면 대체품을 준비했을 텐데 이런 태도라는 건 뭔가 이상했다.


파우스는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도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진짜 줘야 하나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 같았다.

레아가 참다참다 끝내 왜 이렇게 뜸들이냐는 눈빛으로 노려보자 한숨을 내쉬며 위상도약 파우치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들었다.

파우스가 꺼낸 칙칙한 회색 칼날의 롱소드는 별다른 장식이 없었으나 레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역시! 드디어 완성한 거야?"



그건 분명 파우스가 아다만틴으로 만들겠다고 하던 검이 분명했다.

색깔과 장식만 없을 뿐 칼날 끝에서 손잡이의 밑의 타오르는 것 같은 불꽃 문장이 새겨진 폼멜까지 끝에서 끝까지 장인의 손길이 닿은 고급품이라는 걸 온몸으로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파우스는 검을 들고 못마땅한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뭔데?"



파우스는 검을 들고 이래도 되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레아가 대체 뭐가 문제길래 검을 안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파우스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실패작이다."



실패작이라는 말을 하면서 다시 파우치에 검을 넣으려는 파우스의 행동을 본 레아는 파우스로부터 검을 거의 빼앗듯이 낚아채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러나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전부 일정 거리를 벗어난 건 확인한 레아는 가볍게 허공에 검을 연속해서 휘둘러보았다.

마석등이 내뿜는 빛을 미세하게 반사하는 칙칙한 회색의 검이 만들어낸 궤적을 따라 바람이 불었다.


한바탕 검무를 선보인 레아는 검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검은 분명 롱소드의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묵직한 무게였다.

아마 단련을 게을리한 초보자가 쓰기에는 상당히 부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게중심이 잘 맞고 칼날에 제작자의 의도에 벗어날 정도로 휘어진 부분도 없다.

레아는 손수건 한장을 멈춰있는 검 위에서 떨궜고 멈춰있는 칼날이 중력에 의해 떨어진 손수건을 양단하는 걸 본 뒤 검을 거둬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살짝 무겁긴 하지만 내 근력이면 전혀 문제되지 않을 거 같은데?"


"내가 전에 말했던 검의 절삭력과 접촉면적의 연관성은 생각나나?"



레아는 그게 뭐였지라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으나 애시당초 파우스는 그 이론에 대해 레아말고 말한 사람이 없었는지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모른다고 반응했다.

그걸 본 파우스는 레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검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칼날 부분을 살피며 말했다.



"강철로 된 검을 마법을 동원한 정밀가공을 통해 날 끝부분만 단분자 상태로 세우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아다만틴으로 변환시키고 테스트를 해보니 바로 문제점이 밝혀졌지. 변환 후에 원자 크기와 배열, 밀집도가 달라졌고 무엇보다 칼날 끝부분만 단분자여서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걸 깜빡했다."



파우스는 위상도약 파우치에서 두툼한 쇳덩어리를 꺼내더니 아다만틴 검으로 가볍게 찔렀다.

사실 찔렀다기보다는 가져다 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칼날 끝부분이 마치 두부나 푸딩 뚫는 것처럼 쇳덩어리 표면을 뚫고 들어갔으나 칼날은 손가락 한마디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이 정도의 힘만으로도 칼날 절반 가까이가 쇠를 관통했어야 했다. 이건 실패작이야. 이런 걸 선물할 수는 없다. 예산은 충분하니 시간을... 시간을 조금만 더..."



파우스가 레아와 함께 살아온 이후 처음으로 거의 빌듯이 저자세로 나왔으나 레아는 무자비하였다.



"이 양반이 갑자기 편집증이 생겼나?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좋아보이는구만 뭘 저런거 가지고 그래?"



레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파우스로부터 아다만틴 검을 거의 강탈하듯 채갔고 파우스는 계속 아쉽다는 얼굴로 검을 바라보았다.

실패작을 아내 생일 선물로 주는 게 꺼려지는 건 이해하지만 사람들은 파우스가 너무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헛소리 그만하고 칼집이나 만들어와."


"이미 만들어놨다."



파우스는 위상도약 파우치에서 칼날에 닿지 않고 오로지 검의 가드부분의 자석과 맞물려 잠기는 흰색 칼집을 꺼내서 건네줬고 레아는 검을 칼집에 넣어서 허리춤에 차보고는 마음에 든다는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파우스는 실패작을 선물로 건네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는 않는 건지 생일 파티가 끝날 때까지 종종 레아에게 건네준 아다만틴 검을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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