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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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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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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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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DUMMY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10월의 끝이 다가왔다.

보통 이 시기가 되면 기온이 떨어져서 꽤 쌀쌀하다고 느끼는 대륙 중부와 달리 대륙 최남단은 기후 자체가 달랐다.

폭염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꽤나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게누아 시는 밤에 아열대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되려 쾌적해졌다.



"올해 수확기는 그래도 큰 사고 없이 넘길 것 같네요."


"작년만해도 몬스터의 대규모 남하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지만 올해는 죽은 엘프도 없고, 다친 엘프만 좀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나스 멜린과 아마리엘, 파우스는 길드마스터 집무실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올해 말에 있을 사비니 왕국 모험자 길드 중앙회에 제출할 자료 작성 때문이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그보다 올해는 예년보다 좀 쌀쌀한거 같은데 기온 측정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입니까 마스터 멜린? 평소보다 되려 온도 높지 않나요?"



건기 중에서 가장 추운 날도 영상 5도 밑으로 떨어진 경우가 거의 없는 게누아 시의 현재 온도는 섭씨로 14도 정도, 더 북쪽의 대륙 중부와 가까운 타티아 시에서 살다 온 파우스에게는 굉장히 선선한 날씨였지만 이 지방 태생인 엘프들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멜린은 예민한 건지 기온 측정을 해봐야겠다고 했고, 나이 많은 베테랑 엘프 접수원인 아마리엘은 온도 감지 쪽에서는 조금 둔한지 되려 온도가 높다고 느끼고 있었다.


현재 이 대륙에는 제대로 된 온도 측정 장치가 없다.

대륙 남부의 광물 온도계, 드워프들의 전통적인 방식인 맥주 온도계, 대륙 중부 왕국들의 금속 온도계, 대륙 북부의 공기와 물 복합 온도계 등 여러 방식이 사용되고 있으나 기압이나 주변의 마력분포 등의 환경에 따라 수치가 변하는 경우가 많아서 용도는 정밀측정보다는 대충 지금 기온이 이 정도다 하는 지표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몇몇 국가에서는 기존 온도계보다 더 정확한 새로운 방식의 온도계를 도입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일반 대중에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광물 온도계는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색깔이 변하는 형식이라 정확한 온도를 잴 수 없는데 드워프들의 맥주 온도계라도 수입해야 할까요?"


"맥주의 도수에 따라 측정치가 달라져서 매번 같은 도수의 맥주로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우리 길드에서 제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나나스 멜린이 그나마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편이라는 드워프제 맥주 온도계의 수입을 건의했으나 파우스는 드워프 맥주 온도계의 단점에 대해 말했다.

드워프들은 맥주에는 진심인 종족이기 때문에 양조 장인이 자신의 혀와 코로 정확하게 도수를 측정해서 맥주 온도계의 내용물을 주기적으로 갈아끼우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이 게누아에서 그 정도 실력의 양조 장인을 데려올 수 있을 리도 없을 뿐더러 매달 온도계에 갈아끼울 맥주를 수입하면 재정적으로 좋지 못했다.



"부길드장, 뭔가 좋은 거 없나요?"


"..."



파우스는 최근 들어 자꾸 나나스 멜린이 자신을 필요한 물건을 뭐든지 꺼낼 수 있는 만능 창고 취급하는 느낌을 받고 있던 차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물론 파우스의 위상도약 파우치 안에는 예전에 만들어놓은 알콜 온도계와 수은 온도계가 있었다.

그것도 대륙 중부에서 수입해서 포션 공장에 달아놓은 액체 금속 온도계보다 더 정밀한 녀석이다.

파우스는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나나스 멜린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파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모님께 들었는데 지난 달부터 가동에 들어간 포션 공장에 사용되는 대륙 중부의 최신식 액체금속 온도계를 수입해온 게 부길드장이었죠? 분명 공장 설비에 달아놓을 온도계 사고 개인용으로 하나 구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길드 예산에 반영해주시면 수입처에서 하나 더 주문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다행히 나나스 멜린은 양아치 같은 마인드를 지닌 귀족이 아니었기에 파우스가 가지고 있는 온도계를 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그 뒤 간단한 안건들의 진행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 뒤 나나스 멜린은 깜빡했다는 듯이 품속에서 길드 중앙회의 직인이 찍힌 문서 하나를 꺼냈다.

글자 색깔과 새겨진 직인의 정밀도를 보아하니 길드장 직통 채터박스로 전송된 문서인 것 같았다.



"다음 모험자 길드 정기 총회가 내년 중순으로 잡혔습니다. 안건은 랭크제 도입 후 각 길드에 접수된 문제점 확인 및 대책, 거기에 길드 중앙회 예산 분배에 관련된 안건인데 내년 총회 때 같이 수도에 갈 생각 있나요 부길드장?"



뜻밖에도 나나스 멜린은 파우스에게 참석을 권유했다.

파우스는 딱히 내년 중순에 게누아 백작가에 큰 행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참석을 권유하는 나나스 멜린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물었다.



"원래 별 다른 일이 없으면 길드장이 출석하고 부길드장은 현지 업무 처리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전 이모님이 급사하셔서 길드마스터 자리를 맡은거라 능구렁이 같은 다른 길드마스터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요. 지난 긴급 총회 때는 솔직히 말해서 암살자들한테 쫒겨서 반강제로 수도로 달려갔던 거고 지난 정기 총회는 각 지방의 길드 이권이 걸려 있는 안건이 아니라 갔던 것일 뿐이죠."



나나스 멜린은 자신의 미숙함을 알고 파우스에게 협상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우스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미숙하기 때문에 더더욱 직접 가셔야 합니다. 특히나 사비니 왕국 길드 중앙회 설립 후 처음으로 예산 분배 협상을 하는 자리인데 이런 때에 직접 참석을 하셔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겁니다."


"우우우..."


"게다가 결정권자가 전부 자리를 비웠을 때 긴급사태가 벌어지면 대처가 힘듭니다. 그래도 정 안되겠으면 이모님이신 미니엘 행정관께 도움을 청해서 예산 쪽으로 뛰어난 관료를 보조로 붙여달라고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역시 그래야겠죠?"



나나스 멜린은 풀 죽은 얼굴로 마치 반찬투정하는 아이처럼 서류를 끼적거리다가 정신차리고 다음 서류를 꺼냈다.

문제는 그 서류는 나나스 멜린이나 아마리엘 본 적이 없는 서류였다는 것이고 나나스 멜린은 두툼한 서류 뭉치의 표지 부분을 읽으며 말했다.



"마그렙 왕국 모험자 길드 중앙회와 바이타트 모험자 길드 중앙회, 엘람 왕국 모험자 길드를 상대로 한 조사 협조공문? 이건 뭔가요 아마리엘?"


"이상하네요. 아까 정리할 때 그런 서류는 없었는데?"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타국 모험자 길드에 의뢰했던 안건인데 아무래도 보셔야 할 것 같아서 껴놨습니다."



파우스의 말에 나나스 멜린과 아마리엘은 진작 좀 알려주지 왜 입다물고 있었냐는 얼굴로 파우스를 보다가 서류의 첫 장을 넘겼다.

첫 장에는 뜻밖에도 그들이 알고 있는 인물의 얼굴이 그림 수정구로 복사되어 있었다.

보통 길드에서 모험자 등록을 할 때 사용하는 그림 수정구는 흑백으로 밖에 얼굴을 기록할 수 없지만 화가를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다.

훗날 사진기가 나온다면 도태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이처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아, 최근 게누아에 온 금 랭크 모험자 존에 관한 자료네요?"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가... 어?"



함께 서류를 넘기던 나나스와 아마리엘은 2번째 장과 3번째 장을 대충 넘기다가 4번째 장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더니 꼼꼼이 읽기 시작했다.



"아나비 왕국과 마그렙 왕국에서 해당 인원에 대한 암살 시도가 최소 6회? 범인은 라르사 왕국 군인으로 추정?"


"뭔가요 이건?"



나나스 멜린은 파우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2번째 장으로 돌아가 조사 보고서를 읽으면서 귀를 기울였고 파우스는 자신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조사한 내용을 말해줬다.



"확실치는 않지만 존은 아무래도 원래 라르사 왕국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모험자 커리어를 엘람 왕국에서 시작했고 엘람 왕국이 라르사 왕국을 배신하고 대륙 중부 왕국전쟁을 끝냈을 때 엘람 왕국에 고용된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존은 전쟁 종결 후 엘람 왕국으로부터 상당한 포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럼 그가 조국을 배신했단 말인가요?"


"확실치는 않지만 정황상 그렇습니다. 다만 확신을 하기에는 직접 증거가 부족합니다. 라르사와 엘람 두 왕국 모두 전화에 그을려 초토화 된 상태라 지금 그 보고서 내용도 바이타트 왕국 모험자 길드로 피난간 엘람 왕국 모험자 길드 직원을 통해 간신히 알아낸 사실입니다."



통신과 이동수단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현 시대에 대륙 최남단 도시 중 하나인 게누아에서 저 멀리 대륙 중부에서 일어난 일을 조사하고 이 정도 성과를 얻었는데 반년도 걸리지 않은 게 대단한 일이었다.

나나스 멜린은 심각한 얼굴로 보고서를 꼼꼼이 정독하였고 파우스는 옆에서 계속 보고서에 축약해서 적은 부분과 관련된 정보를 말해주었다.



"존은 라르사 왕국 귀족이지만 어떤 사유로 인해 조국을 탈출해 이웃나라인 엘람 왕국과 바이타트 왕국을 오가며 모험자로 살아가야 했던 것 같습니다. 발목 쪽에 고문으로 인해 만들어진 오래된 흉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라르사 왕국 내에서 범죄에 휘말렸거나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보니 존이 길드에 온 건 8월 말,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기였는데 다리 전체를 가리는 긴 바지를 입고 있었죠. 심지어 통풍이 잘 안되는 모피가 섞인 바지였어요. 그때는 이제 막 남부에 와서 현지 사정을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흉터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게누아를 비롯한 사비니 왕국 남부 도시들은 평균 기온이 높기 때문에 보통 모험자들도 긴바지를 입더라도 통풍이 잘되는 재질의 바지를 입건만 존은 게누아에 눌러 앉은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원래 입던 바지를 입었다.

게누아 모험자 길드의 베테랑 접수원인 아마리엘은 뛰어난 눈썰미와 기억력을 토대로 말했고 나나스 멜린은 대답하지 않고 보고서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대륙 중부의 왕국 전쟁이 시작되자 존은 엘람 왕국에 고용된 용병으로 활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용병으로 참전한 엘람 왕국 모험자 중에 종군하고 있는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몇 건 있습니다. 계약이 종료된 건 엘람 왕국이 라르사 왕국을 배신하고 왕국 전쟁을 종결한 뒤라고 추측됩니다. 계약이 종료될 때 그의 손에는 막대한 포상금이 함께였습니다."


"라르사 왕국 출신 모험자가 라르사 왕국이 패배할 때까지 종군하고 포상을 받았다? 이건..."


"예, 존이 라르사 왕국 출신인 점을 활용해 엘람 왕국이 배신해 라르사 왕국의 수도를 함락시킬 때 큰 활약을 했고 그것 때문에 바이타트 왕국에서 어린 그린드래곤을 토벌하고 금 랭크로 진급했음에도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라르사 왕국 잔당에게 추적 당해 바이타트 왕국을 떠나 아나비와 마그렙 왕국을 거쳐 이 사비니 왕국에 들어왔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옛 라르사 왕국 귀족 출신 모험자가 어떤 일을 했을지는 그들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모험자 중에는 신분을 세탁한 범죄자도 꽤나 섞여 있는 게 너무나도 흔한 일이고 모험자 길드는 치안 유지에 협력은 하지만 기사단이나 경비대처럼 깐깐하게 사람을 가려 받는 조직이 아니기에 존이 조국을 배신한 행위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문제가 되는 쪽은 오히려 그 다음 벌어진 일이었다.



"마그렙 왕국은 아나비 왕국과 함께 라르사 왕국 유민들을 많이 받아들인 나라라 라르사 왕국 잔당의 감시의 눈이 덜한 우리 사비니 왕국으로 넘어온 걸까요?"



마그렙 왕국은 사실 라르사 왕국 유민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나 라르사 왕국 난민에게 시달린 아나비 왕국이 난민 중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노예로 삼아 마그렙 왕국으로 넘기면서 노예가 된 가족을 찾겠다고 난민들이 아나비 왕국을 지나쳐 국경을 넘는 바람에 난민과 유민들이 유입된 것이었다.

일부는 아나비 왕국이 고의로 길을 열어줬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증거가 없기에 유야무야 넘어가버렸다.



"존이 게누아에 온 뒤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라르사 왕국의 암살자가 존을 노리고 이 게누아에 들어올 가능성도 있으니 한동안 성문 경비들에게 라르사 왕국에서 온 사람들을 주의하라고 일러둬야겠네요."


"그렇다고 모든 라르사 출신 모험자나 여행객을 차별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타티아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라르사의 군인 출신 엘프 모험자가 한 명 있었는데 되려 조국을 원망하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런 자들은 존이 누구인지, 뭘 했는지 관심도 없는데 출입을 막는다면 되려 존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파우스는 타티아에서 살던 때 봤던 신참 엘프 모험자 프룬을 떠올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라르사 왕국 출신에 대해 시선이 나빴던 차에 프룬이 얽힌 사건 때문에 타티아 모험자들은 라르사 왕국 출신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편견이 심어졌다.

물론 프룬 본인은 샤반이라는 듬직한 동료 덕택에 악명으로 인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 게누아에 유입된 라르사 왕국인들에게 그런 행운이 온다는 보장은 없다.

나나스 멜린은 파우스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존을 덮치는 게 목적이라면 라르사 왕국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대륙 중부 왕국 전쟁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봐서 반응을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우리가 아니라 경비대가 생각할 문제고, 그렇기 때문에 경비대에 알리는 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나스는 파우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게누아 모험자 길드는 겉으로는 독립된 단체지만 2대에 걸친 가족 경영으로 인해 반쯤 영주 휘하 모험자 대응창구화 된 상태다.


이런 인식은 게누아 모험자 길드 직원들만이 아니라 영주 휘하의 기관들 역시 공유하고 있다.

얼마 전 케일런 교단이 일으킨 소동 때처럼 게누아 시 경비대와 기사단 사람들은 영주인 게누아 백작의 손녀이자 모험자 길드의 마스터 나나스 멜린을 모험자 길드의 길드장이 아니라 영주의 손녀로 인식하고 아가씨라고 부르며 긴급사태가 닥쳐오면 무의식중에 그녀의 명령을 들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기사단과 도시 경비대는 나나스 멜린의 주의통보를 모험자 길드의 주의통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영주 대리인 중 한명의 명령으로 오인하고 존을 노리는 암살자를 걸러내겠답시고 라르사 왕국 출신 통행객을 아예 배제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통보를 안하자니 이미 이웃나라인 마그렙 왕국에서 라르사 왕국 암살자들이 존을 노리고 날뛴 전적이 있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길드장님, 부길드장님."



아마리엘의 지적은 타당했다.

이미 존은 몇 차례나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이 게누아까지 내려온 것이다.

암살자들이 포기했다면 좋겠지만 대륙 남부의 왕국인 마그렙 왕국까지 암살자들이 쫒아온 걸로 봐서 암살자들이 포기할 확률은 반반이었다.


이런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도 기사단과 경비대에 알리지 않는 건 이 게누아 시를 지배하는 영주 가문 출신 아가씨로서 직무 유기나 다름 없었다.

나나스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번 건은 자기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판단하고 말했다.



"미니엘 이모님께 이 일에 대해 알리고, 존의 파티장인 카라니보르에게 슬쩍 귀띔해놓고 한동안 경비대와 자주 연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리엘, 여차하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한동안 카라니보르와 존의 파티는 게누아 인근의 의뢰만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멜린."


"잘 생각하셨습니다. 길드장님"



일단 내부적으로는 영주와 얽히고 얽혀서 사실상 영주가 주인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게누아 모험자 길드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독립된 단체다.

게누아 행정청 소속 모험자 관리부서가 아니라 사비니 왕국 모험자 길드 중앙회 회원인 것이다.

경비대가 개입해야 할 치안 문제로 격상된 상태에서 이 건은 이미 나나스 멜린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다는 공식적인 영주의 후계자이자 대리인인 그녀의 이모 미니엘 행정관에게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물론 미니엘은 쓸데없이 일거리가 늘어났다고 화낼게 뻔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영주 후계자이자 행정관인 그녀야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주관으로 향하려던 나나스는 문득 최근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때문에 밑의 행정직 신하들을 갈궈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큰이모에게 가는게 무서워졌다.


그래서 그녀는 방금 전까지 자신과 회의를 한 믿음직한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으나 아마리엘은 벌써 다른 접수원들에게 알려주겠다며 방에서 나가버렸고 파우스는 엉거주춤하게 그 뒤를 따라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혼자서 이런 안건을 가지고 이모님께 가는 건 싫어요!"


"왜 이러십니까 마스터 멜린. 길드장이자 게누아를 지배하는 영주 일족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십시오."



파우스는 매정하게 나나스 멜린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나나스 멜린은 파우스의 옷소매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고 마침 로비 근무하다가 잠깐 휴식을 위해 직원구역으로 들어온 레아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다가와서 말했다.



"무슨 소란이야?"


"길드마스터께서 미니엘 행정관을 귀찮게 만드는 안건을 보고하러 가야 하는데 혼자서 가는 게 무섭다고 하신다."


"겍, 그 아줌마 최근 연말 다가오고 있어서 할 일이 산더미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걸 더 귀찮게 만든다고? 나 같으면 선물 없이는 절대 접근 안해."



레아는 손과 고개를 동시에 저으면서 기겁했고 파우스는 침착하게 나나스 멜린의 양 어깨를 잡고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길드마스터."



하지만 그건 나나스 멜린에게 그 어떠한 위로도 되지 못했다.

그녀는 파우스에게 매달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가족이라도 히스테리 부릴 때의 큰이모님은 무섭단 말이에요!"


"안타깝게도 제가 비천한 모험자 신분이라 귀족 상대를 하는데 실수를 할까 두렵습니다."


"거짓말! 이미 타티아에서 쌍둥이 여신 교단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낼 때 소문 다 났어요! 부길드장 원래 대륙 중부 왕국의 어느 교단 높으신 분이었다면서요!"


"지금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찌라시, 풍문, 거짓정보, 선동일 뿐입니다."



파우스는 매정하게 나나스 멜린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나나스 멜린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에 도와주면 틴도메레다 사에 소개시켜줄게요!"



틴도메레다, 고대 엘프어로 빛나는 황혼의 계승자라는 뜻의 회사는 보통 회사가 아니었다.

이 회사는 사실상 백작이 소유한 회사로 여러가지 물건을 취급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계수의 자식으로 알려진 게누아의 고목에서 나오는 나뭇잎이나 솔방울, 진액, 껍질 등을 재료로 만든 물건들이었다.


게누아 영주인 게누아 백작이 지분의 60%, 멜린 자작이 지분 20%, 나머지 20%는 국왕 루이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주요 상품은 게누아 고목의 부산물을 재료로 사용한 차와 화장품이다.

대륙 남부 엘프들은 세계수의 자식인 게누아 고목을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틴도메레다 사의 제품은 엘프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비싼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런 배경 때문에 이 회사의 제품은 시중에는 유통되는 법이 거의 없고 주로 사비니 왕국 고위 귀족이나 왕족, 일부 엘프들을 상대로만 장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뇨, 거절하..."


"그 정도 정성이라면 당연히 받아야죠! 그렇지 자기야?"



파우스는 거절하려고 했으나 레아가 끼어들어 파우스에게 당장 나나스를 도와주라고 압박하기 시작했고 파우스는 아내인 레아까지 밀어붙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승낙표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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