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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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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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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7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07.25 17:21
조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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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지평선 너머 - 2

DUMMY

루시아가 다시 가게에 돌아온 것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였다.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루시아 씨?”


“저기, 마리우스 씨......저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조금 늦었습니다. 전 곧 오는 줄 알고 이제까지 밥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죄송해요. 저 원래 안 이런는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리우스에게 안겼다.


마리우스는 일단 그녀를 밖에 빼낸 뒤, 가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우스는 그녀를 등에 업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마리우스가 물었다.


“그게......약초를 캐려고 했는데......기분이 이상해져서......”


그녀는 말을 마치지 않고 잠들어버렸다.


집으로 들어온 마리우스는 그녀의 방을 찾았다.


“어이쿠, 애가 왜 이런 거야?”


데우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말이죠. 약초를 캐러 갔다가 술을 좀 마신 모양입니다. 혹시 식사는 안 하셨습니까?”


“못 했어. 난 밥 할 줄 몰라.”


“하아......일단 제가 해드리겠습니다만, 맛은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마리우스는 선반을 열고 먹을 것을 찾았다. 다행히도 빵 약간과 땅콩버터, 가루 계란이 있었다. 취사도구는 마리우스가 예전 아이넬에서 쓰던 것과 차이가 없었다.


데우스는 빵을 한 입 베어 물더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맛이 어떠세요?”


“좋아, 맛있어.”


데우스는 밥을 먹고 난 뒤 오래지 않아 잠에 들었다. 마리우스는 루시아를 챙기러 다시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루시아, 밥은 안 먹을 겁니까?”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완전히 잠에 빠진 것이다. 마리우스는 바닥에 놔뒀던 가방을 주웠다.


그때 가방에 붙어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보아하니 그것은 분명 루시아가 말했던 약초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이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이건......”


마리우스는 그녀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남의 가방을 함부로 열어보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그는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그녀의 가방에는 풀이 잔뜩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약초는 아니었다. 마리우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세라핌. 마약을 만드는 데 쓰이는 풀이었다.


세라핌을 달인 물은 본래 마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처를 수술할 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쓰였으나, 그 부작용이 지나치게 심해 천계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풀이었다. 그러나 민간인들 중에서는 개별적으로 그 풀을 사용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마리우스의 아버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물론 아그리파는 자신에게 그 풀을 쓴 것이 아닌,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썼다.


물론 자신들이 쓰기 위해 그 풀을 기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생귀니우스들이었다. 마리우스는 바이젤과 함께 생귀니움 신전에 잠입했을 때 그 마약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루시아 역시 술을 마신 게 아닌, 그 약초에 취한 것이었다. 어떻게 마약을 흡입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리우스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어났어요? 어젠 정말 죄송했어요. 갑자기 이런저런 일에 끌려 다니느라......”


아침에 마리우스가 거실로 나오자 루시아가 웃으며 인사했다.


“아, 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떤 거요?”


“어제 어딜 갔다 온 겁니까?”


“산 너머의 벌판이요. 그쪽에 약초가 자라서요.”


“어제는 약초 캐는 일 외에는 한 게 없는 겁니까?”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약초를 달인 물을 조금 마시긴 했어요. 근데 그 효과가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어제

그것 때문에 폐를 끼쳤죠? 미안해요.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혹시 저도 거기에 데려가 주실 수 있습니까?”


“마리우스 씨가요? 혹시 그 약초가 궁금한가요?”


“네. 제가 원래 호기심이 좀 많아서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습니다.”


루시아는 시선을 피했다.


“혹시 안 됩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에이, 그냥 마리우스 씨도 오세요.”


“절 데려가는 게 잘못된 일이라면, 굳이 데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그 약초에 대해서는 꼭 알고 싶군요.”


“그럼 같이 가요. 재밌을 거예요.”


루시아의 말에 따르면 그 기묘한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렸다. 마리우스는 그동안 가게를 보거나 집안일을 거들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모임의 날이 오자, 둘은 가게를 임시 휴업한 뒤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 오늘은 좀 늦을지도 몰라요. 저기 식탁에 점심이랑 저녁 해놨으니까, 시간 되면 챙겨먹고 자요. 알았죠?”


“오늘도 혼자 있는 거야?”


“제가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그래요.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죠?”


“알았어. 잘 가 거기 청년도.”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마리우스와 루시아는 걸어서 산을 넘었다. 한 시간 정도 걷자 산 너머의 벌판이 보였다.


“말을 타고 가면 좋을 텐데. 혹시 다른 이동수단은 없는 겁니까?”


마리우스가 물었다.


“저희 집에는 없어요. 마을회관에는 말이 몇 마리 있긴 한데, 뭐 무거운 거 옮길 때가 아닌 이상은 잘 안 쓰거든요.”


“불편하지 않습니까?”


“뭐......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렇게까지 불편하단 생각은 안 들어요. 그냥 이대로도 괜찮은 걸요.”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몇몇 여행자를 만났다.


“저 사람들도 약초를 캐러 가는 겁니까?”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어요. 저기 마리우스 씨, 혹시 거기 가서 뭔가 불편하다고 해도, 너무 화내지 말아주세요.”


“무슨 말입니까, 그게.”


루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여기가......약초가 자라는 곳......”


점심이 되기 전에 그들은 벌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멀리 작은 건물 몇 개가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사나 봅니다.”


“저기는 화장실이에요. 여길 관리하는 사람들이 만든 거죠.”


“관리요? 약초를 캐는 곳이라면서 관리하는 사람들은 대체......”


“아, 오셨군요!”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한 젊은 남자가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옆쪽의 남성분은 누구시죠?”


“아, 이 분은 마리우스라고 해요. 얼마 전부터 저희 마을에서 살게 된 분인데, 약초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오게 됐어요.”


루시아가 말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룩스. 이곳 세라핌 지대의 관리인들 중 하나입니다.”


“반갑습니다. 마리우스입니다. 세라핌이란 건 혹시......”


“네, 이 약초의 이름이 바로 세라핌입니다.”


그 남자는 약초꾼 답지 않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 약초를 캐는 겁니까?”


“물론이죠!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캐도 됩니다.”


“혹시 여긴 룩스 씨의 사유지인 겁니까?”


“비슷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이 마을은 어디까지나 우리 모두의 것. 저희는 단지 이 약초들이 씨를 뿌렸을 뿐입니다.”


마리우스와 루시아는 관리사무소에서 바구니 하나를 받은 뒤, 벌판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약초를 캐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단순히 줄기만 뽑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소형 삽을 적절하게 활용해 뿌리까지 뽑아내야 했다. 여기에 더해 약초와 잡초를 걸러내는 것 역시


루시아는 재밌다는 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땅을 팠다.


점심이 되자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마리우스가 주변을 살펴보니 족히 100명은 넘는 것 같았다.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먹을 것들을 들고 왔다. 각종 고기와 야채, 그리고 처음 보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루시아 씨, 저거 봤어요? 저 음식은 저도 처음 보는 건데......”


“아, 저건 새우를 기름에 튀긴 거래요. 한 번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요.”


사람들은 둘러앉아 관리자들이 주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이 기묘한 모임이 어딘가 무서웠지만, 조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마리우스 역시 배가 고팠다.


일단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자, 육즙이 입안에 가득 흘렀다. 고기는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 않았다. 그는 이토록 맛있는 음식은......생귀니움 신전에 잠입했을 때 이후로 처음 먹어봤다.


“어때요? 맛있지 않아요?”


“네, 물론 맛있습니다만......이 음식들은 다 어디서 가져오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뭐 마을 안 어딘가에서 만드는 게 아니겠어요?”


식사를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약초를 캤다. 몇 시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는 약초로 가득 찼다.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아요.”


루시아는 그 바구니를 들고 세라핌 지대의 관리소로 갔다.


“잠시만 옆에서 기다리세요.”


관리소 안의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벌판을 천천히 걸으며 약초를 캐느라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을 구경했다.


“여긴 천계와는 다르게 여러모로 평화롭군요. 천계에 있는 동안에는 늘 무언가에 매달려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해요. 여기 있으면 굳이 살아남기 위해 일에 집착할 필요가 없거든요. 농사짓는 것도 훨씬 쉽고, 가끔씩 태풍이 마을까지 들이닥치는 걸 제외하면 날씨도 포근하거든요.”


그때 관리소에서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관리소 앞에 모여들었다.


“우리도 가 봐요.”


해가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모닥풀이 피어나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컵에 담긴 차를 한 잔씩 주었다. 차를 마신 사람은 컵을 옆의 사람에게 주었고, 관리자는 그곳에 다시 차를 따라 주었다.


대부분이 차를 마셨을 때쯤, 관리자들 중 마법을 쓸 줄 아는 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음악을 연주했다. 그가 허공에 손짓을 하자 북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다사다난한 세상을 등지고, 이곳 무인지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에 계셨던 분, 그리고 새로 오신 분 모두 환영합니다. 우리는 인간사의 증오를 무시하고 오직 쾌락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그러면 이제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루시아는 자신의 몫을 마신 뒤, 컵을 그에게 줬다.


“자, 여기요.”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바깥에서 그 모습을 본다면 그들이 무척 괴상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지만, 춤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라, 차 따라주는 사람이 없네요. 괜찮아요. 곧 다시 올 테니까.”


그들은 차 속에 들어 있는 약에 취한 것 같았다. 운이 좋게도 마리우스는 관리자들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차를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약에 취한 루시아 역시 사람들을 따라 일어났다.


“자, 같이 춤춰요.”


그녀는 몸을 서서히 흔들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그녀를 조금씩 따라했다.


“어때요? 기분 좋지 않아요?”


“저기, 루시아 씨......”


루시아는 마리우스의 허리를 감쌌다.


“이제까지 일들은 다 잊고, 여기서 살아요.”


“갑자기 이러면......”


“과거에 무슨 일을 했든, 여기서 뭐가 중요해요? 솔직히 말할게요. 여긴 평화롭지만, 괜찮은 남자가 없어요. 전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죠. 그래서 마리우스 씨가 마음에 들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다면, 일단 몸을 섞은 뒤 천천히 생각해도 되고요. 이래 뵈도 저 나름 자신 있다고요?”


“루시아 씨, 언제부터 이 모임에 나온 겁니까?”


마리우스는 자신에게 안기려는 그녀를 애써 뿌리치고 물었다. 갑자기 루시아는 손을 흔들었다.


“앗, 거기 아저씨. 이 분에게도 차를 주실 수 있나요?”


그녀의 말을 들은 관리자가 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어이쿠, 제가 깜빡했군요. 자,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당신......혹시 생귀니우스야?”


관리자의 표정이 굳었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사실을 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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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지평선 너머 - 5 20.07.28 87 3 13쪽
42 지평선 너머 - 4 20.07.26 85 4 12쪽
41 지평선 너머 - 3 20.07.25 90 5 12쪽
» 지평선 너머 - 2 20.07.25 86 4 13쪽
39 지평선 너머 - 1 20.07.24 89 4 11쪽
38 외부인 - 12 20.07.23 87 4 13쪽
37 외부인 - 11 20.07.22 84 4 13쪽
36 외부인 - 10 20.07.21 85 4 13쪽
35 외부인 - 9 20.07.20 99 4 14쪽
34 외부인 - 8 +2 20.07.19 99 5 12쪽
33 외부인 - 7 +1 20.07.18 96 5 12쪽
32 외부인 - 6 +1 20.07.17 97 4 13쪽
31 외부인 - 5 +1 20.07.16 104 4 12쪽
30 외부인 - 4 +1 20.07.15 107 5 12쪽
29 외부인 - 3 +1 20.07.14 100 6 11쪽
28 외부인 - 2 +1 20.07.13 101 5 13쪽
27 외부인 - 1 +1 20.07.12 105 6 13쪽
26 아르카다 원정대 - 9 +1 20.07.11 105 6 12쪽
25 아르카다 원정대 - 8 +1 20.07.10 101 7 12쪽
24 아르카다 원정대 - 7 +1 20.07.09 113 5 13쪽
23 아르카다 원정대 - 6 +1 20.07.08 109 5 12쪽
22 아르카다 원정대 - 5 +1 20.07.07 114 6 12쪽
21 아르카다 원정대 - 4 +1 20.07.06 120 6 12쪽
20 아르카다 원정대 - 3 +1 20.07.05 115 6 13쪽
19 아르카다 원정대 - 2 +1 20.07.04 121 5 12쪽
18 아르카다 원정대 - 1 +1 20.07.03 119 5 13쪽
17 유령 사냥꾼 - 17 +1 20.07.02 129 7 13쪽
16 유령 사냥꾼 - 16 +1 20.07.01 126 6 12쪽
15 유령 사냥꾼 - 15 +1 20.06.30 108 6 12쪽
14 유령 사냥꾼 - 14 +1 20.06.29 11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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