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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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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2,042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07.24 23:22
조회
89
추천
4
글자
11쪽

지평선 너머 - 1

DUMMY

“천계도 마계도 아니라는 건 무인지대라는 겁니까?”


마리우스가 물었다.


“아, 여기 오신 분들은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요. 무인지대라......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우리는 이 마을을 이데아라고 불러요.”


“분명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하다고 들었는데......”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 마을을 벗어나면 황량한 벌판이 가득할 뿐이죠. 하지만 여긴 달라요. 날씨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쳐들어오는 적이 없으니까요.”


마리우스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고통을 느끼며 곧 포기했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의사 말로는 온 몸의 뼈가 부러졌다는데, 지금까지 용케 살아있네요.”


“저도 제가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누워 있던 겁니까?”


“강물에 빠진 시점부터 보면......한 5일 정도 될 거예요.”


“그 정도로 오래 누워있던 겁니까?”


“그래요. 개울 건너편의 우디스 아저씨가 정말 고생했어요. 나중에 꼭 찾아가서 고맙다고 해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큰 빚을 졌군요.”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돼요?”


“아피우스 마리우스입니다.”


“저는 루시아예요. 그냥 루시아. 옆의 할아버지는 데우스. 이제부터 조금씩 걷는 연습이라도 하는 게 좋을 거예요. 화장실 정도는 직접 가야 하니까요.”


“네. 노력해보죠.”


마리우스는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3일은 더 누워있어야 했다. 그를 찾아온 마을 의사는 마리우스가 계승자일거라고 추측했다. 그의 회복속도가 인간에 비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마리우스는 그 말을 듣고 혹시 날개를 펼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 그건 불가능했다. 그는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걷는 것 정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마리우스는 낮에는 오두막에서 나와 마을 안을 별 걸어 다녔다.


마을은 무척 평화로웠다. 면적만 놓고 보면 아이넬보다도 훨씬 커보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강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마리우스는 울프치니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없었다. 그는 만약 이 마을이 천계, 마계와 같은 세계 안에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말을 타고 마계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천계나 마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먹구름도 문제였다. 자세히 보아하니 마을 주변으로는 폭풍이 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랐지만, 마리우스는 어쩌면 그 폭풍이 외부와 이 마을을 단절시키는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리우스는 루시아에게 물어본 끝에 우디스라 불리는 사람을 찾았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실망적이었다.


“여긴 옛날부터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채 살아왔지.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계승자가 말했다.


“왜 그런 겁니까?”


“저기 보이나?”


계승자가 가리킨 방향에는 마족 여자가 과일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마족 계승자야. 그리고 내 아내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인데? 자네 의외로 진보적인 건가?”


“뭐 눈총을 받기야 하겠지만, 이종족간의 결혼이 금지된 건 아니니까요.”


“그렇군. 자네는 나보다 훨씬 이후의 사람이니, 시대가 바뀐 건가......요즘은 전쟁이 덜 일어나나 보군?”


“전쟁은 이미 끝났습니다. 천족이 이겼죠.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는 게 문제지만.”


“뭐라고? 진짜로 이제 전쟁이 끝났단 말인가?”


“끝난 지 10년은 넘었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마족의 주신이 죽었다고 했으니.”


“그렇군, 그랬어. 언제부턴가 아내를 비롯한 마족의 마력이 약해졌길래, 혹시 마족이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 10년 넘게 이 마을에 떨어지는 사람이 없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군.”


“그쪽은 전쟁 도중에 이쪽으로 도망친 겁니까?”


“도망치진 않았어. 차원문을 통해 마계를 기습하던 도중 원소술사들에게 문제가 생겼지. 마법을 부실하게 배운 한 놈이 엉뚱한 곳으로 문을 열어버린 거야. 깨어났을 때는 황무지였어. 난 무인지대로 넘어온 거지.”


“그 다음은요?”


“날 구한 건 지금의 아내였어. 그녀 역시 전쟁 중에 차원문 사고로 인해 우연히 여기 떨어진 거고.”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지 않은 겁니까?”


“처음에는 찾는 건 고사하고, 아내를 죽여 버리려고 했지. 마족 따위에게 도움을 받느니 자살하는 게 낫다면서 말이야.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까, 우리끼리 싸워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 왜 천족과 마족이 천 년 동안 싸워야 하는 거지? 그냥 어렸을 때부터 마족은 적이고 사악한 존재라고 배웠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들도 생긴 것만 조금 다를 뿐 다 같은 인간이었던 거야.”


“그렇긴 합니다만, 마족은 오랫동안 천계의 광물을 탈취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천족도 마찬가지잖아. 양비론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지만......그냥 서로 조금씩만 도우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굳이 서로가 가진 걸 뺏기 위해 싸울 필요는 없었을 거야. 난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


“그래서 여기에 남기로 한 겁니까?”


“그래. 여긴 천족과 마족이 같이 살아가고 있어. 주민의 대부분도 혼혈이지. 파견대 녀석들이 이곳의 존재를 안다 하더라도, 이 근방은 폭풍으로 보호되고 있어.”


“폭풍으로 보호된다니, 그러면 이 마을에서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폭풍이 찾아들기 때문에 그때 나가거나 들어올 수는 있어. 하지만 자네, 정말 돌아갈 생각인가?”


“일단은 그래야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자네가 천계에서 뭘 하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왔다는 건 평범하게 농사나 짓고 살았다는 건 아닐 테지. 만약 군대에 있었다면, 상관들은 지금쯤 자네를 실종 처리했거나, 아니면 자네가 탈영했다고 간주하겠지. 범죄조직에 있었다면 말할 필요도 없고.”

마리우스는 그의 말에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포스마린과 함께 생귀니움 교주 그라쿠스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 이전에는 슈트를 입고 다른 세계를 탐험했다가 탈영병 신세가 되었다.


즉 그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포스마린이 자신을 위해 증언을 한다 한들 세계의 진실을 듣게 되면 창조의 원리에 따라 기억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마리우스는 너무 지쳤다. 아직 부러진 뼈는 완전히 낫지 않았으며, 더 이상 몸 안에서 마력이 솟아나지도 않았다.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생각보다 이 마을은 굉장히 넓어. 아마 넓이만 놓고 보면 엘리시온과 비슷한 수준일 걸? 자네가 살 땅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야. 기후도 적당해서 농사짓기도 편하지.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아.”


“그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정 떠나겠다면 말리진 않아. 하지만 우리가 돕지는 않을 거야. 만약 네가 이곳의 위치를 천족에게 알려준다면, 그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런 일을 도와야하겠나?”

마리우스는 다시 그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아, 오셨군요. 안 그래도 식사가 거의 다 됐어요.”


데우스와 루시아, 마리우스는 한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오늘 우디스 씨는 만나봤어요?”


“네. 마을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좋은 분이니까 앞으로도 필요한 게 있으면 가서 물어봐요.”


그녀가 고기와 야채를 마리우스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저기 혹시......루시아 씨는 여기서 태어난 겁니까?”


“네. 부모님은 둘 다 천마족 혼혈이세요.”


“지금은 근데 왜......”


“아,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죄송합니다. 괜한 말을 해서......”


“아니에요, 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는걸요.”


“사고요?”


“두 분 다 계승자셨는데, 마을을 정찰하다가 폭풍에 휘말렸어요. 그 때는 유독 폭풍이 심해서 마을 안까지 피해를 입었거든요.”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하하, 그래도 다들 도와줘서 작은 가게 하나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랬군요. 혹시 이 분은......?”


마리우스는 데우스를 쳐다보았다.


“아, 할아버지도 이 마을에 태어났다고 해요. 마을이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을 때부터 이곳에서 사셨죠. 그렇죠, 할아버지?”


“야채 맛없어. 안 먹어.”


“아이고, 그러시면 안 돼요. 야채도 먹어야 건강해진다고요. 혹시 먹기 불편하시면 잘라 드릴까요?”


“루시아 씨, 혹시 천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글쎄요, 전 여기가 더 익숙해서요. 가끔씩 어떤 곳인지 궁금하긴 해요. 엘리시온의 인구는 무려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던데, 멋있을 것 같긴 하거든요. 하지만......”


루시아는 약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천족이나 마족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니까, 우리처럼 서로 협력하는 걸 원치 않겠죠.”


“전쟁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습니다. 지금 천족의 계승자들이 마계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정말요?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녀는 무척이나 놀란 듯 했다.


“대신 다른 적이 나타났죠. 지성이 없는 괴수들. 천족은 지금 이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결국 또 싸우는 건가요.”


“어쩔 수 없죠. 괴수들과 교섭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마리우스 씨는 돌아갈 건가요?”


“그래야 하지만......제가 돌아가지 않길 바랍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사실 가게를 봐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거든요. 저 혼자서 운영하는 건 좀 어렵기도 하고......”


마리우스는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여기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설령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는 탈영병에 불과했다. 생귀니움 역시 마리우스를 적대했다. 어쩌면......그에게 가장 적합한 곳은 여기일지도 몰랐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 테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었다. 마리우스는 마음 한켠이 불편하면서도, 이렇게 평화롭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루시아가 운영하는 가게 안에서는 과자나 우유 같은 먹을 것을 팔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3시까지 해주면 돼요, 점심은 제가 가져올 테니까 같이 먹어요.”


“알겠습니다. 근데 루시아 씨는 그 시간동안 어디 가려는 겁니까?”


“그게 사실은......언덕 너머에서 새로운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해서요.”


“새로운 식물이요?”


“뭐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그 식물을 빻아서 차에 넣으면 아픈 게 사라진다고 해요. 아무튼 사람들이 다들 관심을 갖고 있어서 저도 한 번 가보려고요.”


“무슨 약초 같은 걸 발견했나 봅니다.”


“그런가 봐요. 그럼 부탁할게요!”


루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언덕 너머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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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지평선 너머 - 4 20.07.26 86 4 12쪽
41 지평선 너머 - 3 20.07.25 90 5 12쪽
40 지평선 너머 - 2 20.07.25 86 4 13쪽
» 지평선 너머 - 1 20.07.24 90 4 11쪽
38 외부인 - 12 20.07.23 87 4 13쪽
37 외부인 - 11 20.07.22 85 4 13쪽
36 외부인 - 10 20.07.21 86 4 13쪽
35 외부인 - 9 20.07.20 99 4 14쪽
34 외부인 - 8 +2 20.07.19 99 5 12쪽
33 외부인 - 7 +1 20.07.18 97 5 12쪽
32 외부인 - 6 +1 20.07.17 98 4 13쪽
31 외부인 - 5 +1 20.07.16 104 4 12쪽
30 외부인 - 4 +1 20.07.15 108 5 12쪽
29 외부인 - 3 +1 20.07.14 100 6 11쪽
28 외부인 - 2 +1 20.07.13 101 5 13쪽
27 외부인 - 1 +1 20.07.12 105 6 13쪽
26 아르카다 원정대 - 9 +1 20.07.11 106 6 12쪽
25 아르카다 원정대 - 8 +1 20.07.10 102 7 12쪽
24 아르카다 원정대 - 7 +1 20.07.09 113 5 13쪽
23 아르카다 원정대 - 6 +1 20.07.08 110 5 12쪽
22 아르카다 원정대 - 5 +1 20.07.07 115 6 12쪽
21 아르카다 원정대 - 4 +1 20.07.06 121 6 12쪽
20 아르카다 원정대 - 3 +1 20.07.05 115 6 13쪽
19 아르카다 원정대 - 2 +1 20.07.04 121 5 12쪽
18 아르카다 원정대 - 1 +1 20.07.03 120 5 13쪽
17 유령 사냥꾼 - 17 +1 20.07.02 129 7 13쪽
16 유령 사냥꾼 - 16 +1 20.07.01 126 6 12쪽
15 유령 사냥꾼 - 15 +1 20.06.30 108 6 12쪽
14 유령 사냥꾼 - 14 +1 20.06.29 11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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