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2,012
추천수 :
388
글자수 :
549,913

작성
20.07.17 21:20
조회
97
추천
4
글자
13쪽

외부인 - 6

DUMMY

마리우스가 보아하니 교주 그라쿠스는 하루 이틀 이 일을 꾸민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지만, 생귀니우스들이 애써주고 있으니 곧 모든 재료를 모을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음,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거지.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 둘은 최대한 많은 아이를 만들어야 해. 그 아이들은 칠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자유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이 되는 거지.”


교주가 마리우스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는 겁이 나 뒤로 물러섰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자유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멸망시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야 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신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신의 명령 한 마디면 곧바로 우리를 죽이려 달려들 거야.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자유를 논할 수는 없지.”


마리우스는 당황스러웠지만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 말대로 신이 정말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들을 자유롭다고 부를 수는 없었다.


“난 신이 만든 괴수를 이용해 신을 속일 거야. 괴수들이 이 세계를 파괴하면 할수록 인간들이 가진 마력은 공중으로 흩어지지. 그가 예상하지 못하는 건, 이 아티팩트는 공중에 흩어진 마력들을 모으는 기능이 있다는 거야. 그는 아마 인류의 멸망만을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인간들의 대다수가 죽었을 때, 마침내 세계는 새롭게 탄생할 거야. 그리고 그 세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신에게 간섭받지 않는 거지. 어때, 괜찮지 않아?”


“하지만 인류 멸망 계획에는 도저히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 말이 다 맞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구나.”


“절 죽일 거면 여기서 죽이십시오.”


“그럴 수는 없지. 넌 유일한 내 짝인걸. 다시 마계로 돌아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아.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참, 여기 온 기념으로 선물을 줄게.”


그녀는 비밀의 방 안에서 특이한 형태의 갑옷과 투구를 꺼냈다. 투구는 동글동글한 형태로 머리 전체를 감쌌으며, 갑옷은 얇은 듯하면서도 은근히 단단했다.


“이 갑옷을 장착하고 있으면 균열 안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나는 겁니까?”


“나도 몰라. 다만 괴수가 사는 세계에서 온 것은 확실해.”


그녀는 아공간 형성 가방에 그 갑옷을 넣었다. 그 갑옷은 천계에서도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기억해. 너의 주변에는 신도들이 꽤 많아. 협력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내 일을 방해한다면 나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지?”


마리우스는 경호원을 따라 사원의 출구로 갔다. 출구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차원문 다섯 개가 있었다.


“왼쪽에서 세 번째 차원문이 울프치니크로 나가는 문입니다.”


마리우스는 그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교주님께서 당신이 마음에 드신 듯합니다. 부디 그분의 청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이 돌을 땅 위에 놓고 마법을 주입하면 이곳과 통하는 차원문을 열 수 있습니다.”


경호원이 그에게 정교하게 꾸며진 돌 하나를 넘겨주었다.


마리우스는 그걸 잠시 쳐다보다가 코트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마리우스가 빠져나온 곳은 울프치니크 성의 구석진 곳이었다. 주변에는 쓰다 만 건축 자재들이 널려 있었다.


그가 숙소로 돌아오자 모두가 놀랐다.


“마리우스! 어디 갔다 온 거예요?”


루시우스가 물었다.


“그게......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가 이 근처에서 깨어나서......”


“대체 왜 그런 일이......아무튼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가이우스가 돌아왔습니다.”


마리우스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가이우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들은 어쩌면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존재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나머지 보급대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줄리아는 가이우스에게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냐며 캐물었지만, 가이우스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사라졌었다는 사실 자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정대장은 왜 가이우스와 마리우스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이 세상이 자신의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보급대원 실종 사건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고정 균열을 찾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리우스는 차마 자신이 생귀니움 교주로부터 균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투구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테오노스의 정신병과 보급대원 실종 사건으로 인해 원정대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괜히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정대는 균열을 발견하고, 마법진으로 그것들을 폭파시켰다. 이런 일이 한 달 넘게 지속되자, 마리우스는 어쩌면 천족 군대가 그 교주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게 되었다. 그녀의 계획은 괴수를 이용해 인류를 멸망시킨 뒤, 그로부터 나온 마력을 이용해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천족이 승리하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버렸다. 그는 아무리 교주의 말이 맞다 하더라도, 그녀를 따라 세계를 멸망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괴수들을 쭉 밀어버려 멸종시킨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안에서 생귀니우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은 작전이 없는 날이라, 마리우스는 줄리아, 루시우스와 성 안을 거닐고 있었다.


“중대장님 소식 들었어요? 어제 병문안 갔었는데, 요즘 꽤 많이 나아진 것 같던데요.”


줄리아가 말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러면 혹시 균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정신이 나아질수록 그 안에서 뭘 보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는 것 같대요, 의사들이.”


“결국 균열 조사는 불가능하다는 건가......”


“기억을 읽는 마법을 쓰면 안 되는 겁니까?”


마리우스가 물었다.


“저도 의사한테 들은 거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예 그 기억과 관련된 뇌세포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의사 말로는 너무 충격적이라 뇌가 감당을 못한다고......”


“아쉽군요. 중대장님의 기억이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음?”


“왜 그래요?”


“마리우스, 줄리아, 저거 봐요.”


루시우스가 가리킨 곳에는 하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축제 같은 건가 봐요.”


“그게 아닙니다, 줄리아. 저건 생귀니움입니다. 괴수를 섬기는 놈들입니다.”


“생귀니움이라면......작전 명령서에 써져 있는 그 이교도 집단 말이에요?”


“네, 한동안 활동이 뜸에서 어디 있었나 했더니, 이런 곳에 몰려들다니......”


마리우스는 그 이교도들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머리를 한 생귀니우스 한 명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 돌아다니다니, 용기가 굉장하군요.”


“오해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평화적인 포교를 할 뿐입니다.”


“오해는 무슨, 괴수들을 풀어놓고도 그런 뻔뻔한 소리를 할 수 있나?”


그때 루시우스가 다가왔다.


“당신은 또 뭡니까?”


“이 남자의 동료입니다. 당신들, 정말로 생귀니우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당신들은 천족의 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범죄 행위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싸우러 온 게 아니라니까요.”


“말이 안 통하는군요. 계승자들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아이 참, 그러면 곤란하지.”


대머리 생귀니우스는 루시우스에게 둔화 마법을 걸었다. 루시우스는 전력을 다해 뛰었지만, 그 속도는 걷는 것보다 더 느렸다.


“지금 무슨 짓이에요?”


어느 틈엔가 줄리아도 다가왔다.


“아가씨, 저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니까요.”


“당장 풀어주지 못해요?”


“하, 이거 좀 곤란한데......”


그때 운이 좋게도 원정대에 속한 계승자 하나가 그들을 발견했다.


“어이, 너희들 뭐하는 거야? 한 쪽은 보아하니 보급대원들이고, 얘네들은......생귀니우스!”


그는 곧바로 칼을 꺼내들었다.


“어이쿠, 이러시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생귀니우스는 곧바로 둔화 마법을 풀었다. 루시우스는 차마 덤벼들지는 못하고 그 마법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포교 활동을 하는 것......”


계승자의 검이 대머리 신도의 팔을 잘랐다.


“으아아아악!”


“너희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천계에서도 깽판치다가 걸렸다며? 말은 필요 없다. 성에서 썩 꺼지거나, 아니면 여기서 다 죽거나.”


“으......이 망할 새끼가......!”


그 뒤에 있던 신도들도 저마다 무기를 소환했다.


“오, 떼로 덤비시겠다? 근데 어쩌나, 숫자는 우리가 훨씬 더 많은데.”


이미 하늘에서는 수많은 계승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삽시간에 약 10명 정도의 생귀니우스들을 포위했다. 5중대장이 고통스러워하는 대머리에게 창을 겨누었다.


“너희 모두를 긴급 체포하겠다. 적진 한복판에 이렇게 나타나줄 줄이야.”


“우리를......체포하시겠다? 하하하하......”


마리우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백 명이 넘는 마족들이 나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적개심은 모두 천족을 향해 있었다.


“어이! 전부 집으로 들어가라!”


5중대장이 외쳤지만, 쉽사리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하하하......어때? 모두가 너희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대머리 생귀니우스는 또다시 으스댔다. 5중대장은 창으로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대머리 신도는 다시 한 번 고통에 울부짖었다.


“5중대장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관이 말했다.


“일단 이들을 전부 원정대 본부로 압송한다. 그런 다음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자고.”


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이미 생귀니움은 울프치니크 전체에 폭넓게 퍼져 있었다. 처음 원정대는 이 종교가 마계에 퍼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마족이 멸망한 원인 중 하나가 괴수 때문인데, 어떻게 그 괴수를 추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귀니우스들은 매우 영리했다. 그들은 절망과 패배감에 빠진 마족들에게 쾌락을 빌미로 접근했다. 그들은 종종 마족 인간들에게 마약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빌어먹을, 대체 점령군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원정대장은 노발대발했다. 점령군 사령관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워낙에 이것들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제1 점령군 사령관이 말했다.


“그러면 주민을 심문하든지 해서 추적해야 할 거 아니야?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하고 있던 거야?”


“송구하지만 대장님, 그들이 워낙 은밀하게 움직입니다. 마족은 천족 점령군보다는 같은 종족인 마족 생귀니우스를 더 믿고 따릅니다.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제2 점령군 사령관은 침착하게 자신들의 실책을 변명했다. 원정대장은 어느 정도 누그러지는 듯 했으나 여전히 화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 이교도들이 활개치게 놔둔 것은 분명 너희들의 실책이다. 한동안 점령군은 울프치니크 성 근처에 숨어 있는 생귀니우스를 잡아내는 데 주력하도록 해라.”


그 이후로 본격적인 이교도 색출이 시작되었다. 점령군은 기존의 유화책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체포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 근처의 마족들을 죽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약 300여명의 생귀니우스를 잡아낼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마족 내의 불만이 매우 커졌다.


생귀니움은 생각보다 마족 내에 폭넓게 퍼져 있었다. 많은 마족들은 겉으로는 자신이 그런 쾌락주의 컬트를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밤이 되면 집에서 몰래 빠져 나와 마약을 마신 뒤 이성 신도를 만나 관계를 맺기도 했다. 수년 동안 정체된 경제와 은연중에 존재하는 마족에 대한 차별은 그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오직 쾌락만을 강조하는 생귀니움은 마족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천족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마족 교육에 힘을 썼다. 점령군은 수많은 마족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생귀니우스는 마족을 멸망시킨 괴수를 섬기는 자들이며,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족 점령군에게 협조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마족 입장에서는 천 년 넘게 다른 종족으로서 살아온 천족에게 충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수의 마족들은 겉으로는 점령군의 말을 따르면서, 여전히 뒤에서는 마약을 마시고 생귀니움 예배에 참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쟁 이후의 판타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지평선 너머 - 5 20.07.28 87 3 13쪽
42 지평선 너머 - 4 20.07.26 86 4 12쪽
41 지평선 너머 - 3 20.07.25 90 5 12쪽
40 지평선 너머 - 2 20.07.25 86 4 13쪽
39 지평선 너머 - 1 20.07.24 89 4 11쪽
38 외부인 - 12 20.07.23 87 4 13쪽
37 외부인 - 11 20.07.22 84 4 13쪽
36 외부인 - 10 20.07.21 85 4 13쪽
35 외부인 - 9 20.07.20 99 4 14쪽
34 외부인 - 8 +2 20.07.19 99 5 12쪽
33 외부인 - 7 +1 20.07.18 96 5 12쪽
» 외부인 - 6 +1 20.07.17 98 4 13쪽
31 외부인 - 5 +1 20.07.16 104 4 12쪽
30 외부인 - 4 +1 20.07.15 107 5 12쪽
29 외부인 - 3 +1 20.07.14 100 6 11쪽
28 외부인 - 2 +1 20.07.13 101 5 13쪽
27 외부인 - 1 +1 20.07.12 105 6 13쪽
26 아르카다 원정대 - 9 +1 20.07.11 105 6 12쪽
25 아르카다 원정대 - 8 +1 20.07.10 101 7 12쪽
24 아르카다 원정대 - 7 +1 20.07.09 113 5 13쪽
23 아르카다 원정대 - 6 +1 20.07.08 109 5 12쪽
22 아르카다 원정대 - 5 +1 20.07.07 114 6 12쪽
21 아르카다 원정대 - 4 +1 20.07.06 120 6 12쪽
20 아르카다 원정대 - 3 +1 20.07.05 115 6 13쪽
19 아르카다 원정대 - 2 +1 20.07.04 121 5 12쪽
18 아르카다 원정대 - 1 +1 20.07.03 119 5 13쪽
17 유령 사냥꾼 - 17 +1 20.07.02 129 7 13쪽
16 유령 사냥꾼 - 16 +1 20.07.01 126 6 12쪽
15 유령 사냥꾼 - 15 +1 20.06.30 108 6 12쪽
14 유령 사냥꾼 - 14 +1 20.06.29 119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