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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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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연재수 :
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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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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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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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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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르카다 원정대 - 2

DUMMY

“그게 무슨 소리냐?”


“유령 사냥꾼은 안할 겁니다. 동생한테 하라고 해요. 걔는 그걸 좋아하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당연히 가문의 장남이 가업을 이어야지.”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반드시 부모의 일을 이어야 한다는 법이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요.”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령 사냥은 명예로운 일이다. 돈도 꽤 많이 벌 수 있지. 이 마을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부유하다는 걸 모르는 거냐? 아무래도 오랫동안 편하게 살아서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나 본데, 아이넬의 대부분 주민들은 해안가의 거대거북을 잡아 그것의 고기와 등껍질을 팔아서 먹고 살고 있다. 유령 사냥꾼에 비해 힘은 덜 들지만, 버는 돈은 훨씬 적지. 넌 가문을 등지고 쉬운 길을 가겠다는 거냐?”


“아니요, 대체 제가 언제 거북을 잡는다고 했습니까?”


둘의 대화가 점점 격해지자 보고 있던 루첼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장사꾼보다는 관료가 되는 게 더 낫다구요.”


“장남이면 당연히 가업을 물려받아야지. 관료는 클라우디아가 하면 돼.”


둘은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계속 싸워댔다. 마리우스는 여기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려 했다. 더 이상 부모의 말에 휘둘리며 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 둘 다 하기 싫습니다. 물론 두 분이 저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부모님 말씀이 더 현실성이 없습니다.”


부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리우스를 쳐다보았다.


“유령의 정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령의 숫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유령의 왕이 죽은 이후로 더 이상 보충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는 다들 그러려니 했지만, 이젠 유령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소나 돼지처럼 키워야 할 판입니다.”


“암흑 군주가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의 영역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유령들이 득실대고 있다. 넌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


“전 그의 영역 안에 갔습니다. 부유섬 위에 있는 그의 집 안에도 들어가 봤죠.”


“허튼 소리 하지 마라! 그곳은 강력한 계승자들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곳이야.”


“최소한 직접 가보기라도 하고 그런 말씀을 하십시오. 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겨놓은 마법진 역시 그 힘이 다했습니다. 누군가가 마력을 주입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유령은 생겨나지 않을 겁니다.”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몸을 아끼지 않고 사냥에 열중한다고 생각해 안타깝게 여겼더니, 이제 보니 쓸데없는 망상에 시간을 날리고 있었을 줄이야.”


“여보, 그만해요. 얼마 전에 야생동물에게 다치고 왔다잖아요. 많이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힘든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의무가 있는 법이야. 나라고 뭐 매일 매일이 즐거운 줄 알아? 약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니깐 묵묵히 하는 거지.”


“그 해야 하는 일의 기준이 대체 뭡니까? 엘리시온 법전에 아피우스 마리우스는 무조건 사냥을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기라도 한답니까? 그럴 바에는 아예 법을 직접 만드시지.”


“마리우스, 너 아버지께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머니도 그만 하십시오. 전 이미 사냥꾼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관료가 되라는 거잖니. 지금 세상에서 가장 성공하기 좋은 방법은 테디아 관청 안에서 일하는 거야.”


루첼이 말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면 갈수록 관료가 되는 게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되는 것도 힘든데, 시민들도 무능한 공무원들이 세금을 축낸다고 욕하고 있으니, 앞으로 관료들에 대한 대우는 더 안 좋아질 겁니다.”


“그럼 어쩌자는 거니? 성공할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아?”


“원정대에 들어갈 겁니다. 보급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안 돼! 절대로 안 된다. 네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아.”


아그리파가 소리를 질렀다.


“원정대는 아버지께서 걱정하는 거랑은 다릅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는 가지도 않는다고요. 싸우는 건 계승자들이 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아?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후방이란 건 없어. 사방에서 악마의 기운이 솟아난단 말이다!”


“그 마족들의 대부분은 죽었습니다. 악신의 계승자들과 그 밑의 하찮은 마족들까지, 이제 천족에게 죽었거나 지배당하는 입장이고, 살아남은 몇몇 마족들은 더 이상 저희의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원정대는 안 된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원정대에 지원을 안 하는 줄 알아?”


부모의 태도는 아까보다는 한결 누그러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들을 원정대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대신 나섰다.


“원정대는 생각보다 돈을 벌기가 힘들어. 보수는 많지만 장비들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고, 만에 하나 본인이 다치게 되면 치료비로 큰돈이 들 테니까. 엄마랑 아빠가 아들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하지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편하게 살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지. 넌 이제 성인이잖아? 이제 슬슬 결혼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못하는 원정대에 가는 건 허락할 수 없어. 엄마 말 들어라. 응?”


마리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 이런 식으로 부모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같은 일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시대에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는 루첼의 말대로 이제 막 성인인 몸이었다. 그에게는 계승자들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도, 어마어마한 부도 없었다. 만약 원정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다면, 더 이상 그에게 남은 길은 없었다.


바이젤은 죽으면서 그에게 어떠한 길도 남겨두지 않았다. 모든 것은 마리우스의 행동에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모의 말에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마리우스는 묵묵히 유령을 사냥해 그것의 기운을 마법 상자 안에 가두었다. 아그리파가 괜찮은 활 하나를 사주었지만, 마리우스는 더 이상 활을 쓰지 않았다. 그는 유령 사냥을 마법 훈련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애초에 유령을 만드는 것이 마리우스 본인이었던 만큼,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유령을 잡을 수 있었다.


아그리파는 아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유령이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여동생 클라우디아는 오빠보다도 훨씬 더 유령 사냥에 뛰어들기를 원했지만, 정작 그녀의 부모님은 딸이 관료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빠만큼의 패기조차도 없었던지라, 결국 어머니의 지시대로 회계 공부를 이어갔다.


어느새 원정대 지원 마감일이 다가왔다. 마리우스는 원정대의 대원이 생각보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천족 전체의 인구는 대략 1억 명 정도. 그 중에 1,000명을 뽑는 것이다. 절반은 계승자이니 논외로 치면,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 원정대에 들어갈 500명이 없는 것이었다.


포고문에는 대다수의 계승자가 마계 점령지를 관리하는 일에 차출되면서, 원정대는 인간 지원자를 받게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정부는 원정대에 지원하면 이후 계승 시험에서 상당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을 기피했다. 원정대는 본래 상당히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던 만큼, 이번 역시 마냥 편하게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의 모험심과 책임감이 이 정도로 없을 줄은 몰랐다.


“자, 다 합해서 금화 네 닢이야.”


유령의 정수를 사들이는 상인이 말했다.


“요즘 들어서 정수의 질이 묘하게 떨어진 것 같은데, 암흑 군주가 죽었다는 게 정말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어쩌면 이 사냥도 오래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긴, 천마전쟁이 끝났으니 계승자들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겠지. 뭐 나야 질이 좀 떨어져도 좋으니 정수만 계속 받았으면 좋겠는데.”


“참, 저기 혹시......”


마리우스는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망설여졌다.


“왜?”


“아르카다 원정대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까?”


“있지, 왜?”


“거기 들어가는 건 어떨 것 같습니까?”


“왜, 설마 지원하려고?”


마리우스가 대답이 없자 그 상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 같은 녀석을 살면서 10명 정도 봤거든? 그 중 9명은 전부 죽었어.”


“나머지 1명은?”


“아들아!”


상인 뒤쪽에 있던 방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한쪽 다리가 없었고, 얼굴은 어딘가 많이 불편해 보였다.


“아...... 아빠...... 배고파...... 헤헤헤......”


“이래뵈도 한때는 테디아 최고의 천재이자 차기 계승자 각성 1순위였거든. 근데 저렇게 된 건 여신님도 치료를 못 한대. 개 같은 년.”


마리우스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애초에 500명 정도는 계승자로 채워 넣을 수 있는데도, 왜 굳이 사람들을 집어넣는지 알아? 매번 핑계는 바뀌어. 계승자들은 다 일이 있다거나, 계승자들은 전투에 적합해 보급 임무를 맡을 사람들이 따로 필요하다는 식이지. 다 헛소리야. 계승자들이 힘도 훨씬 세고 마법도 잘 쓰는데, 뭐 하러 인간들을 채용하겠어?”


“그러면, 대체 뭐 때문에......”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포고문에도 나온 가산점. 어찌되었든 거기서 살아남아서 임무를 잘 수행하면 유능하다는 증거니까. 두 번째는 일종의 선전용이지. 여기 사는 많은 사람들, 겉으로 내색은 잘 안하지만 계승자에게 지배당하는 걸 불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에게 ‘우린 인간들과 함께 싸운다.’라고 홍보하는 거지.”


“죽을 위험이 심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선전이 중요해도 위험한 일에 사람들을 집어넣을 리가......”


“그렇지, 그게 상식이지. 근데 말이야, 이 세상은 절대 상식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앞으로 살면서 많이 느낄 거다. 이미 사람들도 다 눈치 까고 아무도 지원하지를 않잖아. 간혹 가다가 자네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마리우스는 기분만 잡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부모의 말이 맞았던 걸까? 바이젤과의 모험은 그저 환상일 뿐이고, 그는 그저 사냥이나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어차피 이제 유령을 만들어내서 사냥하는 입장이니, 적당히 부모를 속이면서 유령의 정수를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뒤 클라우디아가 기숙 학교에서 돌아오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었다.


“마리우스, 좀 더 많이 먹으렴. 그렇게 먹어서는 힘을 못 쓰잖니.”


루첼이 말했다.


“네.”


“클라우디아, 요즘 공부는 잘 되가니?”


“네, 잘 되가는 것 같아요.”


“다행이다. 둘 다 요즘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에 드네.”


아그리파의 기분 역시 그때에 비해서는 많이 풀린 것 같았다.


“마리우스, 내가 사준 활은 어떠냐?”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역시 내가 물건 보는 안목은 있지.”


“요즘 마을 처녀 몇몇이 마리우스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던데요.”


“호오, 역시 이 몸에 흐르는 인기인의 피는 어쩌지 못하는 건가.”


“한 번 만남을 주선해 줄까요?”


“에이, 아직 결혼하기는 일러. 그리고 상대는 본인이 알아서 고르면 되는 거지.”


“무슨 말씀을, 20살 되면 결혼 준비를 해야죠. 옆집 애도 이미 상대를 골랐다는데, 그리고 요즘은 결혼하는 데 있어 부모 잘 둔 것도 능력이에요.”


“그럼 나중에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일단 밥부터 먹자.”


둘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화기애애했다. 마리우스는 애써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우디아는 이런 오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종일관 묵묵히 밥만 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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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지평선 너머 - 3 20.07.25 90 5 12쪽
40 지평선 너머 - 2 20.07.25 85 4 13쪽
39 지평선 너머 - 1 20.07.24 89 4 11쪽
38 외부인 - 12 20.07.23 87 4 13쪽
37 외부인 - 11 20.07.22 84 4 13쪽
36 외부인 - 10 20.07.21 85 4 13쪽
35 외부인 - 9 20.07.20 99 4 14쪽
34 외부인 - 8 +2 20.07.19 99 5 12쪽
33 외부인 - 7 +1 20.07.18 96 5 12쪽
32 외부인 - 6 +1 20.07.17 97 4 13쪽
31 외부인 - 5 +1 20.07.16 104 4 12쪽
30 외부인 - 4 +1 20.07.15 107 5 12쪽
29 외부인 - 3 +1 20.07.14 100 6 11쪽
28 외부인 - 2 +1 20.07.13 101 5 13쪽
27 외부인 - 1 +1 20.07.12 105 6 13쪽
26 아르카다 원정대 - 9 +1 20.07.11 105 6 12쪽
25 아르카다 원정대 - 8 +1 20.07.10 101 7 12쪽
24 아르카다 원정대 - 7 +1 20.07.09 113 5 13쪽
23 아르카다 원정대 - 6 +1 20.07.08 109 5 12쪽
22 아르카다 원정대 - 5 +1 20.07.07 114 6 12쪽
21 아르카다 원정대 - 4 +1 20.07.06 120 6 12쪽
20 아르카다 원정대 - 3 +1 20.07.05 115 6 13쪽
» 아르카다 원정대 - 2 +1 20.07.04 121 5 12쪽
18 아르카다 원정대 - 1 +1 20.07.03 119 5 13쪽
17 유령 사냥꾼 - 17 +1 20.07.02 129 7 13쪽
16 유령 사냥꾼 - 16 +1 20.07.01 126 6 12쪽
15 유령 사냥꾼 - 15 +1 20.06.30 107 6 12쪽
14 유령 사냥꾼 - 14 +1 20.06.29 11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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