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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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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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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9
글자수 :
281,105

작성
20.02.0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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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13. 지나가던 선비(2)

DUMMY

라이센과 아이라는 드디어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 도착했다. 구역의 한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게르. 분명 그 안에서 마력이 미칠 듯 샘솟고 있었다.


입구에는 커다란 체구의 오크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타는 것 같은 붉은 머리, 바닥에 단단히 박힌 도끼창은 그의 키보다도 한참은 더 컸다.


살짝 놀란 오크가 도끼창을 뽑아들었다.


“웬 놈들이냐?”

“잠깐 볼일이 있어서.”


라이센은 그만 반사적으로 오크어를 내뱉고 말았다. 깜짝 놀란 아이라가 그를 바라봤다. 붉은 머리의 오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인간이 오크의 말을 하느냐?”

“요 앞에도 오크어를 쓰는 인간들은 많던데.”

“오크의 말을 하는 인간은 없다. 오직 오크만이 오크의 말을 한다. 네놈은 누구냐?”


붉은 머리 오크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피 묻은 아이라의 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내 형제들을 해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내 이름은 우르타이. 네놈은 누구냐? 이름을 말하라!”


형제? 오크는 야만인을 형제라 생각하는 건가.


우르타이가 도끼창을 내밀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놀랍게도 그의 몸에서 마력이 치솟았다. 눈자위가 순식간에 새카맣게 물들었다.


“이놈도 자그니스의 마력을 받은 거요?”

“아니야. 저놈 스스로 마력을 뿜고 있어.”

“자그니스 말고도 마력을 쓰는 자가 있었군. 조심하시오.”


순간 붉은 머리의 오크가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성력을 끄집어낸 아이라가 검으로 그의 도끼창을 받아냈다.


투웅.


도끼창을 받아낸 성검이 묵직한 울림소리를 냈다. 아이라의 손목이 파르르 떨리며 뒤로 밀렸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힘이었다.


힘에 겨운 듯 도끼창을 흘린 아이라가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우르타이가 마력을 뿜어내며 다시 기세를 올렸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이름을 말하라!”


싸우는데 이름은 왜 자꾸 물어보는 거냐.


“여자의 이름은 아이라, 남자의 이름은··· 나도 잘 모르겠네.”


게르 안에서 울림이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은발의 여기사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아이라가 외쳤다.


“자그니스!”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아이라, 그리고 활잡이 너.”


자그니스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고 눈은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이 계속 게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라이센은 검을 치켜드는 아이라를 제지했다. 그가 자그니스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뭐 하나만 묻겠소. 대체 아이들은 왜 납치하려 했던 거요?”

“좋은 질문이군. 그건 오크의 전통이야. 내가 오기 전부터도 오크는 인간의 아이를 데려갔지. 나는 그걸 잠시 도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 전통이 뭐냐고 묻는 것이오.”


라이센은 게르 곳곳에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면서부터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오크는 언제나 전사가 부족하니까.”

“뭐요? 그게 무슨 뜻이오?”

“오크는 인간의 아이를 데려가 오크의 전사로 키워. 오크가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인간들 스스로가 지어낸 얘기일 뿐이야.”


라이센은 납치된 아이들이 죄다 남자아이였던 사실을 기억했다. 살짝 흥분한 아이라가 나섰다.


“그런다고 인간이 오크가 될 순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십시오.”

“아이라, 아이들은 뭐든지 받아들이는 게 빠른 거야. 오크의 품에 안긴 아이가 진짜 오크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 늦어도 한 해를 넘기지 않아.”

“그런 거짓말을···”


라이센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야만인, 이곳의 인간들이 배신자라 부르는 자들, 그자들은 결국···


“너희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납치된 아이들이야.”



“···!”

“그것도 대부분 카이세린 출신의 아이들이지.”


라이센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설마 사실일까 생각했었다. 아이라 또한 말문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간신히 입술을 뗐다.


“그 말을 저더러 믿으란 말입니까?”

“그럼 야만인들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

“납치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싸우는 법만을 배워. 마치 오크들처럼. 그러면서 오크의 말을 배우고, 오크의 옷을 입고, 오크의 음식을 먹지. 그리고 오크의 생각을 자기 것처럼 받아들여.”

“···”

“그리고는 결국 피부가 하얀 오크가 되지.”


자그니스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하얀 오크는 오크와 함께 인간의 마을을 공격해. 자신을 낳아 준 진짜 부모를 죽이고, 피를 나눴을지 모르는 형제들을 도륙하는 거지. 안타깝게도 그 애들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을 부수고 또 약탈하는 게 살아가는 목표가 되는 거야.”


아이라가 분노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자그니스가 그런 그녀를 조롱하듯 말을 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카이세린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라. 그들은 하얀 오크를 진짜 오크보다 더 증오해. 특히 아이를 잃은 부모들. 그들은 하얀 오크를 하나라도 더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지. 그 마르둑처럼.”

“그걸 오히려 도왔단 말입니까?”


자그니스는 아이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아이 잃은 부모가 어떻게든 죽이려는 자가 사실 자기 아이일 수도 있어. 서로가 부모 자식인지 모른 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안달을 한다··· 어때? 엄청난 비극인가?”


라이센은 조금 전 마르둑이 상대했던 야만인 드란데를 떠올렸다. 그를 죽이고 왠지 좋지 못한 표정을 지었던 마르둑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걸 저렇게 조롱하듯 떠들어 대다니. 과연 누가 저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주먹을 부르르 떨던 아이라가 말했다.


“왜 그걸 돕는진 몰라도 아이들은 이미 구출했습니다. 제가 그 애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겁니다.”


그 말에 자그니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하지만 이미 늦은 애들이 많을 거야. 머리가 굳은 애들이 꽤 많았거든.”

“그 애들은 원래 인간입니다.”

“그 애들은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어렸을 때 한번 박힌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법이야. 아이라, 지금의 너처럼.”

“···”


자그니스는 아이라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이라가 그런 그녀를 노려봤다.


“당신은 진실을 알면서도 왜 그걸 돕는 겁니까?”

“진실?”


자그니스는 코웃음을 쳤다.


“하얀 오크에게 진실은 인간은 증오의 대상이며 죽여야 할 상대라는 것뿐이야. 그들은 인간이 아니야. 오크로 다시 태어난 거지.”

“오크는 인간을 죽이고 약탈합니다. 대체 그들의 편을 드는 이유가 뭡니까?”

“그럼 인간은 오크를 죽이지 않았나? 인간은 오크의 것을 뺏으려 들지 않았나? 오크를 초원으로 내몬 것은 오히려 인간들이 아니었나?”


아이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그니스가 말을 이었다.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할 뿐이야. 그리고 이게 바로 자연의 법칙인 거야.”

“궤변 늘어놓지 마십시오!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까? 저는 교단의 이름으로 당신을 처단하러 왔습니다.”

“그래, 아이라. 너를 설득하는 건 진작에 포기했어.”


스르릉.


자그니스가 조용히 검을 뽑아들었다. 우르타이도 도끼창을 거머쥐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라이센은 그대로 달려들려는 아이라를 제지하고는 빠르게 말했다.


“자그니스는 내가 맡겠소. 저 붉은 머리 오크를 처치한 후 나를 도와주시오.”

“뭐라고? 저자를 처단하는 건 내 임무야. 당신의 의뢰는 이미 끝났어. 당신이 이 길로 떠난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 저 여자를 이길 것 같지가 않소.”

“···”


자그니스는 고요했다. 반면 우르타이는 도끼창을 빙빙 돌리며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슬쩍 그 모습을 훑은 라이센이 말했다.


“아까 했던 것처럼 그 성력이란 것. 그거나 다시 한 번 불어넣어 주시오.”

“···”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시선을 우르타이에게로 돌렸다. 라이센이 시위를 얹으며 옆으로 떨어지자 그녀가 말했다.


“조심해. 교단 내에서 검술로 자그니스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어. 거기에 저런 마력까지 손에 넣었으니 지금은 더 상대하기 힘들 거야.”

“나는 검술로 상대하려는 게 아니니 괜찮소.”




***




라이센은 거리를 벌리며 자그니스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하피 봉우리의 사내를 떠올렸다. 그자도 저 자그니스처럼 인간의 아이들을 이용해 뭔가를 하려고 했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도 비슷했다. 하나는 인간과 하피의 혼혈을 만들어 내려 했고, 하나는 인간을 오크로 바꾸는 것을 도왔다.


뭔가 비슷한 꿍꿍이속이 있는 건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라이센은 관심이 없었다. 인간이 옳은지, 오크가 옳은지 따위도 관심이 없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이용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라이센이 자그니스를 처치해야 한다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가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곧이어 아이라가 빠르게 기도문을 외웠다.


“땅속에서 하늘 위까지, 하늘 위에서 땅 아래까지 전능하신 라크슈의 불과 빛이 서로 통하노니, 하늘 위 베헤슈트의 백성이 될 자들에게 당신의 축복을 아끼지 마소서!”


그녀의 몸에서 성력이 치솟았다. 라이센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우르타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아아아-


우르타이도 마력을 끌어 올리며 도끼창을 앞으로 힘차게 내질렀다. 검과 창이 맞부딪히는 순간 자그니스가 아이라의 옆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일단 적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판단으로 보였다.


라이센의 살이 자그니스를 향해 날았다.


순간, 기척을 느낀 자그니스가 뒤를 돌아 마력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빠직-


하지만 마력의 장막은 라이센의 살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전혀 저지하지 못했다. 마치 살이 지나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는 황급히 검을 휘둘러 그것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채앵,채앵,채앵.


그녀의 시야에 라이센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우웅.


라이센은 엄청난 성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분명 아이라가 기도를 통해 성력을 불어넣어 줬을 터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뿜어내는 성력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아이라가 불어넣은 성력을 받아 증폭시켰단 말인가?’


그리고 그가 증폭시키고 있는 성력은 뭔가 미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밝고 따뜻한 기운보다는 을씨년스럽고 오싹한 느낌이 더 강했다.


마치 성력이 그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다른 기운을 촉발해 끄집어내는 것만 같았다.


성력과 마력을 둘 다 다룰 줄 아는 자그니스는 알 수 있었다. 성력과 마력은 느낌이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미묘하게 느껴지는 공통의 느낌이 있었다.


을씨년스럽고 오싹한 느낌.


성력이나 마력이나 상관없이 그 느낌을 공통적으로 가진다. 그리고 라이센이 뿜어내는 기운은 온전한 그것에 더 가까웠다.


자그니스가 물었다.


“활잡이. 너 정체가 대체 뭐지?”

“지나가던 선비요.”

“선··· 비? 그건 또 뭔데?”

“모르면 됐고.”



전생의 라이센은 이야기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 대부분은 지나가던 선비였다. 이무기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까치를 구해준 것도, 천 년 묵은 구미호를 물리친 것도,




모두 지나가던 선비였다.


작가의말

연중하기 전 마지막에 썼던 글 올립니다.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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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3. 지나가던 선비(2) +16 20.02.04 1,603 64 12쪽
48 Ep13. 지나가던 선비(1) +7 20.01.31 2,357 91 12쪽
47 Ep12. 야만전사(3) +8 20.01.30 2,646 95 12쪽
46 Ep12. 야만전사(2) +7 20.01.29 2,908 100 12쪽
45 Ep12. 야만전사(1) +12 20.01.28 3,300 120 13쪽
44 Ep11. 배신자(4) +9 20.01.27 3,449 122 13쪽
43 Ep11. 배신자(3) +7 20.01.25 3,782 128 12쪽
42 Ep11. 배신자(2) +17 20.01.24 3,846 118 15쪽
41 Ep11. 배신자(1) +6 20.01.23 4,139 121 12쪽
40 Ep10. 명예 혹은 실리(6) +6 20.01.22 4,344 137 13쪽
39 Ep10. 명예 혹은 실리(5) +7 20.01.21 4,476 125 12쪽
38 Ep10. 명예 혹은 실리(4)(수정) +12 20.01.20 4,595 129 13쪽
37 Ep10. 명예 혹은 실리(3) +24 20.01.19 4,827 137 13쪽
36 Ep10. 명예 혹은 실리(2) +17 20.01.17 5,227 144 13쪽
35 Ep10. 명예 혹은 실리(1) +16 20.01.16 5,440 136 13쪽
34 Ep9. 산맥을 뚫고(3) +17 20.01.15 5,617 134 12쪽
33 Ep9. 산맥을 뚫고(2) +8 20.01.15 5,704 142 13쪽
32 Ep9. 산맥을 뚫고(1) +10 20.01.14 6,086 146 14쪽
31 Ep8. 잊혀진 옛 신의 집(6) +17 20.01.13 6,085 154 13쪽
30 Ep8. 잊혀진 옛 신의 집(5) +12 20.01.12 6,189 149 12쪽
29 Ep8. 잊혀진 옛 신의 집(4) +11 20.01.12 6,170 137 14쪽
28 Ep8. 잊혀진 옛 신의 집(3) +6 20.01.11 6,139 139 12쪽
27 Ep8. 잊혀진 옛 신의 집(2) +6 20.01.10 6,185 137 12쪽
26 Ep8. 잊혀진 옛 신의 집(1) +10 20.01.09 6,470 146 13쪽
25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3) +12 20.01.08 6,505 151 13쪽
24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2) +8 20.01.07 6,828 158 14쪽
23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1) +13 20.01.06 6,970 174 12쪽
22 Ep6. 짐승같은(5) +13 20.01.05 6,920 16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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