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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326,726
추천수 :
7,489
글자수 :
281,105

작성
20.01.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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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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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글자
12쪽

Ep12. 야만전사(3)

DUMMY

“다 죽여주마!!!”


마르둑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야만전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 침입자들, 미친 듯이 달려드는 드란데. 야만전사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데나텤 마칵!”


그중 가장 지위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야만전사가 소리치며 다그쳤다. 그제야 그들은 몸을 낮추며 공격자세를 취했다.


정신을 다잡은 야만인들은 혼자서 앞으로 튀어나온 마르둑을 둘러쌌다. 하지만 마르둑은 그 순간을 오히려 기다렸던 듯했다.


스각.

스가각.


표범처럼 날렵한 드란데가 순식간에 사방을 헤집어 놓았다. 평범한 속도와 평범한 힘을 가진 야만인들은 그를 도무지 제압할 수가 없었다.


“단장님을 도와라!”


마르둑의 뒤를 이어 기사단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고요했던 바룬우르트가 삽시간에 기사들의 기합소리와 야만인들의 비명으로 채워져 갔다.


기사단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쓰러지는 것은 모두 야만인들뿐이었다.


하얀 게르에 붉은색 선혈이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렸다. 여기저기에 잘린 팔다리가 나뒹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순식간에 코를 찔렀다.


“커헉.”


지휘를 맡았던 야만전사는 마르둑에게 목이 잘렸다. 그는 채 열 합도 겨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최후를 맞았다.


확실히 이곳을 지키는 야만인들의 전투능력은 떨어졌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몸을 가진 자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전투력이 좋고 사지가 멀쩡한 자들은 죄다 카이세린으로 뽑혀간 모양이었다.


‘도울 필요도 없겠군.’


마르둑과 기사단은 야만인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고 있었다.



누가 야만인이자 학살자이며, 누가 보금자리를 지킬 뿐인 선량한 인간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라이센, 저쪽에.”


아이라가 야만인들의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야만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가 조금 많았다.


‘이제 도와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한 라이센이 시위를 당기며 활을 겨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라이센은 차마 시위를 놓을 수 없었다.


‘너무 어리다.’


앳된 얼굴의 야만 전사들이었다. 얼굴에 붉은 칠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들은 분명 나이 어린 소년들이었다.


‘기껏해야 열다섯에서 열일곱 사이 정도는 되려나.’


망설이기는 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오크처럼 사는 자들이라고는 하나 겉모습은 엄연한 인간이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그들에게 그녀가 검을 뽑기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와라, 이놈들! 아주 작살을 내주마!”


기사단과 맞붙었던 야만인들은 이미 모두 쓰러지고 난 뒤였다. 마르둑은 새롭게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향해 검을 꼬나쥘 뿐이었다.


라이센이 마르둑에게 말했다.


“죽이기엔 너무 어리오.”

“뭣이오?”


마르둑이 달려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 그의 옆에 늘어선 기사들도 멈칫하긴 마찬가지였다. 잠깐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리던 마르둑이 외쳤다.


“상관없어! 조져버려!”

“단장님. 너무 어립니다.”

“시끄러워. 저 새끼들 몇 해만 더 있으면 다 똑같은 놈들 되는 거야. 인간을 죽이고 아이들 납치해 가는 괴물들!”


말릴 틈도 없었다. 아니,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르둑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만인 소년들은 당연히 기사단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왠지 모를 분노에 휩싸인 소년들은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다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소년들이 모두 쓰러지는 데는 찰나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다리를 베인 한 소년만이 남았다. 그는 이빨을 뿌드득 갈며 마르둑을 노려봤다. 눈에서는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느냐?”

“타나텤 키야탓.”


스가각.


그때와 똑같았다. 마르둑은 망설임 없이 소년의 목을 베었다. 소년은 눈을 치켜뜬 채 숨을 거뒀다.


“···”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적막이 내키지 않았는지 마르둑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소. 빨리 자그니스나 찾아야겠소.”


이히히힝.


그때, 뒤쪽에서 말이 우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빈 마차가 한 대 서 있고, 말에서 내린 야만전사 하나가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선에서 방금 복귀한 자인가?’


놈은 매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의 발치에 아직 숨이 붙은 야만인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가 죽어가는 동료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잡고 있던 동료의 손이 툭 하고 늘어졌다.


대충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전투에 나갔다가 잠시 놓고 온 물건을 실으러 온 자 같았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을까. 갓 소년의 티를 벗은 얼굴이었다.


야만인은 크게 숨을 고르며 주위를 계속 둘러봤다. 주위에는 난도질당한 동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놈의 얼굴에 점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카타하 크낰샤···”


야만인은 도망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검을 뽑더니 일행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홀로 이 많은 인원을 상대하려 드는 걸 보니 분노가 이성을 지배한 모양이었다.



놈의 눈동자가 짐승의 눈동자로 변했다.



“조심해. 드란데야.”


야만전사 중에도 드란데가 있었나. 하긴 저들은 모두 인간이었다. 그들 중에 드란데가 하나 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르둑이 검에 묻은 피를 털며 앞으로 나섰다. 같은 드란데라는 말에 호승심이 붙은 것 같았다.


“저놈은 내가 맡지.”


그가 앞으로 나오자 젊은 야만전사는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채애앵.


역시나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빠르고 강한 일격. 검과 검이 부딪혀 불티가 튕겼다. 그의 검을 받아 낸 마르둑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꽤 강한 놈으로 보였다.


“크아아아!”


분노에 휩싸인 야만전사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거기에 당황했는지 마르둑은 놈의 공격을 받아내기에 급급했다.


“덤벼라 이 짐승아!”


기사단이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마르둑이 손을 내밀며 이를 제지했다. 그는 단둘이서만 승부를 보기를 고집했다.


두 검이 다시 맞부딪혔다. 둘은 서로의 검을 밀며 힘을 겨뤘다. 막상막하의 힘. 드란데로서의 신체능력은 둘이 거의 비슷해 보였다.


그렇지만 조금이 지나자 마르둑이 살짝 밀리는 기색을 보였다.


‘역시 드란데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건가?’


마르둑은 아들뻘로 보이는 야만전사를 상대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가 갑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 승부는 기울었을 터였다.


마르둑이 야만전사의 검을 갑자기 빗겨내며 발로 허리를 걷어찼다. 야만전사가 자기 힘에 못 이겨 비틀거렸다. 마르둑이 그 틈을 타 거리를 벌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놈, 꽤 하는구나!”

“마캌타 나트샤 크랏.”


검을 한번 돌려 잡은 야만전사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르둑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처음엔 서로 분노에 휩싸여 검을 휘둘렀다면, 몇십 합이 지난 지금은 상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 대련을 하듯이.


둘의 머릿속에 이제 다른 종족을 향한 분노는 없었다.


이번엔 상대가 어떻게 공격할까, 그 공격을 어떻게 받아낼까, 그 뒤에는 어떤 연계기를 이어갈까. 둘의 머릿속에는 그것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라이센은 둘의 나이가 같았더라면 신체적 능력이 거의 비등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마르둑은 조금씩 밀리는 신체적 능력을 더 좋은 장비와 경험으로 메꾸고 있었다.


“카아압!”

“윽.”


힘에서 밀린 마르둑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야만전사가 쓰러진 그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마르둑이 힘겹게 검을 받아내며 버텼다.


야만전사가 힘으로 마르둑의 검을 눌렀다. 그의 검이 거의 마르둑의 목에 다다랐다.


“단장님!”


보다 못한 기사들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마르둑이 검을 흘리며 옆으로 굴렀다.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재빨리 단검을 꺼냈다. 단검이 야만전사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크헉···”

“···”


야만전사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검을 치켜든 마르둑이 그에게 다가갔다.


스각.


마르둑의 얼굴에 야만전사의 핏물이 튀었다. 드란데의 핏줄을 이어받은 젊은 야만전사가 쓰러졌다. 그는 조용히 마르둑의 얼굴을 보며 숨을 거뒀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기사들이 달려가 비틀거리던 마르둑을 일으켜 세웠다. 고된 전투가 끝나자 그는 참았던 숨을 쉴새 없이 몰아쉬었다.


‘이놈···’


마르둑은 쓰러져 있는 야만전사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봤다.




‘내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딱 저 나이였을 진데.’




***




“그쪽에도 있소?”

“그렇소. 이쪽에도 세 명이 있소.”


전투가 끝나고 라이센 일행과 기사단은 게르를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자그니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일행이 찾아낸 것은 게르마다 한둘씩 숨어 있던 야만인들의 아이들뿐이었다.


“일단 가운데로 모두 모으는 게 낫겠소.”


아이들은 모두 어렸다. 너덧 살 정도부터 시작해서 열서너 살 정도로 보였다. 아직 전투에 나가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아이들을 보던 아이라가 물었다.


“여자아이는 없습니까?”

“여자아이는 찾지 못했소. 다 남자아이들 뿐이오”

“이상하군요. 전투 뒤에는 여자들이 남겨지는 게 더 일반적일 텐데.”


마르둑과 기사단은 거기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단지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에 기사단도 그들에게까지 칼을 들이대진 못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도 있었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일행을 죽을 듯 노려보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크캌텍!”


끌려 나오던 아이 하나가 기사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앗아 들었다.


“이놈이!”


아이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검을 뺏긴 기사는 당황한 나머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카하탘 마르타캌!”


아이가 분노어린 표정으로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뒤에 서 있던 기사가 보다 못했는지 검 손잡이로 아이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껙.”


아이는 그대로 기절했다. 한숨을 내쉰 기사들이 아이를 들어 가운데로 옮겼다. 몇몇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좀 더 어린아이들은 그 광경이 무서웠는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라이센이 그런 아이들을 제 딴에 부드럽게 달랬다.


“떽! 고만 울어, 이놈들아.”

“으아아아앙!”


그러자 아이들은 더 큰 소리로 울어 젖혔다. 이 녀석들, 그러고 보니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듣겠군. 남들 다 보고 있는데 오크어로 달랠 수도 없고.


서러웠는지 어떤 아이가 큰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어엄··· 마아아!”



아이가 내지른 소리를 들은 일행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라가 말했다.


“잠깐, 저 애는 야만인의 아이가 아닙니다.”

“나도 방금 들었소. 방금 인간의 말을 했소.”

“꼬마야, 너···”


일행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몇몇 아이들이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앙앙, 집에 가고 싶어요.”


틀림없는 인간의 말이었다. 마르둑이 다시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육시를 해도 시원찮은 놈들, 이렇게 어린 애들을···”

“단장님, 몇몇 애들은 마을에서 납치해온 아이들 같습니다.”

“납치된 아이들을 골라내라!”


기사단은 납치되온 듯한 아이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라이센은 그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러면서 그는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납치된 아이와 야만인의 아이를 잘 구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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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p13. 지나가던 선비(1) +7 20.01.31 2,357 91 12쪽
» Ep12. 야만전사(3) +8 20.01.30 2,646 95 12쪽
46 Ep12. 야만전사(2) +7 20.01.29 2,907 100 12쪽
45 Ep12. 야만전사(1) +12 20.01.28 3,300 120 13쪽
44 Ep11. 배신자(4) +9 20.01.27 3,449 122 13쪽
43 Ep11. 배신자(3) +7 20.01.25 3,782 128 12쪽
42 Ep11. 배신자(2) +17 20.01.24 3,846 118 15쪽
41 Ep11. 배신자(1) +6 20.01.23 4,139 121 12쪽
40 Ep10. 명예 혹은 실리(6) +6 20.01.22 4,344 137 13쪽
39 Ep10. 명예 혹은 실리(5) +7 20.01.21 4,475 125 12쪽
38 Ep10. 명예 혹은 실리(4)(수정) +12 20.01.20 4,595 129 13쪽
37 Ep10. 명예 혹은 실리(3) +24 20.01.19 4,826 137 13쪽
36 Ep10. 명예 혹은 실리(2) +17 20.01.17 5,226 144 13쪽
35 Ep10. 명예 혹은 실리(1) +16 20.01.16 5,440 136 13쪽
34 Ep9. 산맥을 뚫고(3) +17 20.01.15 5,616 134 12쪽
33 Ep9. 산맥을 뚫고(2) +8 20.01.15 5,704 142 13쪽
32 Ep9. 산맥을 뚫고(1) +10 20.01.14 6,085 146 14쪽
31 Ep8. 잊혀진 옛 신의 집(6) +17 20.01.13 6,085 154 13쪽
30 Ep8. 잊혀진 옛 신의 집(5) +12 20.01.12 6,189 149 12쪽
29 Ep8. 잊혀진 옛 신의 집(4) +11 20.01.12 6,170 137 14쪽
28 Ep8. 잊혀진 옛 신의 집(3) +6 20.01.11 6,139 139 12쪽
27 Ep8. 잊혀진 옛 신의 집(2) +6 20.01.10 6,185 137 12쪽
26 Ep8. 잊혀진 옛 신의 집(1) +10 20.01.09 6,469 146 13쪽
25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3) +12 20.01.08 6,504 151 13쪽
24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2) +8 20.01.07 6,828 15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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