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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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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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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9
글자수 :
281,105

작성
20.01.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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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12. 야만전사(2)

DUMMY

<초원, 그리고 오크의 삶.>


초원은 혹독하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오고, 여름에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옥죄어 온다. 땅은 건조하고 단단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숲이 없어 열매를 딸 수도 없다.


그래서 초원인들은 가축을 몰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농사를 짓는 것만큼 풍족할 수 없다.


그저 목숨을 부지할 수준일 뿐이다.


험악한 자연, 굶주린 맹수, 약탈자. 초원의 종족은 날 때부터 이들과 싸우며 강인하게 자라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원이 전사의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말을 배우기 전에 칼을 쓰는 법을 배우며, 예절을 익히기 전에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오크는 인간보다 훨씬 더 강인하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크는 서로 힘을 합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내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은 모두 생존의 경쟁 상대다. 초원에서 살아남으려면 먼저 차지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먼저 차지한 자를 죽이고 빼앗아야 한다.


오크는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서로를 죽이며 약탈을 자행해왔다.


물론 그들이 서로 간의 약탈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종 남쪽으로 내려와 인간을 약탈한다.


여기 한 오크의 전사가 있다.


어느 날 그가 인간의 마을을 내려다본다.


그의 등 뒤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가족과 살을 에는 추위가 있다. 하지만 눈앞 인간의 마을에는 언제나 밥 짓는 연기가 따사롭게 피어오른다.


그의 동공에는 순간 어떤 의지가 뜨겁게 불타오른다.


인간을 죽이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다. 그러지 않으면 내 가족 내 형제가 죽는다.


이런 그들을 과연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생명의 수는 많고 그들 모두가 살아갈 양식은 없다.


약탈은 곧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은 그저 오크가 힘을 합치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들이 가끔 약탈만 하고 돌아가는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


만약 오크들이 힘을 합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 프레드린 카이세린.




***




한낮, 바하크탈의 대평원.


하늘 높은 곳에서 독수리가 빙빙 돌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 어떤 무리가 개미떼처럼 새카맣게 몰려 있는 게 보였다.


긴 창날이 빼곡히 솟아 있었고, 사이사이마다 울긋불긋한 깃발이 펄럭였다. 저마다 들고 있는 날카로운 쇠붙이가 햇빛을 사납게 튕겨내고 있었다.


독수리가 좀 더 가까이 날아가 보려는 순간,


하아압-


천둥이 울리듯, 무리가 기합소리를 토했다.


독수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황급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다 모인 것인가?”


언덕 위의 오크 족장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천여 기에 달하는 오크의 대군이 용맹한 기세를 내뿜으며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가 뒤늦게 그 언덕에 합류했다.


“샤무르, 왜 이렇게 늦었나?”

“우리의 집은 너희보다 멀다. 불만이 있느냐?”


쿵.


족장 샤무르는 눈을 번뜩이며 도끼를 땅에 꽂았다. 질문을 받은 또 다른 족장, 우크샤르가 말했다.


“겁먹은 부하들을 달래느라 늦은 것은 아니었나?”

“네놈이 지금 내 형제들을 능멸하는 것이냐?”


샤무르가 성큼성큼 우크샤르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도끼를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우크샤르가 일어섰다. 그리고 붉은 눈을 치켜떴다.


“네놈이 내 형제들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가축들을 빼앗아간 일을 아직 잊지 않았다.”

“너는 그것이 초원의 법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내가 이 자리에서 네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것도 초원의 법이겠지.”


스르릉.


샤무르가 대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그들이 검과 도끼를 맞댔다.


채앵.


그때, 또 다른 검이 맞대어 있는 검과 도끼를 갈라놓았다.


“그만들 하라. 모두 자그니스 님의 가르침을 잊었는가?”

“칭칼리···”


칭칼리가 힘을 주어 검과 도끼를 아래로 내렸다.


“우리가 왜 힘을 합쳐야 하는지 다들 잊었는가?”

“···”

“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난다는 초원의 카한이 나타나셨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초원의 법이라고? 자그니스 님께선 초원의 법을 넘어선 미래를 보여주셨다. 그걸 잊었는가?”


샤무르와 우크샤르는 서로를 노려보며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누그러트렸다.


자그니스의 가르침.


그것을 실행키 위해선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곧이어 칭칼리가 군대를 향해 외쳤다.


“출정 의식을 거행하라!”


그의 외침에 각 부족의 샤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부족원들이 샤먼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샤먼은 대부분 머리에 새깃을 꼽고 몸에는 철제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손에는 하나같이 방울이 달린 지팡이를 들었다.


샤먼의 지팡이가 흔들리자 의식이 시작되었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시작된 그들의 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격렬해졌다.


샤먼은 미친 듯이 북을 쳤고 쉴 새 없이 방울을 흔들었다. 이제 막 신이 내린 듯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둥둥둥둥.


북소리에 맞춰 오크들이 창을 땅바닥에 두드렸다. 그들에게도 신이 내렸는지 하나둘씩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오크들이 격정을 못 이겨 이리저리 날뛰었다. 서로 다른 부족원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였다.


그러나 누구도 다투는 자가 없었다.


부족마다 서로 다른 신.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서로의 신성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초원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며 본능적이다. 그들이 서로의 신성을 불가침하는 것은 자연의 법이었다.


의식이 끝나자 오크들의 눈매는 전에 없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곧 싸움터에 나갈 전사들에게 신의 축복이 골고루 스며든 것 같았다.



그다음은 혈맹식(血盟式)이 있었다.


족장 칭칼리가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그릇에 담았다. 그릇을 건네받은 샤무르도 자신의 피를 그릇에 담았다. 그런 식으로 족장들은 서로의 피를 한곳에 섞었다. 그리고는 하나씩 돌아가며 그 피를 마셨다.


병사들도 족장들과 똑같은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 또한 서로의 피를 섞어 마시며 결의를 다졌다. 오늘만큼은 전투에서 피를 나눈 형제가 된다는 의미였다.


모든 의식을 마치자 칭칼리가 언덕 앞에 섰다. 그는 족장 대표로 병사들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위대한 오크의 전사들이어. 다시 하나가 된 전사들이여. 우리는 그동안 인간들을 약탈해 왔다.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다. 그렇지 아니한가?”


와아아-


“허나, 자그니스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약탈보다 더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의 가르침을 수행하기 위해선 먼저 너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와아아-


“반항하는 인간은 죽이되 반항하지 않는 인간은 살려두어라. 약탈은 하되 그들이 먹을 것을 남겨주어라.”


칭칼리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정복하고, 지배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평원을 뒤덮었다. 뭉칠 수 없는 오크가 하나로 뭉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 카이세린 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너머의 거대한 산맥을 바라봤다. 산맥 너머에 있을 또 다른 인간의 성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윽고 오크가 진군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엔 하나같이 검은 구슬이 달린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




초원은 숨을 곳이 없다. 사방이 끝도 없이 트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센 일행과 기사단은 초원을 세로로 가르는 야트막한 언덕의 뒤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예상되는 오크의 진군로와는 정반대 방향의 길이었다.


라이센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감상하는 것에 지쳐갈 즈음이었다. 심심해진 그가 아이라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라, 만약 여기서 자그니스를 잡을 일도 없고, 교단의 임무도 없다면 당장 뭘 하고 싶소?”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질문이야?”

“그냥 물어나 봤소.”

“헛소리 말고 임무에나 집중해.”

“쯧쯔. 사람이 그리 딱딱해서야 쓰겠소.”


자그니스를 추적하기 위한 고된 여정. 아이라는 사실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사실 아까부터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이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왠지 라이센에게 그런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맞받아친 것뿐이었다.


임무, 전투, 또 임무.


그녀의 신앙심은 굳건했지만, 그간의 고됨은 그녀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만 사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인가?’


아이라는 라이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정으로 지칠 법도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아이라는 라이센이 부러웠다.


그에겐 임무가 주는 족쇄가 없었다. 그저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하기 싫은 의뢰가 있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말 그대로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돌면 되는 삶.


하지만 아이라는 자신이 그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기분이나 풀어 볼 요량으로 라이센에게 말을 붙였다.


“라이센, 그러니까 나는···”

“마르둑 경, 카이세린 성의 임무가 없으면 당신은 지금 당장 뭘 하고 싶소?”

“나 말이오?”


어느새 라이센은 마르둑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뻘쭘해진 아이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르둑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크들 쳐 죽이기.”

“···”


라이센은 그에게 말을 건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둑에게서 도망친 그가 다시 아이라에게 다가왔다.


“아이라, 다시 한 번 묻겠소. 임무가 없다면 지금 당장···”

“바룬우르트야.”

“뭐요?”

“저기 앞에 바룬우르트라고. 거의 다 도착했어.”


“근데 어째 말투가 좀 화가 난 것 같소.”

“내가 언제?”


아이라가 얼굴을 붉히며 표정을 구겼다.




***




바룬우르트는 성이 아니었다. 유목민들이 기거하는 천막, 게르가 수도 없이 모여있는 곳일 뿐이었다.


‘하긴 유목을 하는 오크가 성을 들고 다닐 순 없겠지. 겨울이 되면 다른 데로 이동 할 테니.’


그렇게 모여 있는 게르를 목책이 두르고 있었다. 목책은 말이 뛰어오를 수 없을 정도의 높이일 뿐, 성벽처럼 높지 않았다.


문은 없고 입구도 큼직해서 인간들의 성처럼 방어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바룬우르트는 꽤 넓었다.


‘카이세린 성의 한 다섯 배는 넘는 크기군.’


그리고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서쪽과 동쪽. 그 둘은 목책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일행은 먼저 서쪽의 게르들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오크 포로의 말대로 이곳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입구를 지키는 놈조차 도 안 보이네. 이놈들 진짜 죄다 카이세린으로 몰려간 건가?’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일행은 모두 무기를 뽑고는 조용히 안으로 진입했다. 타고온 말은 입구쪽에 풀어 두었다.


라이센과 아이라가 맨 앞에 섰고, 마르둑과 기사단이 그 뒤를 따르는 형태로 정찰을 시작했다.


라이센이 어느 게르와 게르 사이를 돌아설 때였다. 그의 눈앞에는 휘둥그레 눈을 뜬 야만전사가 서 있었다.


너무 놀랐는지 야만전사는 미동도 하지 못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그는 두 손으로 냄비를 들고 있었다.


“인간, 인간들이 나타났다!”


찰나 뒤 정신을 차린 야만전사는 냄비를 내던지며 뒤로 도망을 쳤다. 그가 내뱉는 오크어가 라이센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러자 뒤편의 게르에서 야만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르둑이 검을 치켜들며 득달같이 앞으로 나왔다.


“이 배신자 놈들. 모조리 쓸어주마!”



그의 눈이 순식간에 짐승의 눈으로 돌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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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p13. 지나가던 선비(1) +7 20.01.31 2,357 91 12쪽
47 Ep12. 야만전사(3) +8 20.01.30 2,646 95 12쪽
» Ep12. 야만전사(2) +7 20.01.29 2,908 100 12쪽
45 Ep12. 야만전사(1) +12 20.01.28 3,300 120 13쪽
44 Ep11. 배신자(4) +9 20.01.27 3,449 122 13쪽
43 Ep11. 배신자(3) +7 20.01.25 3,782 128 12쪽
42 Ep11. 배신자(2) +17 20.01.24 3,846 118 15쪽
41 Ep11. 배신자(1) +6 20.01.23 4,139 121 12쪽
40 Ep10. 명예 혹은 실리(6) +6 20.01.22 4,344 137 13쪽
39 Ep10. 명예 혹은 실리(5) +7 20.01.21 4,475 125 12쪽
38 Ep10. 명예 혹은 실리(4)(수정) +12 20.01.20 4,595 129 13쪽
37 Ep10. 명예 혹은 실리(3) +24 20.01.19 4,826 137 13쪽
36 Ep10. 명예 혹은 실리(2) +17 20.01.17 5,226 144 13쪽
35 Ep10. 명예 혹은 실리(1) +16 20.01.16 5,440 136 13쪽
34 Ep9. 산맥을 뚫고(3) +17 20.01.15 5,616 134 12쪽
33 Ep9. 산맥을 뚫고(2) +8 20.01.15 5,704 142 13쪽
32 Ep9. 산맥을 뚫고(1) +10 20.01.14 6,085 146 14쪽
31 Ep8. 잊혀진 옛 신의 집(6) +17 20.01.13 6,085 154 13쪽
30 Ep8. 잊혀진 옛 신의 집(5) +12 20.01.12 6,189 149 12쪽
29 Ep8. 잊혀진 옛 신의 집(4) +11 20.01.12 6,170 137 14쪽
28 Ep8. 잊혀진 옛 신의 집(3) +6 20.01.11 6,139 139 12쪽
27 Ep8. 잊혀진 옛 신의 집(2) +6 20.01.10 6,185 137 12쪽
26 Ep8. 잊혀진 옛 신의 집(1) +10 20.01.09 6,469 146 13쪽
25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3) +12 20.01.08 6,504 151 13쪽
24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2) +8 20.01.07 6,828 158 14쪽
23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1) +13 20.01.06 6,970 17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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