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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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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14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10.11 14:40
조회
2,580
추천
65
글자
9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DUMMY

봄이 되면 리모주 자작령을 공략하려던 계획은 어긋났다. 잉글랜드에서 소요가 발생해 군대를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더불어 눈치를 챈 리모주 자작의 하소연이 연일 이어졌다.


‘필리프가 저를 속였습니다. 전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전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습니다.’


리처드의 성격을 알아챈 자작의 대처였다. 잘못한 걸 인정하고 눈물로 하소연하는 방법. 용서를 받았다. 물론 한 번뿐이겠지만 말이다. 리처드는 사내답기는 했어도 농락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평화가 이어졌다. 시간이 흘렀고 아이가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고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다. 류와 연이에게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사 년이라는 시간이었다.


샤토 갸이아르에는 로저를 위시한 이백 명의 병사를 배치해놨다. 에브뢰의 성이 지내기에는 좋아 평화로울 때 거처를 옮길 생각은 없었다. 로저는 자신이 성주가 되었다는 생각에 류에 대해 충성을 다하겠다며 좋아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렇게 평화는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았다.



***


그렇게 평화로울 줄 알았던 날은 끝났다. 왕의 명령에 다시 병사와 영주들과 출세에 눈이 먼 젊은이들이 모였다.


필리프가 군대를 모아 국경으로 다가오자, 리모주 자작이 다시 내통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삼엄한 감시를 받는 걸 모르던 자작은 자신의 밀서를 가지고 가던 전령이 붙잡혀버린 것도 몰랐다.


필리프의 군대를 기다리던 그의 눈에 리처드와 그의 군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작은 자신의 성중에서 가장 견고한 샬뤼 샤브롱성으로 도망쳐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필리프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류는 모이라는 연락을 늦게 받아 합류가 늦어져 버렸다.


류가 도착했을 때 진영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고,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병사들은 성문을 부수려 배틀 램을 몰아 공격을 하고 있었고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사다리를 걸치고는 이곳저곳에서 넘어 들어가고 있었다.


”병사들이 왜 이렇게 흥분했어? 몸도 사리지 않고.“


전선에서 낯익은 얼굴을 찾던 류는 제임스를 알아보고는 물었다. 고개를 돌린 제임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류, 왔구나.“


맥없이 고개를 돌린 제임스는 성문이 열리자 달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오는 와중에 몸 생각은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병사들이 광분해 쪼개진 문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들어섰다.


보이는 적은 모두 죽였다. 살려달라고 손을 드는 이들도 모두 죽인다. 이건 그동안의 전쟁이 아니다. 뼈가 드러난 팔을 들어 애원해도 칼을 내리꽂았다. 뼈가 더 갈라지고 근육이 드러나고 힘줄이 끊기도록 난자했다.


이건 전쟁이 아니다. 학살이다. 당황한 류는 고개를 돌려 아비규환을 말리려 했다. 한둘이 아니다. 전부 그런다. 막을 수가 없다.


”그만! 리처드 전하의 명령이다. 포로들에 대한 공격을 금한다.“


말을 타고 달려온 랜포트가 보였다. 그가 외쳤다. 그제야 광분했던 병사들의 칼이 내려갔다. 왕의 이름으로 학살이 멈췄다.


윌리엄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말을 걸 상황이 아니다. 말을 돌리는 랜포트에게 다가갔다.


”랜포트!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무슨 난리야?“


”아, 류구나. 다행이네. 왕이 찾으신다.“


애써 담담하게 얘기하는 랜포트의 얼굴에도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어? 류구나.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이제야 들고서 온 거냐?“


리처드의 천막으로 들어서자, 침대에 누운 리처드가 보였다. 어깨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걸 살며시 들어내는 의사가 보였다. 붕대를 한겹 한겹 벗겨내는 그의 손이 떨렸다.


그의 손만큼이나 류의 눈도 떨렸다. 얼핏 보이는 상처는 가득 곯아 검고 붉었다. 의사는 나무꼬챙이로 상처를 찔러 고름을 짜냈다. 천막 안에 비릿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흘러넘쳤다.


죽음의 냄새였다. 류의 얼굴에도 갑자기 뜨거운 게 흘러내렸다.


”쳇, 네 녀석마저 울어 재끼냐? 빌어먹을 녀석들.“


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리처드는 힘겨운 목소리로 전투에 관해 물었다.


”리모주 자작은 수로를 통해 도망가다 죽었습니다. 병사들의 난동은 그만 두라고 전했습니다.“


온몸에 피가 튄 것을 보니, 리모주 자작의 목숨을 끊은 것은 랜포트였으리라. 알아챈 리처드가 조용히 꾸짖었다.


”병사들을 말리러 보낸 게 아까였는데. 어디로 샜다가 지금에야 멈춘 거야?“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렇구나.“


뻔한 거짓말이었다. 병사들의 분풀이를 막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리처드는 나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호하게 포로들을 더이상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양쪽에 부축한 류와 랜포트는 비틀거리는 리처드를 안아 들듯이 안고는 천막을 나섰다. 포로들이 끌려와 고개 숙인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살아남지 못했다.


”너희들 중에 나에게 활을 쏜 자는 누구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결국 전투 중에 죽었나 하던 순간에 구석에 있던 어린 소년이 일어섰다. 머리에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 투구와 껑충한 사슬갑옷이 바닥에 끌리는 듯했다.


”접니다. 왕이시여. 당신의 목덜미에 활을 꽂은 건 접니다.“


”그러냐? 실력이 대단하다.“


”당신은 내 아버지와 두 형을 죽였소. 하지만 난 여한이 없습니다. 당신은 결국 내 화살에 죽을 테니 말이오. 당신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소이다.“


그 말에 뒤편에 있던 윌리엄이 허리에서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그만둬라. 이놈. 윌리엄. 왕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윌리엄은 부들거리다가 검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한참을 보던 리처드가 다시 소년병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이름은 뭐냐?“


”구르동입니다.“


”모두, 구르동의 안전을 약속해라. 너에게 백 실링의 돈을 주겠다. 어디론가 가서 살아라. 피에 젖은 왕이 목숨을 앗아갔던 네 아버지와 형들 몫까지 살아라.“


그렇게 말한 리처드는 혼절했다.


천막에는 영주들과 주교들, 기사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다.


"나는 내 야심을 템플 기사단에게, 내 탐욕을 수도자들에게, 그리고 내 쾌락을 고위 성직자에게 맡긴다. 랜포트, 존을 부탁한다. 윌리엄, 제임스. 랜포트를 보좌해라. 류, 넌 내 성을 맡긴다. 다른 친구들이 군대를 몰고 올 때까지 넌 버텨다오. 친구야.“


그렇게 말한 리처드는 눈을 감았다.



***



리처드가 죽은 후, 왕위 계승권자로는 존이 우선이었으나 조카였던 브르타뉴 공작 아서와 다툼이 일어났다.


왕의 자리를 놓고 혼란이 벌어지자 필리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리프는 존에게 벡센과 에브뢰를 넘겨받기로 밀약하고는 왕위 계승에 대한 지지를 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존은 왕이 될 수 있었다.


류는 국경을 넘어오는 필리프의 군대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구원하자는 얘기가 빗발쳤으나 존은 군대를 모으지 않았다. 주기로 한 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에브뢰를 그냥 내줄 수 없던 류는 죽기 살기로 싸웠다.


영지의 병사를 모두 모아봐야 팔백 명이 겨우 넘었다. 필리프의 군대는 만오천에 달했고 전쟁은 점점 격화됐다.


류는 에브뢰를 빼앗기면서 오 개월을 버텼고, 다시 샤토 가이야르로 옮겨가 칠 개월을 막아냈다.


그제야 필리프가 벡센과 에브뢰만이 아니라 더 많은 땅을 원한다는 걸 알아챈 존이 군대를 모았다. 더불어 하인리히에게 부탁해 프랑스를 견제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 필리프의 군사적인 재능이 꽃을 피웠다. 하인리히의 독일군을 맞아 기습해 승리한 필리프는 쉬지 않고 군대를 몰아 존의 군대마저 박살 내버렸다. 그렇게 전쟁은 점점 끝나갔다. 영국은 프랑스에 있던 영지 대부분을 잃었다. 에브뢰는 필리프의 영지 중 하나가 되었고, 샤토 가이야르 요새는 폐허가 됐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던 검은 머리 기사는 사라졌다. 그에 대한 기억이 있던 늙은 병사는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한마디만 했어. 형하고 약속은 지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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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1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3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8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6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4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8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4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5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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