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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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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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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74
글자
11쪽

< #16. 야파를 향해서 2-1 >

DUMMY

'격술밖에 없나?'


류는 전쟁터를 거치며 격술을 조금씩은 익혔지만, 원체 소질이 없었다. 격술을 배우느니 검술과 창술을 더 가다듬는 게 낫다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잘 때도 머리맡에 두던 검이 이렇게 손에서 사라질 줄이야.


'적어도 몽둥이라도 굴러다녔으면······.'


다가오는 셰이크를 곁눈질로 보며 주변을 돌아봤지만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좋은 죽음을 맞이하게나. 적어도 고통 없이 눈을 감을 수 있게 하겠네."


셰이크가 움직였다. 나이든 노인이라고 보기에는 빠른 움직임. 아니, 적은 몸동작으로도 흐르듯이 움직였다. 재빨리 찔러온 단도는 류의 배를 노리는 허초로 속이더니 순간 허벅지로 내리꽂혔다. 류는 두 손으로 잡아채려 하다가 떨어지는 검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하지만 단도의 둥그스런 날은 의외로 범위가 넓었다. 허벅지를 스친 류의 인상은 잔뜩 찡그려졌다.


"독이라도 바를 걸 그랬나. 그러면 고통은 빨리 끝났을 텐데. 그냥 잠시만 눈을 감고 있어 주게. 단번에 목을 베어주겠다네."


"다행이네. 독이 없다면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 안 되는 거야. 노인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류는 조금은 시간을 끌기로 했다. 건물 밑에서 병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네. 솔직히 배신자 녀석이 날 가리키지만 않았으면 이리 위험스러운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왜? 살라흐앗딘을 노리다가 이번엔 십자군 영주를 노리는 거지?"


류의 말에 셰이크는 갑자기 껄껄거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단순하구나.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것도 저것도 섞인 회색이 있어야 다채로울 게 아니냐? 내 선대도 그 선대도 십자군과 무슬림 사이에서 저울질했지. 더 나아가볼까? 옛적 로마조차도 우리의 적일 때도 손님일 때도 있었다."


계단을 거칠게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셰이크도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류의 눈에 장식을 위해 놓아둔 화분이 보였다. 발로 걷어차 셰이크에게 날려버렸다.


발로 걷어찰 때마다 디딤발을 하는 쪽의 허벅지가 아려왔다. 고개만 살짝 숙여 피하는 셰이크의 모습이 얄미웠으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배를 스쳐 지나가는 단도의 섬광에 훌쩍 뒤로 피했지만, 또 생채기가 생겨났다.


"그만두자고. 덤비려면 덤비고. 죽으려면 죽고 말이야."


점점 뒤로 밀려나 옥상의 끝으로 밀려났다. 좌우로 몸을 흔들어보지만, 셰이크는 눈만으로도 류를 가둬두는 데 성공한다. 밀려 떨어지거나 아니면 검에 베일 것이다.


그때 귀를 찌르는 피리 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셰이크와 달리 류는 반색했다.


"못난 녀석, 쫓겨난 주제에. 살려줬으면 자중이나 할 것이지."


건너편 옥상에 몸을 드러낸 카나비는 대답 대신 작은 쇳덩이를 날리는 거로 대신했다. 몸 이곳저곳을 노린 작은 쇳덩이는 매섭게 날아왔지만, 셰이크는 별 움직임 없이 피해냈다.


"류, 받아라."


바닥에 떨궜던 검은 아니지만 적당한 길이의 검이 검집 채로 날아왔다. 받아쥔 걸 확인한 카나비는 몸을 돌려 옆의 건물 벽으로 뛰었고 거미처럼 붙었다. 또 무슨 장비를 한 게 분명했다.


카나비는 병사들의 포위가 심해지기 전에 도망칠 생각이었다. 자신으로서는 셰이크처럼 수십 명을 베어가며 도망갈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냥 가기는 아쉬워 셰이크를 향해 웃음 띤 말을 한마디 던졌다.


"노인네, 고생 좀 해봐. 죽으면 좋고."


그리고는 미끄러지듯이 벽을 내려가더니 금세 좁은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터엉-


달려든 병사들이 문을 열려고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유를 부리던 셰이크도 어서 끝내자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류는 손에 잡힌 검을 어루만지며 달려드는 셰이크를 노려봤다.


"한치가 길면 열 배는 이롭다. 내가 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


검을 뽑으며 조용히 말한 류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는 셰이크의 공격을 노려봤다. 어깨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공격이 보였다. 내리쳐진 검이 진흙을 굳힌 바닥에 길게 상처를 남겼다. 강한 기세에 맞받아칠 생각을 못 한 셰이크는 뒤로 몸을 날렸을 뿐이다.


이제는 오히려 류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류의 말대로 류가 질 일은 없어 보였다. 강한 공격이 이어지자 몇 번 검을 맞부딪치던 셰이크의 인상이 어두워졌다.


"어째서냐? 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왔는데. 한낱 애송이인 네 녀석이 어찌? 난 기사도 여럿 상대한 사람인데."


밀리기 시작하자, 셰이크가 짜증이 나는듯 물었다. 류는 웃었다.


"암살자들의 싸움? 그게 싸움인가? 비겁한 수로 등 뒤에서 검을 꽂는 게? 난 수많은 전투를 겪었다. 맘루크로 화살이 쏟아지는 땅을 뛰어다녔다. 기사가 되고, 적진을 말 탄 채 갈랐다. 하루 동안 내 검에 죽어간 이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난 세는 법을 잊었다."


셰이크는 당황했다. 일류 암살자라면 기사들도 쉽게 죽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몇몇 기사들은 쉽사리 죽어갔다. 하지만 전쟁의 전문가인 기사들을 얕본 것이다. 그중에도 특출난 류는 더욱 말이다.


그때 문에 걸려있던 단도가 우그러지며 토막이 나버리고 병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상대하기 힘든데······. 오늘은 몸을 피해야겠군.'


달려드는 병사의 목을 이리저리 베며 오히려 병사들 사이로 숨어드니 류의 공격이 잠시 멈췄다.


셰이크는 병사 하나의 목을 붙잡고 목 앞에 검을 들이댄 채 옥상 끝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끝에 도착하자 병사를 죽이고는 재빨리 품속에서 갈고리가 달린 장갑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에 끼웠다.


달려드는 류와 병사들은 보며 셰이크는 옆의 건물로 몸을 날렸다. 조금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힘있게 몇 번 두들겨 넣자, 흙덩이 속에 갈고리가 박혀버렸다.


이제는 내려가 도망칠 시간이었다. 눈 아래의 도로에는 병사가 셋밖에 없었다.


내려가기 시작하는 셰이크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그들로서는 몇 번 검을 부딪치기도 전에 죽을 게 뻔했다.




***



벽에 붙은 채 재빨리 내려가던 셰이크는 저쪽에서 바라보는 류를 한탄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얼굴을 아는 이가 많으면 좋지 않은데 그러면서 말이다.


'매일 밤. 아니 겨우 안심을 하고 눈을 붙이는 여명의 시간에도 나의 암살자가 너를 노릴 것이다. 결국 순간의 방심에 넌 목이 잘릴 것이다.'


다시 눈을 돌려 벽을 내려서려는 순간, 터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망한 느낌에 눈을 돌렸더니 류가 검을 양손으로 잡고 찍듯이 몸을 날린 것이다.


"바보 녀석, 같이 죽으려는 거냐? 이 높이에서!"


흙벽에 박아넣은 갈고리 장갑이 겨우 몸을 지탱하는 와중에 셰이크는 어떻게든 피하려 발버둥 쳤다. 핏발이 가득 선 류의 눈이 점점 다가왔다.


오른쪽 어깨를 꿰뚫고 검이 꽂혔다. 순간 고통에 셰이크는 부르르 떨었지만 이대로 떨어지면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어떻게든 버티는 셰이크의 귀에 류가 중얼거렸다.


"네놈은 지옥으로 가겠지. 샤아에게 공양을 올릴 거다. 가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위안으로 삼으라고."


찌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류의 체중을 버티지 못한 검이 흙벽을 가르기 시작했다. 셰이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깨부터 가슴을 지나 옆구리까지 비틀며 지나친 검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비명이 끊이지 않다가 작은 신음으로 바뀌었고, 반 토막 난 하반신은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철썩 소리와 함께 쏟아진 내장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피범벅이 된 벽에는 검붉은 피가 스며 번져나갔다.


류의 몸무게를 버티던 검이 결국 챙그렁소리와 함께 부서지자 맥없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꽤나 높은 높이. 다리부터 떨어졌으면 목숨은 부지했겠지만, 머리부터 떨어진다. 게다가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도로.


최대한 몸을 돌리려 힘을 줘봤지만 한 톨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을 감은 류는 마지막을 기다렸다. 슬퍼할 연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말이다.


"우아아아!"


갑자기 귀를 때리는 고성에 귀가 먹먹했다. 온몸에 충격이 전해졌지만 버틸만했다. 누군가가 떨어지는 류를 받쳐 들었다가 품으로 안은 것이다.


"젠장, 윌리엄. 네 녀석이 나서서 받아야 할 거 아니냐?"


"어떻게 떨어지는 사람을 받습니까?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허리가 나갑니다."


"쳇, 난 결혼했다. 이거냐? 어이. 류. 그만 안겨있고 내려와라. 난 그쪽으로는 관심 없다."


류가 조심스레 내려서자, 손목이 욱신거리는지 이리저리 돌려보는 리처드였다. 윌리엄은 손을 들어 벽에 박힌 셰이크의 반절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 녀석이 우두머리였나?"


"네, 산노인입니다. 하사신들의 수장."


류의 말에 리처드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도 하사신들은 골칫덩이가 분명했으니 말이다. 괜찮은 동업자였던 코라도가 그렇게 비명횡사를 했으니 그 분풀이도 필요했고 말이다.


"한동안은 조용하겠군."


"네. 그들도 다시 수장을 뽑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한동안은 괴롭히지 않겠죠."


류의 말에 리처드는 잘됐다는 표정으로 웃다가 주변의 병사들을 그러모았다.


"자, 내 생명을 지킨 근위 기사다. 집까지 잘 데려다주고 말이야. 밤새 경비를 서도록 해. 첫날밤은 제대로 지내야지."


병사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류를 바라보다가 좌우를 감싸 호위를 시작했다. 류는 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는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이제야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일,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가라. 배 한 척은 준비해놓을 테니 말이야. 그리고 휴가도 이주다. 이 주 동안 아주 즐겁게······. 거 있잖아. 신부의 몸이 남아 남지 않게 말이야···."


"짐승 같은 표현입니다."


윌리엄이 제지를 해봤지만, 오히려 리처드의 구박만 받았다. 리처드는 지금 여유로운 척했지만 꼬여버린 정국을 어떻게 풀지 고민 중인 게 틀림없었다.


류는 이런 잡다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왕이 결정할 테니 말이다. 조금 걷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에 올라탄 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하루의 휴식뒤에 돌아왔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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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4 6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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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4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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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2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5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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